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이야.

 

 

 

예^^; 반갑습니다. 기대 많이 하고 있어요. 

 

 

 

 

 

 

 

이분들도 서로 인사하시죠, 조금 민망하시겠지만. <책의 정신> 그래도 꼭 살 거예요. 못이 아니라 무려 열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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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12-0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난감합니다, 인줄 알았어요...에르고숨 님.

2. 저야말로 토비콤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구차달 님.

에르고숨 2013-12-08 03:39   좋아요 0 | URL
1. ㅋㅋ얼핏 그렇게 보입니다. 묘하게 제 글씨랑 닮아서 처음엔 제가 술김에 뭐라고 써놓은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답니다. 토비콤ㅎㅎ 이름이 참 예쁜 약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2. (구차달 님 빙의한) ㅋ.
 

*그 즈음 창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 -<청춘의 문장들> 어디를 펴 보아도 아름다운 글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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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세 가지 책과 지냈다. 최근 주문에서 얇은 순서로 책을 뽑은 것... 맞나 보다.


『마음사전』으로 만난 적이 있는 김소연의 벼린 언어를 짐작게 하는, 그 제목도 『수학자의 아침』이다. 눈물 흘리게 하는 슬픔이 아니라 아픔과도 닮은 서늘한 슬픔을 기대했고 과연 틀림이 없었다.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

컵에게는 반대말이 없다 설거지를 하고서

잠시 엎어 놓을 뿐


모자의 반대말은 알 필요가 없다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할 뿐이다

모자를 쓰고 집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게 가끔 궁금해지긴 하겠지만


눈동자 손길 입술, 너를 표현하는 너의 것에도 반대말은 없다

마침내 끝끝내 비로소, 이다지 애처로운 부사들에도 반대말은 없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나를 시인이라고 부를 때에

나의 반대말들은 무용해진다


도시에서 변두리의 반대쪽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지구에서 변두리가 어딘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뱅글뱅글 지구의를 돌리며


이제 컵처럼 사는 법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우편함이 반대말을 떨어뜨린다

나는 컵을 떨어뜨린다

완성의 반대말이 깨어진다


(『수학자의 아침』, 「반대말」)


‘술은 제 잔에’를 신조로 사는 내게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는 무슨 마법처럼 착 달라붙었다. 반대말을 떨어뜨린 우편함이 이 변신의 과정을 기우뚱- 산산조각 내는 한 편의 단편영화 같은 시의 이 장면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수학적으로’ 볼 때는 우편물이 나를 어른이나 여자로 혹은 그 반대로 호명하고 있었겠다, 그러나 내겐 폭풍우 같은 ‘아니오’로 답해 온 어떤 거절의 편지가 연상되니, 허- 아픔의 경험이 슬픔을 가까스로 누른다.


슬프고 싶지 않아서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수학자의 아침』, 「그래서」중) 손에 든 책이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다. 아, 이 사람이 정녕 「조롱을 높이 매달고」의 그 사람 맞나. 뭐랄까, 독기가 가득하다. 『달에 울다』에 실린 작가사진이 차라리 이 책에 왔으면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201쪽)


가족은 족쇄, 부모를 떠나 자립하라, ‘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가 거의 전부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자칫 ‘꼰대’로 보일 여지가 농후한 문장들이라 옥 같은 작가경력에 티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소설가는 역시 소설로 만나는 것이 좋을 거라는 판단과 함께, 슬픔을 싹- 씻어내는 독서여서 한편으로는 개운했다. 그런데.


세 번째 책이 다 망쳤다. 아슬아슬한 나의 이성놀이에 예상치 못한 소위 ‘결괴’를 가져온, 하물며 미리보기로 머리말을 읽은 게 다인 이것은 도대체.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 가장 든든한 지원군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다시 태어나도 그들과 가족이 되고 싶다.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9쪽)


김소연의 수학자적 계산으로, 또 마루야마 겐지의 가차 없는 이성으로 쌓은 둑이 저 멘트에 무너지고 만다. 다락방 님의 따뜻한 감성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두 손... 들다말고 일단 눈물부터 닦는다.


