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vovo1968님의 서재 (vovo1968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2 Nov 2026 12:34:02 +0900</lastBuildDate><image><title>vovo1968</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vovo1968</description></image><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를 읽고 -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31</link><pubDate>Tue, 29 Sep 2026 1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7467&TPaperId=175432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382/20/coveroff/898371746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3717467&TPaperId=175432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a><br/>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 반비 / 2015년 11월<br/></td></tr></table><br/>김태정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  &nbsp;  내란 정국이다. 시험공부는 잘했는지 모르지만 인성은 엉망진창인 ‘괴물’들이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이 괴물들은 어떻게 탄생했단 말인가?오늘 소개할 책은 파울 페르하에어의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이다. 저자는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이다.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인간의 정체성은 환경에 달려 있다’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환경에 살고 있는가?저자는 신자유주의 사회는 ‘인간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 한다’고 지적한다. 인류는 지속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이루어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불평등은 해소되고 있지 못하며,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피폐해졌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이론이 아니라 훨씬 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이며, 그 중심에는 ‘능력주의’가 놓여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사회진화론과 결합 된다. 이 둘의 목표는 ‘적자생존’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능력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부를 물려받은 자와 빚을 물려받은 자’는 출발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능력주의는 하류층에게도 받아들여진다. 페르하에어는 이 지점에서 정신분석가 답게 ‘능력주의가 전형적인 남성적, 남근주의적 경쟁의식과 완벽하게 결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가부장적 문화가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을 혐오하게 만들고, 능력주의를 재생산하는 것이다.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고 무엇보다 교육을 통해서 인간 안에 내면시킨다. 저자는 ‘젊은이들이 연대감이라고 모르는 경쟁적인 개인주의자로 자란다면 이는 경쟁과 개인주의를 장려하는 교육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한다. 내란을 일으킨 괴물들과 이 괴물들을 추종, 후원하는 괴물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 있었다. 저자는 출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갖춰야 할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말을 잘해야 하고, 자기 능력을 자랑해야 하고, 설득력 있게 거짓말을 잘해야 하고, 일이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하며,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꾸밀 수 있어야 하고, 때론 모험에도 뛰어들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저자는 묻는다. 이 목록은 어디서 나왔는가? 답은 사이코패스 핸드북이다. 헉! 정치인들의 거짓말, 기업인들의 거짓말, 심지어 학자, 법률가라는 자들의 곡학아세와 궤변이 난무하게 된 것은, 이런 사이코패스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게 만든 사회체제, 교육체제 때문이다.최근 법원을 폭도들이 난입하여 테러를 자행하였다. 지난 박근혜 탄핵국면에서도 폭도들이 경찰버스를 전복시키는 등 폭력행위를 하였다. 왜 이렇게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를 벌이는 이들이 생겨났을까? 이 또한 신자유주의 경쟁교육, 즉 능력주의(시험능력주의)의 산물이다. 페르하에어는 ‘왕따는 더 이상 학교 안에서만 일어나지 않으며, 거의 모든 일터에서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경쟁은 ‘심도 깊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며, 사람들은 경쟁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불안과 절망, 실패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겪으면서 자신보다 약자에게 이를 전가하는데, 이를 전위된 공격성’이라고 설명한다. 신자유주의는 비록 몸은 어른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을 마치 ‘아이처럼 터져나오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남이 잘못되는 것을 고소해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미숙한 존재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우리가 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가장 먼저 ‘만연한 냉소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다. 적지 않는 사람들이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 무기력하게 좌절하고, 무관심하게 된다. 저자는 ‘이기주의, 경재의식, 공격성이 인간 본성이듯이, 이타주의, 협력성, 연대감, 선한 의지’도 인간의 본성이기에 우리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 내는가’에 따라 인간의 정체성도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다. 존재방식이 의식을 규정한다.다음 ‘소비자에 머물지 말고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가가 공익을 실천할 의무가 있다면, 우리는 공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제안하며, ‘우리 스스로 용기를 내 권력을 행사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딥 프레임을 건드려 행동을 바꾸어야’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가치를 팔아야 한다’는 광고심리학의 원리를 소개하면서, ‘특정한 메시지는 그것이 깊이 뿌리내린 감정과 가치를 건드릴 때 가슴에 가장 와 닿는다’고 지적한다. 이 뿌리가 바로 딥 프레임이다. 페르하에허는 ‘지속적인 변화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며, 직관에서 나온다는 것’과 사람들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면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연대는 합리적인 논리로 강요될 수 없으며, 출발은 자기배려’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는 이기심과는 다르다. ‘자기배려는 자신의 삶을 윤리적으로 살아가면서, 공익도 더불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란정국이 빨리 종식되길 수 많은 국민들이 바라고 있다. 그러나 내란 이후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다. 문제의 근원이 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라면 이를 종식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괴물을 만들어온 잘못된 시스템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시민들의 손으로 교육대전환과 사회대전환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382/20/cover150/898371746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3822037</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나 아렌트와 교육: 우리의 세계에 새로움을 더하다』을 읽고 - [한나 아렌트와 교육 - 우리의 세계에 새로움을 더하다, 2025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29</link><pubDate>Tue, 29 Sep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6373&TPaperId=175432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51/60/coveroff/k00203637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6373&TPaperId=175432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나 아렌트와 교육 - 우리의 세계에 새로움을 더하다, 2025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a><br/>모르데하이 고든 지음, 조나영 옮김 / 살림터 / 2025년 01월<br/></td></tr></table><br/>김태정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상임이사   &nbsp;  한나 아렌트라는 이름은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정신의 삶] 등 아렌트의 저작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렌트는 교육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졌을까? 모르데하이 고든을 포함한 9명이 쓴 논문을 모은 『한나 아렌트와 교육: 우리의 세계에 새로움을 더하다』는 이에 대해 답하고 있다. 논문 중 주목을 끈 것은 아렌트의 보수주의적 교육관과 협동학습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를 간략히 소개해 본다.모르데하이 고든은 보수주의를 ‘과거에 성공적으로 확립된 관습, 가치, 그리고 제도를 보존하려는 태도’로 규정하고, 아렌트가 보수주의와 접점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즉 아렌트는 ‘첫째 권위의 역할이 부정적이고 제한적이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라고 보았으며, 둘째 권위는 전통과 종교 모두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고, 셋째, 권위가 정치 구조에 지속성, 연속성, 그리고 영속성을 부여하는 원칙이라 주장했으며, 넷째, 권위는 설득과 합리적 토론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이는 교육에서의 권위와 교육적 보수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논의와 연결된다. 아렌트는 「교육의 위기」라는 저작에서 195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교육적 권위의 위기가 미국만의 특수함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핵심은 권위와 자격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교육자의 권위와 교사의 자격은 같지 않다. 자격의 기준이 권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최고의 자격은 결코 그 자체로 권위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교사의 자격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데 있지만, 교사의 권위는 세계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데 달려 있다.”한마디로 교사 자격을 가진다고 해서 교육자로의 권위가 자동적으로 부여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정말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권위는 어떻게 부여될 수 있을까? 핵심은 책임이다. 아렌트는 ‘어른과 아이가 동등하게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어른들이 잘못된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때이다. 