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난 우주를 안고서 - 한국과학문학상 대표작가 앤솔러지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라는주제로 쓰여진 여러 작가님들의 단편소설. 요즘은 이런 소설을 앤쏠로지라고 하던데. 2025년 국제도서전에서 꽤나 핫했던 책. 

 책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미래의 어느시점엔 인간이라는 범위가 정말 넓어지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금은 슬펐고.

김초역 작가님의 “비구름을 따라서”어느 사소한 것들. 잃어버린 것 조차 모를만큼 사소한 것들이 차원을 넘나든다는 믿는 친구. 이연이 죽었다. 그런데 이연으로부터의 초대장이 도착하고, 이연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은 이연과의 추억을 공유하며, 이연이 살아생전했던 말들을 나눈다. 그 말들 속에서 그들은 어쩌면 이연이 살아 다른 세계에서 이 초대장을 보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흥미롭다. 모든 버려진 물건에 의미를 두었고, 누군가는 미친사람이라고 말할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붙잡고 살았던 이연. 그런 이연이 죽고나서야 이연의 말을 다시 생각하는 남아있는 이들. 누군가에게는 그저 사소해 쓰레기 같았던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했고, 어쩌면 그녀 스스로의 삶에도 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남겨진 이들에게 잊혀지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였던걸까. 아니면 정말 차원을 넘어간 것일까. 

천선란 작가님의 “우리를 아십니까”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다. 영화에서 보던 좀비와는 너무 달랐으니까.(개인적으로 좀비를 싫어한다.. 너무 두려워..) 감정을 가진 좀비라니.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모두 가진 좀비라니. 이토록 슬플 수 있을까.전염병으로 인류가 멸망해버리고서야 깨어난 나. 나는 혼수상태에 있다가 물렸고, 그렇게 혼수상태에서 좀비가 되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를 지키던 아내는 좀비가 되어 있었고, 그녀가 남긴 녹음기를 통해 그녀의 시간을 쫒는다.나와 그녀가 키우던 장풍이를 싣고, 좀비로 변해버린 아내와 함께 장풍이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한 여정.
“그게 얼마나 염치없는 짓인지를 깨달았다. 애초에 장풍이를 바다에서 꺼낸 것이 인간이구나. 아무도 우리에게 인간 대표자의 자격을 주지 않겠지만, 이곳은 이제 우리뿐이므로 감히 인간 대표가 되어 장풍이에게 사과했다.“ 
바다로 돌아간 장풍이. 해변가에 남은 나와 아내. 인간 모두가 사라지고 없는 현재. 둘만이 남았다. 고목이 되어가는 그들. 좀비 이야기가 이렇게 슬플 수 있을까. 마치 제목이 ”우리 좀 사랑해 주세요~“ 같은 느낌이였달까.장풍이에 대한 서운함과 미안함을 가진 좀비. 아내의 녹음 파일을 들으며 아내와 함께 했던 추억을 되돌리는 좀비. 좀비에 낭만을 떠올릴 줄이야….. 좀비는 인간일까.. 아닐까..

김혜윤 작가님의 ”오름의 말들“도 그랬다. 오름을 아끼는 과학자들. 그것을 여행자원으로 오픈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명분이 없다. 하지만 오름이 얼마나 아파할지를 아는 이들은 오름이 파괴되는 것을 명분으로 세우기위해, 그리고 어짜피 개방될 오름을 나름으로 지키기위해 정부의 시책을 받아들이지만, 오름의 슬픔과 아픔을 고스란히 느낀다.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우리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모든 상황을 다시 돌아보라고 말하는 듯한 이야기.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20년전과 지금이 다르다. 그렇다면 20년 후에 우리가 바라보는 반려. 라는 기준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당연히 뻗어나가야하겠지. 어쩌면 지구에서 인류는 가장 최상위종이 아닌지도. 그저 그렇다고 우리가 착각하는건 아닐까.

