김 상궁의 은밀한 매력
임지영 지음 / 하얀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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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유쾌한 퓨전사극로맨스다.

주인공인 김 상궁은 다섯 살에 고아가 되어 궁에 들어와 이십 년을 지내면서 신기에 가까운 뛰어난 자수 실력으로 어린 나이에 상궁이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는 궁궐에서 그녀의 외모는 지극히 평범하다. 특히 작은 가슴과 나올 곳, 들어갈 곳이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몸매는 그녀의 오랜 열등감의 근원이다.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는 김 상궁을 보자 처녀는 살짝 부끄러운 듯 웃었다.

“먹는 대로 살이 쪄 볼 바가 아니라 궐의 마마님이 보시기에 심히 부끄럽습니다.”

김 상궁이 아……. 먹는 대로 그곳에 살이 찌는 그 쌀이 도대체 어느 동네의 쌀이요? 하고 물어볼 뻔하였다. (pg. 28)

 

그런 그녀에 대한 야릇한 소문이 궁 안팎으로 파다하게 돌기 시작하는데…….

 

“아, 그래, 그대, 김 상궁이군.”

김 상궁이 예? 하고 올려다보자 원호어른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대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면서?”

무슨 솜씨? 도대체 아는 것이라고는 주색잡기에 술 마시기 밖에 없는 어른이 도대체 무슨 솜씨를 말하는 것인가? 아연실색해서 쳐다보는 김 상궁을 보더니 원호어른은 한쪽 눈을 찡긋하기까지 했다!

(pg. 11)

 

단순한 오해에서 시작된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결국 왕의 둘째 아드님인 세영대군이 소문의 주인공인 김 상궁을 주시하게 된다. 김 상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영대군을 몰래 짝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세영대군의 오해와 관심에 어쩔 줄 모른다. 이후, 두 사람이 함께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고 세영대군은 점차 김 상궁의 착한 성품과 바르고 야무진 마음에 반한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두 공주들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엮여 재미있게 이어진다.

 

스토리도 재미있었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유쾌하고 즐거웠다. 다만 너무 많은 오자와 탈자, 기본적인 띄어쓰기 오류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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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이랑 이야기
반흔 지음 / 다향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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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4일 종이책으로 읽다.

 

 

이웃 분들의 평이 좋아서 펴든 책이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을 재미있게 봤다. 크게 특이한 설정도 없고 극적인 요소들도 없었지만 앞부분을 읽으면서 ‘아, 이런 게 연애구나’ 하고 새삼 감탄했다.

 

서른 두 살의 유선우는 수려한 외모, 매력적인 성격, 잘 나가는 건축가라는 직함 등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남자다. 다만 그다지 화목하지 못한 가정환경 탓 여자에 대해 냉소적이다. 이런 그의 이상형은 금붕어 같은 여자였다.

 

단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그의 이상형은 어항 속의 금붕어 같은 여자였다. 잊지 않고 먹이만 주면 불평 없이 조용한.

토요일. 햇살은 따사롭다 못해 따분했다. 잠시 창밖을 감상하던 그의 불알친구 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와라. 형님 오늘도 한 건 하셨다.”

준석은 그의 이상형이 금붕어라는 것을 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뜻에서 준석은 한마디 했었다. 그럼 네 자식들은 인어냐? (pg. 11)

 

그러던 어느 봄날 그는 죽마고우인 준석의 애인인 희주의 친구 소이랑을 소개 받게 된다. 두어 번 만나던 두 사람은 술에 취해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둘은 사귀게 된다. 민들레 어린이집 노랑반 교사인 이랑은 선우에게 간섭도 하지 않고, 보채지도 않고, 잔소리도 없다. 이런 이랑에게 만족한 선우는 자신의 이상형을 찾았다고 만족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관계를 이어간다.

 

그는 상념을 떨쳤다. 어쨌든 만족하고 있었다. 기르는 금붕어가 플라스틱 해초 사이에 집을 짓는다고 해서 초록색을 좋아하는지 연두색을 좋아하는지까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는 기분 좋은 여자의 체취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pg. 107)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선우는 이랑에게 점점 깊이 빠져들고 모든 것을 속으로만 삼키고 혼자 아파하는 이랑에게 애달아하기 시작한다.