모르데하이 고든은 미국사회에서 마약과 알코올을 남용하는 어른들을 지목하였지만, 나는 한국사회에서는 입시경쟁교육과 시험능력주의에 포획된 어른들,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 남용을 허용하는 어른들 그리고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아 온 역대 정부와 거대 양당의 문제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렌트의 권위 개념은 교육과 전통에 대한 아렌트의 독특한 접근으로 이어진다. 아렌트에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아이들의 새로움과 혁신적인 것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위한 안정된 공간으로 세계를 구할 것인가?’라는 것으로, 이는 전통에 대한 태도와 연결된다. 아렌트는 전통을 ‘한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하고 인류 문명에 통일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이음새로 보지 않고, 전통을 그 자체로 단절과 균열 그리고 발명품과 같은 혁신’으로 여겼다. 아렌트는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여 교육자는 학생들이 ‘과거의 심연으로 내려가 결정화된 유물을 찾는 진주조개 채취 잠수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전통은 ‘우리가 현재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작을 창출할 수 있는 도구’로 보았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학교를 본다면 ‘학교의 기능은 아이들에게 세계란 어떤 곳인지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지 단지 삶의 기술을 알려주는 곳이 아니게’ 된다. 또한 ‘권위라는 개념을 통해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것은 아이를 어른으로 대할 수 없으며,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어야 함’을 의미한다. 아렌트에게 교육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동시에 그들이 새로움을 실현할 가능성을 보전하기 위해 세계와 아이들 모두를 책임지는 일’이다. 권위에 대한 아렌트의 견해는 자칫 보수적인 교육관을 옹호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민주주의를 곧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민주주의가 질서 없는 혼란의 도가니를 의미하지 않듯이, 교실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권위가 자격증이나 지위로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교사가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질 때 형성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교사의 정치기본권의 보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이다. 정치기본권이 없는데 어찌 온전한 교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귄위와 전통에 대한 아렌트의 태도는 협동학습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협동학습을 비판한다니 아연실색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학생 또래 간의 협동이 발달에 중요하다고 배우고 실천해온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아렌트는 어떤 맥락에서 협동학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것일까?에두아르도 두아르테는 협동학습이 20세기 후반 미국의 미네소타대학교와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파생되었음을 추적하면서, 협동학습의 전제가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즉 ‘다른 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협동학습 이론가들이 그것이 왜 쉽고 명확하게 드러나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협동학습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실패에 대해 회피하게 된다. 두아르테는 협동학습 이론가들이 비고츠키의 이론에서 근거를 찾아 ‘반성적 사고를 내면화된 사회적 대화로 이해하여, 사회적인 언어 능력을 우선시’하게 되고, ‘내적 발화(말)은 의사 소통이나 사회적 발화(말)을 통해 발달하니, 진정한 학습이란 학생들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두아르테가 지적하는 것은 내적 발화가 사회적 발화를 통해 발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발화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즉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도록 하여 그들을 발달의 초기단계에 머물게 하는 학습형태’이다. 이는 사유하는 능력의 발달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는 아렌트가 사유와 행위를 구분한 것과 관련된다. 두아르테는 아렌트는 1972년 민주주의 이론가 맥퍼슨과의 토론에서 “사유는 행위가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행위와 반대로, 참여하고, 수행하는 것에서 상당 부분 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한 것을 소개한다. 아렌트는 혼자서 사유하는 것과 여럿이 행위 하는 것이 같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기비판을 하면서 “나는 관조적 삶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채, 관조적 삶의 관점으로 여전히 전통에서 활동적 삶이라고 불리는 것에 주목 하였다”고 고백하였다. 두아르테는 아렌트가 [정신의 삶]에서 ‘사유는 물러남을 통해 일어나며, 활동적인 삶이 중단되는 순간에 시작된다’는 점을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것에 주목한다. 아렌트는 ‘사람이 가장 덜 외로운 순간은 홀로 있을 때이며, 사유의 장소로 물러났을 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교육에 적용한다면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위해 사유하고 관조하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 그런데 ‘협동합습의 또래-매개 모델은 구조적으로 학생들이 무리에서 물러나도록 그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두아르테가 아렌트의 행위와 사유를 구분하고 행동적 삶만이 아닌 관조적 삶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에 기초하여 협동학습에 대해 비판적인 고찰을 한 것은 향후 진지하게 논의할 만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교육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협동학습은 생각처럼 효과를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습자 간의 소외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둠이 다른 모둠보다 더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모둠 내에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친구들을 배제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일이 실제로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경쟁과 협력이라는 두 가지 본성을 함께 갖게 되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을 조성하는 가이다. 만일 우리가 야만적인 경쟁교육체제를 바꿀 수 있다면, 혹은 마을학교나 대안학교처럼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이라면 협동학습도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사유하는 능력을 가지려면 때론 반복된 무의미한 행위로부터 때론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특히 문제풀이 훈련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책을 통하여 좀 더 교육과 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51/60/cover150/k00203637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516029</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누가 어린이·청소년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가?『불안세대』를 읽교 - [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24</link><pubDate>Tue, 29 Sep 2026 13: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85894&TPaperId=175432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72/90/coveroff/890128589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285894&TPaperId=175432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a><br/>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07월<br/></td></tr></table><br/>김태정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   &nbsp;  지난해 여성가족부의 ‘202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40.1%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며, 중고등학생의 30%는 평상시에도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으며, 26.6%는 우울감을 호소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청소년 사망원인의 1위는 여전히 자살이며, 세이브더칠드런의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나, OECD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조사’ 결과에서 한국은 늘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청소년들의 우울감과 자살위험이 급증한 여러 요인들이 있을 것이나, 최근 주목되는 것이 인터넷 중독이다. 조너선 하이트는 『불안세대』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하이트의 주장은 아주 명쾌하다.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누구나 인터넷을 상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어린이·청소년의 불안과 우울과 같은 정신장애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학자답게 실증적인 데이터를 빼곡히 내놓으면서 스마트폰 중독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사회적 박탈이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늘어나면서 친구와의 대면활동 시간이 급감하였는데 이는 코로나 이전부터 발생한 현상이다. 둘째, 수면박탈이다. 늦은 시간까지 스마트폰 사용으로 수면의 양과 질 모두 떨어졌다. 셋째, 주의 분산이다. 하루에도 수백건씩 울리는 알람 신호로 집중력을 기르기 어렵다. 넷째, 중독이다. 게임과 소셜 미디어 앱 설계자들은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행동주의 심리학 기술을 악용하여 청소년들은 과잉 사용자로 만들었다.하이트는 스마트폰 중독 현상도 남학생들은 여학생들 간에 양태의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남학생들은 과도하게 안전을 강조하는 흐름이 확대되면서 현실 세계에서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놀이활동, 모험활동, 탐험활동이 줄어들자 가상세계로 이동하면서 게임과 포르노에 빠지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이에 비해 여학생들은 소셜미디어에 중독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 하이트는 네가지 특징을 언급한다. ‘첫째,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에 비하여 시각적 비교에 민감하다고 한다. 둘째, 공격성의 경우 남학생들이 신체적 방식으로 나타난다면, 여학생들은 다른 여학생의 관계와 평판을 해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셋째,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이 남학생보다 발달하여 다른 여학생의 불안이나 우울한 감정이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넷째, 인터넷을 악용하는 남성과 남학생들에 의해 성적 공격의 대상이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하이트는 인간이 다른 포유류에 비해서 매우 긴 아동기와 사춘기를 갖는 것에 주목한다. 그는 아동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적응으로 이때 필요한 것은 ‘자유놀이’라고 강조한다. 놀이를 통해서 아동은 문화를 습득하고 사회성을 발달시킨다. 