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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낡은 골목 끝, 밤 11시에 문을 여는 기묘한 가게, 호랑골동품점.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독자는 단순한 호러를 기대했다가 곧 이야기에 깃든 묵직한 감정에 압도당하게 된다. 범유진 작가의 장편소설 <호랑골동품점>은 판타지와 호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과 ‘사연’이 놓여 있다.
책은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태로, 각 장마다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이 열린다. 특히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 편은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인간이 겪는 무기력, 죄책감, 그리고 연대의 가능성을 짙은 잿빛 속에서 그려낸다. 사회적 부조리와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끝내 독자에게 ‘정화’의 가능성을 건넨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기담을 넘어선다.
이야기 속 물건들은 저마다 주인을 잃고 방황하거나, 오랜 한을 품고 있다. 무섭고 기묘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인간의 그늘진 감정을 상징한다. 우리는 그 물건들을 통해 누군가의 억울함, 아픔, 그리움, 심지어는 사랑까지 엿보게 된다. 어느 순간, 그것은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소름보다 먹먹함이 더 오래 남는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힐링 호러’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낯선 기이함 속에 인간적인 따뜻함이 숨어 있고, 공포 뒤에는 연민이 남는다. 무서워서 밤에 책을 덮게 되면서도, 낮이 되면 다시 펼치게 되는 힘. 그것은 작가가 사람의 마음을 정교하게 다루는 솜씨에서 비롯된다.
<호랑골동품점>은 단지 귀신이 들린 물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깃든 물건 이야기이며, 기억과 부재를 다루는 정교한 감정의 지도이다. 오래된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게 만드는 이 소설은, “지금이 아닌 것들”이 불러오는 감정의 파편을 조용히 건네준다.
읽고 나면, 책상 위 작은 소품 하나도 가볍게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 누군가의 시간이 고여 있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