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1
김도경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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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여자주인공인 도정우는 현대 이십 대 중반의 나이로 미국 FBI의 프로파일러다. 한국의 손꼽히는 재벌인 태선조선 창업주의 유일한 손녀인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세간의 이목과 관심을 끌었다. 정우는 십대가 되기 전에 벌써 한국 최고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불행한 사고로 부모님과 할머니를 한꺼번에 잃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의 연쇄살인 사건을 돕게 되고 그 와중에 하나 남은 혈육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다가 쓰러져 입원을 하게 된 정우는 자신이 입원해 있는 고구려종합병원이 연쇄살인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사건에 직접 관여하게 된다.

미국 발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이시현은 스승이자 은인인 전 병원장 이동민의 부탁으로 일 년 전 삼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고구려종합병원의 병원장이 되었다. 고아인 그는 뛰어난 능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만들어왔다. 몸가짐이나 옷차림 어디에도 빈틈이 없는 그는 결벽증을 가진 완벽주의자다

.

병원에서 VIP환자와 병원장으로 만난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부터 불꽃이 튄다.

 

나름 참신한 소재와 스토리, 독특한 인물설정에도 불구하고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왤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내 나름의, 너무도 개인적인 분석(?) 내지 짐작을 써 볼까 한다.

이 이야기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두 가지다. 스릴러와 로맨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본 다른 로맨틱 스릴러나 스릴러를 가미한 로맨스와 달리-이런 글들은 한 가지에 중심을 두고 다른 요소는 부수적인 것이 보통이다.-이 책은 이 두 가지 요소가 비슷한 비중으로 섞여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한참 뒤에까지 그다지 섞이지 않는다. 물론 스토리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야기의 절반이 지나도록 별 상관없이 따로 진행된다. 마지막 위기, 결말 부분을 제외하고는 시현은 이 사건에 거의 관련이 없다. 두 가지의 이야기가 뒤섞여 따로 부유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로맨스보다는 스릴러 쪽이 좀 더 재미있었다. 처음 오십 장을 읽었을 때 범인을 짐작할 수 있어서 허망했는데 뒷부분에서 뜻밖의 반전이 있어 깜짝 놀랐다.

201331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제목: 프로파일러 1&2

지은이: 김도경

펴낸곳: 디앤씨미디어

초판 1쇄 발행 200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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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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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만 인상 깊은 글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난 이 글에 대해 익히 들었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표현등의 평가에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들어서 식상하여진 탓인지 아니면 그저 나의 감수성이 거기까지여서인지는 모르겠다.

 

 

   ‘자전적, 전기적, 사회학적 글이라는 문학적 평가에 대해서는 대충 이해는 하면서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감상이 전부다. 작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니 자전적, 전기적글이고, ‘사회학적 글이라는 평가는 이 글보다는 계층에 따른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다룬 작가의 다른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더해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글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 서술 방식과 소재가 흥미롭다. 이 글은 유부남이자 외국인인 한 남자와의 사랑에 대해 여자의 일인칭 시점에서 쓰인 글이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단편적인 기억과 감상의 두서없는 서술들이 전부다. 일인칭 시점에서의 서술임에도 스스로의 자아를 멀리 떼어놓고 바라보며 분석하는 듯한 담담하고 때로는 냉정한 서술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과 의식의 전부를 오직 하나, 남자와 그 남자와 자신의 관계로만 채우는 열정과 집착은 차분하지도 담담하지도 않다. 그래서 그 대조가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pg. 11)

 

여자의 상대 남자에 대한 열정과 집착은 어쩌면 관계의 한계에서 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갈 수 없는, 끝이 멀지 않은 관계이기에 더 안타깝고 열정적이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관계.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는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g. 17)

 

글의 곳곳에서 나는 여자가 남자라는 대상보다는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집착하고 열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여자는 평소의 지적이고 냉정한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모하고 집요한 열정에 스스로 탐닉하고 도취된 것 같았다. 인생에 언제 또 다시 경험할지, 아니,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예외적이고 일탈적인 심리 상태에 흠뻑 빠진 스스로를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 그렇기에 열정 가운데서도 때때로 냉정한 일면이 비어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자의적인 모습들이 엿보였다.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걸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지 잘 알 수 없다.

