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죽음 1~2 세트 - 전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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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가브리엘 웰즈로 추리소설 작가다. 그가 소설 상에서 직면한 상황은 조금 특별하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 동안 고민해오던 신작 소설의 첫 문장에 대한 영감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극중 작가인 가브리엘 소설의 첫 문장이자 동시에 이번 베르베르 소설의 첫 문장이기도 한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나를 죽였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브리엘은 자신은 죽었고,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그가 선택한 첫 문장은 그 자신이 풀어내야 하는 질문으로 바뀌게 된다. 가브리엘은 추리소설 작가로서 수많은 트릭을 설계해왔지만, 이제 희생자인 동시에 수사의 주체로서 과거 자신의 삶을 토대로 범인을 추리하여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영매(靈媒) ‘뤼시 필리피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고자 한다.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4명이다. 그에게 재결합을 요구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해 앙심을 품었을지 모를 옛 연인 사브리나’, 자라면서 서로를 밀어내게 된 쌍둥이 형 토마 웰즈’,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얻을 편집자 알렉상드르’, 그의 작품을 쓰레기로 치부하며 증오심을 드러냈던 비평가 장 무아지가 그들이다.


소설은 누가 날 죽였지?’라는 첫 문장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서 범인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저승에 있는 영혼이 이승에 있는 영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는다는 독특한 설정과 용의자들에 대한 검증을 통해 점차 진실에 다가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은 소설에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작가 베르베르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세계 속에서 추리에 집중하던 독자들은 이 소설이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퀴블러 로스의 이론대로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분노를 표출했던 가브리엘이 타협과 수용의 과정에 다다른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와 살인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했던 독자들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차 작가 베르베르가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눈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Depuis l'au-dela>로 프랑스어로 저승으로부터라는 의미이고, 영문판 제목 ‘From Beyond’저 너머로부터로 해석된다. 그에 반해 한국어판은 다소 직설적으로 죽음을 제목으로 선택하였다. 베르베르가 사후세계와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나토노트>, <나무>, <> 등 그의 전작들을 지켜봐 온 팬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후세계나 영혼은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다뤄졌던 만큼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베르베르는 남들이 터부시되는 주제를 피하지 않고 응시하면서 빛나는 상상력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왔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이번 소설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중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개미>를 처음 접한 이래로 나는 베르베르가 쌓아올린 세계를 즐겁게 탐험하는 베르베르 키즈였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이어지는지,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르베르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참석했던 강연에서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신은 존재할까? 영혼이란 무엇이고, 사후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지만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아직 인류가 탐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생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삶은 한번뿐이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번 주어지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은 소중한 것이다.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통해 베르베르는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삶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누가 나를 죽였지?'로 시작했던 가브리엘의 질문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지? (157)’마지막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이 더 살 수 있다면... (158)’을 거쳐 나는 왜 태어났지? (2313)’로 진화한다. 가브리엘의 첫 질문 '누가 나를 죽였지?'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나는 어떠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했고, 왜 그러한 마지막을 맞이했던 것이지?’일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가 돌아본 것은 자신의 삶이었다. 결국 어떻게 죽었는지 혹은 죽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베르베르는 연명치료로 대표되는 현대의학으로 변질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1212)

나는 살아 있고 당신들은 죽었다.” - 필립 K. , 유빅-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죽음은 스토리를 매듭 짓는 마지막 종착지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레이션으로 내가 마침표를 찍는 것인데, 현대의학은 나레이션의 주체를 의사와 가족으로 바꾸어 놓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인지, 본인의 선택은 고려되지도 않은 채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의료를 통해 삶을 물리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베르베르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우리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죽음을 통해 을 제시하고자 하는 베르베르가 우리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가브리엘은 가장 근원적이면서 신비로운 질문 나는 왜 태어났지?’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이는 떠돌이 영혼이 된 가브리엘이 새롭게 쓰려는 소설의 첫 문장이자,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또 베르베르의 차기작 <판도라의 상자>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본 소설을 통해 삶의 종착지인 죽음에 대해 논했던 베르베르가 출생에 대해서는 어떤 통찰력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죽음>은 베르베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베르베르처럼 프랑스의 장르문학 작가로 묘사되고 있는 가브리엘은 베르베르가 자신을 소설 속에 투영시킨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의 소설 제목 <죽은 자들>이 베르베르의 소설 <>의 제목을 불어의 문자적 유사성에 기반한 패러디라는 것만 봐도 베르베르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가브리엘은 대중에게는 호평을 받는 반면에 주류 문학계에서는 저평가되고 있는 베르베르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장 무아지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문단은 순문학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장르문학의 존재가치를 폄하한다. 가브리엘의 독자가 많은 건 대중이 좋은 문학에 대한 안목이 없기 때문이며, 장르문학은 상상의 소산일 뿐 진짜 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맞서 문체 중심의 문학과 상상력 중심의 문학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주장은 폐쇄적인 문단을 향한 베르베르의 외침이다. 베르베르는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시도되는 모든 노력들은 존중받아야하고 오히려 문학을 획일화하려는 어떠한 관점이나 시도도 허용 되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베르베르의 문학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는 자신의 죽음을 자각한 가브리엘 웰즈가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이후 환생과 영혼으로 남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영혼으로 남아 글쓰기를 계속 하는 선택을 내리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써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오직 이 공간에서 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창조해낸다.” (2185)


베르베르는 자기반성도 빼놓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엄격함, 섬세한 심리 묘사가 부족하다'는 코난 도일의 지적 (296~97)'건조한 문체, 직설적인 본론과 반전 없는 결말'을 언급한 메트라톤의 지적 (2282)은 베르베르가 냉철한 자기평가를 통해 드러낸 자신의 치부인 동시에 문학적 발전을 위한 그의 의지표명이다.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삶에 대한 아포리즘을 기반으로 시간의 선택을 받아 세기를 뛰어넘는 고전이 된 책상상력을 통해 동시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가브리엘은 영혼이 되어 깨달은 여섯 가지에 대해 회상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은 짧으며 선택은 결국 우리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것, 만물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 등이었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만물 중에는 좋은 문학에 대한 기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좋은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문단의 획일화된 기준 보다는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는 시도를 하고 있는 가브리엘 혹은 베르베르이 그 진실에 가까운 위치에 있을 거라 확신한다.


사람은 어릴 때 받은 사랑만큼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어릴 때 부모한테 받은 뽀뽀가 마치 포커 칩과 같아서, 어른이 되어 사랑이라는 포커 게임을 할 때 그걸 쓸 수 있다고 했어요. 어릴 때 받은 포커 칩이 많을수록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194)


가브리엘이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은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한 것이며,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오직 이 삶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 된다. 그러한 순간순간들이 모여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고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주말 저녁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힘겨운 삶 속에서 내가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아직 한창 어리광 피울 나이의 딸에게 보내는 내 진심과 사랑이 아이의 앞으로의 삶에 큰 자산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딸과 함께 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게 될 가까운 미래를 상상한다. 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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