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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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쩌다 알게된 책.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대략의 내용을 알고 읽었지만, 읽는 내내 그녀의 글이 아팠다. 그녀의 담담한 고백이 쓰렸다. 


12살에 그녀가 동경했던 이와 그의 무리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폭력을 자신의 문제로 가두고, 스스로를 아름답지 않도록, 그런 폭행으로 부터 멀어지기위해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대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여전히 12살의 폭행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거대해진 몸에 갖혀버린 그녀의 글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을 딛고 일어나, 다이어트에도 성공해, 멋진 여성으로 거듭난 한 여자의 글을 보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그 사건에 고통받고, 그렇게 뚱뚱해져버린 자신의 몸도 사랑하지 못하고,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둔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타인을 볼때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타인의 외면만을 보고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눈을 내게로 돌렸을 때, 나는 내 몸을, 나 스스로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특히나 타인의 시선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를 아는 내가 말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의 근거, 그 기준은 무엇일까. 미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마음이 예쁜것이 가장 아름다운 다운 것이라고 말하는게 거짓임은 세살 짜리도 아는 나라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몸에 만족이라는 것을 모르고 1년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나라이고, 살이 찌는 것은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그리고 누군가가 살이 찐것이 흘깃거림을 참아야하고, 누군가의 눈쌀을 찌푸리게 할 일인걸까. 그게 왜.


보여지는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됨을 알지만, 우리는 판단한다. 그렇기에 타인으로 인한 상처로 스스로 만들었지만, 그 몸에 갖혀버린 그녀는 그 상처를 온전히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자신과 타인의 시선속에 갖혀버린 20,30대를 지나,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바라 볼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아프고,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생존자라는 표현보다는 피해자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한다. 생존자라는 표현 자체가 그 때 그 사건을 더 약하게 만드는것 같아서 싫다고,

이 책은 그런 그녀의 고백이다. 감히 나는 상상도 못할. 

그녀가 나의 친구라면 어떤 위로도, 안다는 눈빛 조차도 나는 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감히.


이 책이 왜 더이상 살 수 없는 것인지, 어찌어찌 도서관을 통해 읽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녀의 고백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승리가 계속 되길 바란다.


"한동안은 내가 있었고, 내 머릿속에서 살면서 나 자신을 타인처럼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고, 나의 이 과체중인 몸뚱이를 지니고 다녀야만 하는 여자가 있었다. 이 세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나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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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에세이 - 개정증보판 동녘선서 93
김교빈 지음, 이부록 그림 / 동녘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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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 에세이" 김교빈 교수님의 다른 책을 먼저 읽고, 그 책이 너무 좋아서 교수님의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알았다. 제목을 처음 보고는 "한국철학"이라는 말이 왜 그리 낯설었던지.

동양철학이라는 말도 입에 착 붙지는 않았고, 내게 철학이라는 단어는 서양과 맞물려 있었다.  철학을 거의 모르는 해당 분야의 문외한임에도 그러했다.(몰라서 그랬던걸까..ㅠ)


책은 인물 중심으로 한국 철학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다. 원효부터 수운 최제우까지.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책 한권에 담기에 벅찰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철학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모를뿐이지. 그리고 우리가 국사공부를 통해 알았던 인물들이 사실은 시대의 철학자였다는 점도 놀라는 부분중 하나였다. 우리가 우리의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하는 이유와 같다. 우리는 뿌리를 가진 민족이며, 그 민족의 근거가 되는 사상을 가졌고, 이것은 곧 다른 민족과 우리의 차별성을 나타내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우리 철학의 흐름은 통합과 합치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원효와 지눌을 통해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 들어온 불교도 우리만의 불교 사상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선종과 교종으로 나뉘었지만, 결국은 그 둘이 불교의 석가모니가 말하는 가르침을 놓고 볼때, 결코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서로의 사상을 존중하는 합침의 철학이 있었다.

조선시대 근간이 되었던 성리학에서도 그 중심에 있는 이기론 역시 서경덕, 이황, 이이, 정제두를 거치며 이와 기의 논쟁으로 시작해 결국은 인간을 중심으로 두 이념을 나눌수 없음으로, 그 이념이 형이상학적인 이론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과 당시 백성을 중심의 이념으로 연암 박지원을 거쳐 다산 정약용까지 발전을 거치며, 그 사상의 근간을 인간을 통해,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 모두의 기반이 되는 철학 사상으로 퍼져가는 500년의 시간이였다. 

