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먹고살려고 책방 하는데요 - 20년 차 방송작가의 100% 리얼 제주 정착기
강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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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었다. 아직 사서라는 직업이 있다는 건 몰랐지만, 엄마가 매일 데려다주던 어린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으로 둘러싸여서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내가 나중에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면 아빠는 좋은 생각이라면서 도서관에서 일을 하다가 나중에 멋진 도서관을 직접 만들라고 했고, 엄마는 다른 멋진 직업을 가져서 원하는 만큼 책을 사는 것도 좋지 않겠냐며 다른 직업들을 권했다. 둘 다 멋진 대답이라서 나는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었다.

나중에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사서가 아니라 내 입맛대로 꾸민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책만 들여놓고 좋아하는 커피랑 책이랑 파는 작은 공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독립서점이나 동네 책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기에 나도 저런 공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서점 주인을 하면서 내가 만든 공간에서 책을 읽고, 쓰고, 팔면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막연히 상상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며 서점 주인이 쓴 책들을 읽다가 생각이 다시 바뀌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점은 도서관과 다르다.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완전한 자영업의 영역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적인 부분을 읽어내려가면서 내 수당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취향을 담아 만든 서점에 가거나 그 서점을 만들고 운영하며 만난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걸 더 좋아한다. 이번에 읽은 '제주에서 먹고살려고 책방 하는데요'도 그래서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여행지로서의 제주는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지만 그곳에서 사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는데, 책을 읽으면서 제주 생활의 불편함과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단점을 이과수 폭포처럼 쏟아낼 수 있을 만큼 불편한 점도 싫은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니, 제주 생활에는 도대체 내가 모르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숨비소리를 들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의욕을 되찾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좀 부러웠다. 사는 게 재미없게 느껴지거나 매일매일 똑같이 느껴지는 생활을 하다가도 숨비소리를 듣고 있던 저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살아나갈 기운이 나겠구나, 싶어서 부러웠다. 제주에서 작가가 찾은 빡침 해소제인 노을과 살아갈 의욕을 불러일으킨 숨비소리를 언젠가 나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말했듯이 절벽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결국 또 다른 길이라는 말은 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요즘 막다른 길에 서있는 느낌이라 그런지 읽으면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생각 못했던 방향으로 또 다른 길이 나타날 수도, 남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모를 별거가 나에게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하며 읽었다. 애초에 인간관계가 그렇게 폭넓지 않아서 책에서 나온 것처럼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인간관계가 정리된 경험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도 인간관계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당신의 헌 책장' 코너였다. 단골손님의 취향이 묻어나는 중고책으로 책장 한 칸을 꾸며놓고, 거기에서 발생한 수익은 기부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책장 칸칸이 그 칸을 꾸민 사람의 설명이 붙어있는 것도 좋았다. 성수기에 어느 가게에나 있을 이른바 진상 손님에 대한 대처에서도 많은 고민과 어떤 원칙이 느껴졌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다고는 했지만, 서점 아베끄의 운영 방식에서 서점 주인만의 철학이나 원칙을 느낄 수 있어서 언젠가 제주에 가면 들러보고 싶어졌다.