(중략)

나는 언제나어느 날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을 열거하거나 묘사하는 방식으로 쓰인 글에는 모순도 혼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글은 순간순간 겪은 것들을 음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남들이나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인 것이다. (pg. 26)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나의 첫사랑을 떠올렸다. 보통보다 늦은, 성인이 되고나서야 겪은 나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그녀의 글 위로 겹쳐졌다. 나름 자의식이 강하고 스스로에 대해 분석적인 탓일까. 

 

2013년 2월 26일 종이책으로 읽다.

제목: 단순한 열정 Passion Simple (원작: 프랑스, 불어)

지은이: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옮긴이: 최정수

펴낸곳: ()문학동네

양장본 초판 발행 201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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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연인
정휘 지음 / 동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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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고학하는 유학생의 신데렐라 이야기, 정도 되겠다.

 

박은수는 남보다 늦은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 와서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디스플레이어로 일을 하다가 유학 온 지 삼 년째인 그녀는 현재 스물아홉 살이다. 나이가 연로하신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녀는 두세 가지 일을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힘겨운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는 현주하는 많은 여자들이 꿈꾸는 ‘왕자님’의 조건들을 두루 갖추었다. 일단 네 살 연하. 파릇파릇한 스물다섯의 청년으로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재원인 그는 파트타임으로 피팅 모델을 할 만큼 큰 키와 잘 빠진 몸매를 가졌고 거기에 더해서…… 두둥, 현대판 왕자님의 빠질 수 없는 배경인 재벌 3세가 되신다.

 

겉으로 보면 너무 한쪽으로 기우는 이 두 사람은 벌써 일 년 넘게 친한 친구(?) 사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주하는 은수에게 반해서 곁을 맴돌며 끊임없이 다가갈 기회를 엿보고 있고, 은수는 너무 부담스러운 조건을 갖춘 주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를 두려 애쓰고 있다.

부모의 무관심에 상처를 입고 열한 살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와 가족의 정을 모르고 자란 주하는 메마르고 냉소적인 성격이다.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곁을 내주거나 정을 주지 않는다. 그런 그가 정 많고 마음 약한, 그러면서도 모든 일에 성실하고 진심을 다하는 은수에게 반했다. 처음으로 미치도록 가지고 싶은 상대가 생긴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생기고 두 사람은 의도하지 않았던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살 곳을 잃어버린 은수가 주하의 집 빈 방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한 공간을 공유하며 생활을 같이 하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인으로 발전한다.

 

참 뻔하다면 뻔한 설정인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로맨스소설에서는 흔치 않은 것이어서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이 글의 남자주인공인 주하는 로맨스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완벽남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조금 아이 같고 어린 티가 난다.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주하는 정 많고 넉넉하게 품어 주는 은수에게 정에 굶주린 아이처럼 매달린다. 그런 그를 은수는 때로는 누나처럼, 또 때로는 엄마처럼 품어준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함께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변해간다. 주하는 점점 든든한 연인으로 또 의지할 수 있는 남자로 성장하고 낯선 나라에서 힘겹게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 위해 애써 의연한 모습으로 버텨오던 은수는 점점 눈물과 애교가 많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두 사람이 서서히 연인으로 발전해 가는 즈음, 은수로 하여금 유학을 결정하게 한 옛 연인과 그 어머니-이 글의 최고 악역-이 등장하고, 주하의 부모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다. 은수와 주하의 사이는 이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 진다.

 

평범한 고학생과 재벌 3세 완벽남의 로맨스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런던에서의 유학 생활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서 이야기에 현실감을 보태준다. 나중에 후기를 읽다 보니 작가분이 자신의 실제 경험이 많이 녹아 있다고 말해서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너무도 다른, 그래서 혼자보다는 함께 있어서 더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닭살스러우면서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이 함께 도와가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참 예쁜 로맨스소설이다.