또한 그 사상은 수운 최제우의 동학을 거쳐, 일제치하 의병활동에서 3.1운동,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현대 우리의 시민혁명까지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잘 몰랐지만 책을 통해 알게된 하곡 정제두라는 분의 생각의 발전은 놀라웠다. 그 시대 가장 깨기 힘들었던 이념이였던, 신분차별 문제에 대하여 젊을 때(30대)와 훗날(80대)의 생각이 전해 다르다는 것이다. 30대에는 서자와 적자의 구별을 엄격히 해야하고, 남녀 문제에서 역시 당시의 시대상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가 80대에 쓴 글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적서의 차별은 옳지 않고, 여성의 개가 역시 허용해야한다는 점 등을 말한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 되어가는 생각을 그는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보다 나아가는 방향으로 바꿨다는 점이였다. 그런 그의 생각은 강화학파로 그리고 실학으로 그 이후 우리의 독립운동으로 발전되어 갔다. 그가 학문을 연구하면서도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자신의 이념에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그 이념의 근간을 지켰기에 그의 철학은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빛났다.


이런 많은 우리의 사상은 수 천년간 쌓이고 쌓여 현재까지 이어져 우리가 되었고, 우리의 근간이 되었음을 알았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우리가 우리의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임을 책을 덮으며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이였다.

한번 읽고 두는 책이 아니라, 생각이 날때마다 한번씩 들춰보게 하는 책이다. 에세이라고 쓰여졌지만, 한국 철학의 큰 흐름을 책한권에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개인적으로 책에서 언급된 철학자 한명 한명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강력 추천!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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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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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튀르키예 문학. <이브의 세딸> 사실 튀르키예 문학이 처음이기도 하고, 동서양이 섞여있는 터키의 지정학적 특성이 어떻게 돋보일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묘했다.


알라신을 믿지만, 맹목적이지 않은 아버지, 동일하게 알라신에게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믿음을 보이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 페리. 페리는 어렸을 때부터 어린 아이를 본다. 푸른색이기도 하고, 보라색 이기도 한 아이를. 그 아이는 실제가 아니나, 페리가 위험에 쳐했을 때 보이기도 했고, 잠을 자던 중 보이기도 한다. 그런 페리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부모님으로 인해 페리는 더이상 그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 페리는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이지만, 아버지 쪽에 좀더 가깝다. 종교가 평화를 말하고 있지만, 왜 늘 분쟁, 전쟁이 끊이지 않는지, 신은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고통속에 있는지, 정말 신은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인물이다.

 비록 이슬람이지만 남녀의 차별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란 페리는 태어나고 자랐던 이스탄불을 떠나 옥스퍼드로 향한다. 아버지의 지지와 어머니의 떨떠름한 허락이였지만, 그동안 보아왔던 환경을 떠나 보다 자유로운 세계로 나온 페리. 그곳에서 페리는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을 떠나야만 했던, 그래서 무신론자가 된 쉬린, 그리고 반대로 알라신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보이는 모나를 만난다.  그리고 '신'이라는 주제에 대해 페리가 품어왔던 의문과 생각에 대한 답을 열어주는 열어주는 교수 아주르를 만난다. 옥스퍼드는 페리가 어렸을 적부터 가졌던 질문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서도, 옥스퍼드와 이스탄불의 문화적 차이에 더 방황할 수 밖에 없는 페리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옥스퍼드에서도 이스탄불에서도 여전히 중간자적 입장인 페리. 


이 책은 '신'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놓고,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이는 두명의 딸과 그 중간에 또 한 명의 딸  페리, 그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게 하는 교수를 통해 해당 주제의 양극에 서있는 사람과 그 중간에서 끊임없는 의심을 하는 인물을 통해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묻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 있는 사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그 생각의 간극에 대해 말이다. 보편성에 대해 양극단의 화자, 중간자적 화자를 통해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좁힌다는 말 자체가 가능은 한것일까..) 그리고 과연 중간에 서있는 이의 소리없음은 어떤 의미일까. 중간자의 묵음은 양극단의 소리보다 나은 것인지도 작가는 묻고 있는것 같았다. 