아모 에르고 숨, I’m not robot역시 발전된 미래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범위는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싶었던 복제인간과 로봇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저 복제인간인줄 알았던 나와 그저 나의 로솝이라고 생각했던 랜슬롯. 복제인간은 진짜 나다. 나의 기억까지 오롯히 복제된 나. 그런 나와 나의 대화. 한달이다. 한달후에는 불법이기에 반드시 폐기해야 하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복수로 만들었지만, 나는 나와의 대화 속에서 그가 내가 아닌 새로운 존재임을 알게된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살려달라는 말도, 도망도 하지 않는다. 나와 대화할 뿐. 왜지.
그리고 I’m not robot은 로봇 수리기사와 로봇의 이야기. 수리기사가 쓰는 소설을 로못이 읽는다. 둘의 대화는 묘한 이질감을 주면서도 인간에게 영감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하게한다. 그러면서 한편 인간과 로봇의 공존세상에서 내가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조차 로못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그조차도 계속해서 실패해 내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조차 없는 시대. 그 시대에서 로못과 인간의 구분은 의미가 있을까? 나의 사후도 처리해주는 로봇, 그럼 랜슬롯은 로봇일까 나의 반려일까.

미래는 정말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다. AI시대는 근 미래인 줄 알았으나 이미 현실이고, 사람처럼 표정짓고, 움직이는 로봇의 개발도 한창이다.  이미 AI가소설쓰고,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는 시대니까. 물리적인 것들만 해결이 된다면, 영화 속 바이센테니얼맨의 시대도 곧이지 않을까?그 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가지는 가치관이 얼마나 확장되어야할까. 인간의 범위는, 생명이라는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되어 갈지. 너무나도 불투명한 미래에대한 두려움, 불안감이 몰려오지만, 그런 내게 SF소설은 올지도 모르는 미래 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게 해 줌으로써 현실감을 부여한다. 너무 불투명한 건 아니야라고.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어. SF가 SF로만 보이지는 않는 요즘.

읽어볼만한 이야기들.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일하는 삶의 경제학
이상헌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일까. 제목을 보면서 그래. 왜일까?라는 질문이 정말 당연하게 드는 책이다. 얼마전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하던 우리나라분들이 이민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소위 그들의 마가세력 들이 외국인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말의 일환으로 이뤄진 긴급체포. 일자리란 무엇일까. 좋은 일자리란 뭘까.

일자리가 없는 상태 "실업"은 뭘까.
이 파트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애덤스미스가 바라보는 실업이였다. 흔히 자유시장경제의 아버지쯤으로 여겨지는 애덤스미스조차 노동시장은 가격논리이며, 힘의 논리가 다스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보았다는 것이다.내가 여기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시장경제 내에서 실업은 "물가안정"이라는 측면에서 뭐랄까 의도적인 면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가는 실업보다 우선순위가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상품이 아닌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동시장"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

반대로 고용에 대한 국제적으로 합의된 의미는 "주어진 기간 동안 소득이나 이윤을 위해 최소 1시간 정도의 재화를 생산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놀라지 마시라. 최소 1시간의 단위는 "주당"이다. 주중 1시간이라도 일을 한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은 고용에 해당한다. 
그러니 반대로 "실업"률에 포함되는 사람이 실제의 수치간 괴리가 얼마나 클지.
어떻게 이렇게 고용의 정의는 느슨하고, 실업의 정의는 타이트한지, 정치적으로 실업률을 실제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범주를 까다롭게 만들어 강제적으로 낮춘것처럼 보이게 만든 의도가 보이는 부분이였다. 

사실 우리가 일자리라는 것에 계속해서 주목하는 이유는 일자리는 개인 한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한명과 함께 하는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파트에서 나는 일정에 읽었던 공지영 작가님의 <의자놀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대량 실업이 한 인간을 한 가족을 어떻게 파탄으로 몰아가는지를 취재한 르포타주였는데,,, 그 책을 읽은지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이 책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파트의 시작 제목 하단에는 의자가 놓여있다. 