빵 한 봉지를 사 먹어도 소확행 소리를 듣는 것에 진저리가 나는 것에도, 세상이 행복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내가 미처 몰랐던 행복이 있지는 않았는지 찾아보자는 처음 의도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이 사람들을 행복 그 자체에 너무 집착하도록 몰아가는 건 아닌가 싶을 때도 종종 있었는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 시작은 좀 헐렁해야 오래 버틸 수 있는 것 같다는 말은 요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요즘 모든 게 다 준비된 상태로 뭔가를 시작하고 싶어 하는 태도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라서 그런지, 아베끄를 운영하며 '시작할 때의 헐렁함'의 소중함을 느낀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아직도 내가 소소하게 꾸민 내 공간에서 책과 커피를 파는 상상은 종종 한다. 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고 싶지는 않고, 언젠가 만들지도 모를 그 공간에서 나오는 수익이 내 생계를 완전히 책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책이든 커피든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으로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은 더 크다. 누군가가 큰 각오를 안고 자신의 취향을 담아 만든 서점들을 다니면서 좋은 책을 만나고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렇게 나만의 취향을 만들어나가다가 먼 미래에 나도 내 취향을 담은 공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한다. 그때 내가 만들 공간에 이번에 책을 읽으며 만났던 서점 아베끄의 영향도 조금은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제주도에 가면 아베끄에서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사서, 북스테이 오 사랑에 묵으며 찬찬히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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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 나의 1년 2022-2023
홍성향 지음 / 인디고(글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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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다이어리 소개글을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23년 다이어리며 달력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곧잘 쓰는 로이텀은 11월만 돼도 슬슬 내가 원하는 색상이 품절되기 때문에 올해도 빨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10월 말이 되니 마음이 슬슬 급해지는 중이었다. 새 다이어리를 사기 전 문득 올해 내 다이어리에는 어떤 내용들이 채워졌나 들여다보다가 올해 나에게 알게 모르게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이어리에 기록을 해두니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볼 때 좋구나, 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했지만 매번 이걸 이렇게 다 돌아보긴 좀 번거롭지 않나 싶었다. 그러다가 질문을 통해 나의 1년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책을 발견했고, 운 좋게 미리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채워야 하는 칸이 많은 책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채우게 될지 기대가 됐다.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책과 귀여운 스티커 세 장이 같이 왔다. 스티커는 생각 못했던 거라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귀여운 스티커를 사모으지만 아까워서 못쓰는 나는, 요 스티커도 결국 잘 모아놓게 되겠지만, 다꾸하는 사람들은 기뻐할 것 같은 귀여운 스티커였다.



책의 구성은 심플했다. 하지만 질문들도 심플한 편이었지만 내가 채워나가야 할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올해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선뜻 답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고민하는 동안 내가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 분명히 안 좋은 일도 좋은 일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지나고 보니 다 좋은 일처럼 느껴진다.



책의 첫머리에는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이 적혀있었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부분부터 채워나갈 수 있다고 되어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사실 나는 책이든 뭐든 강박적으로 앞에서부터 채워나가는 편인데, 이 책은 시작부터 그럴 필요가 없다는 문장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실제로 읽다 보니 순서대로 답을 채울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책을 펼치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올 한 해를 부정적으로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체크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놀랐다. 힘들긴 했어도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지, 그 정도면 걱정할 일도 아니었지, 같은 소리를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들에는 선뜻 체크를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면서,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지나고 나면 다 아주 큰일은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서 책에 나온 저 문장에 공감하며 체크했다. 실제로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채워야 할 부분에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책의 중간중간에 저런 식으로 부담을 덜어주는 문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약간 죄스럽다고 느끼는 나에게는 저 말도 위로가 됐다. 답을 좀 채워볼까 하고 책을 열었다가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발견했거나 하기 싫은 날은 부담 없이 책을 덮었다.



사실 질문들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쉬운 질문이지만 답을 생각해서 써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내가 쓰는 건데 생각보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서 놀랐다. 심지어 남은 두 달 동안 답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쉽게 빈칸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해결책을 찾았다.



아예 답을 12월로 미루고 싶은 질문들은 마음 편히 비워놓고, 12월에 답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답을 하고 싶은 질문에는 포스트잇에 답을 적었다. 나중에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12월이 기다려진다.



올해를 돌아보는 파트도 있지만, 올해를 돌아보며 얻은 인사이트로 내년을 그려보는 파트도 있었다. 이 부분도 12월쯤 되어서 채워나가게 될 것 같지만 질문을 읽고 나니까,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내년 생각을 하게 된다.



