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모둠의 용의자들 VivaVivo (비바비보) 49
하유지 지음 / 뜨인돌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여드름쟁이 최은율은 잘하는 것도 없고 예쁜 구석도 없고, 베프가 없어서 밥도 혼자 먹는다. 그런 최은율에게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내년에는 같은 반 되기 싫은 사람?

난 최은율.

왜냐하면...


새고방(새별고민방:새별중학교 수학선생님이자 상담실 부담당인 홍강주 선생님이 만든 익명 채팅방)에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떴다. 닉네임 ‘...’, 점셋의 메시지 옆에 붙은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점셋은 왜냐하면...”만 남긴 채 위 두 메시지만 지우고 방을 나가버렸다.


넋이 탈탈 털린 은율은 점셋이 누군지 찾고 싶었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을 거라면 찾아내야만 한다. 최은율도 최은율이 싫지만 대체 누가 최은율과 같은 반이 되기 싫다고 한 건지 알아내고 싶다. 홍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엔 더욱 확고해졌다. 홍쌤은 무시와 직시 중에 직시를 선택했을 때 알게 될 진실이 상쾌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은율은 처음에는 누구인지가 궁금했는데 이젠 왜 그랬는지가 더 알고 싶어졌다.


전교에서 가장 예쁜 이엘라의 힌트 덕분에 책의 제목대로 제 3모둠의 용의자들 다섯 명이 추려졌다. 은율의 범인 색출 작전이 시작되었다. 하유지 작가의 <3모둠의 용의자들>은 중학교 1학년 최은율이 익명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쓴 사람을 찾는 이야기다. 은율이 다섯 명의 용의자를 만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 소설 형식을 띠기 때문에 장르적 재미가 있다.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의 청소년 독자라면 공감하며 읽을 내용이 많다. 중학생이 겪는 고민들이 은율을 포함한 다섯 용의자들에게서 드러난다.


그 나이 대에 고민은 무겁기 그지없다. 갑자기 솟아난 여드름을 보면 평생 이런 얼굴로 살까봐 한숨이 푹푹 나오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어깻죽지는 한없이 땅으로 꺼진다. 그 누구도 나만큼 힘들 리 없다고 생각한다. 은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섯 명의 용의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다. 나 빼고 다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으며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혼 위기의 부모 때문에 불안한 친구,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부모님이 공부만 강요하는 경우,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는 아이 등등. 은율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청소년 독자들이 감정이입하기에 충분하다.


절친 현서가 전학을 가면서 외톨이가 되었던 은율이 점셋을 찾으려고 만난 용의자들과 친구가 된다. 범인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고민을 알게 되고 묵혔던 오해도 풀게 된다. 작가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디테일한 생활상을 촘촘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른들이 읽으면 좋다. 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진 요즘 아이들의 일상은 교사나 학부모의 어린 시절과 천양지차다. 통화보다 문자가 편한 이들은 SNS로 자신을 드러내고 낯모르는 타인과도 곧장 친구가 되지만 현실에서 직접 소통하는 건 힘들다.


그들의 이러한 현실을 소설 속에서 너무 이상적으로 그린 게 아니냐는 비판적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의 목적성에 부합한다. 한없이 자신에게만 매몰될 수 있는 시기에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들 나만큼 힘들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무 의미 없는 배경 같던 존재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또한 스스로 자신과 친구가 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등장인물들을 통한 간접 경험이지만 자신의 생활에 투영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 시기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고 어른도 이런 책을 같이 읽어야 할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더라도 그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몰라도 영화 <쇼생크 탈출>, <미저리>, <그린 마일>, <그것>은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영화들의 원작자가 바로 스티븐 킹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본지 너무 오래 되어 이번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나중에>의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다행히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프롤로그 격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주인공 제이미 콘클린은 제목 나중에라는 단어를 너무 반복했음을 사과, 아니 양해를 구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스물 두살인 지금, 여섯 살 때의 기억을 떠올려 썼으니 마흔 줄에 만약 지금을 돌아본다면 제대로 알게 된 게 너무나 많을 것임을 깨닫게 될 거라고. 그러니 항상 나중에' 라는 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두 페이지밖에 되지 않은 글에서 작가는 문장에서 어휘 선택법과 인간사의 지난한 문제와 떡밥까지 살짝 뿌려놓았다. 사실 이 두 장을 빠르게 읽고 본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런데 다 읽은 후 앞부분으로 돌아와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얼마나 위트 있고도 짧게 소개했는지를 확인하게 되어 슬며시 웃음짓게 되었다.

