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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에 토카레프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6월
평점 :
브래디 미카코란 이름부터 낯설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와 영국 체류를 반복하다가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 빈곤 지역의 탁아소에서 일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소설 역시 일본과 영국이 주 배경이다. 낯선 이름의 작가와 제목, 예상치 못 했던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던 며칠이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또 너무나 좋았다.
이야기 자체의 힘을 오롯이 느껴본 시간이었달까. 울기도 많이 울었고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도 많아서 몇 번씩 되뇌어 읽기도 했다.
영국의 빈민가에서 가난과 방치 속에 살아가는 10대 소녀 미아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접하게 된 책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설 속 미아가 읽게 된 책은 100년 전 일본에서 부모에게 버림 받고 할머니에게 학대 당하며 온갖 불운에 맞서 싸운 가네코 후미코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책이다. 책 속의 책, 가네코 후미코는 실존 인물이었다는 걸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알았다. 예상치 못한 반전을 느꼈다고 할까.
앞을 내다보아도 까마득한 구렁텅이와 끝없는 내리막길만이 보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아는 후미코의 책을 통해 100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책의 작가와 소통하고 연대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게 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사실은 어느 것도 끝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 책을 읽으며 느끼는 그런 순간들은 일종의 환희다.
책을 통하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미아가 그랬듯,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미아와 후미코와 한참을 함께한 기분이 들었다.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버림 받고 방치되는 많은 아이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힘들기도 했다. 아직 사랑받고 보살핌 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이 편한 숨을 내쉴 만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겠다. 짧은 시간이나마, 그게 어떤 공간이든, 그 어떤 책이든. 무엇으로도 보듬기 힘들지만 그래도 다른 세계를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 다른 세계란 그저 시공간의 개념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확장판인 것이고 그 현실의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서부터이다.
책은 현실 도피가 되기도 하고 숨을 쉴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하며 운이좋으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해 주기도 한다.
터무니 없는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감 넘치게 절절한 이야기라 책을 다 읽고 난 후 브래디 미카코의 전작들을 계속 살피고 있다. 마음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작가이고 소설이었다. 정말로 좋았던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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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어른은 그런 눈으로 아이를 봐서는 안 된다. 아이가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런 눈빛으로 쏘아본들, 이미 태어나버렸는데. 누군가 내가 없기를 바란들,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데. 그 후,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없기를 바라지 않는 세계. 그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는 세계.
166.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감싸고, 부드럽게 지켜주고 싶은 감정. 어른들이 내게 그런 감정을 준 적은 없었지만, 나 자신은 그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지나치게 많이 지니고 있었다. 감정을 쏟을 대상이 생기자 그 감정이 되살아났다. 사랑이 되살아나자, 나도 되살아났다.
249.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들, 아야나시의 사람들, 지금껏 만나고 헤어졌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가 이 하늘 아래에 있다. 그렇다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이 하늘 아래에 존재하면서 틀림없이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