 

은수는 자신의 한 손을 잡고 차분하게 설득하고 있는 주하를 봤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너무 달라진 모습이라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언쟁할 일이 생길 때면 그는 항상 언성을 높였었고, 은수는 달래는 입장이었는데, 어느새 주하가 차분하게 그녀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은수는 제 손을 잡은 그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품었다. 의지할 수 있고, 성장하게 해 주는 주하가 많이 고마웠다. 자신의 손을 가슴에 안고 고개를 무릎에 묻은 은수의 머리를 주하가 살살 쓰다듬어줬다. 그 손길에 은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했다.

“너 많이 변했어. 다른 현주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한 걸음씩 움직여 아이에서 사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고마워, 박은수 덕분이야. 조금 더 노력하면 진짜 근사한 남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도 충분히 근사해, 불안할 만큼.”

(pg. 308)

 

전체적으로 참 달달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에필이 없었다면 더 여운을 남기지 않았을까 한다.

2013년 2월 20일에 읽다.

제목: 내 어린 연인

지은이: 정휘 (온라인닉네임: 기초작업)

펴낸곳: 동아 & 발해

초판 1쇄 발행 2007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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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역사 뫼비우스 서재
케이트 앳킨슨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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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itle: Case Histories
Author: Kate Atkinson

 

2013년 2월 8일 종이책으로 읽다.

 

    

띠지에 적혀 있는 ‘최근 10년간 발표된 미스터리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선전 문구에 혹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을 기대했던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뒤늦게야 나는 내가 그 문구 위에 작게 쓰여 있던 ‘영국 최고의 휴먼 미스터리 작가’라는 말을 대충 보아 넘겼음을 깨달았다. 특히 ‘휴먼’이라는 단어를.

난 이 책을 미스터리나 스릴러라고 말하기가 주저된다. 비록 세 가지 실종,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그 중심은 사건의 추적이나 해결이 아닌 그 사건들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캠브리지와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 잭슨 브로디-이 이름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너무도 사립탐정다운 어감을 가진 이름이다.-는 이혼을 한 후, 경찰을 그만두고 사립 탐정이 되었다. 잭슨은 한 해 전에 이혼을 하고 어린 딸 말리와 떨어져 지내게 된 것에 아직도 적응을 못해 힘겨워 한다. 그런 그에게 세 가지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온다.

그 첫 번째는 삼십사 년 전에 실종된 올리비아 랜드 사건이다. 당시 세 살이었던 랜드 가의 네 자매 중 막내 올리비아는 1070년 어느 여름 날 밤 언니 아멜리아와 함께 자신의 집 정원에 있는 텐트에서 잠을 자다가 사라졌다. 당시 경찰은 아이의 행방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수사를 접어야 했다. 그리고 삼십사 년이란 시간이 흘러 자매들의 아버지가 사망한다. 아멜리아와 줄리아는 사망한 부친의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동생 올리비아와 함께 사라졌던 인형을 부친의 책상에서 발견하고 잭슨에게 사건을 재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주길 요청한다.

두 번째 사건은 무참히 딸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 바라는 아버지의 의뢰이다. 여러 건강상의 문제로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테오 와이어는 십년 전인 1994년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돕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딸 로라를 살해한 범인을 죽기 전에 밝히고 싶다는 열망에 잭슨을 찾아온다.

1979년, 당시 갓난아이의 엄마였던 미셸 플레처는 도끼로 남편의 머리를 찍어 살해했다. 그녀의 여동생인 셜리 모리슨은 잭슨을 찾아와 미셸의 딸인 탄야를 찾아달라고 한다. 사건 당시 어린 소녀였던 셜리는 언니의 부탁을 받고도 조카 탄야를 돌볼 수 없었다. 여러 곳에 맡겨져 자라던 탄야는 결국 가출을 거듭하다가 소식이 끊어졌다.