 

유령을 보는 아이라는 책 소개에서 영화 <식스 센스>를 떠올리는 건 무조건 반사처럼 몹시 자연스런 현상이다. 독자들이 그럴 것이란 걸 충분히 아는 작가는 초반부에 미리 밝힌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그 영화와는 다르다라고. 스티븐 킹이니까 <식스 센스> 급 반전에 버금가는 충격적 반전이 나올 거라는 기대에 김을 빼려는 작전이었을까. 아니면 <식스 센스>와 다른 점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보라는 뜻이었을까. 작가의 의도를 가늠해보기 위해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제이미는 죽은 사람의 유령()을 본다. 엄마에게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가 옆집 버켓 교수의 부인이 죽은 후 반지를 찾아주게 되면서 엄마도 확실히 믿게 된다. 작가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엄마의 사업이 휘청하게 될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수년간 시리즈물을 써오던 작가가 완결을 짓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비윤리적인 걸 알지만 엄마는 제이미를 통해 유령인 작가에게서 후속편의 줄거리를 듣고 사후 출간본을 완성한다. 그래서 이 모자 가정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제이미의 능력으로 엄마의 사업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견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제이미는 저주스러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어 뿌듯함을 느낀다.

 

제이미가 유령을 보긴 하지만 그 유령들은 살아있는 가족이 궁금해 하는,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제이미를 통해 남기고 며칠이 지나면 사라진다. 사실 유령들은 죽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잔인하게 살해된 모습인 경우 무섭게 느껴질 법도 한데 여기에 등장하는 유령들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작가가 처음에 공포물이라고 밝혔음에도 말이다. 그간 보아온 영상물의 흉측하고 잔인한 모습들에 내성이 생긴 탓이기도 하고, 외모에 비해 유령들의 행동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런데 제이미가 성장할 때까지 주위를 계속 맴도는 유령이 있는데 폭파범 테리올트이다. 사후 며칠 후에는 사라지는 유령에 비해 지속적으로 제이미에게 나타나는 테리올트는 섬뜩함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보면 유령 테리올트 외에 특별히 공포감을 유발하지 않았다. 제이미에겐 아빠가 없을 뿐이지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엄마가 챙겨야하는 알콜중독자 외삼촌이 있고 비리경찰관이며 마약중독자인 동성애인 리즈가 있다. 유령보다 산 사람이 더 무시무시한 존재인 셈이다. 병원에 있는 외삼촌 때문에 돈이 많이 들고, 시시때때로 나타나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리즈 때문이다. 후반부에 가서 리즈가 결정적 사건을 일으키는데 바로 마약 때문이다. 이미 경찰에서 잘린 리즈는 이번에도 마약을 찾기 위해 제이미를 납치한다. 죽은 마약범 유령에게서 마약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듣기 위해서다. 여기서부터 마지막까지의 줄거리에 반전이 들어있다.

 

이 소설에는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문화와 사회상, 인간 군상의 모습이 들어있다. 자극적인 내용과 충격적 반전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스티븐 킹이 이렇게 말랑말랑했던가 하고. 그러나 나는 한 소년의 회상일기처럼 서술된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읽었다. 전술한 바 있지만 특이한 능력을 가진 제이미가 했던 대부분의 행동들은 엄마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은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아들로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였지만 이 가정에 부재한 아버지(남성성)의 자리를 메우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마지막에 제이미는 자신의 능력으로 아빠가 누구인지 확인했고 그에 대해 변명 내지 옹호하는 내용을 상술한다. 이는 오랫동안 사회문화적으로 터부시되어온 시각을 깨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예상해 보았다.

 

<나중에>가 스티븐 킹의 신작이라고 매운맛 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좀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력에 있어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므로 스릴러적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읽는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빌드업 책담 청소년 문학
최민경 지음 / 책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들의 빌드업>의 주인공 천강호는 축구 유망주였다. 그러나 연습경기 도중 친구 정태수에게 과도한 태클을 걸었고, 태수의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태수는 전국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고등 유스에 스카웃될 기회를 잃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그 때부터 강호에게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친구의 축구 인생을 망친 대가는 혹독했다. 일진 무리와 어울리던 태수의 사주로 나쁜 짓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엔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병 훔쳐오는 거였으나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강호는 결국 소년원에 들어갔다.