특히 인간은 권위를 갖는 사람을 따르는 권위편향, 또래와 집단의 다수의 행동을 따라 하는 동조편향을 갖는데 이는 모방을 통한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공동체를 통한 상호 유대를 공고히 하게 한다. 문제는 스마트폰 사용은 이런 발달적 특징에 반한다는 것이다. 한편 사춘기는 뇌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 동시에 성적 성숙이 시작되는 단계이며 성인기로 이어지는 과도기로, 인지, 신체, 정서 발달을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다양한 모험과 탐구활동이 꼭 필요하다. 이는 인류의 긴 진화과정에서 각 문화권마다 고유한 통과의례로 나타났는데, 최근 청소년들의 손에 스마트폰이 무차별적으로 쥐어지면서 사춘기 발달을 위한 이런 고유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트는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첫째, 정부가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둘째, 인터넷 사용 연령을 적어도 16세 이상으로 높여야 하며, 셋째, 인터넷 접속 시 나이 확인을 엄격히 해야 하며, 넷째, 학교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하이트는 ‘현실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세계의 과소보호’를 비판하면서 어린이·청소년들이 발달과정에 맞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정책을 제안하였다. ‘첫째, 아동들이 보호자 없이도 현실 세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방임으로 규정하여 처벌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 둘째, 학교에서 더 많은 놀이를 장려하는 것. 셋째, 공공장소를 설계하고 조성할 때 어린이를 고려하는 것. 넷째, 직업교육과 수습 과정,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 등이다. 하이트의 제안은 최근 유럽과 북미권에서 인터넷 접속 연령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한국의 청소년들은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교육으로 일상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행동심리학을 악용한 소셜 미디어와 게임 등이 청소년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문제는 이 위험에서도 계급 간 격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부유층들은 자녀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할 여건을 갖는다. 이들은 문화자본도 풍부하다. 이들 자녀들 중에는 인터넷 접속이 제한적인 구형 핸드폰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방과후 시간과 방학에는 해외여행을 포함하여 다양한 문화생활의 경험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스마트폰 중독의 위험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빈곤층과 중하위층의 경우 그야말로 먹고 살기도 바쁘기에 자녀들을 잘 돌보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주말과 방학에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 계층의 자녀들은 마땅히 다른 놀이활동, 체험활동을 경험하지 못하고 스마트폰 중독에 쉽게 빠지게 된다.중독은 사회적인 문제이다. 담배중독, 알콜중독, 마약중독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중독물질에 쉽게 노출되는 사회구조가 문제이다. 중독과 관련한 실험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것은 중독물질을 차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다른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린이·청소년들이 소셜미디어나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자유놀이활동, 문화예술활동, 체육활동 등에 언제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교육은 인간의 전인적인 발달을 목적으로 한다. 전인적 발달은 신체, 인지, 정서가 총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지금 어린이·청소년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스마트폰 중독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시에 어린이·청소년의 발달에 맞는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한 보다 과감한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교육대전환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이 교육대전환을 만들어내는 길이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72/90/cover150/890128589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729075</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실천하기 『세계의 대안교육』을 읽고  - [세계의 대안교육 - 미래를 위한 교육적 대안의 전망과 가능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16</link><pubDate>Tue, 29 Sep 2026 1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035090&TPaperId=175432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65/9/coveroff/k182035090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035090&TPaperId=175432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계의 대안교육 - 미래를 위한 교육적 대안의 전망과 가능성</a><br/>넬 나딩스.헬렌 리즈 엮음, 심성보 외 옮김 / 살림터 / 2024년 12월<br/></td></tr></table><br/>김태정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   &nbsp;  정의롭지 못한 세상, 불평등한 세상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사회구성원의 다수가 부정의와  불평등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에 주저하기 때문이다. 왜인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유지하려 하고, 낯선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경로의존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결과 구래의 낡은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익숙한 것을 거부하고, 낯설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이들이 소수이지만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서 이런 이들은 배척당하고, 심지어 잔혹한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결코 진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변화를 꾀하려 한다면 기존의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창조의 원리이다. 교육이 다수 민중에게 가난의 대물림의 사슬이 되고, 소수 기득권 세력에게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도구가 된 현실이다. 이 현실을 바꾸려면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실천해야 한다. 바로 이를 위한 중요한 영감을 제시하는 책이 번역되었다. 존 듀이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넬  나딩스가, 헬렌 리즈와 함께 엮은 『세계의 대안교육』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무려 30개의 논문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번역자도 11명이나 참여하였다. 이 중 필자의 관심을 끈 두개의 논문을 중심으로 책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첫 번째 소개할 논문은 클래런스 졸더스마의 ‘대안교육을 위한 신경과학의 가능성과 위험’이다. 최근 뇌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늘어나면서 신경과학의 성과를 교육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가능성과 위험 모두를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대표적인 것이 ‘마음 챙김’이다. 마음 챙김에 대한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전반적 웰빙의 증가, 두려움에 대한 통제, 더 나은 실행 통제, 스트레스 감소 및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번에는 위험성을 살펴보자. 저자는 ‘과학적 발견을 구체적인 교육적 실천에 적용함에 있어서 둘 사이의 간격이 매우 넓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성급하고 상업적인 시도,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경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졸더스마는 이른바 ‘신경 신화’를 경고하는데 여기에는 ‘우리는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설, 우뇌와 좌뇌는 분리된 사고를 한다는 설, 뚜렷하게 다른 학습 스타일이 있다는 주장, 단순한 신체움직임이 학습의 향상을 향상 시킨다는 것, 모차르트가 IQ를 높인다는 것’등이 포함된다. 이런 사이비과학은 한국에도 널리 퍼져있으며 사교육시장을 통해 부모들을 현혹하고 있다.그런데 이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교육에 적용되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증거 기반 강의와 표준화된 성취 테스트를 옹호하는 것’에서처럼 ‘신경과학을 포함한 과학적 연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과학과 과학자는 사회와 분리될 수 없기에, ‘남성적 편견을 포함하는 구조적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ADHD인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고용가능성의 차이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생물학적 문제로 치환시키는’ 오류를 일반화한다. 이는 인간을 오로지 ‘뉴런적 관점에서 보게 하고, 웰빙을 생산적으로 일하고, 경제에 기여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그 결과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교육의 의료화’이다. 대표적으로 ‘ADHD를 뇌 질환으로 분류하고, 많은 학생들이 그 질환을 보인다고 진단하는 것은 순전히 의학적인 것’이 아니며, 이 배후에는 ‘고부담 시험과 학교 운영의 경영 책임성, 그리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있다. 때문에 저자는 교육자들은 ‘교육을 신경과학자들에게 양도해서는 안 되며, 교육을 오로지 학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 그리고 청소년들의 중독, 범죄 행동, 경솔함, 우울함을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보면서, 이런 현상을 만다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을 은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졸더스마의 주장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신경과학의 성과를 과도하게 신봉하는 경향과 심지어 사이비과학을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자, 청소년들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인격적 성숙의 책임을 신경과학을 빌미로 개인의 영역으로 떠 넘기고 그 책무성을 회피하려는 자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논문은 헬레나 싱어의 ‘브라질의 혁신교육운동: 홀리스틱 교육경험’이다. 싱어는 브라질 교육부의 특별 고문으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학습하는 학교도시’의 감독을 맡았던 경험을 가진 실천적인 이론가이다. 이 논문은 파울로 프레이리도 관여했던 브라질 상파울루시의 교육혁신이 브라질 전체로 확산 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한 것이다.  브라질은 25년간의 군사독재 이후 1988년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브라질 헌법을 만들었다. 이어 1996년 [교육 가이드라인 및 재단법]이 통과되었다. 이를 통해 ‘무학년 학교 조직, 포괄적인 평가 도구의 채택, 공원·광장·영화관·도서관 등 새로운 학습공간의 사용’이 이루어졌으며, 무엇보다 ‘모든 학교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의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과도 유사하다. 