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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안바다 지음 / 푸른숲 / 2020년 9월
평점 :

오랜만에 쉬어가듯 읽은 에세이 한편.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형편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이 상황을 어쩌면 우린 모두 공평하게(?)
현재 겪고 있고 이런 상황 덕분에(!)
지금 내가 가을바람을 온전히 느끼며 책을 읽는 이 순간을 감사할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정작 제대로 가보지 못한 곳은 나의 집이 아니었을까. 내가 살던 집, 내가 사는 집으로 나는 얼마나 제대로 떠나봤을까. 조직장에게 쓴소리를 듣고 자괴감에 빠진 나를 받아주던 집, 술에 절어 비틀거리던 나를 말없이 받아주던 집, 그와 헤어지고 잠 못 드는 나와 적막한 밤을 함께 보내주던 그 집은 자주 권태의 대상이 되었다. 벗어나고 싶은 지겨운 공간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은 멀리 그리고 오래 어디론가 다녀와도 언제나 먼지만 약간 품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16p
요즘처럼 집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나에게도 처음이다.
처음엔 계속 이렇게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지 몰랐기에 그저 무감각했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하고 지루해졌다.
하지만 그 시간도 지나고 나니 집이라는 공간이 보였다.
현재 내 상황을 보호해 주는 공간. 나에게 불편함이 하나도 없이 꾸며진 우리 집.
처음 이 집에 신혼살림을 들여놓으며 했던 다짐들이 생각났고
그동안 주말이면 바람을 쐬러나가고 휴가철이면 여행을 가기 바빠서 잊고 있던 집의 존재를
어디론가 다닐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이 에세이를 통해
나는 작가의 집을 엿보는 여행을 하였고
내가 사는 집도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작가의 에세이를 통해서
작가의 집을 함께 여행해보며 마음에 들었던 여행 공간을 몇 군데 남겨보려고 한다.
타인의 취향, 거실

작가의 집에서 부러웠던 공간. #거실
동생과 둘이서 살았던 10년 세월 동안 멀어지게 된 건 텔레비전이었다.
원룸이라는 공간에서 공부를 하는 동생과 직장인인 나의 동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레 좁은 공간적 한계 속에 동생과 나의 말소리 외에 텔레비전 소리는
소음이었을 뿐이었기에 우린 자연스레 텔레비전과 멀어졌다.
나에게 지금의 대형 텔레비전이 함께 하게 된 건 남편 선택이자 간절함이었다.
다른 건 모두 내 맘대로 해도 되지만 텔레비전은 큰 걸 사고 싶다는 남편의 말.
정말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거 하나면 된다는 말을 무시할 순 없었기에
대형 텔레비전이 우리 집 거실 전면을 가득 차지하게 됐다.
지금도 나 홀로 집에 있는 시간 동안에 텔레비전이 켜질 일은 없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텔레비전도 비로소 말을 하고
남편은 잠들기 전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소파와 텔레비전과 한 몸이 되지만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잠을 떨쳐가며 보려고 하는 텔레비전과의 달콤한 시간,
잠깐의 그 시간을 나는 차마 말릴 수 없다.
순수 박물관, 창고

작가의 어머니처럼, 나의 엄마도 무언가를 왜 그리 못 버릴까 싶었지만
나 역시도 엄마를 닮아 나의 물건들을 자꾸만 하나씩 의미 부여하며 남겨간다.
그중에 엄마에게 물려받게 된(?)
나의 학창 시절 교복들, 나의 유치원복, 어린 시절 옷들이 나의 신혼집 옷장까지 찾아왔다.
그렇게 현재 내 옷장은
나의 유년기, 학창 시절, 대학 입학, 첫 직장 입사, 웨딩촬영 등의 추억이 공존하는 나의 박물관이 되어버렸다.
원문 : https://blog.naver.com/roody486/222096394588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