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꾼 일공일삼 45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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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경성역 근처, 저 놈이. 놈이! 하고 불리다가 이름이 노미가 되어버린 사내아이가 있었다. 부모도 모르고 집도 모른 채 염천교 아래 소매치기 소굴에서 자라게 된 노미. 바른 길을 가야한다고 벅수누나가 잔소리처럼 말해도 노미의 꿈은 조선 최고의 소매치기 꾼이 되는 것이었다. 노미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열 두 살이 된 지금까지 살뜰히 챙겨준 벅수누나의 꿈은 이 짓을 그만두고 노미와 시골에 내려가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파란 반도단(소매치기 무리 이름)의 두목은 자신의 수입원인 아이들을 놓아줄 마음이 없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잡아두고 있는데 벅수는 처음부터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있다. 그러니 노미가 이 세계에 손을 담그는 것을 막고 싶어 하는 것이다.


<조선 최고 꾼>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서울 역 근처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무리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꾼이 되고 싶어하는 노미가 우연찮게 인신매매단에 붙잡힌 소녀들을 구출하게 된다. 그 사건이 신문에 실렸는데 구출하고 홀연히 사라진 이를 조선 최고의 뽀이꾼이라고 했다. 노미는 동네의 고보형(중학교에 다니는 형)에게 뽀이꾼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서양 말로 소년이라는 뜻의 보이와 김군, 이군의 그 군을 합쳐 부른 말이라는 것을 듣게 된 노미는 그 뽀이꾼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랑한다. 고보형은 어떻게 그런 용감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고, 노미의 용감한 행동을 들은 형은 넌 정말 조선 최고 꾼이라고 할 만해.”라고 칭찬한다. 노미가 소매치기꾼에서 조선 최고 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노미는 소매치기 무리에서 자랐지만 심성이 바르고 착한 아이였다. 옆에서 돌봐주고 긍정적인 말만 해준 벅수누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동네 고보형이 조선 최고 꾼이라고 불러주면서 노미는 드디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지 드디어 눈앞이 환해졌다. 이름 아닌 이름 노미에서 어엿한 최고군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경성역 앞에서 만났던 솔이의 오빠를 돕기로 한다. 바로 독립운동 명부를 대전에 있는 대륙점방에 전달하는 일이다. 그것이 벅수누나와 고보형이 말하던 바른 길임을 아니까.


김정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노미의 변화를 통해 무한한 사랑과 믿음을 아이들에게 주었을 때 얼마나 아름답게 피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의 한 면만을 보고 나쁜 아이로 단정 짓지 말고 긍정적인 눈으로 보자는 것이다. 소매치기 소굴에서 자란 아이는 소매치기가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극단적 상황에 있더라도 벅수누나나 고보형, 솔이 누나, 미카엘 선생님이 무한 신뢰를 주었기 때문에 노미가 소매치기꾼이 아닌 조선 최고 꾼이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길은 소매치기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비룡소의 일공일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내용에 맞는 삽화가 적절한 장면에 들어가 있어서 초등 중학년 이상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중학년의 경우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부모나 교사가 일제 강점기에 대한 정보를 주어 읽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고학년이라면 환경의 영향력으로 토론이 가능하다. 열악한 환경이 인간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긍정적, 부정적인 면으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 자신이 부모에게서 들었을 때 힘이 나는 말이 무엇인지를 주제로 글쓰기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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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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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의 저자 전안나씨는 이미 여러 권의 독서 관련 책을 냈다. 그의 책은 SNS에 소개된 글에서 봤고 직접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번 신간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는 가디언 출판사의 서평단 자격으로 읽게 되었다. 독서에세이인데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궁금했다.


그의 지난 날에 대해 알고 깜짝 놀랐다. 입양아, 폭력 가정, 아동 학대... 얼마 전 종영한 <서른, 아홉>은 입양에 대해 긍정적으로 그린 드라마였다. 아무리 좋은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해도 입양아라는 딱지가 그들의 삶을 계속 지배할 수밖에 없다는 주지의 사실과 건강한 입양가정의 모습을 공감력 있게 그려냈다. 사실 입양가정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모습을 현실인양 착각하기 쉽다. 물론 <서른, 아홉>속 입양가정의 모습도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도 있을 것이다. 학대받은 아이, 양육지원비 때문에 입양한 사람들 같은 뉴스들이 그렇다.