그렇다면 적정 임금이라는 것, 임금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최저임금이다. 개인적으로 최저임금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근거를 대라면 글쎄.. 싶긴했다. 말그대로 생계유지의 최후보루..정도로만 여겼던 최저임금에 노동조합이 연결될 줄이야. 결국 최저임금은 노동조합조차 만들수 없는 최전선의 저임금 노동자를 대신해 정부가 그들의 임금의 기준선을 만들어주는 것. 
그렇다면 최저임금은 정말 시장에 해악일까? 아닐까? 이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1890년 호주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진 결과를 놓고 볼때, "조심스런 축복"이라고 말한다. 최저임금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경제적 예측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국제기구들도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보다 긍정적인 입장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노동시장은 여전히 자본가의 힘이 우위에 있는 시장이며, 그렇기에 최저선이라는 기준을 국가에서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단은 긍정적. 다만 최저선이라는 기준이기에 그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지역, 업종별로 차등이나 그 자체의 복잡도가 높아서는 안되는 것. 또한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여도 기업가 노동자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요즘 핫했던 "노동시간"의 측면. 이 부분은 정말 '좋은' 일자리의 중요 요건 중 하나다. 재밌는 점은 하루 8시간, 주 48시간 노동 시간을 규정했던 것이 1919년이란다.. 우리 주 52시간도 최근이였는데,, 100년전에 만들어진 국제시간 기준보다 4시간 더 많다.. 
그렇다면 단시간 노동은 이득일까? "단시간" 노동의 전제는 원하지 않는 단시간 노동의 측면에서는 "아니요"이다. 이부분은 일자리의 안정성 즉 비정규직 노동형태를 말한다. 불완전한 고용이며, 여건이 가능하다면 이 들은 더 오래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들의 임금은 완전고용 일자리의 노동자들보다 시간당 임금이 더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적게는 10%, 많게는 30%에 육박하는 격차라니. 
그렇다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경우 "임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아.. 뜨겁다.) 이 부분에서는 월급은 유지하는 방식으로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 기업에서 생산성이나 향상전략이 더 한층 공격적으로 추진하기에 그래서 신규채용을 가능한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가시간이 늘어나기에 기존 노동자들의 소비가 늘어나는 명확한 효과도 있다. 다만, 이 부분에서 기업의 이득이 늘고, 투자유도가 이뤄지고, 이것이 고용으로까지 연결되는 요인까지..를 놓고 볼때는 "예측불가"라는 것.
이부분 역시 결국 "조심스런 축복"인 걸까..? 다만 지나온 시간을 볼때, 노동시간이 줄고도 임금과 일자리만 괜찮다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지금 다수의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곧 닥칠, 벌써 온 미래인 AI 시대 즉, "기술변화" 측면에서 바라본 일자리에 대한 파트. 기술변화 측면은 결국 과거를 통해 현재를 예측할 수 밖에 없어서 일까?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조건들이기에 저자의 글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러다이트 운동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는 몸소 체험하는 요즘이랄까. 다만 저자 역시 그 과도기는 반드시 정책적으로 빠르게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는 여러 지원들이 필요하다고 짚고 있다. 실업급여, 취업교육 등등.이런 부분들이 선제적, 공격적으로 빠르게 행해져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기술"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라는 측면에서의 지원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이밖에도 일자리를 놓고 여러 측면에서 다루는데, 한 파트씩 읽을 때마다 "일자리"라는 이 세 글자 뒤에 존재한 수많은 'Thing' 들에 놀라울 따름이다...
흥미로운 책.

추천!

"일자리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 마리엔탈의 실험." p.2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줄의 반짝임 - 광고 카피가 알려 주는 일상 속 글쓰기의 비밀 스마트폰 시대의 글쓰기 시리즈
정이숙 지음 / 바틀비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유일하게 쓰는 글?이 책을 읽고 쓰는 서평인데, 서평을 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책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져서 일까. 아니면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글 한줄 그 자체가 쓰기 어려워진 것일까. 그래서 인지 요즘 쓰는 서평은 썩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릿 속에 맴도는 무엇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글 같달까.. 그래서 읽고 싶었다. 글쓰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내가 쓰고 싶은 그 한 줄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인지. 그런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은 아마도 광고 카피라이터 일듯.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30년 동안 일해온 저자의 “글쓰기”에 대해 기록된 책이다. 물론 서평을 쓰는 방법은 아니지만, 결국 서평도 내가 읽은 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이니까. 
이 책의 각 주제마다 광고카피가 등장한다. 하나씩 등장하는 광고카피를 읽으니,, 이야. 전문가는 정말 남다르다 싶은 생각이 번쩍 든다. 쉽고, 간단하게, 단문으로, 정확하게, 핵심을 찌르는 글들. 최근에는 광고를 제대로 본적이 없다. TV보다는 유튜브로 동영상을 주로보고, 광고는 대체로 “건너뛰기”를 눌러버리니까. 하지만 가끔 눈에 띄는 광고들이 등장한다. ”건너뛰기“의 순간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대체로 광고카피는 첫 한줄에서 결정된다고하니 아마도 그런 글들이 나의 순간을 채간것 일듯.