우리는 1987년 민주화를 이루었고, 1987년 헌법을 개정하였으며, 1995년 매우 한계적이었지만 문민정부가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했고, 학교운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브라질은 한국과는 달리 조금 더 진보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파울로 프레이리가 상파울로시의 교육감이 되면서 시작된 변화였다. 그 중심에는 홀리스틱 교육이 있다. 싱어는 홀리스틱 교육은 ‘개인의 총체적인 발전- 개인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사회적, 윤리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독립적인 공간과 주체간의 협력’에 기반하며, ‘학교는 가족, 지역사회, 다른 교육기관과의 연결을 위한 민주적 학교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민주적 학교의 양태는 매우 다양하다. 첫째, ‘도시의 중산층 지역에 있는 공립학교’에서의 변화였다. 이들은 ‘교실을 분리하는 벽을 허물어 큰 홀을 만들었으며, 커리큘럼은 이전에 과외 활동이었던 것들을 그 자체로 통합’하였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운영을 위한 ‘기금은 연방정부, 주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사회단체와 체결한 협약을 통해 지원’하는 구조였다. 둘째, ‘지역 변혁을 위해 주민단체와 제휴한 공립학교’의 사례이다. 빈민가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교육학적 관점이 반영된 강력한 학교 평의회와 조직화된 길드 및 위원회’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공화국이라도 불리는 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선출된 학생들과, 교사, 교직원이 참여하며, 구성원간의 공존, 존중을 목표로 하였다’고한다.  셋째, ‘지역사회 학교’로, ‘저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예술과 스포츠활동을 지원하는 앵커 프로젝트’이다. ‘학생들은 튜터와 함께 로드맵을 수립하며, 앵커의 넓고 넉넉한 공간에서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사회적·환경적·문화적 지역 문제에 접근하기에 지역사회를 교육과정으로 참여시키게’ 된다. 이를 통해 ‘교육 실천이 학교 벽을 넘어 지역사회에 대한 관여로 이어지며, 지역사회를 생태적으로 재창조하는데 기여 하게’ 된다.넷째, ‘지역사회와 학교를 지원하고 정부의 개발 지원을 받는 교육 이웃 공동체와 이를 장려하는 시민사회 단체’의 경험이다. 브라질 민주화의 성과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의 결성으로 이어졌는데 그중 1997년 결성된 ‘학교도시 협회’가 있다. 이들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구분을 깨기 위한 의사소통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학습하는 동네’라는 방법론을 적용하였는데, 그 핵심은 ‘학교와 지역사회의 간의 협력을 촉진하는 지역사회 교사의 역할 창출, 지역의 교육 기회 도식화와 이에 필요한 파트너십의 구축’이었다. 이들은 ‘교사들을 위한 연수를 실시 하고, 지역사회 지도자와 문화 활동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학교 내 문화공간의 창조, 학교와 지역사회를 위한 학생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였다.홀리스틱 교육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하나로 묶어’내었는데, 이는 ‘연합교육센터’의 설치로 이어졌다. 상파울로시는 ‘3개의 학교를 묶는 연합교육센터를 설치하여 무려 54개의 연합교육센터를 설치했는데, 이 센터는 교육, 문화, 스포츠를 목적으로 하는 공공시설’로 그 목표는 ‘어린이·청소년의 전인적 발달, 커뮤니티 개발, 새로운 교육 경험을 위한 혁신’이다. 브라질의 홀리스틱 교육은 한국에서 2010년 교육감직선제 이후 본격화된 혁신학교, 혁신교육지구와 2014년 이후 확산된 마을교육공동체운동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브라질은 전인적 발달과 성장을 위하여 학교와 지역의 협력, 학생들의 자치활동, 학교 민주화, 그리고 연합교육센터와 같은 공간의 창출을 우리보다 먼저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를 통해 성장한 학생들은 브라질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만들었다. 이는 한국에서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성장한 세대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역으로 성장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의 뿌리는 매우 깊다. 브라질에서는 지방정부를 노동당이 집권하고 2003년 노동당 후보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많은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2018년 검찰의 세탁작전으로 룰라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감옥에 갇히고, 군인 출신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은바 있다. 극적으로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룰라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지만, 보우소나루와 그 지자들은 결과에 불복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다행히도 최근 2025년 3월 26일 브라질 법원은 만장일치로 보우소나루와 일당 8명을 쿠테타 음모 혐의로 재판을 하기로 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 25년간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를 이룬 브라질에서 도살자 혹은 제2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한국 또한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독재를 1987년 민주화로 종식시켰지만 윤석렬과 그 일당들이 벌인 내란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만큼 독재의 뿌리는 깊다. 파시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복해 있었을 뿐이다.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교육만 바뀌어서는 세상이 바뀔 수 없다. 하지만 교육을 바꾸지 않고는 세상을 결코 바꿀 수 없다. 대안교육은 대안교육기관의 교육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면 안된다. 대안교육은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barometer)이다. 대안은 현재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통해서 마련된다. 그리고 이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실천하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세계의 대안교육』 이라는 책이 이를 위한 소중한 영감을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65/9/cover150/k18203509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650985</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왜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파시즘에 경도되는가? 『극우청년의 심리적 탄생』 을 읽고 - [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 - 누가 그들의 마음속 분노, 좌절, 박탈감을 원한과 복수로 키워 극우가 되게 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12</link><pubDate>Tue, 29 Sep 2026 1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039450&TPaperId=175432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78/98/coveroff/k57203945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039450&TPaperId=175432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극우 청년의 심리적 탄생 - 누가 그들의 마음속 분노, 좌절, 박탈감을 원한과 복수로 키워 극우가 되게 하는가</a><br/>김현수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5년 06월<br/></td></tr></table><br/>내란 사태와 이로 인한 조기 대통령선거를 경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란세력을 옹호하는 청년들의 존재였다. 극우세력에게 경도되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문제는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극우적 성향을 청년들이 등장하고 늘어나고 있다. 국가는 다르지만 이들 극우 청년들은 이미 청소년 시기부터 온라인을 통해 극우 선동에 경도되기 시작했음이 다양한 연구를 통하여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신분석이라는 관점에서 청소년과 청년의 극우 경도 현상을 다루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신과 의사이자,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자인 김현수 교수가 최근에 [극우청년의 심리적 탄생]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극우 청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이론으로 크게 세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지위 위협이론이다. 미국에서 백인 남성들이 트럼프와 같은 극우 선동가들에게 휘둘리는 심리적 배경에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누려왔던 백인으로서의 지위 상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으로 누렸던 지위상실의 공포가 자리 잡고 있는데, 한국의 젊은 남성들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의 청년 남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여성들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적 사회로의 회귀를 원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원한과 약한 남성 이론이다. 끝없는 경쟁과 낙오자를 포용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는 청년들로 하여금 소수의 성공한 엘리트들을 증오하게 만들며, 강해야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는 약한 남성을 패배자로 몰아가며 이들은 깊은 원한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은 남자 청소년들의 이런 심리를 잘 보여준다.셋째는 억압과 동일시 이론이다. 그는 아도르노가 정신분석학자들과 함께 한 연구를 소개하면서 자아가 약한 사람은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갖게 되고 파시스트가 됨을 지적한다. 아이들은 힘이 없기에 권위주의적인 부모와 교사들에게 저항하지 못한채 심리적으로 위축되는데, 이때 이들의 분노를 조작하는 극우선동가(정치인,사이비종교인,유투버 등)를 통해 일시적 해방감을 얻으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피해자가 자신을 공격한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협력하는 심리 기제 때문이라는 것이다.청년의 극우화는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이루어진다. 그 원인은 경쟁과 격차이다. 김현수는 경쟁교육은 중학교시절부터 성별 갈등을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게다가 수저사회론으로 표현되는 사회불평등은 청소년들을 불안하게 하고 타자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왜 극우선동에 경도되는지 사회심리적 서사를 이해해야 하며, 청소년들이 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도록,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친절하고 다정한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진짜 아버지의 역할, 불안을 치유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독일에서 파시즘이 준동을 시작했을 때 칼 만하임은 세대문제를 다루면서 연령이 젊다고 해서 반드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세대는 생물학적 연령적 동질성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경험을 공유하였는가에 달라짐을 지적하였다. 신자유주의는 청소년과 청년을 극우로 경도하게 만들고 있다. 김현수는 돌봄의 부재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극우화한다고 지적하였다. 