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도 미술이 될 수 있어요! 푸른숲 생각 나무 19
수지 호지 지음, 웨슬리 로빈스 그림, 정아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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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이가 이미 흘쩍 커버렸지만
어린이책 코너는 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내가 꼭 서점에만 가면 들르는 곳이다.
아이들 책이기에 거대담론이나 예술이론 사회현상 머저 쉽고 편안하게 이해시켜주는 책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서왕 맞춤법왕인 10살짜리 조카에게 교양서를 골라주는 것이 나의 취미인데 미술관련 일을 하고 있는 나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은 책!!!
<쓰레기통도 미술이 될 수 있다!> 제목이 현대미술의 개념정의와 화두 그 자체다. 원작의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인지 모르지만 편집진의 책제목 센스에 무릎을 탁 치고 이런 외국서적을 pick한 안목에 경의를 표한다.

책을 손에 잡고 한시간도 안되어 다 읽었지만
어른들에겐 알고 있는 지식을 체계화하고 재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어린이들이라면 미술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며 예술에 대한 기본 상식을 접하고 향후 지적 호기심으로 연결해줄 수 있는 다리가 될 딱 그런 책이다.

주말에 빨리 조카에게 보여주며 그녀석의 반응을 보고싶다.
문화적 감수성은 어느날 문득 키워지는 게 아니라 이런 좋은 책들을 시작으로 많이 읽고 보면서 몸에 새겨지은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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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단단해지는 중입니다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라이더가 전해주는 짱짱한 마음 근육 생성기
김영미 지음 / 혜윰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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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에 가서 즉시 구입하고 즉시 단숨에 읽어버린 책! 아이들 다키우고 열심히 살은 이땅의 아줌마로서 김영미작가의 용기에 큰 힘과 힐링을 얻고 말았습니다. 이제 나를 돌아보고 나를 사랑하며 살 때가 된 거 같습니다. 자전거 다시 배워서 보다 열정적으로 건강한 몸과 정신을 만들어야겟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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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 투 드라이브 - 스스로 결정하기로 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성장 에세이
마날 알샤리프 지음, 김희숙 옮김 / 혜윰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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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새로운 꼰대의 대명사 586 세대로 조롱받지만 그 어떤 세대보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정의롭게 살려고 애썼고 남녀차별에 저항하며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원조 페미니즘 세대에게 <위민 투 드라이브>는 실로 간만에 만난 가슴 벅찬 에세이였다.

 

비록 세대, 인종, 종교는 다르지만 본인의 의지로 세상의 편견과 싸워나간 마날 알 샤리프의 이 자전적 에세이를 읽으며 때로는 같이 분노하고 때로는 같이 공감하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긴박한 스토리 전개는 마치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는 듯 했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메시지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진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다.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운전권이 신변의 위협을 당할 정도로 본인의 희생을 감수하며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니 그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의 부자나라이며 대학교육도 무상이어서 아주 살기 좋은 나라일 거라는 정도였는데 마날의 책을 통해 그 부자나라가 여성에게는 아직도 종교적 이유 혹은 사회 관습을 들어가며 봉건적 의무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수백만명의 여왕이라는 미명하에 여성들은 남성이나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이슬람 율법은 여성을 억압하고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하는 존재이며 남성 보호자의 동의없이는 어떤 주체적인 결정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공공장소는 물론 심지어 직장에서도 남성과 말을 섞어서는 안되고 온몸을 천에 가리고 생활해야 하는 여왕(?)의 생활이라니 인간의 기본권인 자유 따위는 여성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강행되는 무지막지한 할례는 법이 금지하고 있음에도 아직 사우디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전통이다. 두 발과 두 손을 가진 인간이 혼자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되었다. 너무나 당연해서 이 지구상의 그 어떤 여성이 이런 당연한 권리를 위해 싸웠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하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투표권이 불과 백년전 여성들은 가지지 못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 가정교육의 영향으로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충실했던 마날이 현대적 교육을 받으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과정들이 아주 솔직하게 묘사되어 더욱 공감을 준다. 그 중에서 대를 이어서도 행해지고 있는 가장의 폭력이 별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안타까웠다. 우리나라도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 두들겨 패야 한다는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회자되고 심지어 동네 여기저기에서 매맞는 아내들이 도망 다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날같이 똑똑하고 주체적인 여성도 그 어머니 세대가 겪은 가정폭력을 그대로 겪는 부분에서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했다. 이슬람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여성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남성의 사고방식 개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과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이 억압은 국가나 법이 나서지 않으면 근절될 거 같지가 않아서 화가 났다.