그렇다면 그런 ”한“문장은 어떻게 만들수 있을까.
저자는 그 시작을 ”나“로 시작하라 말한다. 나에대해, 내 가족에 대해, 내 친구에대해, 나를 둘러싼 모든 소래를 놓고 한줄씩 써보는 것이다. 가장 잘 알 것같지만 어쩌면 나는 나를 가장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런 사실조차 글로써 한 줄을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다만 그런 글들을 쓸데 맞춤법 지키기는 필수. 또한 적절한 곳에 사용되는 쉼표, 따옴표, 마침표, 이모티콘 등등의 남발 금지! 사실 이부분에 뜨끔했다. 문장을 줄이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쓰는 문장엔 장문에 쉼표나 따옴표가 남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서는 거의 쓰지 않는 의태어나 의성어의 적절한 사용은 문장을 생생하게 만든다는 설명에 그 단어 자체가 참 낯설었다는 느낌이 든 것은 안 비밀. 

그리고 평소에도 쓰는 단어나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 했던 “내 문장의 꼴불견“ 파트. 제대로 알고 쓰지 못하는 우리 말에 대한 미안함과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문장의 횡설수설함을 딱 들켜 민망함이 함께 몰려왔던 파트다. 동어반복, 주어, 과잉 존댓말 등은 구어체를 쓸 때 자주 하는 실수인데, 결국은 쓰고 나서 하루정도 지나 다시한번 나의 글을 꼭 읽어보고 수정하는 퇴고의 과정을 거치라는 저자의 충고는 나의 문장을 다시 돌아보게했다. 사실 퇴고의 과정이 참.. 어렵다. 뭔가 내 문장을 내가 다시보는 오그라듬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아마 내 스스로도 나의 부족한 문장을 회피하고 싶은 것일지도.

결국 글쓰기에 지름길은 없다. 
시작이 있어야하고, 그 시작은 “나”로 부터일것, 그리고 매일매일 한줄 씩 써볼것. 타인의 글을 많이 읽어볼 것. 그리고 한줄의 문장도 제대로 쓸 것. 글쓰기 역시 어느날 뚝딱 멋진 한줄은 나오지 않겠지만, 노력하다보면 어느날은 내가 하고 싶었던 내 머릿속에 맴돌던 무엇을 타인의 글이 아니라 나의 글속에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이 책을 읽는다고 카피라이터처럼 글 한줄을 뚝딱하고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쓰는 한 줄을 내 마음에는 들 수 있게 쓸 수 있도록 가이드가 되어 줄 수는 있다.

아! 지하철 공사 직원 관계자 분들! 지하철 약냉방 안내문 틀렸 대요~ ”바람의 영향이 적고“ 가 아니고 “바람의 영향이 작고”가 맞는 표현 이래요!! 이 책 p.187 꼭 참고하세요~

굿.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글로 써서 읽어 보기 전에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글을 씁니다.” P.1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OI도 문제지만 메인 이슈 사항은 와우 팩터가 부족하다는 것이니까 그 부분은 그레이스 님이 팔로우업 해 주시고 아삽으로 디벨롭 해서 다음 미팅에서 랩업 해 주세요. 린하게 진행합시다“ 


영어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섞인 글은 품위가 없어 보인다. 이런 단어도 알 고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말의 풍부한 단어와 표현을 사용한 문장은 쉽게 읽힌다. 다정하고 편안하다. 습관적으로 외국어 단어를 쓰는 일을 자제하고 다양한 한글 단어를 익히고 쓰자. p.177



나도 판교에서 일하고, 저 문장이 말하는 바는 알겠으나, 저런 문장은 처음 들어본다. 

 물론 회사마다 쓰는 단어들이 다르겠지만, 한 문장에 영단어가 저렇게 많이 쓰이는 경우는 와.우.