 

그가 찾았다고 생각한 어항 속의 금붕어 같은 여자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그럼 복잡한 금붕어는 금붕어가 아닌가? 관리하기가 다소 까다로워지긴 열대어 정도라면 뭐. (pg. 142)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면서 각자의 복잡한 가정사가 조금씩 얽혀들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금 빤한 수순을 밟는다.

 

평범한 듯한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감정과 생각의 흐름이 잘 표현되어서 흡인력 있게 읽힌다. 특히 이야기 곳곳에 섞여 있는 선우의 건조한 유머 때문에 많이 웃었다.

 

다만 마침표가 없어야 할 곳에 마침표가 찍혀서 문장들이 뚝뚝 끊어지는 것과 이야기 후반부로 가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복잡한 일들이 모두 흐지부지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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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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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8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넬리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의 네 번째이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번역 출간되었다. 어디선가 이 책의 편집자가 여기에 대해 설명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집자의 말에 의하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시리즈 중 가장 대중적이라서 먼저 출간하기로 했다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정 궁금하면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원래 이 시리즈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타우누스’ 시리즈 순서

1.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2. 깊은 상처

3. 너무 친한 친구들

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5. 바람을 뿌리는 자

 

11년 전 토비아스 자토리우스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그는 뛰어난 외모와 두뇌, 운동신경까지 겸비한 전도유망한 청년으로 의대로 진학해서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축제날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난 그는 두 여자친구를 죽인 살인범으로 지목된다. 그의 집과 차에서는 실종된 두 십대 소녀들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결국 그는 살인죄와 시체 은닉죄로 10년 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들어간다.


10년의 형을 마친 토비아스가 자신의 고향인 작은 마을, 알텐하인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직도 소녀들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실종된 소녀 중 한 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서 토비아스의 존재는 마을에 분란을 가져온다. 이 와중에 마을에 새로 온 십대 소녀 아멜리는 토비아스에게 호감을 느끼고 11년 전 사건에 대해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닌다.


토비아스가 살인범으로 감옥에 있는 사이 그의 집안은 마을 사람들에게 냉대와 멸시를 받아 쇠락하고 결국 부모는 이혼을 했다. 그의 출현은 마을 사람들을 자극하고 누군가 그의 어머니를 다리에서 떠밀어 죽이려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냉정하고 논리적인 수사를 하는 보덴슈타인 반장과 뛰어난 직관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피아 형사가 토비아스 어머니의 사고를 조사하게 되고 피아는 이번 사건이 11년 전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중에 유기된 두 소녀의 시체 중 하나가 발견되고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게 되고 11년 전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된다.

 

워낙 인기를 끈 소설이라 제목은 들어봤지만 사실 크게 관심은 없었던 책이다. 그러던 것이 우연히 내게 이 책이 오게 되었고 호기심에 펼쳐 들었다가 결국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재미있는 추리/스릴러소설의 기본인 거듭된 반전은 기본이고, 흥미로운 인물설정은 덤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글이 짜임새 있게 잘 이어진다. 연이은 사건과 빠른 전개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반전에 대한 감탄이나 인물에 대한 호감이 아닌 사건의 뒷면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였다. 죄가 없는 타인을 상처 입히고 죽이게 하는 인간들의 추악한 내면, 그 이기심과 잔인함의 끝을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악한 행위를 ‘모두를 위해서 최선’이라는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는 양심의 무감각을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참담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사건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엮여서 함께 펼쳐지는 두 수사관의 사적인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사건이 해결되고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독자로 하여금 그 뒤가 궁금해서라도 후속작을 펼쳐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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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 문학의 비밀을 푸는 18개의 놀라운 열쇠
정여울 지음 / 이순(웅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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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4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난 때때로 ‘책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다. 이런 책들은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책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독서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불러 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 골라든 책이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2012년에 출판 된 책으로 제목에 ‘멘토링’이 들어간 것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2012년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멘토’나 ‘힐링’, ‘위로’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은 피해 다녔다. ^^;;-워낙 평이 좋아서 집어든 책이다. 다행히 제목만큼 내용은 유행을 타거나 한시적이지 않았다.

