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다 - 카르멘 라포렛 탄생 100주년 기념판
카르멘 라포렛 지음, 김수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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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불리는 책이고, 스페인 최고 권위 <나달문학상> 1회 수상작이라는 소개 글을 보고 주저없이 읽기시작한 책.(이런거 또 못참지...)

책은 주인공 안드레아의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 안드레아가 대학공부를 위해 바르셀로나의 할머니 댁으로 이사오는 것을 시작한다. 스페인 내전으로 피폐해진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이 집을 통해 투영되는데, 안드레아가 처음 이집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부분에서 얼핏 엿볼수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온통 거미줄이 쳐지고 다 깨어져나가 한쪽 날개만 천장 밑에 대롱대롱 매달린 전등 갓 아래 달랑 한 개 남아 있는 희미한 백열 전구와 그 빛을 받아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낸 현관이었다"  p.21


오래도록 이어진 내전으로 피폐해버린 큰삼촌과 그 전쟁통에 큰삼촌과 결혼한 외숙모, 큰 삼촌은 분노의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인물로, 매번 집안에서 아내를 폭행하고, 모두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 삼촌옆에서 그래도 참아내는 외숙모는 어떨때는 어른의 모습을 어떨때는 철없는 아이의 모습을 하는 인물. 

 그리고 작은 삼촌은 오래된 내전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일 기회조차 갖지 못했고, 그런 환경에 그저 너무 익숙해져버린 덜 자란 어른의 모습이다.  형의 아내를, 안드레아의 친구에게 지분되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예술가인지를 그저 주위의 인물들에게 인정받고자하는 어른 아이.

 젊은 세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만을 강요하고, 타인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인물 안드레아의 이모. 이 인물이 초기 안드레아를 가장 크게 옭아매는 인물 중 하나이다. 자신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강요하고,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타인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모든 인물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는 사람. 

 이런 가족 구성원 모두 정상적인 어른의 모습은 한명도 없었다. 이 가족을 통해 오래된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가난, 불안함이 어떻게 사람을 바닥으로 내려앉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는 주인공 콜필드의 방황이였다면, 이 책은 반대로 안드레아의 시선으로 보이는 나머지 인물들의 방황이다.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와 같은 모습이랄까. 

"어차피 내 인생의 끝이 막다른 골목이라면, 인생을 굳이 힘겹게 뛰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인생을 향유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어떤 이들은 죽도록 일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어떤 이들은 그저 인생을 지켜보기 위해 태어나는가보다. 나라는 사람은 그 관조자 역할을, 그것도 아주 미미한 역할을 하도록 타고난 것 같았다." p.370

 이런 암흑같은 주인공의 시선에서 유일하게 밝은 빛으로 그려지는 친구 에디가 있다. 에디와의 관계속에서 안드레아는 자신의 환경과 전혀 다른 그녀의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때론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에디와 헤이메와의 관계속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은 그녀의 삼촌들과 할머니가 겪었던 시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갈 당시 젊은이들의 희망같이 보여지기도 했다. 그녀 또한 그녀의 가족을 떠나 또다른 환경에서의 새출발을 그리면서 끝나는 이 책은 내전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의 차이,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바라보는 미래를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내전을 겪어야했던 세대는 결국 그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대비되어 그려지기도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콜필드는 십대의 휘몰아치는 방황을 그리면서도, 내부에는 동생 피비의 안녕과 자신의 모습을 자기 내면에서 찾아가고 있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주인공 이전 세대의 방황하는 모습 속에서 안드레아가 자신만의 내면을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스무살을 갓 넘긴 안드레아의 모습은 작은 삼촌의 말한마디에 흔들리고, 이모의 구속에 속박당해 복종하면서도 그녀의 생각과 색깔을 변하지도, 주변의 생각에 물들지도 않는다.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흔들들리는 단계는 있으나, 그속에서도 자신을 잃지않고, 그녀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것을 보면서, 이십대의 시작이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새로운 시작이 바르셀로나의 첫날 밤과는 다른,

더 밝은 밤의 마드리드를 안드레아가 만나길 바라며.