 

마날의 주체적 투쟁은 오히려 같은 동료들의 왕따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어떤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는 무엇보다 연대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위민투드라이브>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이런 연대의 결과이다.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을 보면서 꼰대인 나는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모든 사람을 투쟁의 대상으로 타파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그들의 공격적인 태도는 80년대 원조 페미니스트인 나도 질리게 한다. 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인권운동이 아니라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설득력으로 세상 누구라 해도 그 인권이 짓밟히는 일이 생긴다면 함께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하고 나의 딸, 아니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마날의 성장에세이를 덮으면서 20년 넘는 나의 장롱면허증을 떠올려보았다. 누군가에게 생명만큼 절실한 그 라이센스를 아무렇게 방치한 나란 인간을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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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목요일마다 우리를 죽인다 - 증오 대신 사랑을,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한 한 사형수 이야기
앤서니 레이 힌턴 지음, 이은숙 옮김 / 혜윰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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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소 사형제도와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에 '증오 대신 사랑을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한 한 사형수 이야기'라는 이책의 부제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었다.

제목에서는 마치 가벼운 추리소설같은 느낌을 주지만 책장을 펼치는 순간 점점 주인공 앤서니 레이 힌턴에 몰입되기 시작한다. 며칠에 걸쳐 읽을 예정이었지만 도저히 중간에 맥락을 끊기가 어려울 정도의 흡인력이 있는 내용이었다. 마침내 하루를 온통 쏟아붓고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책을 읽는 동안 주인공에 빙의되어 힘들었다가 용기를 얻었다가 희망을 품었다가 슬픔과 분노도 일었다가 마침내 주인공의 석방으로 인해 내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980년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의 미국인데 그처럼 인종차별과 편견, 무지막지한 사법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 인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수감자의 현실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 힌턴의 29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는 어떠한 배상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는 자신에게 잘못된 판결을 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대인배였다. 자신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한 그 오랜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용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동료 사형수들과의 유대를 이끌어내면서 감옥생활을 버텨낸 정신력은 초인적이기까지 했다.

사형수를 수감하는 교도소의 비인권적 현실보다 강제적 죽음앞에서 공포에 떠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대목에서는 사형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잔인한지 다시금 알게 했다.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는 것 더군다나 사법권력에 의해 억울하고 무고한 사람이 발생했을 경우 이미 뺏은 목숨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사형제도는 단연코 폐지되어야 한다는 확신마저 들게 한 책이다.

 

수년전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게 한 책인데

물론 전체적인 흐름이나 줄거리는 다르지만 사형제도가 인류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를 증명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 힌턴이 그 힘들고 오랜 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으로는 브라이언 스티븐슨이라는 인권변호사의 조력이 컸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사랑과 친구 레스터의 우정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본다. 어려서부터 인종에 상관없이 편견없는 사랑을 강조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교육한 어머니의 막내 자식에 대한 믿음과 사랑, 30년간 빠짐없이 면회일을 지켜온 친구 레스터를 둔 레이 힌턴은 어쩌면 행운아였는지도 모른다.

 

석방된 후 대중연설가로서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인생역정을 마침내 승리로 이끌어낸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더더욱 행운아다. 하지만 자유를 잃어버렸던 그의 30년 청춘은 무엇으로도 보상받기 어렵다. 만약 그가 중도에 대충 포기하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타협을 했더라면 무죄를 증명할 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의, 신념, 용기, 인간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고 사법제도와 인종차별 사형제도 같은 굵직한 문제제기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도 공정하게 편견없이 사람을 대해야 하는데 무소불위의 망나니같은 칼날을 마구 휘두르는 앨라바마 사법부를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 검찰이 조국 전 장관 일가에게 행하는 사법적 폭력이 연상되기도 했다.