고민만 하며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실제로 어땠는지 실체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올해는 이래저래 생각이 나 고민이 많았던 한 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생각을 멈추거나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생각의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생각 그 자체에 너무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남은 11월과 12월 동안 차근차근 질문의 답을 찾으면서 내년에 어떻게 살아나갈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책 리뷰를 하려고 보니 문득 이 책의 카테고리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검색을 해보니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었다. 저자가 분명히 있는 책이지만 내가 채울 칸이 더 많아서인지 내가 만드는 에세이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올해가 2달이나 남아서 모든 칸을 채워볼 수는 없었지만, 질문들을 읽고 답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남은 2달 동안 내가 어떤 답을 찾게 될지 기대가 됐다. 아직 채우지 못했거나 포스트잇으로 답을 적어놓은 질문들을 12월에 다시 읽어볼 생각인데, 그때 내가 만족스러운 답을 적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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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리시 -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을 성장의 무기로 만드는 법
조용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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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계속 회사에 소속되어 출퇴근을 하는 방식으로만 일을 해와서인지, 딱히 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애매한 기분일 때가 많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그럭저럭 자유로운 시간 활용 덕분에 일을 하는 틈틈이 오전 시간을 활용해서 강의를 듣기도 하고, 원데이 클래스 체험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렇게 배운 것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도, 또 뭘 배우고 갖춰야 할지도 모든 게 좀 막연했다. 일하는 현장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나 업무 담당자에게 필요한 역량이 너무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가서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점도 내 고민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고민들이 쌓여가는 타이밍에 이 책의 소개를 읽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먼저 활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까지만 읽고는 지금까지 읽어왔던 누구에게나 무한한 잠재력이 있으니 그것을 발견하자!라는 말랑한 주장을 담고 있을까봐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 우려를 할 거라는 걸 짐작이라도 한듯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그런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새로운 잠재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프롤로그에서부터 전체적으로 기대가 되었는데, 올해 읽은 책 중에서 프롤로그가 가장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가 깔끔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통해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읽게 될 것이며, 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적혀있었다. 앞으로 책의 모든 챕터가 이렇게 논리정연하겠다는 기대를 안고 책을 읽어나갔다.



아무래도 언리시라는 개념이 생소했는데,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미 어떤 의미이고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가 명확하게 와닿았다. 이건 그냥 개인적인 취향인 것 같기도 한데, 중언부언하며 핵심을 흐리지 않고 깔끔하고 짜임새 있게 모든 부분이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 접하는 개념도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리고 내가 하는 고민이 초반부터 다루어지고 있어서 더 집중해서 읽었다. 새로운 걸 계속해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으니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으로 이해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은 런이었는데, 언런과 리런도 중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번 같은 방식으로 전례없는 문제에 대응할 수는 없으니, 이미 배운 걸 일부러 잊고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내용이 새로웠다.



지금까지도 늘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답이 하나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상황보다는 여러 상황들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많아질 거다. 실제로 마지막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시한폭탄처럼 터지는 문제들과 정확하게 겹치는 전례가 거의 없었다. 그때마다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느라 머리가 터졌던 기억이 나면서, 그 회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이 부분이었던 것 같다. 장점과 단점이 아닌 '특성'을 파악해서, 그 특성을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 재료를 쓸 것과 버릴 것으로 구분하지 않는 정관스님의 부엌처럼 나 자신을 스스로 그렇게 파악하는 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이 무리에서 가장 똑똑해 보인다는 걸 안다는 부분을 읽으며 나도 깊이 공감했다. 실제로 회사에서 회의할 때 저런 의견을 내는 게 제일 쉽고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걸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저렇게 피곤하게 하는 걸까를 늘 고민했는데, 그렇게 해야 일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의견에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단순히 반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데이터를 주도적으로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책에는 이미 어디선가 한번은 들어봤을 내용들도 제법 있었는데, 그 내용을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흥미로웠다. 알고 있는 내용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에는 이미 어디선가 한번은 들어봤을 내용들도 제법 있었는데, 그 내용을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흥미로웠다. 알고 있는 내용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최소 19곳에서 불합격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는 절망했을지 몰라도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때 회복탄력성이 많이 길러진 것 같다고 했다. 크든 작든 실패를 하면 정신적으로 타격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회복을 잘 해내면 그게 또다른 능력이 될 수 있다니 이미 일어난 실패에 너무 골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으로 필사를 하기 전에 미리 나 혼자보는 독서노트를 정리할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역대급으로 많은 문장을 기록했다. 생각해볼만한 문장이 많기도 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지만, 책의 주요한 주장이기도 한 두 가지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첫째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 도구, 정보, 당면한 문제 등 모든 것이 내 새로운 잠재력이 될 수 있으므로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것, 둘째는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으로 무조건 구분하지 말고 특성으로 객관적으로 보는 습관을 들일 것이었다. 특히 책에서 권했던 고해상도 자기 설명서를 오늘부터 작성해보려고 한다. 주관적인 해석이 섞이지 않도록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 관계만 적는 방식으로. 이미 알고 있었든, 아직 몰랐든 내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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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과학기술사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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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바로 직전에 블로그 서평을 남긴 책이 이혼 브이로그를 찍는 유튜버 아넵의 책이었는데, 이번에는 페미니스트의 유쾌한 과학 기술사를 담은 책이다. 명절을 앞두면 시댁에 안 가도 되는 요즘도 명절증후군을 앓는 엄마를 봐서 더 그랬는지, 이런 쪽(!)의 책을 많이 읽은 건가 싶기도 했는데, 이 책은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카트리네 마르살의 전작인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를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책도 기대를 잔뜩 하고 읽었는데,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전 책은 경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과학사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적인 내용들도 담고 있지만, ai나 로봇 같은 시의성이 있는 내용들도 담고 있어서 흥미진진했다.