그저 동서양의 문화가 모두 공존한다는 터키에서 보여지는 세 딸의 성장기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던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물론 주제는 '신'이지만, 이것을 현재 각 사회가 보이는 어떤 이슈를 대입시킨들 다르겠는가. 남녀갈등, 장서갈등, 정치적 이해갈등, 난민이슈 등등등. 그 어느 사회보다 서로에 대한 혐오로 날선 표현이 어떤 필터링도 없이 보여지는 지금, 책이 던지는 질문은 무거웠다. 나의 절대적 공감이 나의 생각과 다른 누군가에게는 혐오로 표현되고, 그 표현은 타인을 향하는 날선 칼이 되어버렸다.


그 간극의 이유를 페리의 16년의 끝자락, 아수르와의 통화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어떤것도 집착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그 집착이 독단을 불러온다고. 그것은 광기를 만들고 우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것은 모든 관계에서 동일하다고. 그렇게 페리는 중간자의 묵음을 털고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가졌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설득당할까봐 두려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을 나의 논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중간자여도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개진할 수 있어야, 우리의 문명은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재밌다. 동시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한 책. Good!!


"내 말은, 이 나쁜 자식이 말을 하게 놔두라는 거네. 사상에는 사상으로 저항하는 것이지. 책에는 더 좋고 더 믿을 만한 책으로 대답하는 것이고, 유머에는 유머로.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그 사람들을 거부해서는 안되고, 입을 막아서도 안되네. 그렇게 하면 정작 우리가 파시스트가 되는 걸세. 연사들을 못들어오게 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이지. 특히 대학에서는. 자유로운 생각과 다원주의를 억압해서는 안되네.." p.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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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6
찰스 디킨스 지음, 박청호 엮음, 로베르토 인노센티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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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이제서야 읽었다. 말로만 듣던 노랭이 스쿠르지의 이야기. 스쿠르지가 노랭이의 대명사이긴 하지만, 왜인지, 그가 어떻게 개과천선 하게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ㅋ 이 책을 안읽어봤기에. 마침 크리스마스에 눈에 띄었지만 새해가 되고서야 읽은 책. 왜 이 책이 이토록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어린이 책이 아니라 40-50대의 어른 책이 여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인색한 노랭이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에 동업자 말리를 보내고, 매년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냈다. 그러다 7년이 흐른 크리스마스. 여전히 크리스마스에 찾아오는 조카에게 냉랭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이들을 내쫒고, 크리스마스에 쉼에도 불구하고 서기에게 나가는 임금이 아까운 노년의 할아버지. 그렇게 24일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 그러다 죽은 말리를 만나고, 말리는 앞으로 찾아올 3명의 유령을 잘 기억하라는 말과 함께 다시 떠난다.

그렇게 스쿠르지를 찾아온 3명의 유령.

한명은 과거.

한명은 현재.

한명은 미래.

과거는 내가 무엇에 행복했고, 무엇을 바랬는지를.

현재는 내가 지금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미래는 그래서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루 저녁에 유령과 함께 했던 여행은 스크루지에게 말하고 있었다. 작은 것에도 기쁘고, 가족과 함께 해서 즐거웠던 나의 과거는 힘들고 가난했음에도 행복했으나, 현재는 나는 무엇에도 즐거움이 없다. 그래서 내가 놓아버린 행복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된 삶을 살았을 때 나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지독하게 어둡고 외로울 것임을.. 그러니 스쿠르지에게 행복의 가치가 돈과 같은 물질이 아닌 타인과 나누는 마음에 두기를 바라는 친구의 후회이지 않았을까. 그러니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아니면 더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숨겨있던 스크루지의 진짜 속내이지는 않았을까. 


내가 이 책이 어린아이 책이 아니라 40-50대의 책이 되길 바랬는지는 이 책을 읽는 성인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졌던 본래의 마음을 잊고, 너무나 현실적이 되어가는 나이가 40-50대니까.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못할만큼 현실에 치이는 나이가 딱 그 나이쯤이라. 내가 잊고 사는것, 놓치고 사는 것을 돌아봐야할 나이이지 않나..싶은 생각이 들어서 였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스스로에게도 읽어주세요. 어제보다 행복한 내일을 만나기 위해서.