"이 계단을 처음 오를 때 가졌던 새 삶에 대한 가슴 떨리는 희망과 열망이 기억났다. 그런데 지금 나는 1년 전에 막연히 알기를 바랐던 충만한 인생과 기쁨, 심오한 관심, 사랑,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다시 떠나는 것이었다" p.485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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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와이프 - 어느 날 나는 사라졌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게서
킴벌리 벨 지음, 최영열 옮김 / 위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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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주말의 명화에서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두손을 꽉 쥐며 가슴을 두근거려하면서 본 기억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이 책의 제목과 부제에서 그 영화가 떠올랐다. 응? 영화를 각색한 책인가? 답은 아니다!


책은 계속해서 세명의 시선을 통해 스토리를 전개해간다.

베스, 제프리, 마커스. 

베스의 시선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준비된대로 계속 해서 이동하면서, 자신을 학대했던 남편으로부터, 또한 그 기억으로부터 말이다. 

제프리는 어느날 출장에서 돌아왔더니 아내가 사라졌다. 아내의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고, 아내의 쌍둥이 언니 잉그리드 조차 아내의 행방을 모른다. 그렇게 그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인 마커스의 시선. 마커스는 제프리, 잉그리드, 사린의 내연남 맥아담스의 증언 및 사린 주변인, 그리고 그의 숨은 조력자를 통해 사린의 행적을 추적한다.


책의 스토리는 여기까지. 도대체 누가 범인이지? 베스와 제프리의 각자의 시선을 놓고보면 베스는 피해망상인가? 제프리는 싸이코패스인가?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한다. 피해자는 있는데 범인은 드러나지 않는 전개랄까? 작가는 끝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스토리로 사람을 끌고간다. 

남편으로 인한 오랜 학대 속에서 누구도 믿지 못했던 베스는 도망치는 중 마르티나라는 친구를 만나고, 어쩌면 너무 친절해서 의심스러운 목사님을 만나 잠깐의 편안함을 누리지만, 결코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악몽에 계속해서 시달린다. 베스는 왜 이제서야 남편을 떠나는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그때까지 참도록 두었는가. 그 이유가 너무나 참혹했다. 개인적으로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찾는것도 흥미진진했지만, 떠나지 못했던 그녀의 삶이 쓰렸다. 남편이 폭력을 뉘우치며 그녀를 사랑해주는 찰나의 기억이 폭력속에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떠나는 것만으는 폭력을 저지할 수도 없고, 자유룰 보장받지도 못한다. ‘저 여자는 왜 저 남자를 떠나지 않는 걸까요?’ 이나라 곳곳의 가정이나 법정에서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왜 저남자는 저 여자를 못가게 할까요?’ 가 더 나은 질문일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난 답을 알아냈다.

당신은 나를 보내주느니 죽이고 말꺼야” p.96


이 책의 심리에서 가장 놀라우면서도 현실감 있었던 것은 베스의 심리다. 사실 '적과의 동침'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와의 사랑 속에서 불안이 크게 보이지 않았는데..(내가 잘못본건지도..) 책에서 베스는 끊임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상황을 살핀다. 집착을 넘어 죽일듯하게 쫒는 남편의 그림자 속에서 베스는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그녀의 모습에 두렵고, 한편 가슴아프면서도, 그의 끝을 보지 않는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될것이라는 사실에 답답함과 어쩔수 없음이 더 찌릿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정말 피해자일까? 그는 정말 그녀를 폭행한 것일까? 그녀는 그를 언제까지 피해다닐까? 하나씩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의 답이 보일때쯤 세사람의 시선이 하나로 합쳐진다. 와! 와!

