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평점 :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더라도 그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몰라도 영화 <쇼생크 탈출>, <미저리>, <그린 마일>, <그것>은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영화들의 원작자가 바로 스티븐 킹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본지 너무 오래 되어 이번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나중에>의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다행히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프롤로그 격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주인공 제이미 콘클린은 제목 ‘나중에’라는 단어를 너무 반복했음을 사과, 아니 양해를 구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스물 두살인 지금, 여섯 살 때의 기억을 떠올려 썼으니 마흔 줄에 만약 지금을 돌아본다면 제대로 알게 된 게 너무나 많을 것임을 깨닫게 될 거라고. 그러니 항상 ‘나중에' 라는 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두 페이지밖에 되지 않은 글에서 작가는 문장에서 어휘 선택법과 인간사의 지난한 문제와 떡밥까지 살짝 뿌려놓았다. 사실 이 두 장을 빠르게 읽고 본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런데 다 읽은 후 앞부분으로 돌아와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얼마나 위트 있고도 짧게 소개했는지를 확인하게 되어 슬며시 웃음짓게 되었다.
유령을 보는 아이라는 책 소개에서 영화 <식스 센스>를 떠올리는 건 무조건 반사처럼 몹시 자연스런 현상이다. 독자들이 그럴 것이란 걸 충분히 아는 작가는 초반부에 미리 밝힌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그 영화와는 다르다’ 라고. 스티븐 킹이니까 <식스 센스> 급 반전에 버금가는 충격적 반전이 나올 거라는 기대에 김을 빼려는 작전이었을까. 아니면 <식스 센스>와 다른 점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보라는 뜻이었을까. 작가의 의도를 가늠해보기 위해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제이미는 죽은 사람의 유령(혼)을 본다. 엄마에게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가 옆집 버켓 교수의 부인이 죽은 후 반지를 찾아주게 되면서 엄마도 확실히 믿게 된다. 작가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엄마의 사업이 휘청하게 될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수년간 시리즈물을 써오던 작가가 완결을 짓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비윤리적인 걸 알지만 엄마는 제이미를 통해 유령인 작가에게서 후속편의 줄거리를 듣고 사후 출간본을 완성한다. 그래서 이 모자 가정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제이미의 능력으로 엄마의 사업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견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제이미는 저주스러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어 뿌듯함을 느낀다.
제이미가 유령을 보긴 하지만 그 유령들은 살아있는 가족이 궁금해 하는,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제이미를 통해 남기고 며칠이 지나면 사라진다. 사실 유령들은 죽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잔인하게 살해된 모습인 경우 무섭게 느껴질 법도 한데 여기에 등장하는 유령들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작가가 처음에 공포물이라고 밝혔음에도 말이다. 그간 보아온 영상물의 흉측하고 잔인한 모습들에 내성이 생긴 탓이기도 하고, 외모에 비해 유령들의 행동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런데 제이미가 성장할 때까지 주위를 계속 맴도는 유령이 있는데 폭파범 테리올트이다. 사후 며칠 후에는 사라지는 유령에 비해 지속적으로 제이미에게 나타나는 테리올트는 섬뜩함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보면 유령 테리올트 외에 특별히 공포감을 유발하지 않았다. 제이미에겐 아빠가 없을 뿐이지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엄마가 챙겨야하는 알콜중독자 외삼촌이 있고 비리경찰관이며 마약중독자인 동성애인 리즈가 있다. 유령보다 산 사람이 더 무시무시한 존재인 셈이다. 병원에 있는 외삼촌 때문에 돈이 많이 들고, 시시때때로 나타나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리즈 때문이다. 후반부에 가서 리즈가 결정적 사건을 일으키는데 바로 마약 때문이다. 이미 경찰에서 잘린 리즈는 이번에도 마약을 찾기 위해 제이미를 납치한다. 죽은 마약범 유령에게서 마약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듣기 위해서다. 여기서부터 마지막까지의 줄거리에 반전이 들어있다.
이 소설에는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문화와 사회상, 인간 군상의 모습이 들어있다. 자극적인 내용과 충격적 반전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스티븐 킹이 이렇게 말랑말랑했던가 하고. 그러나 나는 한 소년의 회상일기처럼 서술된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읽었다. 전술한 바 있지만 특이한 능력을 가진 제이미가 했던 대부분의 행동들은 엄마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은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아들로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였지만 이 가정에 부재한 아버지(남성성)의 자리를 메우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마지막에 제이미는 자신의 능력으로 아빠가 누구인지 확인했고 그에 대해 변명 내지 옹호하는 내용을 상술한다. 이는 오랫동안 사회문화적으로 터부시되어온 시각을 깨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예상해 보았다.
<나중에>가 스티븐 킹의 신작이라고 매운맛 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좀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력에 있어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므로 스릴러적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읽는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