책은 시작부터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바퀴가 발명되고 나서 5000년이나 지나서 여행 가방에 바퀴가 달린 것도 놀라운데, 그 배경도 흥미진진해서 시작부터 집중해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단지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아닐까 싶었는데,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충분히 인류 보편적인 점들이 간혹 '여성적'이라고 묶이고, 그래서 인류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문제로 한정되는 내용들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답답했다. 과거에 등장했던 전기차의 이야기나,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은 없는데도 '보편적'이 아니라는 게 놀라웠다.



기술로 바라보지 않는 기술이 되어버린 재봉과 유제품과 관련된 두 개의 자격증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여성이 주도적인 기술들은 중요한 기술임에도 그만큼의 대접을 못받는 과거의 상황도, 그리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요즘 일들도 어쩜 이럴까 싶었다. 바로 아래에 옮겨 적은 문장들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여성의 기술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가 과학사에는 여러번 있었다. 테팔은 잘 알고 있었는데도, 테프론 프라이팬은 아내인 프랑스 여성이 발견했다는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영국 정부가 여성 프로그래머들을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영국 컴퓨터 산업의 위상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놀라웠다.



여성이나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 혹은 아이들의 손을 저렴한 가격에 쓸 수 있다면 그들을 대체할 로봇을 누가 개발하겠느냐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일이라서 충격을 받았다.



기계가 우리보다 아직 우월해지지 않은 것보다, 아직 인간 같은 기계를 못만들어낸 우리가 인간을 기계처럼 부린다는 말이 너무 소름끼쳤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새롭게 깨닫거나, 이렇게 그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문제를 맞닥뜨리고 심란해진 순간이 있었다.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는(가볍게 할 이야기는 절대 아니기는 하지만) 내용을 무거운 마음으로만 읽지는 않았다. 작가가 전작에서도 그랬듯이 유쾌한 비꼬기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내용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사라고 해서 조금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우리 생활에 아주 밀접한 물건이나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술술 읽었다. 이 작가님이 다음에는 어떤 영역의 책을 쓰실지 벌써 기대가 많이 된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있는 해제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해제를 맡은 임소연, 하미나 두 분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서 체크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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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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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낯설기도 하고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져서 나는 유튜브를 꽤나 늦게 보기 시작했다. 몇년 전 회사에서 요즘 애들은 네이버에 검색 안하고 유튜브에 검색해요, 라는 막내 팀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더 그랬던 같다.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지금도 나는 유튜브를 그렇게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좋아하는 몇몇 유튜버의 채널을 구독하면서 챙겨보는 정도인데, 주로 동물 채널이거나 평화로운 일상 브이로그 채널이 많다. 구독하고 있는 일상 브이로그들은 상황이며 연령이 중구난방이지만, 나랑 개그코드가 맞고 뭐든지 과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튜브가 주는 안좋은 영향도 많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좋은 영향을 많이 줬다. 여명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초보 집사에게 많은 수의사 채널들이 도움을 줬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뭘 해먹고 사는지 뭘 읽는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유튜브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연령도 환경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게 별세계 같았다.

처음으로 아넵의 영상을 보게된 것은 이혼 브이로그라는 독특한 제목 때문이었다. 몇편 봤더니 소소한 일상도 보기 좋았지만 과하지 않게 웃기는 자막도 너무 재미있었다. 나랑 개그코드가 거의 같은 동생한테도 공유해주고, 지금은 둘 다 아넵의 구독자가 되었다. 어느날부터인가 브이로그 속 아넵은 글을 쓰고 있었고, 새벽까지 잠을 못이루면서 키보드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 글이 어떻게 완성되어 세상에 나올지 기대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 먼저 책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기뻤다.



