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 크리에이터 선바의 거침없는 현생 만담
선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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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장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관한 것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간다.


“너 그렇게 게임만 하다 뭐가 될래?

“음... 구독자 50만 유투버요?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의 저자인 선바는 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투버 (2019 8월 기준)이자 트위치 스트리머이다. 어린시절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있던 아이는 마침내 소원을 이뤘고, 소원을 이룬 소감으로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심오한 철학 대신 “소원을 빌때는 신중해지자”는 유머가 담긴 조크를 건낸다. 단 한번 주어지는 삶이지만 우리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이 정해놓은 진로와 목표를 향해 걷는다. 마치 제도권 내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성공이라는듯이 말이다. 하지만 저자 선바는 인생이 적성에 안 맞아도, 사는게 답이 없어도 우리는 즐거워질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긴 하지만 전문적 에세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자 선바의 생각이 담긴 짧은 글들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인생’에 대해서는 “인생은 한권의 전공서적, 암만 봐도 모르겠어요.”로, ‘내가 직접 체험해본 다음 진심으로 해보고 싶은 말’에 대해서는 “돈? 명예? 그거 다 부질 없더라구요. 인생은 그런걸로 채워지는 게 아닙니다.”로 저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식이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인기와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유투버가 펴낸 가벼운 책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책의 표지와 마케팅 문구로 사용된 ‘희망으로 2행시’는 이러한 생각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희희

: 망했다. 훌훌 털고 다른 걸 해보자.


책의 표지에서 본 ‘희망으로 2행시’는 저자의 유투버라는 직업과 20대의 나이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저자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보다는 복잡한 걸 싫어하고 재미를 추구하면서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90년대생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는 책을 읽고 저자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었다. 또한 일견 가볍게 보일 수 있는 ‘희망으로 2행시’에 담긴 저자 선바의 희망에 대한 철학에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희망이란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나 자신이 향상되고 성장한다는 의미로 인식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의미 보다는 내가 뭔가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의미의 희망이 나에게는 더 밝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p. 44)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책의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있듯이 저자도 인생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저자는 보편적인 인생에 대한 답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해답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답이 없는 인생이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인생에 있어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준과 원칙 등 삶의 방향을 명확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선바는 삶의 방향을 설정해 놓으면 가는 길에 넘어지고 굴러떨어져도 적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답이 없어도 질문이 있다면 인생이라는 험난한 항해에서 방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삶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으로 유투버 등의 크리에이터가 높은 순위로 언급되는 설문조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1인 크리에이터인 저자가 자신처럼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에게 남기는 조언은 무엇일까?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공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 조회수와 유행 보단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 보는것을 추천한다. (p. 138)


이러한 조언은 삶의 원칙과 방향을 중요시하는 저자의 삶에 대한 자세와 “쓸모 있는 일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쓸모 없는 일도 없다. (p. 103)는 인생에 대한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저자는 책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공연도 좋지만,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그 웅성웅성한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한 기쁨을 앞두고 있는 불완전한 시간이 자아내는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가 오히려 공연 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잠시 후 있을 공연의 셋리스트를 상상하면서,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를 이 공연, 바로 이 순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건 분명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이번에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를 읽으며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책에서 인생에 답은 없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남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도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밝고 따뜻한 긍정의 에너지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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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 사전 - 컴퓨팅 사고력과 문제해결능력을 위한 나만의 비밀 노트! 궁리 IT’s story 시리즈
김현정 지음 / 궁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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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의 대상은 잇츠 스토리 (IT’s story) 시리즈의 세번째 도서인 <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사전>이다. 잇츠 스토리 시리즈는 IT의 문화와 역사, 미래를 그림과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내어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디지털 용어를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리즈다. 그 중에서도 <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사전>는 이러한 잇츠 스토리 시리즈의 장점이 극대화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인 김현정은 KAIST에서 소프트웨어공학을 전공하고 IT컨설팅 업계에서 현장을 경험하면서 10여년 동안 소프트웨어 분야 강의를 진행한 IT 전문가다. 저자는 현장감 있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단지 코딩 방법론 기술만이 아닌 컴퓨팅 사고력을 제고시키기 위해서 본 도서를 집필했다고 한다. (p. 11)