이들이 극우 선동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교육과 돌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제도교육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마을교육공동체가 그래서 중요하다. 경쟁은 낙오자나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불평등은 원한과 분노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교육을 여전히 계층상승의 수단으로 보는 한, 교육을 여전히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보는 시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좌지우지 해 왔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경쟁교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청소년과 청년의 극우화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정부가 등장하였으나 우리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낡았을 뿐만 아니라 해악적인 것들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대전환시켜야 하는데 이는 교육대전환 없이 불가능하다. 교육대전환운동이 앞으로도 중단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78/98/cover150/k57203945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789812</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를 읽고  -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부족함이 만들어 내는 선택과 행동의 비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06</link><pubDate>Tue, 29 Sep 2026 12: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2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037616&TPaperId=175432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94/94/coveroff/k5020376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037616&TPaperId=175432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부족함이 만들어 내는 선택과 행동의 비밀</a><br/>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03월<br/></td></tr></table><br/>김태정 (사)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이사   &nbsp;  왜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을까? 왜 빈곤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것일까?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빈부 격차가 교육격차를 만들고 교육격차가 다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교육격차는 사람들의 정치의식의 격차로 이어지며 이는 종종 하층계급이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정치적 선택을 하는 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nbsp;  여기서 다시 질문을 해보자. 도대체 결핍 즉 무언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대체 어떤 어려움을 겪기에 이런 행동을 하고 그 결과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된단 말인가? 바로 여기에 힌트를 주는 책이 있다. 최근 번역된 행동경제학자인 센딜 멀레이선과 인지심리학자인 엘다 샤퍼의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이다.인간은 무언가 부족할 때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다. 결핍 상태에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집중은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저자들은 이를 ‘터널링’으로 설명한다. 이는 ‘터널안으로 들어가면 멀리서 빛을 발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 사물은 보이지 않는 터널 시야 현상’을 근거로 만든 단어이다. 터널링에 놓인 사람은 사물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달리게 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렵게 된다.   &nbsp;  결핍은 사람들을 터널안으로 끌어들이고 대역폭 즉 ‘주의를 기울이고 좋은 판단을 내리며 앞서 세웠던 계획을 고수하고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을 축소 시킨다. 저자들은 학교 옆에 기찻길이 위치하여 소음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적인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 기차 소음에 직접 노출된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생들은 덜 노출된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생들보다 학업성취도가 떨어졌다. 저자들은 기차 소음을 변수로 들었지만 어디 변수가 이뿐이겠는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 간 관계가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생활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의 학습격차는 기차 소음 이상의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가정폭력과 빈곤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각종 스트레스로 학업성취도가 현저히 낮게 나타나는 것, 가난한 집안의 대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으로 부유한 집안의 대학생 보다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같은 이유이다.   &nbsp;  결핍은 인지 기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핍은 유동성 지능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가져온다. 인지 능력은 결코 유전적으로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변한다. 저자들은 유동성 지능 측정 도구 중 하나인 ‘레이븐 누진 행렬 검사’를 통해 유동성 지능이 빈부 격차나 수면격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피실험자의 재정결핍과 수면결핍이 지능에 부정적인 결과를 영향을 미쳤다. 결핍은 실행 제어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을 두고 선택해야 할 때 빈자는 부자에 비하여 눈앞의 문제에 매몰되게 된다. 저자들은 이를 “빈곤 자체가 정신에 세금을 부과한다”고 표현한다. 결핍은 긴 안목을 가지고 미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이익을 보류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nbsp;  그런데 이는 경제적 빈곤에 그치는 문제일까? 눈앞에 이익에 매몰된다는 것은 경제행위에만 해당 되지 않는다. 생계를 위협받거나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기 어렵다. 저자들은 이렇게 단언한다. “결핍은 우리를 멍청이로 만들고 우리를 보다 더 충동적으로 만든다.” 매우 슬프지만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위한 정당과 정치인들의 달콤한 거짓말에, 혐오적인 선동에 휘둘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nbsp;  저자들은 결핍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환경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빈곤은 빈곤한 사람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맞다. 그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실업자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환경이 아닌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낡은 발상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항공기 조정사의 반복된 실수가 조정사의 훈련 부족이 아니라 조종 좌석의 설계 자체가 문제였던 사례를 예로 들면서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결핍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대역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저자들은 ‘투잡(two job)을 뛰어야 생계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아이 둘을 가진 싱글맘에게 만일 정부가 공적 보육을 제공한다면 돈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데이케어 프로그램 운영 시설과 친정 어머니에게 맡기고 데리러 오는 시간을 절약하여 대역폭 즉 실행 제어 능력이 커질 수 있음’을 사례로 제시한다. 저자들은 ‘집세와 식비, 교육, 의료비는 필수 가계 예산으로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대역폭에 영향을 미친다면 교육, 보육, 보건, 금융을 별개로 보아서는 안되며, 어떤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제공하는가 그리고 보다 나은 환경을 어떻게 설계하는가’가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nbsp;  한편 저자들은 결핍의 덫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느슨함’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수술 건수에 비해 수술실이 부족한 병원에서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수술실 하나를 비워두는 것이었다. 왜인가? 병원에서 수술은 예정된 수술과 예정되지 않는 수술로 나뉘는데 수술실을 예정된 수술을 하는데 다 써버리게 되면, 예정되지 않는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수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실을 재배정 해야 하기에 의사들은 시간부족에 내몰리게 되고 심지어 과실 사고도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수술실 하나를 통째로 비워두고 나니 긴급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병원 경영에만 적용되는 방법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조금의 쉴 틈 조차 없이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경우에 내몰리다면 아주 작은 변수에도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그 결과 하루 혹은 한주 혹은 한달 전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게 된다.   &nbsp;  느슨함이 주는 교훈은 어린이·청소년의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국의 어린이·청소년들의 행복도가 국제적 비교평가에서 낮게 나타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상에서 느슨함 즉 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내 주장에 대해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데 무슨 더 이상의 느슨함을 주어야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붙잡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생들을 둘러싼 환경에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어린이·청소년의 전인적 성장과 발달보다 입시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입시경쟁교육은 학생들에게 쉴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빈 수술실이 없는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처럼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안의 다람쥐처럼 돌면서 허덕인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인지와 정서의 통합적 발달, 지·덕·체의 균형적 발달은 커녕 오히려 결핍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는 인지 기능, 실행제어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느슨함이 허용되지 않는 결핍 상황에서 그들은 가장 손쉬운 선택 즉 눈앞의 스마트폰을 붙들게 된다.   &nbsp;  저자들이 말했듯 결핍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 느슨함이 허용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교육적 관점에서 본다면 결핍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학교-지역사회-국가 모두가 나서야 한다. 