더운 여름 누군가 나를 쫒고 있다는 느낌하나만으로도 오싹해진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어른들의 말이 어느때보다 실감나게 다가오는 책!

재밌다!


추천!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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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
잭 홀런드 지음, 김하늘 옮김 / ㅁ(미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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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고 읽었다. 성불평등이 아니라 왜 "여성 혐오"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저자 잭 홀런드는 기원전 몇세기전쯤부터 그 혐오의 역사를 시작한다. 왜 혐오가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문헌을 바탕으로 그리스 시대부터 여성이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시기부터가 책의 시작이다.  과연 그 혐오의 시작을 찾을 수 있을까?

"생물학적 차원부터 정치적 차원까지 남녀가 서로 관계를 맺는 모든 분야에서 제각기 여성혐오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았다. 모두 경멸의 중심에는 여성이 잠재적으로 자신과 다르며 위협적일 수 있다고 여기는 남성의 두려움이 있다고 추정한다. 여성 혐오의 역사는 남성이 자신과 여성이 실제로 다른 점 혹은 다르다고 여기는 점에 집착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남성에게 여성은 최조의 '타자'다. 인간은 타자로 지정한 부류의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곤 하는 우려스러운 경향이 있다. 그리고 다른 인종, 종교, 계급이 존재하기 전부터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p. 322


책은 그리스시대의 여성부터 현대까지를 말한다. 어떻게,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리스 시대의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 남자의 소유물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였다. 사람을 소유할 수 있었던 시대이므로 여성은 노예의 위치와 같았다. 그렇게 그리스 시대를 거쳐 로마시대가 되고, 기독교가 등장하면서 혐오는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띄게된다.  그리스 로마 초기시대에는 남아선호사상에 강했기에 태어난 여아의 다수가 태어나자마자 죽어야했고, 여자는 아이를 낳다가 또는 낙태 시술을 받다가 죽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지만 기독교는 종교적으로 낙태나 영아살해를 금지시켰기에 여성 지지자들이 많았으나, 그 교리를 들여다보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보지는 않는다. 사도바울의 말을 보면, 여성은 남자의 몸에서 나왔기에 남자에 종속된 존재라는 것, 여성은 필요악과도 같은 존재로 취급되었다. 종교적으로 남녀모두에게 금욕적인 삶을 강요했고, 그 중에서도 여성의 순결을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는 여성이 순결을 잃는다는 것은 그 여성이 어떤 취급을 당해도 보호받을 수단이 없기에 죽음과 같은 의미였다. 남성의 욕망을 누르기 위해 여성의 정숙함이 강조되어 화장, 보석 등과 같은 꾸밈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에서는 여성이 그 자체로 혐오의 대항은 아니였으나, 남성이 자신과 벌이는 고뇌와 사투속에서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보게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중세부터 근세까지 여성은 굉장히 순결한 이미지로써 추앙받는 경우(마리아)도 있으나 거의 다수는 혐오의 대상이였고, 그 혐오의 끝판왕(?)이 바로 마녀사냥의 형태로 나타났다.악령과 성교를 한다는 여성을 사냥한다. 악령의 실체는 뭔지도 모르겠으나 신고가 있으면 여성을 잡아다 온갖 방법으로 고문하고 불태워죽인다. 그 여성에 대한 변호를 하는 것조차 사탄으로 규정되고, 여성이 누가봐도 무죄로 보이지만 무죄로 판정내리는 순간 그 판사도 사탄이되기에 누구도 여성에 대한 변론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죽어간 여성의 수는 수십만일 것이라 추정한다고 한다. 이런 여성에 대한 혐오의 모습은 2차세계대전 히틀러까지 이어지고, 직접적인 살해는 없으나 익명성 뒤에서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현재도 계속 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욕망을 자신이 다스리는 방식이 아니라, 타자화된 이성의 탓으로 돌려온 역사임을 알게되었다. 결국 나의 욕망을 내가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하는데, 그것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며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때인가 짧은 치마나 소매없는 옷인가를 입고 다니면 남성으로 하여금 성욕을 일으켜 범죄로 이어질수 있기에 경범죄로 처벌한다는 기사가 난적이 있다.(정확하지는 않음..오래전이라..) 그때 그 기사에 대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했다. 남자고 여자고 자신의 욕구는 자신이 다스리게 가르쳐야 하는것을 옷을 소위 야하게 입었다고 처벌하는 이런 멍청한 법이 어디있냐는 것이다. 그럼 겨울에는 성범죄가 없냐고 말씀하시며 이말은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당신이 담을 낮게 만들어 도둑이 든것이니 당신탓이요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였다. 