전안나씨의 사연도 뉴스에 나올 법했다. 1982년에 태어났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아 무적자였고 86년에 입양되었지만 1년이나 지나서 양부모의 호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과 학대. 그의 양부모, 특히 엄마의 폭언과 폭행은 분명 범죄였다.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오롯이 여린 몸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몸에 난 상처는 아물면 사라지지만 마음의 상처가 어디 그런가. 어서 성인이 되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책장을 급하게 넘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일만 했다.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취직을 하자 양엄마는 급여를 자기 통장으로 이체하라고 협박했다. 전안나 작가는 스물 일곱살, 결혼하기 전까지 6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양엄마에게 보내야했다. 양엄마라는 사람은 교회에서 신실한 권사인가 뭔가였는데 입양한 자식을 수시로 괴롭히고 돈까지 갈취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이 무슨 기막힌 소설 같은 이야기인가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불행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뒷목 잡게 하는 시어머니의 행동도 있었지만 요즘은 좀 바뀌었다고 한다.


이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글을 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세 번이나 고쳐 썼다고 한다. 3년 전 처음 쓸 때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렸고, 재작년에는 분노로 손이 떨렸다. 그리고 1년 후,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삶을 자산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번 책을 통해 아마 작가는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100%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이며 도대체 왜 태어났어야 했는지에 대한 답은 얻은 것 같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p.237

내 삶에 스며든 자격지심을 내려놓는다. 고아가 된 것도, 입양이 된 것도, 아동 학대를 받은 것도 내 잘못이 아니야 하며 죄책감을 내려놓는다. 버림받았다는 상처도, 태어나서 죄송한 존재였다는 비참함도 내려놓는다. 친부모를 원망했던 마음도, 양부모를 미워하는 마음도 잠시 멈춰 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부모도, 돈이 필요할 때나 원하는 게 있을 때만 전화하는 양부모도 그냥 한 인생이려니 넘어간다. 그들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으리라 이해해 보려 한다. 그들과 나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았다.


이 책은 독서에세이라고 했고, 30개의 꼭지에서 서른 권의 책을 다루지만 그 책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힘들었던 순간,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한 문장, 글쓰기에 도움을 받은 책처럼 지극히 작가의 개인적인 상황과 연관된다. 그래도 독자들은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독자의 상황과 꼭 같지는 않더라도 인간의 생애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의 고충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22. 살기 위해 읽다 : <수전 손택의 말>


책을 계속 읽다보니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나는 그렇게 책을 쓰게 되었다. 이제 책은 나에게 직업이 되었다. 나는 살기 위해 읽었고, 책을 붙잡아 꾸역꾸역 살아남았으며, 그 결과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잇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라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나도 그랬다.

독서는 내 작은 자살이었고, 작은 우주선이었다. 나는 책을 읽고 책을 쓰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지금도 다시 책으로시작하려 한다. 앞으로 나에게 독서는 치유를 넘어선 그 무엇으로 남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젠 행복할 일만 남았다며 작가의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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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랑의 이유를 너에게서 찾지 마라
강석빈 지음 / 부크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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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몰랐다. 이별하니 상대가 아주 나쁜 X인 것 같다. 나보다 더! 그리고 아프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연애과정에서 벌어지는 고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시시콜콜 물어보고 싶다. 가까운 누군가가 들어주고 충고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이 없다면?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이라도 받고 싶다.

유튜브에 있다면? 연애 상담 해주는 유튜버, 석구리 TV의 강석빈씨다. 그동안 석구리 TV에서 상담했던 것을 <아픈 사랑의 이유를 너에게서 찾지 마라>로 출간했다. 제목에서 지침을 딱 말해주고 있다. 사랑하다 아파도, 이별하더라도 자책하지 마시라! 앗, 그럼 여기서 상담 끝? 물론 아니다. 이 책은 이별 후 대처법뿐 아니라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부터 사랑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두루 다룬다. 사랑도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저자는 독자들이 행복한 연애를 하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지금은 연애와 별 상관없이 살고 있지만 아하,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싶은 내용들을 회상형과 후회형 모드로 읽었다. 94가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자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17. 얼굴보단 언어에 집중하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의 온도는 내려가고 관계는 긴장의 허리띠를풀어간다. 좋은 사람의 정의란 언제나 나에게 변함없이 잘해주는 사람이 아닌, 언젠가지금의 설렘이 지나가도 나에게 항상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자 진국 같은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시기 바란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꿈꾼다면, 말이 고운 사람을 찾아라'

19. 연애의 질은 체력이 결정한다

연애란 행복감이 큰만큼 써야 하는 에너지 소모도 큰, 피곤하고 어려운 여정이다. 그렇기에 게으른 사람이 연애를 못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거다.

