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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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책이 화제다. 지난 6월 20일 출간된 이후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벌써 6쇄째 찍어내고 있으니 불황인 출판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름난 작가도 아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5년을 근무한 20대의 이야기가 이토록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사뭇 궁금했다.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그 주인공이다.

 

독특한 책이다. 주된 내용은 우울감에 시달리던 작가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백세희 작가가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것이 스물 두살 때였던 6년전이었다고 한다. 뭔가 특별한 처방이나 해결책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병원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의사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설명해주길 바랬지만 병원의 대응은 무미건조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대학을 졸업했고 출판사에 들어가 5년 동안 일을 했다. 겉으로 드러난 직장생활은 유별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우울함을 철저히 감추며 살았고, 남들에게 비난 받지 않기 위해 모범적으로 일했다.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자리에서는 녹음하는 습관도 생겼다. 대화 상대방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 있었는지를 복기해 보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런 습관 덕분에 어쩌면 이 책을 펴낼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녀의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기분부전장애다. 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지는 않으나, 가벼운 우울감이 빈번하게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우울증도 아닌 사람이 호들갑 떤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누구나 살면서 그 정도의 우울한 감정은 느끼고 사는거 아니냐고, 혼자만 유별스럽게 큰 병에나 걸린 것처럼 상담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이도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책을 읽고 나서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게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치료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그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애매한 사람들에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12주에 걸친 정신과 상담 치료 뒤에 그녀는 회사를 그만 두고 경주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2권에 계속)된다고 예고까지 했으니 어쩌면 그녀가 속편을 통해 완치 통보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목적은 많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인 우울증 치료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보다는 왜 사람들이 속으로 곪아 가는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과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공감이 필요했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대신 직접 그런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존재를 드러내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다가와 함께 안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책의 서문에서 담담히 밝히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그것도 치료 내용까지 상세히 기록하며)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가 힘든 줄 몰라서, 혹은 외부의 시선이 두려워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은이의 용기가 더욱 빛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가 부디 그녀의 바람대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의심없이 편하게 지내길 기원한다.



출처: http://kangks72.tistory.com/1757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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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의 집 - 조선 최고 지식인.권력자 11인의 집과 사람 이야기 사람을 향한 인문학
박광희 지음 / 가치창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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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머무는 집, 그리고 그 집이 놓인 땅은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가 오래된 고택을 통해 집주인의 삶을 살펴 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한 인간의 됨됨이, 인품, 삶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 등이 땅과 집에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가의 사상에 철저했기에 다른 학문을 철저히 배격했던 유학자들의 집들이 한결같이 풍수지리에서 꼽는 최고의 양택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대 최고의 세도를 누렸던 권력자, 후대의 표상이 되는 최고 지식인들이 살았던 집은 어떨까. 현직 기자생활을 거쳐 지금은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광희의 <옛사람의 집> 속에는 이러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풀어줄 11곳의 집이 소개되어 있다. 최고 권력자, 지식인이라 하기에 덕혜옹주의 삶은 비극적이었으며, 선교장의 주인 이내번의 명성이 다른 이들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머물렀던 집과 집터는 충분히 매력적이라 하겠다.

 

시간 날 때마다 발품을 팔았던 덕분에 세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녀온 곳이라 더욱 반가웠다. 여러 번 가서 보아도 지겹지 않으며 매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이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첫번째로 늘 꼽는 소쇄원이 그렇고, 붉은 동백꽃의 마중을 받으며 오르는 다산초당이 또한 그러하며, 따스한 봄볕같이 정겨운 명재고택 역시 좋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걸음을 옮겨 한참을 머물며 옛사람들의 흔적을 음미해 보는 곳들이다.

 

아산 맹씨행단에선 맹사성의 청렴함을, 지리산을 앞마당 삼아 매화향 가득한 산천재에서는 남명 조식의 엄격함을, 정갈한 사대부집 추사고택에서는 시대를 뛰어넘는 예인의 위대한 예술혼을 닮아보려 애쓴다. 자신을 한마리 나무좀벌레로 부르며 스스로에게 추상같았던 일두 정여창의 아름다운 집은 이제는 인기 드라마의 배경으로 소개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일두 고택 현판에 새겨진 문헌세가(文獻世家, 충효절의(忠孝節義)의 글귀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힘차고 기개가 넘친다.

 

아쉽게도 아직 다녀오지 못한 세 곳의 집에 마음이 끌린다. 고종황제의 고명딸로 태어나 일본에서 피폐한 삶을 살다 1962년 1월 고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가 여생을 보냈던 창덕궁의 낙선재. 궁궐 안에 있으면서도 화려한 단청을 하지 않고 사대부집처럼 소박하게 지은 이 곳에서 비운의 여인 덕혜옹주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다. 대마도 심주 아들과의 정략결혼, 현해탄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딸의 죽음, 조발성 치매증이라는 병마에 시달렸던 파란만장한 삶의 마지막은 부디 평안했길 바란다.