2023년 한해의 시작이다. 내가 너무 인색하지 않게, 힘들지만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한해가 되길. 그래도 모두가 웃는 시간이 2022년보다 1초라도 더 늘어나는 한해가 되길. 바래본다.


Good!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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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 타인 지향적 삶과 이별하는 자기 돌봄의 인류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28
이현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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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정말 궁금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심한 현상아닌가. 타인의 눈을 쫒는것. 누군가 세워놓은 규칙아닌 규칙 속에 갖혀사는것. 왜 그럴까. 제목만으로 그 이유를 갑자기 알고 싶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이유가 간단명료하진 않았다. 갈길이 멀었구나라는 한숨이 나왔지만 적어도 그 이유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시작은 가족이였다. 우리가 가족이라 말하는 울타리, 그 자체가 어쩌면 욕망의 결과 였다는 사실이였다. 재밌었다. 생각해 본적 있는가? "정상가족"이라는 범위. 이 말 자체가 어쩌면 모순같았다. 정상가족이란 대체뭘까? 아버지, 어머니, 자식 2명으로 구성된 가족? 자식이 1명이면? 아버지나 어머니중 한명만 있다면? 그것은 비정상 가족일까?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가 아이를 낳아키운다면?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 혹은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면. 그건 비정상이라 불러야하는 것일까?

 우리가 말하는 핵가족의 형태는 근대이후 형성되었다고 한다. 급격한 근대화를 통해 사회가 발전하면서 남자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생산활동에서 벗어나 가족의 양육을 책임지는 역할로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부 계층에서만 정해진 룰이였고, 노동자나 빈민 계급에서 여성은 가정 양육과 바깥의 생산활동에 종사해야 했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정과 자식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씌워지던 시기였다. 그러다 인구수 제한이 가해지며, 산아제한이라는 국가적 정책이 정해지고, 자식의 수가 줄어들며, 아이를 키우는 몫은 오로지 가족의 범주안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리 사회가 IMF를 겪으며, 무한 경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가족이라는 범주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가족이라는 범위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그런 시대에 '정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대체 무엇일까? 

출산률 저하라는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가족'의 정의는 과연 예전 그대로인것이 맞는 것일지를 생각해볼 때인 것이다. 출산율 저하를 가족이라는 범주안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근대를 거치며 생격난 정상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씌워진 타인에 대한 시선의 시작이였다.


책을 읽고 있다보면, 우리가 가진 가족, 여성, 남성, 나이 등에 대한 편견이 지금 타인의 눈을 좆는 우리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근대에 형성된 가족이라는 범주안에서 형성된 남성의 역할, 여성의 역할, 그 자식이 나이 때에 맞게 이뤄야하는 것들, 그 범주 안에서 내가 나이마다 이뤄야하는 것들 등등. 몇살이되면 학교를 가고, 정규교육을 졸업해서 대학은 반드시가야하고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고 나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 1-2명은 낳아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돌보는 역할은 어떻게 누구에게 정해져야하고, 아이는 누구손에 커야하며, 30대가 되면 집을 장만해야하고 등등. 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 이 성문화되진 않았지만 때때로 들려오는 저 소리들. 저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상하거나 어디 모자란 사람이 되어버리는 사회. 왜 우리는 이런 숨막히는 절차에 따라 살아야하는 것일까? 내가 만든것도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부럽지 않은 삶'이라는 말. 그 말이 주는 의미가 딱 한국사회다. 왜 나의 삶을 말하면서 '남부럽지 않다'는 조건이 붙어야 하는 것일까? 급격한 사회발전이 가져오는 부작용. 그것을 우리는 지금 겪고 있다. 모두의 목표가 같아진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가족 중심의 삶에서 물질 중심으로 넘어가는 지금, '남부럽지 않은 삶' 이 아니라면 최소한 남들처럼 사는 평범함이 목표가 되어버린 세상. 그 속에서 우리는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주체성을 가지고 사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맞춰진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 지수가 최하위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야 우리는 이런 시선을 벗어나 오롯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 시작은 다름을 틀린것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삶에 대해 관용의 문화가 필요함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실패를 다음을 위한 발판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회 안전망, 다름을 틀림으로 낙인찍지 않는 여유, 자신에 대한 믿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포용이 우리에게 생겨날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나아갈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의 시선을 좀더 여유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봐야하지 않을까.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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