'안정된 삶이 있어야 안정된 연애가 가능하듯, 보다 재미있고 질 높은 연애를 원한다면 먼저 그에 뒷받침되는 체력부터 길러라.'

25. 보이는 것만 믿어라



38. 내 연애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아무리 연애에 내공과 식견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다. 이 관계 안에 직접적으로 들어와 본 사람도 나밖에 없다. 그런데 왜, 그 관계를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우리 관계의 방향키를 맡기려 하는가.

누가 뭐래도 내 연애는 내가 제일 잘 안다.


48. 그 사람의 진가는 설렘이 지나간 이후에 보인다




66. 좋은 사람으로 남을 필요 없다

마음이 뜨는 건 나쁜 일도 잘못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의 곁에 남아 이별을 포장하는 행동은, 한때 내가 사랑했고 나를 사랑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은 시간이 흘러 미화되는 것일 뿐,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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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소유 - 법정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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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소유>는 법정스님의 생애가 연대기 순으로 서술되어 있어 소설이라기보다 전기를 읽는 것 같았다. 법정스님의 생애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으며, 스님이 스승이나 도반과 나누는 대화에서 마음에 새길만한 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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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 - 우수영에서 강원도 수류산방까지 마음기행
정찬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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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을 인용한 글을 많이 읽어왔지만 스님이 직접 쓴 글이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무소유’라는 말도 워낙 유명하다보니 마치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유명한 ‘난초’ 일화도 소유와 집착이라는 주제의 글에서 인용된 것을 여러 번 읽었다. 그래서 법정스님의 제자 정찬주 작가가 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정찬주 작가는 법정스님이 수행했던 암자와 절을 직접 순례했다. 그 분이 무소유의 삶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았는지를, 스님 입적 12주기에 즈음해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로 펴냈다. 작가는 스님의 무소유 삶이란 ‘버리고 떠나기’ 즉 ‘집착하지 않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무소유는 나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힌다.

p.9

'버리고 떠나고 나누기'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와 가슴을 적신다. 끝내 나는 가만히 되뇌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무소유가 지향하는 것은 나눔의 세상이다. 나눔은 자비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자비와 사랑은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라고.p.9

'버리고 떠나고 나누기'는 법정스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게는 큰 울림으로 다가와 가슴을 적신다. 끝내 나는 가만히 되뇌어보지 않을 수 없다. 무소유가 지향하는 것은 나눔의 세상이다. 나눔은 자비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자비와 사랑은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라고.




작가는 스님이 머물렀던 수행처에 가서 스님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짚어본다. 스님의 행적, 스님과 자신이 함께 했던 시간, 작가의 생각까지 이 책에 정성스레 담았다. 존경하는 스승님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스님의 삶을 사람들에게 살뜰히 알리려는 노력이 드러나는 책이다. 법정스님을 직접 본 적 없고, 법문을 들어본 적 없는 독자에게 스님의 길을 인도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맑고 향기로운 그 분의 길을 같이 따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스님의 발자취가 머문 절을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의 차이는 확연하니까.

법정스님하면 무소유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스님은 소유욕을 드러낸 적이 있다고 작가에게 말한다.

무염거사, 다른 욕심은 다 정리했어요.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만큼은 잘 놓아지지가 않아요.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을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스님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변호했다.

스님이 우려주는 차를 마시면서 차와 어울리는 찻잔의 색깔과 모양, 혹은 차로 인한 내면의 추만에 대해서 얘기하실 때면 스님의 심미안이 절로 느껴진다. 스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심’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무소유를 실천하는 수행자라 하더라도 심미안까지 놓아버리라고 한다면 멋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란 존재는 로봇처럼 무미건조한 기계가 아니니까.

‘최고의 차 맛은 홀로 마시면서 음미하는 적적한 맛이지.’