이를 위해 저자는 본 도서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마치 공기처럼 우리 생활 모든 곳에 존재하며 동작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네트워크의 정의와 개념원리, 역사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 책의 장점과 다양한 활용도에 대해서는 IT 업계를 대표하는 이들의 추천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개발자, 소프트웨어 기업의 대표, 교수 및 교사들이 추천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코딩에 관심이 있는 성인에 이르기까지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IT라는 큰 숲 안에서 소프트웨어의 개념과 원리와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적절한 비유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걸 언급하고 있다. 내가 궁리 출판의 잇츠 스토리 시리즈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 정립을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에 다양하게 언급되는 융복합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신입사원이 IT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 아마 모르는 말투성이일 겁니다. 학교에서 실무를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레거시와 같은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 등장하면 당황스럽기 그지 없지요. 더구나 ‘레거시 (legacy)’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유산’으로 뜻을 알려주니,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쯤은 어느 정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p. 353)


저자가 레거시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위 사례는 부끄럽지만 필자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IT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IT 회사에 입사하여 기획과 경영지원 업무를 맡게 되면서 관련 사업부 및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외계어처럼 난무하는 IT 전문용어를 이해하지 못해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IT의 개념과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비전공자로서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막막했었는데 궁리 출판의 잇츠 스토리 시리즈는 필자의 상황에서 정말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코딩책과 함께 보는 소프트웨어 개념사전>는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오피스 프로그램 부터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와 펌웨어, 인공지능과 머신러닝까지 코딩 언어로 작성된 응용 소프트웨어들을 다룬다. 2장에서는 시스템 소프트웨어나 운영체제 등 컴퓨터를 통솔하는 소프트웨어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운영체제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운영체제가 없어서 스마트폰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소멸된 피처폰의 사례를 언급한 것이 인상 깊었다.


“전화통화만 할 수 있던 당시에 피처폰은 문자 보내기, 알림 기능까지 제공하는 훌륭한 핸드폰이었죠.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feature’라는 이름까지 붙었지만, 다양한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는 견줄 바가 되진 못했습니다. 피처폰에는 운영체제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핸드폰에 다양한 앱을 설치할 수 없었거든요.” (p. 75)


3장에서는 월드와이드웹과 URL, 데이터베이스 서버, 사물인터넷 등 전 세계 웹을 연결하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4장에서는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DBMS), 정형 데이터와 비정형 데이터 등 빅데이터를 위한 소트트웨어를 다룬다. 5장은 보안과 보호를 위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내용인데 화이트 해커 (white hacker)의 유래에 대한 소개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화이트 해커는 사이버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선의의 목적으로 사이버 공격을 수행하는 선의의 공격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화이트햇 (white hat, 하얀색 모자)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1920년대 미국영화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영화에서 영웅들은 흰색 모자를 쓰고, 악당들은 검은색 모자를 쓰며 선과 악을 대표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6장은 코딩을 위한 소프트웨어들을 다룬다. 6장에서는 최근에 왜 코딩의 패러다임이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리는 순서대로 코드를 작성하는 ‘절차적 프로그래밍’에서 객체를 중심으로 객체의 행동과 속성 등을 정의하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해당 언어와 프로그래밍 방식의 특성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코딩언어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코딩 언어인 ‘C언어’의 이름은 왜 ‘C’가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유닉스 운영체제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B언어’ 다음으로 탄생한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B언어’의 능력 부족으로 ‘C언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로서 수많은 코딩 언어에 영감을 주는 인플루언서 ‘C언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p. 304) 또한, 전세계 사용률 1위이자 가장 배우기 쉬운 코딩언어로 알려져 있는 ‘파이썬 (python)’의 이름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몬티 파이썬 플라잉 서커스’라는 코미디쇼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p. 305) ‘모든 사람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고자 한 파이썬의 창시자 ‘반 로섬’의 생각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은가?


코딩은 키보드로 코드를 작성하는 단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도록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자는 소프트웨어를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 코딩을 잘할 수 있는 비법이라고 주장한다. 본 도서를 통해 IT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을 느끼고 소프트웨어의 개념과 원리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끝으로 이 책의 장점이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6장의 모듈과 인터페이스를 설명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드웨어 부품처럼 소프트웨어에서도 모듈이 있고 이 모듈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필요합니다. 케이블과 같이 손에 잡히는 것은 없지만 인터페이스는 두 모듈이 통신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지요.” (p. 360)