 

안동김씨 세도가 집안을 기웃거리며 '상갓집 개'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던 흥선군 이하응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떠올리게 하는 운현궁 또한 흥미롭다. 아들 명복이 갑작스럽게 왕위에 오르며 몰락한 왕실 방계 가문에서 일약 임금의 아버지가 된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완성되고, 또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 또한 이 곳 운현궁에서의 일이다. "하늘과 운현궁 지붕과의 거리가 다섯 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그였지만,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외척세력의 발호를 지극히 우려해 중전으로 간택했던 민비와의 갈등으로 결국 실각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나주평야의 한 자락인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광주 광산의 너브실마을에 있는 기대승의 애일당은 또 어떤가. 호남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기대승은 영남 성리학의 거두 퇴계 이황과의 사칠논변(四七論辯)으로 이름을 알렸다. 무려 8년간 서찰을 통해 계속된 사단칠정 논쟁을 학문적으로 성찰할 깜냥은 안되지만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주며 자신의 학문을 완성해 가려했던 대학자들의 넓은 품이 느껴지는 듯 하다. 어느 때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애일당 마당을 느릿느릿 걸어볼 날을 기약해 본다.

 



출처: http://kangks72.tistory.com/1756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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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 넓고 깊은 사색의 세계
허균 지음 / 다른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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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실린 사진이 인상적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니 가을이 한창 깊었나 보다. 눈에 익은 풍경이긴 하지만 어느 서원의 풍경일지 그저 추측할 뿐이다.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전국에 있는 여러 서원들을 두루 유람했다. 전문적인 시각이 없으니 답사라기 보단 유람이 적당하겠다. 서원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던 차에 만난 이 책이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자문위원이자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균 선생의 <한국의 서원>에는 서원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에 이어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 유식공간, 정원과 장식으로 나눠 세부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미리 이 책을 일독하고 서원을 찾아 다녔으면 좀더 깊이 있는 공부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든다. 한편으론 지금껏 다녀온 기억들을 다시 되살려 보는 재미가 있긴 하다.

 

서원은 조선시대 유림들이 각 지역에 세운 교육기관이었다. 중국에도 서원이 존재했지만 그들은 관료 양성을 위한 준비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우리의 서원과는 구별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모시는 문묘나 향교와도 다르다. 우리의 서원은 학문과 덕행이 높은 선현들을 사당에 모셨고, 누정과 정원을 꾸며 유식공간을 별도로 두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서원의 교육 목표는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깨닫고 인격을 수양함으로써 스스로를 도덕적인 사람으로 완성시키고자 하는데 있었다. 선비 정신의 발현이 곧 서원의 존재 이유기도 했다.

 

물론, 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전국에 난립하게 되고, 지역내 유력가문의 본거지나 당쟁의 소굴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런 폐단으로 인해 수백여 곳에 달하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에 의해 대부분 훼철되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비롯해 47개만 남게 됐다. 서원 역시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 명맥이 끊기에 된 것이라 하겠다.

통상 서원의 구조나 기능에 대해 강학과 제향, 이 두가지를 얘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삼문을 통해 서원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이 자리잡고 있고 좌우 대칭으로 동재와 서재가 놓인다. 강당 뒷편으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는 선현들을 배향한 사당이 위치한다. 학문을 닦는 강학공간, 선현을 모시는 제향공간이 서원의 기본적인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허균 소장은 <한국의 서원>을 통해 유식(遊息)공간을 하나 더 얘기하고 있다.

 

쉽게 얘기하면 유식공간은 놀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서원에서의 유식이란 세속에서의 방탕한 놀이를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서원 입구에 세워진 누정과 연못, 정원 등이 유식공간을 구성한다.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서원의 선비들에게 여유롭게 산수 유람을 즐길 시간이 없었을테니 서원 안에서 자연과 벗하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니 서원의 누각과 정자가 이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많은 사진을 함께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서원의 구성 원리와 강학, 제향, 유식공간들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서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전국의 아홉 서원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나, 그에 속하지 않는 서원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유홍준 교수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고 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이 책을 통해 서원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서원을 쉼없이 찾아 다닐터이니 앞으로는 유람이 아닌, 좀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길 희망해 본다. 이왕이면 가을이 깊어가는 때가 적기일 듯 싶다. 서원 입구에서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넓은 품으로 우리를 반겨줄 테니까. 



출처: http://kangks72.tistory.com/1755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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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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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TV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는 역사를 소개해 주고 있는 건국대 신병주 교수를 책을 통해 만났다. 그의 전공 분야인 조선 시대의 여러 사건들을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신병주 교수의 조선 산책>은 이전에 세계일보와 대구 매일신문의 지면에 연재되었던 칼럼들을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모두 여섯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위로는 왕실의 비밀에서부터 민초들의 삶의 모습까지 살펴 볼 수 있어 사뭇 흥미롭다.