 

이 책은 문학 참고서와 문학 이론서 ‘사이’에 위치하고자 한다. (pg. 6, 서문)

 

저자의 이 말이 이 책을 가장 잘 묘사하는 것 같다. 본격적인 참고서라고 보기에는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고, 이론서라고 하기에는 글들이 서정적이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개론적인 참고서나 이론서의 역할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일반적인 참고서나 이론서보다 훨씬 흥미롭고 쉬운 글들을 통해서 말이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성과 목차가 책의 내용과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아 아래에 간단히 올려본다. 

 

1부

문학의 역할

2부

문학의 기법

3부

문학의 내용

 

이 책은 독서에세이로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문학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교양서적으로써도 손색이 없다. 물론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번에 쭉 읽는 것 보다는 다른 문학 서적들을 읽으면서 병행해서 한 장(chapter)씩 야금야금 읽어 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로 적용해볼 수 있고 다른 글에서 실질적인 예를 찾아보면서 더욱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1부 금기를 넘어 욕망을 감싸 안다’와 ‘2부 고전은 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가?’, 이 두 장이 특히 좋았다.

 

문학은 흑과 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다른 색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예/아니오’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다. 나아가 문학은 ‘좋음과 나쁨’으로만 판가름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을 사랑하는 존재다. 문학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그 모든 ‘만약’을 향하여 ‘정답은 없다’고 대답한다. 문학은 단 하나의 정답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우리의 다채로운 삶을 담아내는, 크기도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그릇이다.

(pg. 14, ‘1부 금기를 넘어 욕망을 감싸 안다’에서)

 

훌륭한 패러디는 원작에 새 생명을 부여할 뿐 아니라 스스로 독창적인 작품이 된다. 고전은 끊임없이 개작되고 당대의 관객과 소통함으로써 부활한다. 고전이 새롭게 부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고전이 ‘원전’으로만 남아 있기를 고집한다면, 극소수의 엘리트 또는 전문가들만 향유하는 배타적 산물이 되어 버리기 쉽다. 우리 시대, 우리 세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목소리로 끊임없이 패러디될 때, 고전은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pg. 59, 2부 고전은 왜 끊임없이 패러디되는가?’에서)

 

‘1부 문학의 역할’에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오락으로써의 책 읽기가 빠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서도 책을 참 안 읽는 편이다. 이건 이미 객관적인 조사들을 통해 여러 차례 수치화된 사실로 알고 있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꼽는 이유 하나는-수년에 걸쳐 미국도서와 한국도서를 함께 읽어오면서 느낀-한국문학책들이 전체적으로 구태의연하고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가 제시하듯 문학의 역할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난 재미와 오락도 문학의 빠질 수 없는 큰 기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재미’를 말하는 것은 한국의 장르문학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내가 알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놓고 비교해 봤을 때 한국은 전체적으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흑백으로 가른 듯 편을 가르는 것 같다.  

미국에서 오래 전부터 로맨스, 미스터리나 스릴러물들이 많이 출간되어 왔다. 여러 장르의 글들을 쓰는 작가들도 많다. 순수문학에 분류되는 작가들도 다른 장르의 기법을 가져와 글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 장르문학이지만 문학성을 인정받는 유명작가들도 많다. (예를 들자면 스티븐 킹같은?)

일본의 경우에는 오래 전부터 엄청난 양의 만화와 추리나 호러소설들이 출간 되었다. 게중에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정을 받고 동시에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작품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의 경우 인터넷 서점에서 장르소설들이 정식으로 자리를 인정받은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여전히 이런 책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참 이상하다.

 

요 근래는 한국에서도 미국, 일본, 북유럽의 스릴러와 추리물들이 많이 번역되어 출간된다. 인기를 끌어 베스터셀러에 오르는 책들도 많다. 그런데 왜 한국 작가의 이런 글들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려울까.

그만한 역량을 가진 작가가 없어서? 뛰어난 작품이 없어서?

 

만일 21세기 한국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정말 책 읽기가 재미없어서라면 과연 그건 누구 책임일까.

순수문학과 장르 사이에 선을 긋고 오락을 위한 글을 싸잡아 폄하하는 문단? 여기 동조하는 출판사들? 내용을 보기 전에 흑백논리에 따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가르고 겉치레에 치중하는 독자들?