오는 6월에는 지방자치선거가 치뤄진다. 선거철이 되면 교육감 후보들은 너 나할 것 없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지자체장 후보들은 주민 복지 확대를 이야기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핍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터널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개인적 수준- 가정 수준- 지역 공동체적 수준- 국가적 수준을 연결하여 심도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일 우리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결핍의 덫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과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구안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교육과 복지는 물론 조직 운영 등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94/94/cover150/k5020376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949408</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AI 시대 교육자치 혁명: 혁신교육의 성찰과 전망』을 읽고 - [AI 시대 교육자치혁명 : 혁신교육의 성찰과 전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99</link><pubDate>Tue, 29 Sep 2026 1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9096&TPaperId=175431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1/15/coveroff/k7121390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9096&TPaperId=175431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AI 시대 교육자치혁명 : 혁신교육의 성찰과 전망</a><br/>한만중 외 지음 / 살림터 / 2026년 05월<br/></td></tr></table><br/>김태정 (사)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이사  &nbsp;  지방자치제도가 부활 되고 나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선거를 전후로 해서 정책 제안의 성격을 갖는 책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2010년 교육감 주민직선제가 전면화되면서 교육자치를 주제로 한 책들이 선거시기 마다 나왔다. 이번 지방 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한 권의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AI 시대 교육자치 혁명: 혁신교육의 성찰과 전망』 이 그것이다. 필자가 무려 19명이나 되고 필자 중에는 교육감 후보로 선거에 참여한 분들도 있고 교육감으로 당선된 분도 있다. 너무 다양한 영역의 글들인지라 이를 모두 다룰 수 없기에 인상 깊은 세 편의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nbsp;  먼저 성열관·이준희의 「혁신학교와 교육의 변화 및 과제」이다. 저자들은 혁신학교가 가져온 교육의 변화를 1) 교육의 공공성 2) 역량 중심 교육과 전인적 성장 및 발달 추구 3) 교육과정·수업의 변화 4) 소통·참여에 기반한 민주적 학교 운영 5) 지역사회와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 6) 교사 학습공동체 활성화로 전문성 신장 7) 행정업무 중심에서 교육활동 중심의 학교 체제로 변화 8) 교사의 자율과 책임, 신뢰와 협력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 지향을 들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혁신학교는 한계와 과제를 모두 안고 있다. 저자들은 혁신학교의 한계로 1) 성과 입증의 어려움 2) 지속가능성의 문제 3) 대학입시 등 기존 제도와 정합성 4) 혁신학교 상의 추상성과 개별 학교 자료에 의존한 혁신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 혁신학교의 일반와 혁신학교의 표준화를 제시하였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일반화의 핵심은 1) ‘평가혁신’을 중심으로 혁신교육 일반화 정책 강구 및 수행 2) 무작위 수업 표집 등으로 혁신교육 일반화 정도에 대한 질 판단 등이다. 저자들은 혁신학교의 역사가 15년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기에 일정한 표준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표준은 획일과 다른 것으로 ‘공통 원칙과 전략을 기본으로 사용하되 다양성을 열어 놓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제안은 향후 혁신학교 정책을 구체화하는데 참조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nbsp;  다음 글은 신선호의 「포스트코로나 시대 우리나라 학생 마음건강 위기 지원: 현황과 과제」 이다. 저자는 위기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구조적 접근이 필요함에도 현실은 일상의 외주화와 교육의 사법화로 학교 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처했으며, 게다가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시도교육청 별로 관련 정책이 파편화되어 있음을 비판한다. 저자는 회복탄력적인 학교 생턔계를 위하여 관점의 재설계를 제안하는데 구체적으로 1) 위기 개입에서 보편적 마음 성장으로 전환 2) 대상 집단을 고위험군에서 모든 학생으로 3) 분절적 프로그램에서 통합적 시스템으로 4) 외부전문가 의존에서 학교주도로 5) 치료가 필요한 문제에서 핵심 역량으로 6) 교사의 역할을 의뢰자에서 핵심 돌봄 제공자로의 전환을 주장한다.저지는 마음건강 위기 지원을 위한 핵심과제들도 제시하였다. 일상의 외주화라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게이트 키핑’ 전략으로 1) 통합지원팀 권한 강화 및 학교 위원회 재편 2) 정기적인 사례관리 회의 운영 3) 데이터 기반의 보편적 선별 검사 실시를 주장한다. 한편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안전망인 ‘게이트 쉐어링’ 전략으로 1) 지역단위 통합지원 정보공유 시스템 구축 2) 지역사회 멘토링 프로그램 활성화 3) 외부기관 합동 사례회의 정례화를 제시한다. 또한 보편적 역량으로 마음건강 교육을 강조하는데 1) 사회정서교육의 교육과정 전면 도입 2) 디지털 시민의식 통합 3)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만드는 교육을 제안한다. 여기에 지원자인 교사를 위한 돌봄 정책으로 1) 교사 역량 강화 및 전문적 지원 체계 구축 2) 교사 마음 회복 안식년 제도 도입 및 법제화 3) 교사의 권한 보호 및 강화를 실행방안으로 제시하였다. 올해 교육감 선거 당선자들의 공약에서 정서 및 마음건강 지원이 전반적으로 확대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후유증을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적 고민의 반영일 것이다. 저자의 제안처럼 마음건강 위기 지원은 관점과 체계 그리고 방식 모두에서 전환이 절실하며 이를 위해서 교육청만이 아니라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시민사회의 협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nbsp;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 즉 AI시대 교육자치혁명에 가장 조응하는 글은 장용수의  「인공지능 시대, 교육의 위기와 대응전략」을 소개한다. 저자는 현재 AI 관련 현재 교육 정책이 심층적이고 철학적인 고민보다는 기능적 효용성에 매몰된 기술 만능주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진단한다. 특히 생성형 AI 사용 빈도가 많아질수록 사고의 외주화가 심화됨을 각종 데이터와 연구 사례를 통해서 그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성과의 착시 현상이다. AI 도구에 의존하여 만들어낸 단기적 산출물은 보기에도 좋고 정답률로 높지만 학습자의 인지능력 특히 기억력, 문제해결 전략, 전이 능력 등은 오히려 약화되는 현상을 만든다. 둘째, 비판적 사고의 붕괴이다. 비판적 사고를 위해서는 지식의 습득, 정보에 입각한 의사결정, 추론적 능력이 중요한데 AI에게 과의존하면서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게 된다. 더욱 우려될 만한 것은 연령대별 실험에서 성인들보다 청소년들이 더 비판적 사고능력이 낮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셋째 AI를 사용하게 되면 뇌 세포간 연결성 저하, 전두엽 활동의 축소 등 메타인지적 해리, 기억력의 약화 등 신경과학적 수준에서도 그 위험성이 확인되었다.저자는 AI시대에는 교육은 인지과학에 근거하여 보다 정교한 설계를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첫째, 인지적 마찰(Cognitive Fricition)이다.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거나 작업을 할 때 겪는 저항이나 어려움을 뜻하는 인지적 마찰은 매우 중요하다. AI에 의존하면 인지적 게으름이나 인지적 부채를 초래하게 되기에 의도적으로 학습자를 위해 인지적 마찰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바람직한 어려움이다. 학습자가 어려움을 겪게 설계한다.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통해 장기기억과 지식의 전이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셋째, 생산적 실패의 경험이다. 학습자가 정답을 배우기 전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을 통해 실패를 경험하는 것인데 이는 첫 단계에서는 가이드 없이 문제해결에 도전하고 두 번째 단계에게는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핵심원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결과 단순한 설명 후에 반복 연습을 하는 것 보다 더 깊은 이해를 낳게 된다. 넷째, 마찰적인 AI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바람직한 어려움을 AI인터스페이스 설계에 적용하는 것으로 학습자가 AI결과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도록 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인지적 마찰을 유도하기 위한 수업 전략도 제안하고 있는데 그 방법론들은 향후 현장에서 다양하게 적용되고 보다 많은 임상적 경험의 축적을 통해 그 실효성이 검증되는 경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이번 제 9회 지방자치선거 교육감 당선자들의 공약들은 그야말로 AI 정책의 범람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약이 AI를 교육적을 활용하겠다는 것에 중점을 두다보니, AI사용이 학습자의 사고의 외주화와 비판적 사고능력을 약화시킬 것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과 실효성을 가진 활용전략을 제시하는데 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이런 점에서 AI 교육정책은 인지과학적 측면의 고려는 물론이고 인지와 정서의 통합적인 발달이라는관점에서 다 신중하고 보다 세밀한 교수-학습 전략의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nbsp;  『AI 시대 교육자치 혁명: 혁신교육의 성찰과 전망』은 선거를 앞두고 발간된 것이라 그런지 다소 미흡함도 발견된다. 교육이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학교와 마을의 협력을 위한 교육생태계인 마을교육공동체의 중요성을 고려 할 때 이에 대한 성찰과 그 발전방향에 대한 내용을 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더욱 중요하게 지방교육자치의 목적이 주민들의 참여, 행정의 민주화, 지역균형발전, 사회의 민주화라는 점에서 분권과 자치를 실현하는 경로인 거버넌스(협치)에 대한 내용도 매우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2010년 이후 도도히 확산 되고 있는 혁신교육의 흐름을 이해하고 향후 실천을 모색하는데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론 없는 실천은 맹동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정책 제안서의 성격을 갖는 도서들이 보다 널리 읽혀지길 기대해 본다.  &nbsp;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1/15/cover150/k7121390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111535</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 『교육사상가의 삶과 사상 3:  한국편 1』을 읽고 - [교육사상가의 삶과 사상 3 - 한국편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94</link><pubDate>Tue, 29 Sep 2026 1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0907&TPaperId=175431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52/coveroff/k4021309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0907&TPaperId=175431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교육사상가의 삶과 사상 3 - 한국편 1</a><br/>강순원 외 지음, 유성상 엮음,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기획 / 살림터 / 2026년 07월<br/></td></tr></table><br/>김태정 (사)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이사  &nbsp;  한국 사회 안에는 구한말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 일본의 한반도 강점, 해방 이후 외세의 개입과 분단이 만든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남한의 경우 해방 이후 미군정체제가 3년이나 지속되었고, 일제에 부역했던 세력들의 청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을 등장시켰다. 이는 학문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서양의 이론을 수입하는 것이 대세를 이루게 되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마치 국수주의처럼 오인되기도 하였다. 교육사상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외국의 유명한 교육사상가들에 대한 소개와 연구는 왕성하게 이루어졌으나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식민지시대와 독재시대에 이에 맞섰던 교육사상가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였다. 이런 점에서 『교육사상가의 삶과 사상: 한국편 1』의 출간은 매우 의미가 깊다.안창호, 차리미사, 리만규, 방정환, 함석헌, 오천석, 이오덕, 성내운, 이규환, 김정환 총 10명의 삶과 사상을 소개한 이 책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외세의 침략과 독재에 맞선 항거의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교육사상가들이 단순한 사상가들이 아니라 현실에 참여하고 개입한 실천가들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한 이들이다. 또한 이들 가운데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이론적 실천 또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 모색의 과정이었고 이는 후대에도 귀감을 주고 있다.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에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안창호, 방정환 같은 분도 있지만 교육학 전공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분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것이고,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독립운동가로서 안창호의 삶에만 익숙한 분들에게 교육사상가로 안창호의 사상을 접하는 것은 낯선 것이 될 것이다. 또한 교육학자로만 알려진 분들이 당시 부정의한 사회와 불의한 권력에 맞섰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낯선 것 같지만 실상은 독재정권 시절 실천적 지식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매우 익숙한 모습이기도 하다.한편 한국의 교육사상사를 다루는 것은 서양의 교육사상을 한국에서 어떻게 재전유되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들 상당수가 외국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조금이나마 변화시킬 수 있으려면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어야 한다. 당장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술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기 보다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비판적 사고와 성찰적 사유능력을 갖추는 것이 보다 중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육사상가의 삶과 사상&nbsp;3:&nbsp;한국편 1』은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52/cover150/k4021309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5282</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 『소문 너머 핀란드 교육』을 읽고 - [소문 너머 핀란드 교육 - 핀란드 교육자와의 대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91</link><pubDate>Tue, 29 Sep 2026 12: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0442&TPaperId=175431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40/coveroff/k9021304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0442&TPaperId=175431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문 너머 핀란드 교육 - 핀란드 교육자와의 대화</a><br/>이혁규.야리 라보넨 지음 / 살림터 / 2026년 08월<br/></td></tr></table><br/>김태정 (사)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이사  &nbsp;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북유럽의 작은 나라인 핀란드가 좋은 성적을 얻어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PISA 상위권에 있는 국가 중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폴 같은 경쟁적 교육시스템이 아닌 북유럽 국가에서 PISA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하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고, 이는 핀란드는 물론 인접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체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교사들이 단체로 해외연수를 가기도 하고,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들도 탐방을 하기도 하였다. 핀란드 교육 탐방기는 책자로 만들어져 널리 읽혀지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도서가 2010년에 발간된 『핀란드 교육혁명』이다.필자도 핀란드를 두 번 방문한 경험이 있고, 탐방 전 후로 핀란드 교육 관련 도서나 탐방 보고서들을 탐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극히 짧은 탐방 기간 동안 핀란드의 교사, 교육행정가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도 없었거니와 관련 도서와 보고서들도 외부자의 시선이 가지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소문 너머 핀란드 교육』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핀란드 교육 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교육철학, 교육체제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개의 방식이 묻고 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해당 분야에 특별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되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우선 핀란드 교사들의 전문성은 어떻게 확보되고 있는가이다. 교사들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을 높게 만들 것인가? 한국은 그동안 교사들을 줄 세우는 교원평가제도를 무려 16년이나 유지해 왔다. 이에 대해 교사들과 일부 깨어 있는 학부모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 되었고 그 결과 다행히 내년 즉 2027년 우수교원과 비우수교원을 나누는 식의 교원평가는 실시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교사에 대한 공식적인 장학이나 평가시스템이 없다. 국가평가센터가 있지만 한국과 같은 교원평가제도를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교사들의 전문적인 학습을 지원하는 제도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즉 “교사를 단순한 수업 실행자가 아니라, 학교 공동체와 학교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는 개발자로 인식”하고, 학교차원의 프로젝트로 “다전문가 협력을 지향하는 학교 공동체로의 발전, 범교과 역량의 학습을 지원하는 혁신적인 학교 공동체 설계”를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중요하게 “지역 교육과정 개발을 통해 교사와 교장에게 학교 공동체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교사의 전문적 학습을 지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핀란드라고 해서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OECD가 주관하는 교원 및 교장 대상 설문조사인 TALIS 2024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핀란드 교사들은 다문화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과거보다 더 큰 부담을 안고 있으며, 젋은 교사층을 중심으로 ‘직무 소진과 교직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표면화’되고 있다. 이는 사회가 교사에게 요구하는 기대의 범위가 크게 확정되어 교사의 역할과 상이 ‘수업 설계자이자 생활 지도자이며 정서적 조력자’로 변화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핀란드만이 아닌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다음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핀란드의 교원노조인 OAJ는 교원 10명 중 9명이 가입한 노동조합으로 교사만이 아니라, 교대생, 은퇴 교사도 포함하여 약 12만명이라고 한다. 핀란드는 OECD 국가 중에서도 노동조합조직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데, 전체 노동자의 약 70%가 노조에 가입해 있다.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에서 노동조합 가입은 이념적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기본적 권리이자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가입률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국가와 노동조합의 관계가 협력적 관계 모델로 발전하는 동력이 될 수 밖에 없다. 즉 ‘핀란드에서는 노동조합이 사회 제도의 일부로서 공동선을 위한 협력의 주체이며, OAJ는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의 질을 함께 높여가는 중요한 파트너’이다. OAJ는 ‘국가, 지자체, 교육 관련 기관들과 단체 협약을 교섭 체결하는 노동조합으로의 기본적인 역할만이 아니라, 연구 기반 교사 교육을 옹호하고, 전문성 기준 개발, 교사 연수와 멘토링, 이민자 교육 정책, 근무환경 개선, 교육과정 논의 등에 정책 파트너로 기능’한다. 이는 한국의 교원노조가 처한 상황과 대비된다. 한국은 반공을 기치로 한 권위주의적 정권이 연이어 집권한 결과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내려 있다. 초기에는 노동조합을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였으나, 1987년 이후에는 이기적인 이익집단으로 매도하는 프레임으로 이동하였다. 실제로 최근에는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민주노조운동은 그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에 처해있다. 과연 한국이 핀란드처럼 노동조합의 조직율을 높이고, 노동조합이 국가의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또 조합원만의 이익을 넘어 공동선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주체로 성장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현재의 핀란드 교육체제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간과해 왔던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주목이 필요하다.마지막으로 협력적 교육 거버넌스이다. 이 책에서는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소개하고 있다. 핀란드의 국가 교육행정은 두 단계로 구분되는데 ‘첫 단계인 교육부는 법률을 준비하고 개정하며, 국가의 교육재정 지원을 총괄하고, 둘째 단계인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차원의 교육개발기관으로 유아교육에서 성인교육에 이르기까지 국가 교육과정과 자격 기준을 개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핀란드의 국가교육위원회는 ‘국가·지방자치단체·학교·교사·산업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명령과 통제가 아니라 공동 설계를 핵심 원리로 삼아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만드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육과정의 개발로 대략 10년 주기로 교육과정을 개정하는데 국가는 전체적인 방향과 큰 틀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것은 자치권을 가진 지방정부를 통해 구체화 되는 경로’를 가진다. 