 

책은 연산군와 장녹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조선 역사를 통틀어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는 연산군, 그리고 임금의 결핍과 비뚤어진 욕망에 편승해 사리사욕을 채워 나가다 비극적인 파국을 맞았더 장녹수는 비단 과거의 이야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마땅히 경계로 삼을 만 하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던가. 우리 또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역사적 사건을 2017년에 겪지 않았던가.

 

인조반정으로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광해군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연산군과 더불어 왕의 시호를 받지 못한 광해군이지만 희대의 폭군 연산군과 같은 급으로 치부되기에는 억울한 면이 많다. 임진왜란 때는 무능한데다 겁까지 많은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며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공이 클 뿐 아니라,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를 잘 활용해 명과 후금 사이에서 절묘한 외교적 줄타기를 한 공적 또한 가벼이 할 수 없다. 이처럼 광해군에 대한 역사학계의 평가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화되었고, 한편의 영화를 통해 광해군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 또한 상당히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왕가의 역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상당히 많다.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후에 태종이 된 이성계와의 애증 관계, 오랜 세자 시절 동안 아버지 세종을 도와 큰 업적을 남겼지만 재위 3년 만에 병으로 죽어 버림으로써 아들피 비린내 나는 계유정난의 피해자가 되어 버린 비운의 임금 문종의 안타까움, 아버지를 죽인 할아버지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의 효심에까지. 역사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재미 뿐만 아니라 후세 사람들에게 귀중한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역사는 누군가의 말처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그래서 역사가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옛 이야기로만 머물고, 현재에 되살아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지금의 현실을 되살펴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에 새로운 방향과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만 올바른 역사 인식이 될 수 있다고 신봉주 교수는 강조한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500년 조선사가 2018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지 음미해 볼 만 하다.



출처: http://kangks72.tistory.com/1754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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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역사가 바뀌다 -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
주경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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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를 통틀어서, 좀더 범위를 좁혀 보자면, 중세 이후 세계사의 큰 흐름을 바꾼 역사적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인류학과 세계사의 관점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는 인간사를 보다 큰 차원에서 이해하기 위해 20대 청년들을 상대로 지난 2015년에 건명원에서 강의를 했다.

 

<그해, 역사가 바뀌다>는 이때의 강연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해 나가면서 정치, 경제적 상황의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온고지신의 자세로 일독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주경철 교수는 지구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인류의 중대한 변곡점을 네 가지 역사적 주제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근대 이후 세계사를 주도하고 있는 유럽의 역동적 힘이 어디서 유래하였는가에 대한 정신적 고찰에 몰두했다. 외부를 향해 강하게 돌진하려는 정신적 힘의 근원을 찾기 위해 그는 최초의 대서양 항해 끝에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콜럼버스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1492년은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의 지원 아래 해외 진출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해다. 주경철 교수가 인류사의 첫번째 변곡점으로 꼽은 1492년은 일차적으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역사적 배경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그의 식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1492년은 스페인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콜럼버스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 해인 동시에 스페인에 남아 있던 이슬람교도를 몰아낸 해가 바로 1492년인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슬림을 몰아낸 스페인은 이후 자국 내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까지 축출하면서 국가의 정체성을 종교적으로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경철 교수는 1492년에 시작된 콜럼버스의 항해를 에덴동산을 찾는 종교적 행위로도 해석하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지은이의 통찰적 시각은 다음 강의에도 이어진다. '제2강-1820, 동양과 서양의 운명이 갈리다' 편에서는 정화의 해상원정 이후 급격하게 폐쇄적으로 돌아선 중국과는 달리 해상 팽창을 시작한 유럽은 산업혁명과 함께 세계사를 주도해 나가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10조 마리에 육박하던 나그네비둘기가 인간에 의해 멸종된 1914년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기 시작한 인류세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인류사적 의미를 찾고 있다.

 

주경철 교수의 궁극적 관심사는 마지막 강의에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무려 5,500백만명의 희생자를 남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을 역사적 주제로 남은 그는 "세계는 평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기고 있다. 20세기를 '증오의 시대'로 규정한 니얼 퍼거슨, 문명의 진보에 따라 인류는 비폭력과 평화의 길로 가고 있다는 스티븐 핑거.

 

두 사람의 시각과 견해는 모두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있기에 일방이 맞고 틀리다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가장 격렬하게 이데올로기를 동원할 수 있고 가장 효율적으로 힘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와 민족 단위와 폭력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에는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자식 세대들이 야만의 아수라 속이 아닌 문명의 꽃길을 걷는 축제의 장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다는 바로 그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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