강호는 태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대한고 1학년으로 전학 와서도 계속되었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친구의 앞길을 막은 가해자라는 이유로 쥐 죽은 듯 지내는 강호를 보니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지인의 아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도 소년원에 10달간 들어갔다가 나왔다. 강호는 자의가 아니라 강제에 의해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아이는 왜 그랬을까? 아빠가 재혼했다는 것 외엔 그 집안의 사정을 알지 못하니 섣부르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 아이는 소년원에 갔다 와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며칠 다니지 않고 그만두었다. 강호가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듯 그 아이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며 마음이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강호에 지인 아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고, 강호의 저 셔틀 생활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하는 갑갑함도 있었다. 태수의 잔인한 태도가 도를 넘은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강호에게 기울었다. 강호가 화자인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어 그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작가는 늪에 빠진 것 같은 강호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낼까 몹시 궁금했고 강호가 걱정되었다. 고영표라는 전 국가대표가 대한고에 감독으로 오게 되는데 그의 도움으로 다시 축구를 시작할 것 같은 예감은 들었다.


이후 줄거리는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그만 쓰겠다.


청소년 소설은 모두 희망적으로 끝이 난다. 청소년들이 이런 소설을 읽으며 세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어른들 입장에선 뻔하디 뻔하고 진부하기만 한 내용들이지만 청소년들에게는 간접 경험을 하게 해준다. 또한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은 미래에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일이므로 예방주사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이런 성장소설을 읽어야 한다


학부모나 교사들도 청소년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읽을 필요가 있다. 어른도 이런 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어른이라고 해서 어디 다 어른스럽던가. 인간은 죽을 때까지 되어가는 존재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책을 안 읽는 시대이지만 꼭 읽어야할 책을 꼽으라면 단연 청소년 소설!


이 소설은 축구가 소재이며 제목에도 축구 용어 빌드업이 쓰였다. 축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니다. 빌드업을 하려면 기초부터 팀원 전체가 차근차근 다져서 상대방 골문 앞까지 가야한다. 우리도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특히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청소년이 비록 타인에게 주는 도움이 적다할지라도 상호보완관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축구에서 빌드업해나간 작전이 골인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다시, 또다시! 빌드업 해서 시도하면 된다. 그게 청소년 시기의 특권이다.

   


인생에서 절대라는 건 없다.”

 

내가 살아 보니까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더라.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자기 일이 아닌데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그러니깐 너도 힘든 일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어봐.”

 

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최고가 되고 싶으면 너랑 함께 뛰는 선수를 최고로 만들어라. 그건 생각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일 거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와 나의 야자 시간 - 그 오랜 밤의 이야기 위 아 영 We are young 3
김달님 외 지음 / 책폴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와 나의 야자 시간>은 8명의 작가들의 10대 시절 야자 시간, ‘그 오랜 밤의 이야기’를 담은 앤솔러지 에세이이다. 그들의 야자 시간 덕분에 나도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그 땐 왜 그렇게 세상 짐 다 진 것처럼 힘겨웠을까. 자고 일어나면 스무 살이라면 좋겠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가 된다면 좋겠다, 뭐가 됐든 지금만 아니면 좋겠다며 거부하고 싶었던 시절이었는데 시간이 가긴 가더라...

이 책은 야자 시간을 소재로 했기에 고민하는 자신, 친구들과의 관계가 주로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두 편의 글에서 선생님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내게는 그런 영향을 끼친 선생님이 없었다. ‘계피색 꿈’에 나오는 선생님은 학생의 시를 읽어주고 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표현에 대해 조언해준다. 저렇게 진심인 선생님이? 놀랐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쓰는 학생을 만난 반가움이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관심가지고 진심으로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작가에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던 선생님께서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이듬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고...