 

군인과 경찰로 근무했던 경력이나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잭슨은 이 사건들을 맡아 조사해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사건들에 연루된 사람들과 얽히고 부딪히게 된다. 사건들의 진실이 하나둘 파헤쳐지고 때로는 경악스럽고 때로는 슬픈 진실의 한 조각이 드러날 때마다 그는 함께 아파하고 슬퍼한다. 작가 케이트 앳킨슨의 인간들에 대한, 인간사의 수많은 비극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동정어린 마음이 주인공인 잭슨 브로디를 통해 표현된다.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2절

 

그리고 글의 시작에 작가가 던져 놓은 이 성경의 한 구절처럼 잭슨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충격과 고통을 안겨 주었던 사건들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그 안에서 각자 다른 깨달음을 얻고 다른 자유를 찾게 된다.

이 책을 끝까지 모두 읽고 난 지금, 나는 이 글을 미스터리나 스릴러 형식으로 쓰인 한편의 휴먼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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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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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3년 2월 4일에 종이책으로 읽다.

 

다 읽고 책의 앞뒤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 글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이란 걸 알았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할까, 그제야 내가 이 글을 읽고 느낀 의아함에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작년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다작하는 작가인데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꽤 많은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 되어있다. 내가 읽은 것만도 열권이 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은 그중에서도 참 의외였다.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음, 잘 짜인 추리소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미리 만들어 놓은 공식 속에 끼워 맞춘 듯 어딘가 딱딱하고 단면적이다. <악의>나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 등에서 보았던 의외성과 반전, 그러면서도 트릭이나 알리바이 이상의 그 무엇-인간들의 본성과 그들의 관계를 한 꺼풀 벗겨 보이는 것 같은-이 없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의 배경은 학교다. 일인칭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에시마는 세이카 사립 여자고등학교의 수학교사이자 양궁부 고문이다. 특별히 교육에 뜻이 있어 교사를 희망했던 것이 아닌 그는 오년 전에 적당한 직업을 찾다가 우연히 교사가 되었다. 그는 적령기가 되자 적당한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매사에 귀찮게 얽히는 것을 피하고 무미건조한 그를 학생들은 꽤 괜찮은 선생이라고 여기고-잔소리를 하거나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기계라고 부른다.

 

그런 마에시마의 평범한 일상에 어느 날부터인가 변화가 생긴다. 그의 주변에서 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마에시마는 누군가 자신의 생명을 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동아리 탈의실에서 죽어있는 동료 교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탈의실은 문이 모두 잠긴 밀실이다. 학교는 곧 사건 현장이 되고 형사들이 조사를 시작한다. 마에시마는 이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여러 일들을 통해 밀실 트릭의 비밀은 풀리는 듯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하지만 곧 이어 또 다른 사람이 학교에서 살해를 당한다.

 

이 모든 일들이 고등학교라는 배경에서 학생들과 교사들이 중심인물이 되어 펼쳐진다. 학교 장면들에 대한 묘사가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내가 다녔던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면 음, 한국교육과 일본교육이 너무 유사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일까.

 

이야기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이 꽤 치밀하고 잘 만들어졌다.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는 복선도 좋았다.  

  

나가타니와 헤어진 후 요코의 오기에 찬 얼굴을 떠올렸다. 순수하기 때문에 절망했을 때의 반항도 그만큼 큰 것이다. (pg. 28)

 

“글쎄요……. 저도 딱히 이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애들한테 제일 중요한 건 아름다운 것, 순수한 것, 거짓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죠. 자기 몸이나 얼굴일 수도 있고……. 좀더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추억이나 꿈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을 부수려고 하는 사람,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는 뜻도 되겠지요.” (pg. 359)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이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나의 객관적인 기대와 어긋났을 뿐, 이 글만 놓고 보면 잘 쓰인 추리소설이다. 이를 증명하듯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글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 

 

주인공 마에시마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적당히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본 스스로와 자신의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향해 그가 내뱉은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시시해.”

소리내어 말해보았다. 내 삶을 향해 뱉고 싶은 말이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 없었다. 눈을 감으니 머리가 아프고 가슴속에선 화가 치밀어올랐다. 최악이다. (pg. 424)

 

이 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달라졌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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