 

두려움으로 점철된 수많은 시간을 버텨냈던 레이 힌턴의 삶을 보면서 일상의 소박한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30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된 첫날 레이가 편안하고 깨끗한 침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화장실 바닥에 누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대목에서 정말 가슴이 저려왔다.

 

소설같은 아니 소설보다 더 감동적인 실화 에세이를 읽으면서

재미와 감동 뿐 아니라 우리 사회 현상까지도 통찰해 볼 수 있었다.

중장년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청소년들에게는 레이의 깊은 내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일상의 소중함, 자유, 인권, 정의를 느낄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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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2019-11-1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 책 읽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셔서 반가와서 댓글 남겨봅니다.
 
바다에서 건진 생명의 이름들 - 바다생물 이름의 유래
박수현 지음 / 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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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고향인 내가 서울로 시집을 와서 맞은 첫 명절, 아무리 둘러보아도 제수용 생선이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니께 어머니 생선을 빠뜨리셨나봐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라고 했더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솥단지를 가리키셨다. 뚜껑을 열어보니 손바닥만한 조기들이 얌전히 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 우리 고향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작은 크기의 생선을 제사상에 올리다니 달라도 너무나 다른 풍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부산에서 쓰는 제수용 생선은 성인 남자의 팔뚝만한 크기로 기본 다섯 마리 정도는 큰 채반에 널어놓는 풍경만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대대로 충청도에서 살아온 시댁은 생선이 귀했던지라 당연히 제수용 생선을 바닷가처럼 큼지막한 것을 올릴 수가 없었고 남편도 어린시절부터 생선은 아주 귀한 음식으로 알고 자랐다고 했다. 반면에 나는 세상에 생선은 갈치와 조기 뿐인줄 알다가 황석어같이 작은 생선이나 삭힌 홍어는 결혼하고 나서야 맛보게 되었다. 바다생물이 동네마다 다르게 잡히고 그에 따라 식습관이나 제사문화 마저도 달라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초보 주부때 경험이었다.

 

생선을 요리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오던 나에게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인 후배가 건네 준 <바다에서 건진 생명의 이름들>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후배는 내게 다이버들은 늘 어류도감을 펴놓고 그 날 다이빙 할 때 본 물고기 이름을 찾고 그림도 그려보며 논다면서 다이버가 아니어도 이 책은 꼭 읽어봄직 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류 뿐 아니라 연체동물, 절지동물, 자포동물, 극피동물, 바다포유류,바닷말류에 이르기까지 바다생물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해놓은 이 책은 사진기자 출신이면서 엄청난 다이버경력을 갖춘 저자 덕분에 바닷속 풍경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되었다.

무엇보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나 들어봄직한 자산어보’, ‘성호사설’, ‘지봉유설’ , ‘동국여지승람등의 옛 문헌 속에 나온 생선들의 어원이나 속담을 소환한 작가의 방대한 자료 수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옛 문헌에 많은 내용들이 있더라도 그것을 발굴해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해양생물에 대한 애정없이는 불가능한 일 일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조상들이 남기신 속담이나 말들에 감탄을 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수백년 전의 삶이나 오늘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그냥 무심코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말이나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어른들의 말씀에 이런 근거가 뒷받침되어 있었구나 싶으니 정말 무릎이 탁 쳐지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생선의 맛이 산란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영양분이 산란에 집중되는 바람에 맛이 떨어진다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모른채 생선을 골라 왔고, 죽방멸치는 왜 그렇게 불리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들은 풍월로 무조건 죽방멸치를 사왔던 것이다.

