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우어
천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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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다는 것이 이토록 짙은 화상을 남길 줄 알았더라면 함부로 끌어안지 않았을 것이다.”


천선란은 '천 개의 파랑'으로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하며 국내 SF 문학을 새롭게 이끄는 작가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노랜드', '이끼숲' 등을 통해 SF의 경계를 확장하고 인간과 비인간, 기술과 자연의 공존에 대한 깊은 사유를 독자와 나누어왔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은 감정적인 울림과 섬세한 서사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천선란의 작품은 SF적 상상력과 인간의 내면적 성찰이 결합된 독특한 장르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우어"는 극한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내면의 상실과 슬픔을 넘어선 용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언어가 사라진 세계, 얼어붙은 대지, 외계와의 전쟁, 그리고 피해와 상처의 기억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지키며 삶의 의미를 탐색합니다. 다정함과 기억이 남긴 흔적을 통해 독자는 인간의 고유한 연대와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는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며 끝내 나아가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묻습니다. "모우어"는 언어, 기억, 다정함이라는 요소를 통해 인간 내면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진정한 용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에 남은 얼지 않는 호수는 인간의 끝없는 믿음과 희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소설집의 첫 작품인 '얼지 않는 호수'는 얼어붙은 세계를 배경으로, 상실 속에서도 끝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본능과 용기를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빙하에 덮인 극한의 상황에서, 소중한 친구의 심장을 지닌 아이와 방랑자였던 여자가 만나 서로에게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

📌“한 사람의 다정함에 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설산에서 화상 입은 몸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라는 문장은, 인간의 온정이 때로는 상처를 남길지라도 삶의 동력이 됨을 강렬히 전달합니다.

작품 속에서 “얼지 않는 호수”는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세계에서 친구의 심장을 품고 여정을 떠나는 아이와 그를 돕는 ‘파수꾼’의 이야기는 얼음 같은 절망 속에서도 끝내 ‘얼지 않는’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의 질문,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는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문장입니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결국 세계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었습니다.

📌“언어는 쉽게 왜곡되고 무너져. 하지만 언어 없이는 서로를 알 수 없어.”

표제작 '모우어'는 언어를 버린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언어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감정을 단순화하며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인간들은 언어를 포기하고 텔레파시와 유사한 ‘의음(意音)’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에 태어난 소년 ‘모우’는 오히려 언어를 구사하며 시간을 경험합니다. 언어의 탄생이 모우의 신체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는 마녀로 몰리며 위기를 맞습니다.

📌“인간의 언어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이 생태계의 이방인이 되었다”

천선란은 이 문장으로 언어가 가진 양날의 검과도 같은 속성을 탁월하게 요약했습니다. 언어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도구인 동시에, 고립시키는 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속에서 섬세히 풀어냅니다. 이 작품은 “언어가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시키고, 감정을 단순하고 납작하게 만든다”는 통찰을 통해, 언어와 본질적 소통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우라는 존재를 통해 언어가 폭력의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창조할 수 있는 힘임을 암시합니다.


📌“모든 의문의 종착지는 헤아림이다”

'뼈의 기록'은 죽은 자를 염습하는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와 미화원 ‘모미’의 우정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로비스의 섬세한 관찰과 헤아림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태도로 다가옵니다. 로비스가 ‘모미’의 시신을 우주로 보내려는 마지막 행동은 감동적이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려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는 관계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안드로이드 장의사 로비스는 “헤아림”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통해 인간적인 따뜻함을 구현합니다. 반면 '서프비트'의 초능력을 가진 청소년들은 능력의 비인간성에서 비롯된 소외와 고립감을 극복하려 합니다. 이러한 서사들은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기준을 독자가 새롭게 고민하게 만듭니다.


📌“삶은 코코넛 껍질 까기 같은 거다”

'사과가 말했어'는 범죄와 트라우마를 겪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태국인 친구와의 언어적, 문화적 단절 속에서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설정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연결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의 고통이 충돌하는 순간,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질문을 남기며 깊은 여운을 주었습니다.


📌“끝내 출구를 찾지 못하는 기억은 미로에 갇힌 채 굶주려 있다”

'입술과 이름의 낙차'는 기억이 인간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룹니다. 과거의 기억이 새로운 기억을 잠식하고, 인간을 변형시키는 설정은 상처와 트라우마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기억을 지우는 기술을 통해 고통을 없앨 수 있다면, 과연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기억과 치유의 경계를 들여다보며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가 되는 건 아니야”

소설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실과 연결을 다룹니다. '쿠쉬룩'에서는 기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서 언니를 되찾으려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상실을 극복하는 대신 지속적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탐구합니다. 이 작품은 현실과 허구,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물며 상실의 의미를 재해석합니다.


천선란의 "모우어"는 인간의 상실, 용기, 그리고 다정함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전해줍니다. 상실 속에서도 나아가는 용기, 관계를 통해 발견하는 다정함, 그리고 끊임없이 상상하며 만들어가는 희망은 이 소설집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천선란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상상과 다정함으로 세계를 이어가는 한,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우어"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감정의 복잡성과 언어의 한계, 그리고 상실 속에서 발견하는 용기를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만의 내적 세계를 돌아보게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의 힘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위태로운 세계 속에서 기꺼이 파수꾼이 되기를 택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마음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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