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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별점:★★★★★
한 줄 평: 우리는 희망이 없을 때, 혼자일 때 가장 많이 아프다
저자소개-김승섭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 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으며, 2013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와 동 대학원 보건과학과에서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6년에 고려대학교 최우수 강의 상인 석탑강의상을 수상했다. <br />천안소년교도소에서 공중보건 의사로 일한 이후, 재소자 인권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구금시설 건강권 실태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회 역학자로서, 차별 경험과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결혼이주여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2014년 ‘인턴/레지던트 근무환경 연구’, 2015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건강 연구’, 국가인권위원회의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2016년 ‘한국 성인 동성애자/양성애자 건강 연구’, 세월호 특조위의 ‘단원고 학생 생존자 및 가족 대상 실태조사 연구’를 책임연구원으로 진행했다. 한국 성소수자 연구회(준) 발기인이고, 한국 성소수자의 건강을 연구하는 ‘레인보 커넥션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원으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동성 결혼 소송,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소송, 군형법 위헌 소송에서 법정 증언을 하거나 전문가 소견서를 제출하며 참여한 바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br /><br />-출처 알라딘
주제를 담은 글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 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표지 색깔을 보니 왠지 숙연해진다. 그리고 제목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뭉클하다. 사람들이 살아온 길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어느 하나 아픔이 길이 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이어져 왔고 살아왔고 진화해 왔다. 과거를 부정하고서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을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슬픔이라면 함께 아파하고 더 이상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들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오해의 실마리들이 조금은 해소가 되는 기분이었지만 가슴이 저렸던 건 어쩔 수 없었다.
타인의 일이지만 언젠가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쌍용자동차 해고 문제, 가습기 살균제 문제, 이주 외국인에 대한 시선, 10대~30대들의 사망요인 1위가 자살인 한국, 낙태 문제, 노동환경과 노동자 건강관계,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와 에이즈에 대한 진실, 거짓을 통계와 데이터를 통해서 일목요연하게 서술한다. 그래서 더 신빙성이 있다고나 할까. 학자이지만 실전에 뛰어들어 경험을 했기에 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한층 더 깊어졌다.
왜 우리는 연결되지 않으면 아플 수밖에 없는지, 왜 질병보다 연대의 단절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인간이라는 것은 사회적 존재이고 혼자 살아나가기에는 몸과 정신이 결코 허락지 않는다. 여러 종의 인종 중 우리 사피엔스가 최종적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협동과 연대였으니 진화적인 측면에서도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에이즈에 대한 오해를 가장 많이 풀 수 있었다. 칵테일 요법이라는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어 감염이 되어도 수명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동성애자들만이 걸린다는 아주 오래된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고 전염경로를 확실히 짚어주고 있어 유용하기도 했다. 이제 이웃에 성소수자나 에이즈 환자가 산다고 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을 만큼의 믿음이 생겼다. 또한 성소수자들의 성적 지향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니 스스로가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들이 그들을 인식하는 방법은 잔인함과 폭력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성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동성과 무조건 결혼하라고.. 사랑하고 강요한다면 어떨까?)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감정에 호소했다면 더 깊은 울림을 주었을까? 아니다.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느끼고 체감하는 것이 문제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사안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문제를 감성적으로 파고들었다면 이렇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더 심한 상처와 심적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과정들은 그저 통계치로 확인했을 뿐인데도 받아들이는 게 쉽지 만은 않았다.
연대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곳이었던 미국 펜실바니아 로세토 마을에서는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다른 주보다 훨씬 적었다. 우리가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기 쉬운 질병의 원인과 결과 모두 사회적 관계와 시스템에서 기인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당시 비교 군이었던 다른 주와 마찬가지로 사망률이 급격히 올라갔다. 공동체가 와해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가장 가까운 사회적 관계가 건강하고 우호적일수록 질병에 강하고 삶을 견뎌내는 힘 역시 그러하다고. 바로 가족이다.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연대가 개인 전체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하지만 가정 역시 사회라는 단위의 시작이니 모든 것을 가정에 맡기고 사회는 방임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가정이 올바로 설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과 물질적 지원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품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질병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의 오판으로 사위어 가고 있다. 물론 국민 개개인의 의식 문제가 중요치 않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책임을 지고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건강하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예방적 차원의 정책을 수립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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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p70.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공공의료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에 투자하는 비용이 감소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p83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 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다. 우리에게는 부두로 가서 배를 분해하고 좋은 부품으로 다시 조립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by 오토 노이라트-
p83
"테이터가 없다면, 역학자는 일 위에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역학자가 적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싸움이 진행되는 링 위헤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p166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p183
부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p188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재난에서 나타나는 삶의 복잡성이다. 피해자와 일반 국민의 갈등도 당연히 존재한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갈등을 더 부추겼다.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을 나누고, 피해자와 국민을 떼어냈다. 우리 사회 역시 그 골을 좁히지 못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안 된다.
p219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