핀란드는 고도로 분권화된 교육체제로 지방정부와 학교에 자율성을 부여하는데 그 결과 한국과는 달리 ‘학급당 학생 수에 대한 강제 규제가 없고 지방정부의 특성을 고려해 학급 규모를 결정’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교원 전문성 개발을 위한 연수지원으로 연수 운영을 주로 공모(open call)방식’으로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앙정부의 행정기관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와 교사, 학부모와 산업계가 함께 교육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중심축’으로 ‘핵심 업무 대부분은 현장과의 상시적 소통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한국의 국가교육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과정에서 핀란드의 국가교육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공개적으로 결과를 발표한 바도 있다. 그런데 현실의 국가교육위원회 운영은 핀란드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현장과의 소통 부족하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초등학생 하교 시간 연장 논란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국가교육위원회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정부는 최근 교육재정교부금 개정을 교사, 학생, 학부모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은 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교육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강행하려 하고 있다. 대체 이런 중요한 의제를 두고 국가교육위원회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 바로 이런 꼴이 아닌가 싶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교원의 높은 전문성, 교원노조의 높은 위상과 역할, 협력적 교육거버넌스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한국과 같은 악무한의 경쟁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 교사가 한국과 핀란드의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는 교사와 학부모의 협력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치열한 시험이나 경쟁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시험이 있고, 부모님들은 이와 관련하여 교사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여기와는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핀란드에서는 많은 면에서 관계가 더 친근합니다.” 최근 교사에게 온갖 갑질을 하는 괴물 부모들의 이야기가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의 에피소드 소재로 다루어졌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그 학부모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태도이다. 원래부터 괴물 부모는 없을 것이다. 치열한 시험과 경쟁 문화가 괴물 부모들을 만들었음에도 국가는 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우리가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함에도 정작 대학서열체제, 입시경쟁교육이 없는 핀란드, 노동자가 존중받는 핀란드, 연대와 협력이 문화로 자리 잡힌 핀란드를 말하지 않는다면 결국 수박 겉만 핥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발간된 『소문 너무 핀란드 교육』은 우리에게 보다 깊은 탐구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nbsp;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40/cover150/k9021304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914022</link></image></item><item><author>vovo1968</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을 읽고 - [인공지능 시대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 - 헌법에 숨겨진 교육의 자주성에 관한 오해와 진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85</link><pubDate>Tue, 29 Sep 2026 1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0390185/175431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1778&TPaperId=175431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69/45/coveroff/k4321317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1778&TPaperId=175431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공지능 시대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 - 헌법에 숨겨진 교육의 자주성에 관한 오해와 진실</a><br/>채희태 지음 / 살림터 / 2026년 09월<br/></td></tr></table><br/>서평: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을 읽고  &nbsp;  김태정 (사)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이사  &nbsp;  헌법 31조 4항의 내용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이다. 이는 교육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고, 아마 대부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교육의 자주성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사람들이 대체로 당연하게 여기는 주제라면 답변들도 거의 비슷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nbsp;  도서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에서 저자는 교육의 자주성에 대해 탐구한다. 동시에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 나아가 교육자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을 교육전문가로 칭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상식이나 통념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nbsp;  저자는 먼저 ‘세계 40여 국가의 헌법 중에서 교육의 자주성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함’을 확인시킨다. 다른 나라들은 ‘교육의 자주성’을 대신하여 다양한 용어를 썼는데 ‘독일은 학문의 자유, 일본은 부당한 지배 금지, 미국과 독일은 교육의 지역 분권,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 평등, 프랑스는 학생 중심으로 각국의 역사적 맥락에 맞는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헌법 31조 4항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자주성이라는 단어는 지배적 통념과는 달리 1948년 7월에 공포된 「제헌헌법」에는 없었고, 1949년 12월 공포된 「교육법」을 통해 명문화되는데 여기서는 ‘교육의 자주성의 주체를 명확하게 국가와 지방공공단체’로 특정하였음을 보여준다. 이후 1961년 5월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헌법 개정을 하는 과정에서 ‘대한교육연합회 등이 요구했던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 요구를 헌법에 포함’시키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당시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했던 군사정권이 교육계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1949년 교육법과는 달리 군사정권 시절 개정된 헌법에는 ‘교육의 자주성의 주체도 목적도 사라진 채 선언만 남았다’는 점이다. 한편 교육의 전문성은 박정희의 사망 이후 1980년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가 헌법을 다시 개정하면서 대한교육연합회 등의 요구를 받은 것으로 결국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군사 정권의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타협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교육의 자주성이 ‘적층적 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안에는 독립, 자치, 특권이라는 결이 동시에 들어 있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헌법 재판소의 판결에서도 나타나는데, 특히 교육의 자주성에서 그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저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찬반논리에서 등장한 논쟁, 교육감 직선제를 둘러싼 논쟁, 국정교과서 논쟁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모순된 내용으로 점철되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논쟁들에서 나타난 패턴인데 저자는 이를 1) 교육의 자주성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 출발했지만 저항이 성공하게되면 저항의 주체가 권력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2) 교육의 자주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주체가 실질적 수혜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3) 이 과정에서 정작 학생들은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nbsp;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즉 ‘교육의 자주성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가 되고, 교육의 전문성은 교육전문가집단의 배타적 권한으로 해석되면서 지역 주민, 학부모의 참여를 제한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저자는 ‘교육전문가와 관료에 의한 교육자치가 아니라 시민들이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교육으로 전환’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교육주체의 재구성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헌법 31조 1항을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로 헌법의 구조 자체가 교육의 주체를 ‘교육받는 자’로 설정하고 있으며, 교육의 전문성과 교원의 지위는 하위 차원의 조항이기에, 교사 또는 교육전문가를 교육의 자주성의 주체로 설정하는 것은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교사도, 학부모도, 지역공동체도 모두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지원자이자 주체라는 것이다.   &nbsp;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의 저자의 주장은 ‘교육은 교육전문가인 교사만이 할 수 있다거나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낡고 오래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듣기에는 여전히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 청소년의 전인적인 성장과 발달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에 더 이상 갇혀 있을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인류에게 미증유의 사건이 될 인공지능의 시대에 걸 맞는 근본적인 성찰과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만든 신조어인 엉당질(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은 교육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69/45/cover150/k4321317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69455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