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망상 달달북다 11
권혜영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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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애정망상》은 로맨스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입니다.
사랑이 실제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고 믿는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이 불편한 진실.
그러나 권혜영은 그것을 슬픔이 아닌, 이야기로 바꿔냅니다.

이 작품은 묻고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건, 그 사람이었나요?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당신만의 이야기였나요?

《애정망상》은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는 세상에 대한 반항입니다.
사랑이란 결국 마음의 결핍이 빚어낸 미지의 생명체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도 만져본 적 없는 감정일지라도,
그것이 당신을 위로했다면 그건 분명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권혜영은 2020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주목받는 젊은 소설가로 자리 잡은 작가입니다. 전작 '사랑 파먹기'에서는 사랑이 어떻게 환상에 복무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글쓰기를 이어왔습니다.

《애정망상》은 ‘달달북다’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으로,
‘로맨스×비일상’이라는 테마 아래 사랑의 실체가 없는 감정에 대해 탐구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감각적인 언어, 불안정한 인물, 낯선 감정의 충돌로 독자에게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작품은 ‘고막 남자친구’라는 대중적인 소재로 출발하지만,
금세 작품은 SF적이고 오컬트적인 상상력으로 치닫습니다.
작품 전반에는 ‘사랑은 결국 혼자의 감정이다’라는 인식이 흐르며,
현대 사회에서의 관계 결핍, 감정의 소비 방식,
‘디지털 친밀감’ 같은 주제들을 상상력의 옷으로 덧씌웁니다.

기존 로맨스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작품을 통해
로맨스 장르의 확장성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 권혜영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랑보다, 환상 속의 사랑이 더 편안하다”는 것을 전제로 소설을 구성했습니다.
주인공 ‘지나’는 “종이 속 인간들의 사랑”을 더 신뢰하며, 감각적이고 심리적으로 ‘무정형’인 사랑만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대인의 고립된 감정, 사랑의 과잉이 아닌 결핍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고의적으로 비일상적인 사건들을 배치합니다.
왕자의 등장, 남성의 신체를 수집하는 임무, 무형의 목소리에 대한 집착. 이 모든 환상은 결국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주인공 ‘지나’는 ASMR 콘텐츠에서 들리는 ‘고막 남자친구’의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인물입니다. 현실의 남자에겐 감정이 없고, 목소리만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설정부터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어폰을 꽂을 때만 들리던 목소리가 집안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일상의 경계를 벗어납니다.

놀랍게도 그 목소리는 다른 행성에서 온 왕자였고,
지구로 떠난 연인을 찾기 위해 지나의 몸을 매개체로 삼아 접속해옵니다.

“왕자의 제1목표, 애시를 찾는다… 제2목표, 애시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실론으로 돌아간다.”

이 황당한 비일상 속에서 지나가 보여주는 감정은,
얼핏 우스꽝스럽지만 실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사랑받고 싶고, 의미 있는 관계를 원하지만, 상처를 피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녀는 목소리 하나에 사랑을 걸고, 그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모험을 감행합니다.


지나의 친구 가람은 정반대의 애정을 보여줍니다. 지나가 비물질적 사랑에 머문다면, 가람은 물질의 흔적을 통해 사랑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녀는 전 애인의 손톱, 머리카락, 귓불, 체취 등 물리적 조각들을 수집하여 다시 사람의 형상을 맞추고, 과거의 연인과 재회하려 합니다.

“다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니까 정말 좋다.”
– 가람이 인체 조각들을 모아 대화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소름 돋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잔해를 끌어안은 안간힘’으로 읽힐 수도 있슫니다.
가람은 집착과 애착의 경계 위에 서 있습니다.
지나가 환상을 좇는다면, 가람은 실체 없는 사랑의 껍데기를 조립합니다. 둘 다 외롭고, 둘 다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두렵고 무섭다는 게 대체 뭐야? 나는 누군가의 집착이 두렵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아. 왜냐하면 나는 단 한 번도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집착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야…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하는 삶이 두렵고 무섭다는 걸 알아. 그것만큼은 정말 뼈저리게 알아.”

가장 가슴을 치게 한 부분은 이 대목은 《애정망상》이 괴짜적인 이야기로 머물지 않도록 만듭니다. 이 작품은 결국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이 현실에서 좌절된 사람들은 그것을 망상 속에서, 비현실적인 존재에게서, 혹은 조각난 파편들 속에서라도 찾으려 합니다. 그 애절함이 이 이야기를 슬프게 합니다.


권혜영 작가는 '사랑 파먹기'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사랑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상’ 이라는 주제를 이어갑니다.
특히 현대인의 고립된 사랑, 감정의 외주화, 연결되지 않는 연대감 등을 그려냅니다. 로맨스라는 장르 안에서 이렇게 사랑의 그림자를 깊이 있게 그리는 소설은 드물 것입니다.

작가는 사랑의 부재를 두려워하는 감정이 어떻게 기이한 사랑의 형태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면서,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망상의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애정망상》은 ‘달달북다’라는 시리즈 이름에 다소 모순되게도, 전형적인 달달함과는 거리가 먼 로맨스입니다. 그러나 그 ‘달콤하지 않음’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사랑의 가장 외로운 형태, 가장 왜곡된 지점, 가장 인간적인 결핍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사랑이 무섭고, 피곤하고, 의미 없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흔적을 붙잡고, 기꺼이 상처를 감수하며 누군가를 원합니다.

작품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는가, 그 모순적 아름다움을 묻습니다. 환상과 망상이 아닌,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사랑은 환상에서 시작되지만, 때로 그 환상이 가장 현실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사랑을 이해하고 싶고,
사랑에 상처받아본 적 있는 모든 이에게 던지는 강렬한 문장들의 연속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강렬한 망상일지도 모르지만,
그 망상이 누군가를 살게 만든다면 –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애정망상》은 우리가 사랑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다시 말해, 망상도 애정도 결국은 인간적인 것이라는 작가의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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