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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서제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8월
평점 :
아마 올 연말에 독서 정산을 하게 된다면
일 년 중 제일 좋았던 책 한 권을 역시 뽑지는 못하겠지만 작년처럼 여유롭게 열 권은 뽑겠지. 베스트 10에 반드시 들어갈 것만 같은 책이다. 지금이 1월임에도 느껴진다.
비비언 고닉은 처음 접하는 작가였는데 책에 푹 빠져 며칠을 보냈다. 에세이를 많이 좋아하고 찾아보는 편은 아닌데 글이 정말 깊고 예리하다.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감동했달까.
살면서 그놈의 인간관계가 참 인간 하나하나를 힘들게 한다. 그럴 땐 세상에 나만 고립된 것 같고 외롭고 쓸쓸하다.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다. 비비언 고닉은 그런 고립과 외로움, 우울, 쓸쓸함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하기를 관두면 사실 얼마나 편한가. 다 내려두고 싶고 그저 거리를 두며 나와 맞지 않으니 서서히 멀어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편하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불현듯 찾아와서 괴롭게 할 때가 있다. 감정의 정리가 안됐던 것. 정리된 척만 하고 살짝 덮어두기만 했기에 불시에 어둠이 찾아오더란 말이다.
비비언 고닉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질문하고 개척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게 해결을 위한 방안이라기 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대로 그의 최선을 다하는 것. 글을 읽다보면 나만의 외로움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이 된다. 이렇게 깊고 통찰력 있는 글을 읽음으로써 내 마음까지 정리되는 상태에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다(작가에게). 이렇게 쉽게, 그저 던져주는 대로 책만 읽었을 뿐인데 작가가 오랜 세월 통찰했을 그 많은 시간들을 덜렁 받아먹는 기분이라! ㅋㅋㅋ그게 또 독서의 매력이겠지 한다.
제목부터 매력덩어리다. 타인 때문에 많이 괴롭고 외롭고 관계에 서툴지만은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온기가 있다. 삶은 개개인의 공연이다. 모두가 각자의 공연을 한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더라도. 비비언 고닉의 책을 나는 또 찾아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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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친구 관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니른 서로에게서 활기를 얻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찬 상태여야 만날 수 있는 관계다. 첫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해물을 치운다. 두 번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일정표에서 빈 곳이 있는지 찾는다.
57.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들려줄 말이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았다. 각자의 개성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대화는 지루해졌으며, 개념들은 똑같은 말의 반복이 되어갔다. 회의는 귀찮은 일이 되었고 모임 소식에도 예전만큼 마음이 설레지 않았다.
170. 나는 그들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만큼 그들 자신을 되찾게 해주지 못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정에도 짜릿함 만큼이나 평안함이 필요하다. 그 두 가지가 모두 갖춰지지 않으면 마음의 접붙이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결은 신뢰할 수 없는 순간의 문제로 남는다. 꾸준히연결되지 않으면 우정에는 미래가 없다.
171. 좋은 대화는 지성과 정신의 단순하지만 신비로운 어울림에 달려 있는데, 그 어울림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통의 관심사나 계급적 이해관계, 혹은 공동으로 세운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문제다. 기질이란 항의하는 투로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대신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듯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겠어" 하고 대답하게 하는 무언가다. 기질이 갵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솔직힐 대화의 흐름이 거의 끊기지 않는다. 반면 기질이 다르면 언제나 누군가는 눈치를 보게 된다.
176.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는 일상적 용도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한다.
234. 나는 나 자신에게 대답했다. 아니,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아.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달라. 비교할 수는 있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할 수는 없어. 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 일과 사랑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어느 쪽을 골라도 인생을 절반밖에 살 수 없는 거지.
235. 그 편지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혼돈을 꿰뚫어 보며, 쓰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내고자 한 갈망의 기록이다. 다른 종류의 내적인 추구다. 다시 말해, 지도에 없는 공간으로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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