이 대목을 읽으며 소프트웨어의 모듈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자동차의 사례와 같이 하드웨어에서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모듈화를 통해 한 부품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부품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수리가 간단해지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 부품의 규격 통일을 통해 브랜드간 호환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부품 재활용에 이점이 있다는 것 등 모듈화의 장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모듈화의 장점을 취하면서 소프트웨어를 완성하기 위해 모듈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인터페이스이며, 대표적으로 API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의 한 종류로 우리가 웹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웹쇼핑을 할때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IT 용어의 개념과 유래, 장점 그리고 적용까지 이렇게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또 있을까? 코딩과 소프트웨어, IT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생 및 초심자 부터 개념정립을 하길 원하는 실무 개발자들 모두에게 본 도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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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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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종에 달하는 나무들의 이름의 유래와 뜻을 총 정리한 책입니다. 나무의 이름을 매개로 한 생태와 문화, 역사,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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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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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스카이폴>에는 인상 깊은 하나의 장면이 있다.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제임스 본드가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쓸쓸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하며 그가 바라본 그림은 윌리엄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고 두 척의 배까지 나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은퇴의 기로에 선 스파이는 그림 속 범선을 보며 세월의 무게와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것일까? 저자의 전작 그림 속 경제학에 소개된 <전함 테메레르>와 관련된 내용을 보며 인간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서도 이렇게 처절하고 애잔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놀라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예술이 일상이고 글쓰기가 직업인 저자 문소영의 신작에세이다. 전작들이 명화를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를 가로지르는 삶에 대한 통찰을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다루었다면, 이번 에세이에서는 저자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자유분방하다. 미술을 포함하여 영화, 음악 등 예술 전반과 사회, 경제, 정치, 철학 등 광대한 주제들을 개인적 성향 및 취향을 드러내며 다소 인간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게으르게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다양한 주제를 다룬 42편의 에세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해 다룬 <메멘토 모리에서 카르페 디엠으로>였다




신은 존재할까? 영혼이란 무엇이고, 사후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지만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아직 인류가 탐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생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삶은 한번뿐이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번 주어지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은 소중한 것이다.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메멘토 모리카르페 디엠이 어떻게 절묘한 한 쌍을 이루는지 프란츠 할스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해골을 든 청년과 꽃을 든 처녀는 누구나 언젠가 맞게 될 죽음을 일깨우고 있다. 싱그러운 젊음이 해골로 변하고, 오늘 미소 짓는 꽃이 내일은 지듯이 삶은 유한한다는 것을 유념하고, 오늘의 이 시간을 잘 누려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늦게 핀 대가를 꿈꾸며, 프랭크 매코트의 서늘하고 무거운 조언에 귀기울이라는 저자의 충고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이다.

 

계속 끄적거리세요! 뭔가가 일어날 겁니다.”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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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의 섬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4
에도가와 란포 지음, 채숙향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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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라 불리는 미스터리 추리문학의 거장이다. 그는 미스터리 문학의 원형을 만들어낸 에드거 앨런 포라는 대작가의 이름을 스스로 짊어지고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그 이름의 무게를 극복하고 자신이 창조해낸 세계와 인물을 통해 미스터리 추리 장르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일본이 현재의 미스터리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장르문학의 가치를 드높인 그의 빛나는 창작물과 평론들, 또 추리소설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일본추리작가협회를 설립하고 추리문학상을 제정한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에도가와 란포 상>은 저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도 이를 통해 데뷔했을 정도로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자 일본 추리 소설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 출간된 작품이 많지 않아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는데, 이번에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로 표제작인 <도플갱어의 섬>을 포함한 4편의 란포의 소설이 한 권으로 출간되어 무척 반가웠다.






4편의 소설들은 란포가 왜 거장으로 불리는지 느낄 수 있는, 그의 미스터리 스타일을 대표하는 주옥같은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4편의 소설 모두 독자에게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와 어떤 트릭을 구사하고 있는지 빠짐없이 공개하는 한편, 탐정이 이 완벽해 보이는 범죄의 빈틈을 파고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도서(倒叙)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4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은 물론 란포가 만들어낸 동양 최초의 사립 탐정 캐릭터 아케치 고고로. 일본 추리만화의 쌍벽을 이루는 <명탐정 코난>모리 고고로에도가와 코난’, <소년 탐정 김정일>아케치 경감아케치 고고로가 있었기에 존재가 가능했다. 이 캐릭터들은 란포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걷는 후세의 작가들이 그가 창조한 세계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이자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작가 에도가와 란포코난 도일이 결합된 <명탐정 코난>의 캐릭터 에도가와 코난은 장르문학에서의 에도가와 란포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단편집의 포문을 여는 <심리 실험>은 일본의 도서(倒叙) 미스터리 원조로 평가받는 소설이다. 가난한 대학생이 부유한 노파를 살해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이 소설은 언어 연상 테스트의 형태로 행해지는 심리 실험과 범죄 심리를 이용한 아케치 고고로의 추리가 빛나는 작품이다. 가장 좋은 추리는 심리적으로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것이라는 아케치 고고로의 대사처럼 인간 내면의 심리를 이용한 추리를 전개한다는 점이 물적 증거를 기반으로 트릭 해결에만 집중하는 여타의 미스터리물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지붕 속 산책자>는 에도가와 란포의 몽상가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초기 대표작이다. 지루하고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의 삶 속에서 회의하고 방황하는 염세적 인물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하숙집 지붕으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밤의 세계와 범죄의 유혹에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다. 란포는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자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이 추리소설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나의 관심은 오직 진실을 아는 것이라는 아케치 고고로의 말처럼 이상과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 방황하는 범시대적인 고뇌를 다뤘기 때문이 아닐까?