 현대에서도 같은 상황을 보는것을 보면 나아지고 있는 역사인가 싶다.

 내가 컨트롤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는 탓을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고,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이 뭉치기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마 남녀간의 논쟁은 인류가 끝날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부터 여자와 남자는 서로 나뉜 상태로 태어났고,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서로의 성이 되어볼 수도 없다. 어린아이가 늙어 노인이 될수 있기에 세대간 갈등은 인간이 살면서 겪어야 하는 삶이기에 이해의 폭이 보다 넓을 수 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로써의 삶이 어떤지는 서로가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기에 말이다.

 어쩌면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성, 종교, 인종등에 대한 차별의 결과로 타인의 혐오로써 드러나는것 그 자체가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자화된 대상의 혐오로 나약함을 감추고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실이 더이상이 인간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앞으로의 미래는 이런 내용을 현실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써만 알기를 바라는 세상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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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매력적인 철학 - 아테네 학당에서 듣는 철학 강의
김수영 지음 / 청어람e(청어람미디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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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속 철학자들을 설명하는 책.  학생들을 대상으로했던 강의를 묶어놓은 책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전문 철학서가 아니더라도 다수의 철학 책은 어려웠던 사람 중 하나라 이 책은 이해도가 높았고, 그림과 함께하는 철학이라서 그런지 흥미로웠기에 재밌었다.


실제 그림의 화가인 라파엘로의 설명과 피타고라스로 시작, 아베로에스로 끝나는 책은 물론 그림속 모든 인물을 다루진 않는다. 참고로 그림속의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라파엘로가 직접 누구를 그렸다고 전해지는 것이 없어, 각 철학자들의 학문과 성향을 통해 분석한 것이라 여러 의견이 있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정중앙에 서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히파티아 밖에는 몰랐는데, 그림을 비추며 누구인지 추측하고, 왜 그런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입고있는 옷색깔, 입고있는 형태 등을 통해 분석하는 점이 결국 시대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과 맞물려서 더 그랬는지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헤라클레이토스"는 그림 중앙 아래쪽에서 다른 이들과 입고있는 옷과 신발이 조금 다르다. (다르다는 사실도 책의 설명을통해 그렇구나~ 했다는..) 그 인물은 사실 라파엘로가 같은 시대의 또다른 화가인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보고 감동받아 미켈란젤로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대, 중세 철학자들의 복장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하니, 라파엘로도 참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자였음에도,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는 표시일테니 말이다.


이밖에도 내가 그림 속에서 유일하게 알았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그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개인적으로 철학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쿠로스, 스토아철학의 시작인 제논, 유클리드라 불리는 기하학자 에우클레이데스, 신플라톤주의를 만들어내 기독교교리의 정립에 크게 영향을 미친 플로티노스, 유일하게 그림속에 등장하는 여성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히파티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니체의 책으로 유명한 조로아스터, 그리고 당시에는 이단으로 조롱거리가 되었으나, 신 중심에서 인간의 이성을 들고나온 인물 아베로에스까지 교황청의 벽화로 그려진 그림이였음에도 여성과 이단으로 몰렸던 인물, 아후라 마즈다를 신으로 모시는 타 종교의 인물까지 그려지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당시의 시대적 사상이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시 에피쿠로스가 제일 눈에 들어왔다. "행복"이라는 것에 관점을 맞췄던 인물이라서 더 그런지도.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점이지만, 결국 모든 철학의 기본엔 당연히 사람이 있고, 사람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했다. 그 행복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기준과 생각이 다를 뿐이지. 그것이 신을 통해 오든, 개인 스스로 아는 것이든 말이다. 