차 한 잔에 자족하는 노승의 모습. 깨달음의 실존이 있다면 바로 그런, 적적한 맛을 즐기는 스님의 모습이 아닐까.

p.55



작가는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신념이 간디와 소로에게서 영향을 받아 확립한 것으로 추측했다. 불가의 정진인 삼부족(三不足)을 강조했다고 한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사람마다 삶의 공식이 다르고, 그렇기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스님 본인은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문명의 이로운 기계로 인해 혜택도 받지만 많은 것을 잃고 있어요. 편리하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점점 해체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조직의 노예가 되고, 관계의 노예가 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하고 간소해져야 돼요.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산다는 것은 본질적인 삶을 산다는 말이에요.”

이 책에서 작가가 소환하는 스님의 말씀은 시간이 꽤 지난 것부터 입적하시기 전까지의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에 꼭 맞는 말씀이라 놀랍다. 인간이 단순하게 살면 지구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반대로,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다. 법정스님 삶의 면면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렇게도 아끼던 난초를 친구에게 선물하고, 원래 쓰던 만년필이 있었는데 만년필을 선물받자 다른 이에게 준 일 등등.

이 책으로 스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일이 많다. 그 중 두 가지는 역사적으로도 큰 일이 아니었나 싶다. 스님은 인세로 들어온 것을 대학생 장학금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익명으로 하셨는데 금융실명제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었다. 길상사는 길상화(김영한) 보살의 소유였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1997년 12월에 개원한 절이다. 1천억원대의 재산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길상화 보살은 이렇게 답했다.

“재산은 그 사람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길상화씨는 일제 강점기 때 여창 가곡과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친 백석의 연인이었다는 사연도 처음 알았다.

2009년 봄, 길상사 정기법회의 마지막 법문이 이 계절에 새겨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일부를 옮긴다.

“이 눈부신 봄날, 새로 피어난 꽃과 잎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십니까. 각자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고 견디면서 가꾸어온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쳐보기 바랍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난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기 바랍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연둣빛 얼굴을 내미는 꽃과 잎을 ‘거룩한 침묵’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쓸데없이 시끄러운가. 지구를 괴롭히는 짓들은 또 얼마나 과격한가. 멈출 줄을 모른다. 스님의 생애를 보며 우리 같은 범인(凡人)은 감히 따라 하기 힘들다며 손사래를 친다. 결혼하지 않은 스님과 같냐, 가진 게 너무 많아 놓기 힘들다, 자본주의의 습성에 찌들어서 어쩔 수 없다는 등의 변명이 속속 고개를 들이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 처음에 나온 ‘무소유는 나눔’은 실천할 만 하지 않은가. 가지고 있는 너무 많은 물건들을 나눠야한다. 그리고 소비를 멈추어야 한다. 이젠 그만 사자고, 작년부터 노력중이긴 한데... 가장 안 되는 게 책이다.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를 먼저 읽고 <소설 무소유>를 읽었다. 소설이라고 했지만 지어낸 이야기가 어느 정도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에서 스님의 발자취와 말씀을 따른 것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설 무소유>는 법정스님의 생애가 연대기 순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소설이라기보다 전기를 읽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스님의 생애를 정리하는 기분이었다.

<소설 무소유>에는 법정스님이 스승이나 도반과 나누는 대화에서 마음에 새길만한 말들이 많았다. 그 중 몇몇을 옮긴다.

“책 속의 내용이란 남의 것이다. 술이 아니라 술 찌꺼기다. 니 것을 가져야 한다. 니 것을 갖는 데는 참선이 제일이다.” 

- 법정스님의 스승 효봉스님의 말씀

“예배의 의미는 널리 모든 중생을 공경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어떤 특정한 공간이나 시간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른 아침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소 묵묵히 한길을 쓸고 있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차라리 우리는 ‘참회인의 상(像)’을 보게 된다. 그는 기록의식도 최면에도 걸림이 없이 만인이 다니는 길을 무심히 무심히 쓸고 있을 뿐이다.” 

- 법정스님의 기고글 ‘굴신운동’중 일부

"소병소뇌(少病少惱) 소유지족(少欲知足), 조금만 앓고 조금만 괴로워하고, 적은 것으로 넉넉할 줄 알라는 뜻인것 같았습니다."

- 자운스님 편지 내용 중

"우리가 지금까지 얻어들은 좋은 말씀이 얼마나 많은가. 그 좋은 말이 모자라 현재의 삶이 허술하단 말인가. 남의 말에 갇히면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리게 되지. 다 큰 사람들이 자신의 소신과 판단대로 살아갈 것이지 어째서 남의 말에 팔려 남의 인생을 대신 살려고 하는가."





- 좋은 말씀 해달라는 대학생에게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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