<도플갱어의 섬>에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대자연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신이 되어 자연을 새롭게 창조하고자 하는 히토미 히로스케가 등장한다. 그는 항상 자신만의 유토피아 건설을 꿈꾸지만, 현실의 그는 두 평 남짓한 지저분한 하숙방을 전전할 뿐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괴로워하던 그는 자신의 이상향을 구현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유토피아 (Utopia)’'없는(ou-)''장소(toppos)'의 합성어인 것처럼 엽기적인 범죄를 통해서 이룩한 이상향은 그가 내딛는 현실의 기반을 무너뜨리며 그를 파국으로 안내한다.



<검은 도마뱀>은 란포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걸출한 여도둑 미도리카와 부인이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의 호적수로 등장하여 지혜를 겨룬다. 미도리카와 부인은 범죄를 예고하고,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인간의 표정을 즐기고, 싱그러운 젊음을 박제하여 수집하는 등 편집증적 광기를 지닌 괴도(怪盜, phantom thief)로 묘사된다. 작품 전체에 걸쳐 어두운 심연에 자리 잡은 인간의 추악하고 비뚤어진 욕망, 광기가 번뜩이는 몽환적인 세계가 연출되지만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빠져드는 건 인간의 본성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건드리기 때문이 아닐까? 이 작품은 아케치 고고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이라는 의미도 있다.



란포의 위대함은 그가 일본 미스터리의 아버지라는 것뿐만이 아니다. 자기 내면에 숨어 있는 욕망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즐길 수 있게 한 것이 란포의 진정한 업적이다. 일본에 란포라는 작가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 온다 리쿠 -



에도가와 란포가 추리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일본의 미스터리 장르를 확립한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 ‘아케치 고고로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든 것, 범죄 심리를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그만의 스타일을 창조해낸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작품집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과학적 추리로 대표되는 현실과 이성의 세계와 이에 대비되는 그로스테크한 욕망과 서리얼 (Surreal)한 환상의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이를 유려한 문체로 표현한 부분이었다.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자꾸 문득 두세 시간 전의 격정이 되살아났다. 그의 전 애인 사키코가 목이 졸리면서 이 사이로 혀를 내밀고 입가에 주르르 피를 흘리며 소처럼 큰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얼굴과 허공을 할퀴는 듯한 단말마의 손가락 다섯 개가 거대한 환상이 되어 그를 위협했다.” (P. 253)



처음으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느끼는 불안과 흥분, 공포로 점철된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과 애인을 교살하는 과정을 소처럼 큰 눈허공을 할퀴는 단말마의 손가락 다섯 개로 이미지화시킨 표현을 보며 인간 내면의 심리를 탐구하는 에도가와 란포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눈에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반짝거리는 눈물방울이 남자의 하얀 몸을 감싸며 일그러져 빛나는 것 같았다.” (P. 397)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절제된 언어로 감각적으로 표현한 부분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란포는 위트와 유머도 잊지 않는다. <검은 도마뱀>에서 아케치 고고로는 여도둑의 트릭에 대해 이번 발상 같은 경우는 완전히 옛날이야기예요. 어느 소설가의 작품에 <인간의자>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 역시 악인이 의자 안에 숨어서 장난을 치는 이야기인데, 그 소설가의 황당무계한 공상을 검은 도마뱀은 감쪽 같이 실행해 보인 겁니다.” (P. 337) 라고 말한다. 란포 자신을 어느 소설가로 언급하면서, 자신이 작품에서 선보인 트릭을 올드하고 황당무계한 공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100여 년 전의 작품이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에서는 시대적 이질감을 크게 느낄 수 없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건 작품에 가끔 등장하는 시대상과 현대과학에 비해 다소 낙후된 당시의 기술력을 마주할 때뿐이다. 그의 소설들이 아직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그가 특정 시대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근원으로 반복되는 삶 그 자체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란포의 도서(倒叙) 미스터리는 한 세기 이전에 있었던, 이미 확정되어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우리 삶을 다루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 자신도 <지붕 속 산책자>의 사부로처럼 이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내면에 들끊는 욕망들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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