 

한 가지 반가운 것은 최근 많은 젊은 작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이런 점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읽은 책 몇 권에는 ‘순수와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등의 글귀가 소개글에 들어가 있었다. 이 표현이 꼭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확실히 한국소설들이 재미있어 지고 있다.  

물론 나의 너무도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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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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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3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원작 Everyman은 2006년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 되었다.    

 

 

필립 로스는 몇 해째 해마다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이 작가의 글을 처음 접했다. 역시나 허명이 아니었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일생을 작가로 전념해온  필립 로스의 깊이와 관록 완연히 느껴진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 인상 깊은 글이었다.

 

 

이 이야기는 뉴저지의 한 황량한 공동묘지에서 치러지는 주인공의 장례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가족과 친척들, 생전 그를 알았던 동료와 친지들이 모여 그의 생전에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고 그의 시신을 땅에 묻고 떠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그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천천히 다시 더듬어 내려오며 그 사이사이 그의 노년의 삶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주인공 ‘그’는 1933년 미국 뉴저지 엘리자베스라는 곳에서 작은 보석상을 하는 유태인 아버지와 헌신적인 어머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평생 세 번 결혼했고 세 번 이혼을 했다. 첫 결혼에서 두 아들을, 두 번째 결혼에서 딸을 두었다. 두 아들은 이혼으로 그들을 떠난 ‘그’를 평생 미워했고 딸은 그를 사랑했다. ‘그’는 평생 광고 쪽 일을 하며 능력을 인정받아서 꽤 높은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적당한 나이가 되어서 편안한 노년을 계획하며 퇴직했다. 퇴직해서도 뉴욕에 살고 있던 ‘그’는 9.11을 겪고 저지쇼의 은퇴자 마을로 이주를 해서 한적한 노년을 보낸다.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던 바다라 한들, 오직 그 바다만 보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조수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백일몽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pg. 131)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인공 ‘그’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는 우리 중 누구일 수도 있는 에브리맨(everyman)이다. ‘그’는 삶의 어떤 면에서는 적당히 성공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경험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오십 대에는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두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나이가 들어 무기력해지자 사라지는 젊음에 절망하며 젊은 여자에게 추파를 던져보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작가는 감정이 넘치지도, 그렇다고 메마르지도 않은 담담한 어조로 서술해 나간다. ‘그’가 노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겪게 되는 일련의 건강상의 위기들과 그에 따라오는 무력감과 위기감, 불안조차도.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병들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건강상의 문제가 없던 그의 두 번째 아내는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마비가 온다. 은퇴자 마을에서 알게 된 이들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다. ‘그’ 자신은 일곱 해에 걸쳐 매년 크고 작은 수술을 받게 되고 그럴 때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은 줄어간다.

 

그러나 그가 알게 된 것은 삶의 종말이라는 피할 수 없는 맹공격이 가져온 결과 전체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가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에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도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었다. 노년은 대학살이었다. (pg. 162)

 

그러나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 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는 거지. (pg. 167)

 

그의 노년은 외롭고 비참하다. 노쇠해지는 몸에는 점점 수술로 인한 흉터자국이 늘어가고, 그의 정신은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가 늘어난다. 그리고 그는 몇 번째 되풀이되는 수술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는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야기의 처음에 나오는 첫 유년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늘씬한 상처 하나 없는 몸’과 바다. 아버지와 보석상. 노년의 대학살이 시작되기 훨씬 전의 기억으로.

 

그는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지금 살아 있기를 바라는 갈망,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갈망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 (pg. 177)

 

이 책은 2006년 5월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인 필립 로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과 같은 1933년생이니 그의 나이 만 일흔셋일 때 책이 나온 셈이다. 노년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경험이 녹아 있어서 그런 것일까, 이 이야기는 참 사실적이다. 감정적이거나 극적이지 않다. 그래서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겪을 법한 나이 들어가는 것, 노쇠에서 오는 건강상의 문제들, 그와 함께 오는 현재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 과거에 대한 회한과 후회들이 가슴을 치며 와 닿는다.

 

한 해의 끝을 맞으며 늙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의 노년도 이렇게 한 해 더 가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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