저 말을 보며 두번째 직장에서 영업팀과 협업 중에 한 과장님이 ”메일 좀 포워딩 해주세요“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동갑내기 다른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 때 나도 몇일 전 우리팀 과장님이 내게 “XX씨 내가 포워딩한 메일 봤어?” 라는 말을 듣고서 그 단어의 뜻을 알았었다.


조용히 내게 다가온 그 친구. 

"포워딩이 뭐야?"라는 질문에 내가 ”전달. 그 메일 다시 자기한테 달라고.” 

“전달 이라고 말하지. 웬 포워딩?“ 

이라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근데 신입, 경력 다같이 섞여 일하는 회사에서 저렇게 말을 하면 다.. 알아듣나..? 싶었다.


진짜 문장, 단어를 타인이 알아듣기 쉽게, 그것도 간결하게 말하는 것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했던 한 구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더헤드 수확자 시리즈 2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언이 고더드 일당을 모두 죽이고 수확자 루시퍼로써 수확자들의 세계를 휘젓기 시작하고, 시트라는 수확자 아나스타샤로써 수확자 퀴리의 보조 수확자로써 활동한다. 

 대부분의 수확자들이 수확대상을 선택하고, 일시에 수화하는 것과 달리 아나스타샤는 그들에게 한 달의 시간과 죽을 방법을 선택할 기회를 준다.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이것은 아나스타샤의 일을 2배이상 가중시키는 일이였지만, 아나스타샤는 그것이 “죽음”이 존재하던 시대의 죽음과 더 비슷하다고 말하며, 방법을 고수한다.

 나는 선더헤드 편에서 이 부분이 가장.. 놀라웠다. 죽음의 시대라. 고도록 발전된 시대에 인구수 조절을 위해 수확자를 두었고, 그들은 통계를 기반으루 무작위로 선택된 이를 수확한다.
지금을 돌이켜보면, 죽음은 무작위로 오는 것이 맞고, 시기도 내가 선택할 수는 없다. 죽음의 방법도 사실은 뭐. 하지만, 사망까지 이르는 기간은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이 짧든 길든 내가 누군가와 이별할 시간은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아나스타샤와 퀴리를 노리는 이상세력이 감지되고 그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선더헤드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수확자의 일에는 절대 관여할 수 없으니, 시트라가 꼭 잘 해내기만을 바라는데,,
루시퍼 로언은 고더드를 숭배했던 브람스에게 잡혀 에인에게 넘겨지고, 그곳에서 상상도 못할 인물을 만난다.

선더헤드가 감지한 위기,
그리고 3편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종소리.
대체 수확자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과학으로 모든 것이 통제되는 시기에도 통제되지 않는건 인간뿐이라는 아이러니. 흥미로운 책이다.
멋진 신세계 속 세계관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겠지만, 제한된 AI. AI와 분리된 수확자라는 세계. 가능한 세계인지는 모르겠으나, 깊이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던지는 건 사실이다.
조금 다른 결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불미자로 위장한 그레이슨에게 선더헤드는 친구이자 반려이고, 힘들 때 찾는 신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과 선더헤드 스스로가 읊조리는 독백은 스스로의 완벽함을 인식하면서도 인간처럼 불완전함을 흉내내는 듯한 말이 새삼 두렵기도 하니까.

굿.
3권 시작!


“.. 그리고 시간의 시작으로 여행할 수 있다면 그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그건 내가 창조주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신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류가 창조주를 원하여 창조주를 창조하는 셈이 되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시적인가. 인간은 신을 창조하고, 신은 인간을 창조하고 완벽한 생명의 순환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그런 경우라면 전체 그림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 선더헤드” p.291

“내가 죽음을 분배하기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사망 시대 인간이 두려워하던 인공 지능 괴물이 될 터였다.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를 선택한다면, 고대의 황제이자 신인 이들처럼 두려움과 사랑을 받게될 것이었다. 나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구원하는 자도 침묵시키는 자도 인간이 되게하자. 인간이 영웅이되고, 인간이 괴물이 되게하자.
그러니 수확령이 내가 한 일들을 망쳐 놓아도 탓할 상대가 나밖에 없다. - 선더헤드” p.2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