아넵의 브이로그들이 그렇듯이, 이번 책에서도 평범한 사람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혼을 조장한다거나,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과 생각을 담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이혼을 한다고 해서 하늘이 두쪽나거나 평범한 삶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도 평범한 생활이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읽으면서 결혼도 이혼도 하지 않은 내가 왠지 안도했다.



남의 아빠가 하신 이야기를 듣고 나까지 이렇게 감동할 일인가 싶었다. 물론 책에 나온 시집살이를 읽고 있으면 내가 아빠거나 언니라도 그랬을 것 같기는 한데, 가족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이렇게 든든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든든한 부모님과 노빠꾸 큰언니, 늘 투닥투닥하지만 마음이 넓은 작은 언니가 곁에서 꾸준히 아넵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도 공감하며 읽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좀 도와달라는 말보다는 급여나 보상을 잘 챙겨준다는 말에서 더 큰 배려와 존중이 느껴진다. 나에게 아넵의 시집살이가 더 가혹해보였던 이유는 가족이나 사랑이라는 말을 앞세워 한 사람의 노동력과 정신력을 착취에 가깝게 휘둘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아넵의 브이로그를 봤을 때 왜 그런지 1편부터 3편까지는 없는 상태였다. 4편부터 시작되는 브이로그를 보면서 의아했는데, 왜 그런지는 4편에 나와있었다. 이혼 브이로그의 '이혼'이라는 말에 발작 버튼이 눌린 전국의 가부장제 지키미들이 다 아넵의 채널로 몰려와서 무근본 비난을 쌓아올린 것이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 추석 특집으로 1편부터 3편 영상이 공개(동생이랑 나는 알람을 맞춰두고 바로 감상했다)되었는데, 영상 내용을 보고 나는 좀 허탈해졌다. 이걸 보고 그렇게 욕을 했다고? 싶어서. 이혼을 장려하거나 이혼 만세를 담고 있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이혼한 사람이 이혼 이후에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내용이었는데 똥이라는 댓글까지 달렸구나 싶어서 참담한 기분이었다.



내 나잇대가 그럴 시기기는 하지만, 주위 친구들을 보면 정말 제각각이다. 결혼을 한 친구, 안한 친구, 했다가 다시 빛이 나는 솔로가 된 친구, 아이를 많이 키우며 행복하게 사는 친구, 아이를 낳지 않고 남편과 즐겁게 사는 친구 등 정말 다양하다. 각각 다른 형태로 살고 있어도 지지고 볶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고, 친구들도 나도 그 삶의 형태에 대해서는 입을 대지 않는다. 나는 결혼을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혼자 살든 누군가와 함께 살든 나에게는 내가 최우선이다. 범죄가 아니고서야, 결혼이나 출산은 개인의 의견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이어갈지 끝낼지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책에 나온대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가정을 쥐잡듯이 잡을 일이 아니라 내 가정이나 내가 꾸려가게 될 가정에 더 집중하는 것이 건강하게 느껴진다.



동생은 나랑 자매기도 하지만 제일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데는, 서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알고 있고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싫어하는 건 가능하면 하지 않고, 서로 그럴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없어서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해달라는 걸 해주는 것보다는 하지 말라는 걸 안하는 게 더 중요한데,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요즘 내가 싫어하는 행동은 나한테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반성을 곁들이며 읽었다.



같은 아넵의 브이로그를 보고 있는데도 동생과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서로 다르다. 나는 주로 아넵이 차를 몰고 나가서 빵과 커피를 즐기면서 일을 하거나 경치를 보는 장면을 좋아한다. 동생은 아넵이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빌리고, 반납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동생도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고 했다. 나는 왠지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 아넵의 도서관 장면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도서관에서의 실패는 기껏해야 빌린 책이 재미없는 정도의 수준이니, 도서관에서 실패를 해보는 것을 장려(!)하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말들이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제법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도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다. '지금이니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내용들도 더러 있지만, 읽다 보면 사람의 일상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평온하게 흘러갈 수도, 거기서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건 브이로그를 보며 알고 있었지만, 힘든 시기에 한 달에 20권 가까운 책을 읽었다는 아넵 작가님의 내공이 책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문장들이 술술 읽히고,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 뭔가 중차대한 인생의 이벤트가 일어났을 때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줄 사람들(주로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하지말라는 걸 안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까운 주말에 동생이랑 서점이나 도서관에 놀러갔다가 아넵의 브이로그를 보며 깔깔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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