코기토: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에르고숨:  (눈물을 닦으며) 맞는 말이지만 너무 냉혹해.

코기토:     수학자의 아침을 떠올려 봐.

에르고숨:  (한숨) 말 잘했다. 그 시, 결국은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수학자라는 거 알 텐데?

코기토:     그럼 난 잠깐 부재할게.

에르고숨:  (코 푼다)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하지만 곧 돌아와야 해. 너 없이는 나, 어찌 할지 아직은 모르겠으니까.


감정의 혼란, 혹은 어딘가에 털 날 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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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2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안그래도 내내 노려보고 있었는데, '꼰대'스러워 읽다 짜증내진 않을까 싶어서 고민중이었어요. 사실 전 저 작가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에잇 소설이 더 좋잖아' 라고 하기보다는 '아 읽지 말아야겠군' 할 확률이 클 것도 같고요.

저는 오늘 출근길,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시작했습니다, 에르고숨님.

에르고숨 2013-11-26 16:58   좋아요 0 | URL
내내 노려보신^^ 책, 저는 짜증까지는 안 났는데요 너무 빤한 얘기를 자꾸자꾸 하셔서 말입니다. 부모로부터의 자립, 자유에 대한 따끔한 충고 일색이어서 우리보다는 이십대가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더라고요. 저의 황정은 책 구매여부는 다락방 님 페이퍼에서 힌트를 얻어 결정되겠습니다ㅎㅎ. (<독서공감>이 장바구니에서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다락방 2013-11-26 17:20   좋아요 0 | URL
어? 에르고숨님 왔다. 흐흣

에르고숨 2013-11-29 02:20   좋아요 0 | URL
그 팀 오늘, 아니 어제 받았는데 어쩜... 완-벽!해욤ㅎㅎㅎ.

이진 2013-11-2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자의 아침 노리고 있는 책입니다 누군가 보내주셨다하여 무한한 기대를 쏟고 있어요. 감성이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따뜻함은 모두를 덮어줄 수 있다구요.

에르고숨 2013-11-27 01:13   좋아요 0 | URL
시집 선물도 받으시고, 훈훈하네요. 무한한 기대가 감동으로 순조로이 넘어가길 바랍니다. 감성이 모든 것을 이긴다고 믿는 소이진 님 또한 참으로 따뜻한 분인가 봅니다. 저도 덮일래요ㅎㅎ.
 

 

그 귀찮은 것에 대해서는 “내가 문을 닫아버린 세계이며 두 번 다시 그 문을 열지는 않겠지만, 내가 남겨두고 온 것이 가장 소중한 선물임을 알기에 때로 밤이 되면 아쉬운 듯 그 문 앞을 서성인다”(『사랑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책읽는수요일)는 헨리 밀러의 말에 가장 진한 밑줄을 그은 이후 생각에 변함이 없다.


단지 어제 읽은 루이자 메이 올콧(올컷)이 저 닫힌 문 앞으로 나를 확 데리고 와버렸기에 복도에서 조금 배회하는 주말이 된 셈이다.  ◇◆◇◆가(家)에 더 이상 가정교사로 머물 수 없는 ○○을 위해 다른 집에 자리를 봐주기 위한 추천서를 쓰다 말고 ◇◇이 하는 말.

 

 

“○○, 돌아가서 편지를 마저 써야 할까요, 아니면 여기 남아 당신에게 이 노인이 당신을 딸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요?”

 

 

 

『작은 아씨들』을 내가 읽었던가? 알 수 없다. 본가 책꽂이보다 더 가까운 알라딘 보관함에 펭클본으로 담을 수밖에 없게 하는 올콧. 이런 문력이라면 아동용 축약본으로 영접해서는 안 된다. 아무렴. ‘왕처럼 관대하고, 대낮처럼 정직하며, 아이처럼 단순한, 존경받는 노신사’ ◇◇의 저런 우아한 대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 저런 말을 해보았어야 하는 건데. 그러고 보니 조금 더 늙어서 저놈의 문을 열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려는 건가, 내가 지금.