강원도 황태 덕장에 가서 사온 황태로 북엇국만 끓여 먹었는데 명태에 얽힌 수많은 속담과 은어가 이렇게 풍성할 줄 몰랐다. 재산이 한꺼번에 훅 줄어들 때 북어껍질 오그라들 듯이라는 표현을 한다든가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할 때 하는 노가리 깐다라는 속된 표현도 명태가 한꺼번에 알을 엄청 많이 낳는데서 유래했다니 조상들의 눈썰미와 센스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얼마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구이 메뉴로 등장해 유명세를 날린 달고기가 부산에서만 잡히는 흰 살 생선이고 유럽에서는 아주 고급생선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조만간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이 책의 저자가 북한 바다의 생물에 대해서도 집대성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여름에는 꼭 민어를 먹어야 몸보신이 된다고 하던 어머니 말씀과 함께 제사상에 꼭 빠뜨리지 않아야 할 생선은 민어와 도미였는데 조상님께 후손을 밀어달라고 민어, 도와달라고 도미를 올린다는 경상도식 기원도 떠올랐다. 역시 책에서도 민어는 복달임 풍습에 쓰였음을 언급하고 있었다.

고급 생선이면서도 가정에서는 거의 요리하기 힘든 복어를 시장에서 장만하고 있는 풍경도 흥미로웠지만 바닷속에서 서식하고 있는 복어의 조금은 귀여운 모습은 거의 처음 보는지라 신선했다. 저자가 다이버가 아니라면 결코 독자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한편, ‘본초강목에 기록된 내용과 영어이름의 유래는 물론이거니와 복어의 독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는데 단순한 백과사전식 아니 네이버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는 지식이 아닌 어류학자의 코멘트를 첨부한 성의있는 서술이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게다가 괜히 죠스같은 영화나 노인과 바다 같은 소설로 인해 공포의 대상이 된 상어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모습이 아주 기품있어 보였다.

 

이 책의 70프로 정도를 차지하는 어류 편을 읽다보니 정말 생선 하나하나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소록소록 떠올랐다. ‘서대는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가장 좋아하셔서 어시장가면 늘 꾸덕꾸덕 말린 서대를 사서 양념장 발라 구워드렸던 추억, ‘숭어하면 학창시절 음악시험 시간에 슈베르트의 송어를 초성만 따서 외운 친구가 시옷이니 슈베르트고 송어이래놓고는 정작 시험 때는 비읍이 떠올라 베토벤의 붕어라고 답해서 수십년째 회자되는 사연, 고갈비가 진짜 갈비인줄 알았고 쥐포를 진짜 쥐고기로 만드는 줄 알았다던 서울 친구, 아무리 맛있는 전어 굽는 냄새가 좋아도 작심하고 가출한 며느리가 겨우 그 전어 때문에 돌아오겠냐 의견 분분했던 친구들 등등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던 바다생물들이었다.

 

연체동물 중 가리비와 굴, 꼬막,낙지 등도 친숙한데 갯벌에서 낙지를 채취하는 사진을 보니 아이들 어렸을 때 갯벌체험 갔던 추억도 되살아났다. 갯벌에는 절지동물인 게도 잡을 수 있었는데 그 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제대로 경험했다. 게를 무장공자(배알없이 외세에 의존하는 사람을 빗댄 표현)‘라고 했던 안국선의 금수회의록까지 언급함으로써 이 책이 단순히 바다생물에 대한 도감이 아니라 인문적 소양을 높이는데도 기여한다는 것을 반증했다. 바닷말류라고 하면 웬지 낯선 것 같으나 결국 우리가 자주 먹는 미역과 다시마 파래들이라 완전 반가웠다.

바다포유류라 하면 고래만 떠올렸는데 해표, 물개, 심지어 북극곰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멸종위기에 놓인 북극곰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와닿는다. 바다생물의 이름과 유래도 재미있고 그들과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파생되어 온 속담속에 우리 조상의 지혜와 숨결도 느껴졌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무렵엔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왔다. 이 소중한 바다생물들과 오래도록 공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기심이나 욕망을 과감히 덜어내는 일이 최우선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독자를 계도하겠다는 거창한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내 이렇게 소중한 바다, 이렇게 귀한 바다생물을 잘 보존해 물려줘서 내가 누린 이 기쁨을 우리 아이들도 꼭 맛보게 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간절한 바람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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