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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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이별을 알리는 아내의 편지를 받은 주인공이 그 이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세상 속의 나,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은 제목처럼 짧은 편지긴 이별이라는 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인 짧은 편지는 칼 필립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따사롭긴 하지만 흐렸던 어느 아침 그들이 문밖으로 나서려고 할 때 '길을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군요' 하고 이플란트가 말을 꺼냈다. 날씨도 여행하기에 적당한 듯했고, 하늘도 대지 위에 낮게 깔렸었으며, 주위의 사물들도 짙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으니, 가고자 하는 길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될 것처럼 보였다.“ - 칼 필립 모리츠, <안톤 라이저>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에서 의 여행은 아내가 남긴 짧은 편지로부터 촉발된다. 하지만 는 여행하면서 아내의 행적 자체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는 낯선 곳의 이국적인 풍경과 사람들에 주목하기도 하고, 예전에 잠깐 만났던 클레어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이렇게 떠나간 아내를 만나기 위한 애초의 여행 목적은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저자가 <안톤 라이저>의 문구를 인용한 것은 여행 목적의 확장과 연관이 있다. 주위 풍경들이 짙은 어둠에 잠긴 흐린 날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에 적합한 날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이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거나 누군가를 찾아 정처 없이 헤메이는 것이 아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러한 환경과 조건은 그 목적에 더할 나위 없이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의 여행은 타인을 향한 것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향한, ’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여행의 과정에서 는 타인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또한,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굴욕감을 느끼고, 타인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은 가 여행을 하는 동안 읽는 두 권의 자전적 소설, 칼 필립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리히>와 닮아 있다. 일정부분 객관화할수 있는 시공간의 개념들은 주관적 인식 과정을 거치며 개별화된 체험으로 기억된다. ‘는 기억속에 저장된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체험의 원형들을 불러내어 현재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되짚어 보고, 또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한 변명들이 적절한 것인지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그 후 클레어가 어린 딸 베네딕턴과 함께 하는 여행에 동행하게 되면서 는 조금씩 주위 풍경을,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장소 하나 바꾸는 것이, 우리가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치 꿈을 잊는 것처럼 깨끗이 잊어버리게 만드는데 그렇게 많은 기여를 한다면, 그거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 칼 필립 모리츠, <안톤 라이저>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에서 노란색은 내면의 색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색이다. 조지 캐틀린과 프레드릭 레밍턴의 그림에서 흐릿하고 창백한 하늘을 향해 안개 처럼 녹아 드는 노란색은 저 깊은 대지로부터 사람의 얼굴로 스며드는 내면의 색이다. 또한 노란색은 황금의 시절에 대한 추억,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연상시키는 색이기도 하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흔히 노란색을 마주하고, 절망적인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노란색을 감지한다. 그것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일수도, 컴컴한 수면 위를 비치는 달빛일수도, 유리잔 테두리에 꽃힌 작은 레몬 조각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란색이추억과 희망의 계기는 되지 못하며, 극히 드문 일부분만이 변화의 계기로 작용한다. 마치 소설 속 의 실측백나무와의 교감 체험처럼 세상과의 일체감을 느끼며 가치를 발견하는 경험은 익숙한 장소를 벗어나서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의 접근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일상의 노란색은 내면을 비추는 빛으로, 희망으로 떠오른다.

 


 





<녹색의 하인리히>에서 풍요로운 전원속에서 자라온 하인리히의 녹색이 상징하는 것은 나뭇잎 사이로 아침햇살이 내비치는 엷은 녹색 즉, 신비로운 자연의 녹색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성장하면서 자연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깨뜨리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포개어질 수 없는 바위와 돌맹이처럼 한 그루의 나무가 의미가 담긴 풍경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그것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와 그것을 풍경으로 발현시키기 위한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녹색을 온전한 의미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연과 교감을 이루는 사건을 필요로하는 것이다. 그 변화의 계기는 우리가 익숙함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고 마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빛깔의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그 희미한 노란색은 우리는 즐겁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금빛 찬란한 별이라는 음식점의 남성용 별실에서 식사했다.”<녹색의 하인리히>의 마지막 대목처럼 빛을 더하며 빛날 것이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절정은 와 유디트가 함께 존 포드 감독을 만나는 대목이다. 그 만남을 통해 그들은 드디어 기쁨과 슬픔, 사랑과 상처로 점철된 한 때는 '우리'였던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서로를 상대화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을 끊임없이 구속하고 그들의 곁을 맴돌던 과거의 기억에 이별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들은 이별을 위해 길고 먼 여정을 지나왔고, 그 여정은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것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여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세상 속의 나, 내 안의 타자와 화해하고, 나를 벗어나 우리를 지향할 때 성장할 수 있다는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통찰은 서로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온, 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위안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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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1-09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란색이 내면을 향하는 색으로 묘사되는 군요. 요즘 가을 낙엽도 노란색이 가득한게 내면을 향하는 계절인가봐요. ^^

잭와일드 2019-11-09 18:19   좋아요 1 | URL
요즘 거리를 지나다보면 노란색의 은행잎들이 유독 눈에 띄더라구요. 가을은 내면을 향하는 계절인가봐요^^

1일 1잠 2019-11-09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더 생각도 많아지는걸까요...음...
근데 노란병아리를 보면 뽀송뽀송
해서 그런가...그냥 귀염귀염.. ^^

잭와일드 2019-11-09 23:15   좋아요 0 | URL
가을을 더 오래 즐길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