올콧에서 시작되어 살랑거리는 마음이 ‘아쉬운 듯 문 앞을 서성’이기에 책만 한 것이 없을진대, ‘내가 남겨두고 온’ 반짝이고 설레는 순간들을 재회하게 했던 대화(혹은 독백)문들을 대충 찾아보았다. 



“무엇 때문이지요? (…) 부인은 그래서는 안 되는데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세요?”

“무엇 때문이라니요? 그 사람의 머리카락이 갈색이고 관자놀이까지만 자라니까 그렇고, 그 사람이 두 눈을 떴다 감았다 하고, 그 사람 코가 균형이 잡혀 있지 않아서 그렇고, 또 그 사람은 입술이 둘이고 턱이 네모이며, 어렸을 때 야구를 너무 열정적으로 하다가 새끼손가락이 구부러져서 손가락을 똑바로 펼 수가 없어서 그렇지요. 또…….” (『이브가 깨어날 때』)



“분명히 벨이 울리고 있어. 이런 밤에 누가 왔을까? 자네 친구?”

“내 친구는 자네 한 명뿐이야.” (『셜록 홈즈의 모험』)



 

 

“왜 안 돌아가는 겁니까?”

“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순수의 시대』)


 

 

 

“선생님은 뭘 사러 오셨어요?”

“글쎄, 사실은 살 게 없어.”

“아니, 제 길동무가 되려고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응. 그러면 안 되나?”


“이 동네에서 자네를 보게 될 줄 몰랐어. 자네 사는 곳은 여기서 정반대가 아닌가? 캠퍼스 근처?”

“맞습니다. 그래도 가끔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그래도 바로 이 술집을 고르다니!”

“아, 선생님께서 여기 자주 오신다는 말을 어느 학생한테 들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나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싱글맨』)



크레오소트환(丸) 하고, 그러한 약 이름이 적혀 있어, 그러면 여자는 폐를 앓고 있는 것인가고, 그렇기 때문에 한 번도 자기를 방 안으로 인도해주지는 않았던 것일까고, 갑자기 그의 가슴은 애달픔으로 가득 차서, 나는 상관없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안말로 그러한 것을 중얼거리기조차 하며, 그러는 한편으로는 또 여자가 그 약 이름을 자기에게 일러주었을 그뿐으로, 이미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의 한끝을 보여준 듯이나 싶어, 그는 이제 새삼스러이 여자의 입으로 들어보지 않는다더라도, 분명히 여자는 자기를 그만치나 믿고, 또 사랑하는 것이라고, 제 마음대로 그렇게 혼자 작정해버렸던 것이나,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나는 제의할 것이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있어요.” (『소유』)



 


 

 

“내일, 헤어진 다음에 밀려들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황인수기』)


 


 

 

“오, 겨울이다.”

“겨울이면 뭐해, 오줌만 마렵지.”

(사랑의 대화 맞음.)


 

 

 

다시 읽어도 하- 애틋하다. 문 너머 방안보다 복도가 더 화려하고 다채롭고 깔끔하고 쿨하고 멋지고 내가더잘생겨지고배도날씬해지고말도더잘하고더웃기고땀냄새도안나고더섬세하고뽀뽀도더잘하고이런원더랜드... 그만하자. 닫힌 문을 뒤로 하고 다시 서재로, 지금-여기로 안착시킬 든든하고 단단한 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김재규 평전> 헛, 독서와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사랑은 분명 ‘소중한 선물’이지만 다는 아니다. 문 여전히 잘 닫혀있음을 확인하고 이만 돌아선다, 실내화를 살살 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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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16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여기 댓글 엄청 달고 싶은데 지금 밖에서 음주중이라 애가 타고 초조하네요 ㅜㅜ

에르고숨 2013-11-17 15:33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이미 댓글을 다신 걸요. 음주 중임을 자랑하시는 겁니꽈?ㅋㅋ 좋은 시간이었기를요-