"그대여, 여기에서 편안히 머물게나. 우리는 즐거움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네" p.122


그리고 책은 "철학"을 말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라파엘로의 그림을 구석구석 설명해주는 부분이 좋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의 모양을 통해, 소크라텐스의 몸짓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이였는지,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는 정말 다른 인물에 비해 자유롭게 홀로 앉아있는 모습을 통해 그의 사상을.. 등등 각 그림의 인물 설명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되면서 그림이 좀더 풍성하게 다가왔달까.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재밌었다.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있고, 더불어 유명한 그림을 좀더 깊게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기에 더 좋았다. Good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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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 에펠탑에서 콜로세움까지
이상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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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라는 제목을 보며, 건축이 전쟁의 상흔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말하는 책인지 알았는데, 책을 읽다보니 나오는 건축은 다수가 전쟁이 목적이였던 건축물임을 알면서, 새삼 그나마 덜 위태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여전히  발생 하고 있지만, 전세계적 전쟁은 없기에 "그나마 덜 위태로움"이다.


책에서 말하는 건축물은 유럽사를 배경으로하는 건축물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독일,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를 통해 보여지는 전쟁사는 유럽이 과연 평화로웠던 시기가 있었는가 싶게 정말 대단한 전쟁이력을 자랑한다. 특히 프랑스, 독일, 영국이 EU라는 연방을(영국이 탈퇴는했지만) 만들어 지내는것을 보면 과거의 그 치열했던 전쟁들이 왜 있었어야 했는가를 생각케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개선문은 말그대로 전쟁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건축이고, 프랑스와 영국의 박물관은 전쟁으로인해 타 국가들에서 수탈하고 약탈한 전리품을 기념하기 위함이며, 궁전은 자국의 건재함과 위용을, 요새는 수많은 전쟁을 통해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위한 용도 등등 다수의 유명하다싶은 건축물들의 목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개선문편을 읽고있다보면, 이스타문명의 모아이석상이 떠올랐다. 부족의 건재함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세워졌을 것이라 추측하는 모아이석상이 중세판 개선문이랄까. 그나마 문명의 붕괴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지금은 반전의 상징물이자 같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쓰인다니 인간이 느리지만 정말 나아가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나 영국등에서 약탈해간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 점에 대해서는 역시 불편하다. 자신들이 가지고있어서 보존되었다는 등의 말도안되는 위선은 정말! 아직도 반성이 덜된 것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읔!


건축이라는 것 자체가 배제의 상징이며, 타자로부터 나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다른 책에서 읽었는데, 전쟁과 관련된 건축물의 다수가 그 말과 정말 딱! 맞는다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경우 그 전쟁을 일으킨 주범으로써 전쟁과 관련된 건축을 복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남겨두기도 했다. 후손에게 전쟁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하려는 의도이다. 이점을 보면서 비록 전범국가이지만, 그들이 얼마나 잘못된 과거를 숨기지 않고 후손에게 알리고자하는지, 그 것이 결국 자신과 주변국의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 것을 나타내는지를 읽으며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결이 다르지만 우리는 과거의 커다란 사건에 대해 얼른 덮고, 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만 그때뿐임을 본다. 관련 추모탑이나 기념관이라도 세우려치면 사고발생한 곳이 아니라 가장 구석진 곳,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는것을 보면서 우리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어두운 과거는 잊혀지면 안된다. 그것이 전쟁이든 사고든. 기억해야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극복해야 앞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는 전쟁을 상기시키는 건축이 더 이상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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