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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어느 날 내 차 트렁크에 갇힌 채 납치가 되었다. 어디론가 달렸던 차가 멈추었고 낯선 곳에서 풀려났다. 24시간이 지나 있었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수롭지 않은 사건인양 취급하고 그 자리에서 신고하지 않았음을 탓하는 투다. 그럴 생각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똥을 쌌기 때문에 씻는 것이 급선무였다.
제 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말뚝들>의 도입부다. 평범한 직장인 ‘장’에게 느닷없이 닥친 불행에 왜라는 물음표와 함께 이야기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그에게 불행은 썰물 없는 파도처럼 계속 밀려왔다. 장은 파혼했고 신혼집으로 장만했던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15층까지 계속 걸어 다니고 있다. 회사에서 대출 심사 업무를 하고 있는데 중요한 미팅이 있던 날 납치를 당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감사를 받게 되었으며 그의 동료는 자신과 장이 바람을 피웠다고(물론 아니다) 남편에게 말해 졸지에 불륜남이 되었다.
이토록 다양하게? 억울하고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대체 주인공은 이 불운들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이 소설은 처음부터 주인공을 불행의 늪 속에 빠트려 놓고 시작한다. 나는 ‘장의 불행 늪 탈출기’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뚝들이 나타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장의 불행과 이 말뚝들 간에 분명 상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장을 납치한 자는 대체 누구이며 말뚝들을 보고 우는 이유를 빨리 알고 싶었다. 후반부 즈음에서 첫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았다.
p.11
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자꾸만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1호 말뚝이 장에게 준 명함, 그것은 아주 오래전 장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주었던 자신의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은 테믈렌, 동료의 장례식 비용을 빌릴 데가 없어 쩔쩔매던 테믈렌에게 장은 50만원을 빌려주고 명함에 계좌번호를 적어 주었지만 돌려받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장은 그 일을 까맣게 잊었고 테믈렌은 말뚝이 되어 나타났다.
어처구니 없는 시작으로 궁금하고 답답하게 만들었지만 작가가 얽어놓은 실타래가 하나 둘 풀리면서, ‘이런 존맛탱!’이 연신 터져나왔다.(이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못 찾아서리...) 말뚝들이 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연유를 찾으려하지 않고 정부는 말뚝을 치우기 급급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나타나는 말뚝들과 몰려드는 시민들을 어쩌지 못해 계엄을 선포한다. 작년 12월의 사태와 숱한 사고들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이들이 삼킨 눈물이 오버랩되는 것은 몹시도 자연스럽다.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이 얼마나 기막혔을까. 죽은 이는 말을 할 수 없었고 가족들과 시민들은 애도를 제한 당했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혹은 계속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에서 불행과 눈물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내어 독자들이 ‘빚’과 ‘애도’에 당도하도록 이끌었다. 잊힐 수 없는 죽음이 말뚝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누군가의 가슴에 말뚝으로 박힌 죽음을 애도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국가나 권력이 억압해선 안 된다. 내가 큰 행운을 얻은 게 아닐지라도 지금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빚지고 있다는 것! 그 빚에 감사해야 하고 빚을 갚으려면 연대해야 한다는 것도!
지금 이 사회의 모습과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 <말뚝들>을 한겨레 문학상 서른 번째 수상작으로 뽑은 이유를 책 마지막 ‘추천의 말’에서 선배 작가들이 하고 있다. 그 중 한창훈 작가의 말에 고개 끄덕이며 일부를 인용한다.
"역대 구라발 계보를 잇는 해학성, 도도하게 밀어붙이는 힘, 공중 3회전 초식을 시전해놓고 낯선 골목을 응시하는 의뭉(이 부분은 동시에 쓸쓸함도 풍긴다). 하지만 나는 심사 끝까지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드는 생각. 이 작가는 또 한 번 진화 중인 것인가."
일반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덜 투덜대기로 했다.(“안 투덜대겠다!”고 다짐해도 못 지킬 걸 아니까) 나에게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내겐 왜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지 같은 푸념들 말이다. 불평들이 부글부글 올라올 때 말뚝들을 생각하자. 조금만 궁시렁거리자.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