다락방 2013-11-1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지금 빵터졌어요. ㅠㅠ
빵터졌다면서 왜 울고 있냐면요,
에르고숨님이 인용하신 책 '케이트 쇼팽'의 <이브가 깨어날 때>요. 부러운거에요, 저 책을 가지신 게. 절판인데..그래서 중고알림등록을 신청했는데, 어...나...이거 있을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케이트 쇼팽으로 다시 검색을 해보니..하하하하.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으로 사뒀네요, 제가? 그 때 에르고숨님이 알려주셨었죠, 저 책으로 있다고. 하하하하.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인용하신 문장을 보니,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끝내면 당장 저 책을 시작해야겠어요.

근데 에르고숨님 멋지다..숨겨진 책들을 읽으신것도 그렇고, 그 책들에서 이런 인용문들을 뽑아내신 것도 그렇고. 멋져요!

에르고숨 2013-11-19 00:06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 님이 <걸작의 공간>에서 건져 올렸다가 허당검색으로 좌절하셨던 바로 그 책입니다^^. 쇼팽은 여러 작가들이 언급하기도 했지만 저는 특히 다락방 님을 많이 떠올렸어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예상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ㅎㅎ 곧 읽으실 계획이라니 또 얼마나 멋진 리뷰가 탄생할지 벌써 기대됩니다!
 

 

이상하다. 이런 문장에 밑줄을 긋고 있는 내가.

 

“여길 떠나야겠어요.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순 없어요.”

“왜 안 되죠? 전에도 그런 말을 했었죠?”

“나는 당신이 제이콥의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당신이 제이콥의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제이콥의 손』130-131쪽)


제이콥을 공통의 친구로 두고 있는 남녀 두 사람이 열정적인 포옹을 풀면서 나누는 대화다. (대사 간 문장은 생략했다.) 치유의 능력을 지닌 제이콥으로부터 그 신비한 혜택을 받은 두 사람. 두둥- (170쪽 남짓 되는 책의 줄거리를 읊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나. 씁-)


올더스 헉슬리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만남이다. 공동의 작업이 어떠했을지, 내가 흠모하는 이 둘의 친분에 관한 이야기도 어디선가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시기 가까운 곳에 살아 서로 만나고 우정 또는 악연을 나누었던 작가들 이야기가 나는 참 좋다. 어제 읽은 『공중전과 문학』(W. G. 제발트, 문학동네)에서도 알프레트 안더쉬와 막스 프리쉬(프리슈)의 불화가 살짝 나왔었다.

 

 

안더쉬는 기본적으로 항상 후방에 있는 남자였다. 그러니 1970년대 초에 그가 스위스 인이 된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그가 꼭 망명해야 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스위스로 귀화하는 과정에서 티치노 주의 이웃 막스 프리쉬와 몇 년간 불화를 빚었다. 프리쉬가 안더쉬 자신이 추진하는 바를 지지해주지는 못할망정 폄훼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프리쉬는 어느 곳에선가 이렇게 썼다. “그[안더쉬]는 스위스를 좋아한다. 하지만 스위스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공중전과 문학』193-194쪽)

 

제발트가 논문에서 서슬 퍼렇게 비판하는 안더쉬,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속이 후련하다기보다 내가 다 아플 정도의 독서 경험이었다. 사람들은 위장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이승우 작가의 말이 기억났는데, 그 ‘외투’를 뚫어보는 무시무시한 날카로움이었다. 속이 후련해지기 위해선 이런↓ 책을 읽어볼 필요가 생긴다.

 

이 불화는 명예욕과 이기심, 르상티망과 원한에 시달리는 내면생활에 대한 통찰 그 이상을 제공한다. 문학작품은 내면생활을 감싼 외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저급한 안감은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법이다. (『공중전과 문학』194쪽)


‘저급한 안감’이라니 후덜덜이다. 안더쉬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푸셰(『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리브로)를 연상케 하는 인물인데, 츠바이크가 푸셰에 대해 연민을 느끼게 했다면 제발트는 조금도 봐주는 면이 없이 아주 혹독하다. 당시 안더쉬 비평은 양쪽으로 나뉘었고,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 편에는 라이히라니츠키도 있었다.


