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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도서협찬
이 게시물은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괜찮아요, 원하는 만큼 보세요.”
하라다 히카는 음식과 일상의 이야기를 녹여낸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입니다. '낮술', '우선 이것부터 먹고' 등에서 음식과 인간 관계의 섬세한 묘사로 공감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이번 작품에서도 책과 음식을 매개로 인간 사이의 연결을 모색합니다.
작가는 "헌책 식당"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책방의 의미와 책이 우리 삶에 미치는 감동을 조명합니다. 또한 책과 음식을 매개로 한 인간 관계의 따뜻함과 치유의 힘을 담고,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와 삶의 여유를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헌책 식당"은 헌책방을 배경으로 책과 사람, 그리고 일상이 서로 연결되는 잔잔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이주해 갑작스럽게 헌책방 주인이 된 산고 할머니와 그녀를 돕는 미키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헌책과 음식이 중심이 되는 특별한 힐링 스토리를 보여줍니다.
이야기는 헌책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상과 사람들의 소소한 사연을 다루며, 책이 주는 위로와 작은 기쁨을 섬세하게 전달합니다. 읽는 내내 마치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 서점가와 그곳에 언제나 열려 있는 상냥한 헌책방”
주인공 다카시마 산고는 갑작스럽게 오빠 지로의 헌책방을 맡게 됩니다. 도쿄의 진보초 거리에 위치한 ‘다카시마 헌책방’은 희귀본부터 문고본까지 다양한 책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생소한 도쿄 생활과 헌책방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던 산고는 오빠의 흔적을 정리하며 책방 주인으로 적응해 나갑니다.
📌"책은 ‘만지면 팔린다’라는 말이 있어. 이렇게 책들을 정리하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그 후에 팔리거든."
산고를 돕는 대학원생 미키키는 고모할머니를 걱정하면서도 헌책방에서 자신만의 책 이야기를 발견합니다. 헌책방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두 사람은 책이 가진 힘과 책방의 따뜻한 역할을 깨달아갑니다.
헌책방을 찾는 손님들의 각기 다른 배경과 사연은 이야기의 주요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책을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 이들, 창작에 지친 소설가 지망생, 그리고 논문과 진로 고민으로 방황하는 대학원생 미키키 등 다양한 이들의 모습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특히 헌책방이 손님들과 주인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어떤 이는 기분 전환을 위해, 또 다른 이는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합니다. 산고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자연스럽게 책을 추천하고, 이 과정에서 독자 또한 헌책방이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위로와 소통의 공간임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실직 후 막막한 중년 남성이 책방에서 기분 전환을 위해 책을 찾는 장면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산고가 “괜찮아요, 원하는 만큼 보세요”라고 말하는 부분은 헌책방의 다정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입에 닿는 느낌이 순하고 부드러워 마치 비프 스튜를 먹는 것도 같지만 곧 반전이 닥친다”
또한 소설에서 음식은 책과 함께 사람들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책방 주변의 맛집이나, 책방에서 나누는 간단한 식사 장면들은 공간의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특히 산고와 미키키가 손님들과 음식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장면은 책방을 단순한 상업적 공간이 아닌 다정한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줍니다.
음식에 대한 묘사는 하라다 히카 특유의 생동감 있는 문체를 잘 보여줍니다. 비프 카레, 초밥, 카레빵 등 진보초 거리의 맛집이 상세히 묘사되어 읽는 내내 군침이 돌게 합니다. 이는 실제로 진보초 헌책방 거리를 방문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책은 지식을 전하는 매개체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책을 추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책방의 주인 산고와 손님들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는 독자에게도 책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제일 두려운 건 그러는 사이에 다들 서서히 그 생활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책과 책방이 없어지고 도서관이 문을 닫은 세상에.”
"헌책 식당"은 큰 사건이나 반전을 통해 흥미를 끌기보다는,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과 대화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품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책방과 독서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산고는 책이 서서히 사라지는 세상을 상상하고 책과 서점의 소중함을 말하며 독서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전자책과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이 전통적인 책방을 찾는 빈도가 줄어들고, 점차 책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적응해가는 이 시점에 작품을 읽고 나면, 나만의 책과 음식 이야기를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의욕이 생깁니다. 책을 좋아하고, 헌책방의 매력에 끌리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따뜻한 작품입니다.
산고와 미키키가 헌책방과 책을 통해 만들어가는 일상의 작은 기적들은 ‘지금 여기의 삶을 사랑하는 태도’를 가르쳐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