장편소설 『빨강머리 여인』의 발표로 안더쉬 작품의 구성과 문체상의 결점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게 되자 비평계는 비로소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쾨펜이 그 책을 “금세기의 가장 읽을 만한 소설”이라고 칭송한 반면, 라이히라니츠키는 거짓말과 키치의 밥맛 떨어지는 조합이라고 썼다. (『공중전과 문학』151-152쪽)


『작가의 얼굴』의 멋지고 중후한 라이히라니츠키 옹의 '거짓말과 키치의 밥맛 떨어지는 조합'이라는 거침없는 언어구사라니... 더 좋아지고 만다. 『작가의 얼굴』을 보다가 꼭 읽어보고 싶게 된 사람이 다름 아닌 막스 프리쉬였는데, 제발트에서 이런 식으로 만나 반갑기 그지없다. 라이히라니츠키가 저음의 첼로로 프리쉬를 연주하니 제발트가 날카로운 바이올린으로 안더쉬를 답해오는 독서심포니. 

 

 

 


 

 

그러니 이는 고통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당연히 프리슈가 말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다. 많은 것을 감추려 했고, 그래야만 했다. 그는 암시와 생략의 대가다. 휴지(休止)는 그의 최고의 표현수단에 든다. 그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 절제하는 미덕을 지킬 줄 알았다. 그런 식의 자기 폭로는 과시욕과 무관하며, 프리슈의 고별사는 감상에 빠지지도, 엄살을 부리지도 않는다. 『몬타우크』는 불안의 작가가 쓴 사랑의 책, 하나의 시적 결산이다. (『작가의 얼굴』279쪽)


 

다시 헉슬리와 이셔우드로 돌아와서, 두 거장의 그렇게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작은 소품에 나는 묘하게 매료되었는데,『싱글맨』의 그림자가 제이콥에게도 드리워져 풍기는 고즈넉하고 허전한 분위기가 취향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1950년대 캘리포니아 모처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겠거니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이, 어서 오게나 크리스.”

“올더스, 그간 별 일 없었지요? 저, 제이콥이 샤론을 치유하고 나서 말입니다...”


첫 밑줄의 문장이 이상하다기보다, ‘나는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가 더 바른 표현일 것이다. 그라면 이런 대화문을 좋아하겠구나, 하는 잠깐 멈춤. 책과 나 사이에 불쑥 끼어드는 청객(請客). ‘불쑥’이라고 썼지만 실은 내내 마음속에 있다가 저런 문장을 핑계로 발화되는 그.

그를 초대하기 전의 나는 이런 문장을 눈 여겨 보았던 것이니,


“그만 해요!”

제이콥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면서 날카롭게 말한다. 그의 말투는 마치 얼굴을 철썩 때리는 것 같다.

(『제이콥의 손』149쪽)


그의 눈으로 또 나의 눈으로 읽게 되는 『제이콥의 손』. 제이콥이 내게 와서 “치유되고 싶어요?”라고 물어본다면, 내 마음속 경미한 우울증을 떠올리며 “아니오.”라고 답할 것 같다. 이 약간의 우울함이 바로 그를 생각하는 힘이며 이 책 저 책을 미로 삼아 떠돌게 하는 내 존재이유일지도 모르니까. 병을 치유해버리고 나면 나는 도대체 더 어떻게 망가질지 모른다. 옳다, 오늘 하루 온 힘으로 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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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1-1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너무나 지적인 글이다.. 근사해요. 에르고숨님한테 반했습니다.

에르고숨 2013-11-11 13:44   좋아요 0 | URL
지적인 글인지는 몰랐는데욤... 지적질이라면 몰라도요. 고맙습니다. 다락방 님의 수많은 팬들 어쩌시려고 그런 말씀을;; 물론 아무도 모르시겠지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