또 한 명의 선생님은 ‘망가뜨리지 않고 사랑하는 법’에 나온다. 바람직한 수험생의 전형이었던 학생 장도수는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열공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시간에 우연히 사회 선생님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게 되었는데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라고 했다. 그리고 "당직 서기 싫다, 너도 열심히 공부하려하지 말고 야자도 적당히 하고 쉬어." 라는 말에 심쿵했다. 그동안 엄격한 엄마 때문에 숨막히는 생활을 했는데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빙판길에 위태롭게 서 있던 자신을 포근하고 따수한 풀밭위로 옮겨놓는 것 같았다. 빡빡하게 살아온 자신이 여유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 선생님이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 많던 자신의 십대와 야자시절을 소환할 것이다. 8편의 에세이와 일정 부분 비슷한 경험일 테고, 독자마다 고유한 경험과 기억이 있을 것이므로. 타인의 지난 시절을 읽으며 나의 그 때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당시에는 인생 최고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더 어렵고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 그 땐 미처 몰랐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번역가 장한라의 ‘스포일러’가 그렇다. 열아홉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그 때의 자신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금의 나에게 잘 살아왔다는 다독임이다. 백만장자가 된 건 아니지만 원하던 대로 독립을 했고 스스로 돈을 벌며 마음에 드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고 있으니까. 제법 괜찮게 잘 지내고 있고, 그건 마음이 괜찮다는 뜻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은 고등학생이 읽어도 좋다. 이미 지나간 시절이니 이렇게 편하게 말하는 거라며 시큰둥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람들처럼 지금을 기억하며 쓰게 될 때 나는 어떻게 쓸지 상상하며 시름을 잠시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을 바라보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꼭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잘 하고 있다며 토닥여주어도 된다. 생각보다 글의 힘은 세다.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순간을 꿈꾸면서 각자의 삶을 견디고 있었다."

"밤에는 모름지기 낮 동안의 나를 배신해야 제 맛이었다."

"어두운 밤에 혼자 있어도 라디오를 틀어두면 무섭지 않았다."




**위 리뷰는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활이라는 계절
김의경 지음 / 책나물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활이라는 계절>은 김의경 소설가의 첫 에세이집이다. 다섯 계절 동안 일간지에 매주 연재했던 글들을 책나물 출판사에서 묶어냈다. 우선 표지가 제목에 딱 맞게 직관적이고 귀엽다. 전체 200쪽이 되지 않는 분량으로 한 꼭지가 세 쪽씩이라서 읽기에 부담 없다. 에세이지만 마치 친구나 언니의 일기를 몰래 보는 기분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일상에서 겪은 일들을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써내려간 짧은 글들을 자칫 가벼이 흘려버릴 수 있다. 우리는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의 옷차림을 기억하지 못하고 점심 메뉴가 뭐였는지 한참을 생각해야하듯,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은 하루 하루를 산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나가는 하루라는 표현에 몸서리 쳐질 만큼 식상함이 일지만 그것이야말로 별 일없이 지나가는 나날들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는 흐르는 강물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잔물결의 흐름이 제각각이다. 같은 강물이지만 내 앞을 흘러가는 강물은 아까 그 강물이 아니다. 계속 새로운 강물이 다른 빛깔과 물결을 이루며 지나가는 것처럼 우리의 하루도 다르다. 올 가을이 작년 가을과는 다르듯이. 작가도 생활 속에서 계절을 느끼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길어올린다.

 

생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글 속에는 친정엄마와 자주 문자를 주고받는 딸의 모습이, 그저 스쳐지나갈 일이나 사람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다. 작가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친근하게 느낀 이유는 앞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친정 엄마와 곰살스럽게 문자를 주고받지 않는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푸념과 넋두리뿐이었다. 점점 통화하는 숫자가 줄어들었다. 딸 하나 뿐인 엄마에게 너무 정 없는 딸이 되었구나 싶어 잠시 미안함이 일었다.

 

작가는 철물점 안에 쳐진 보라색 커튼에 쓰여진 ‘the guitar’라는 글자를 보고 철물점 주인이 예술가일거라고 상상하고, 쓰레기 낭독회에 참석자들이 가져온 쓰레기를 보며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히도 10.29 참사 후에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소재인 글을 읽었다. 작가는 사망자 명단에서 중학교 때 친구를 보았고 그 순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친구의 부모님 얼굴을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참사가 반복되어야 하는지 기막혔다. 희생자의 명단과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채 분향소를 차린 건 낯모르는 이의 슬픔에 감정이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같다. 누구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내가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게 만들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목차부터 주욱 훑었다. 첫 번째 글의 제목이 눈에 콕 들어왔다. 그동안 작가의 인스타 피드를 보면서 강아지를 사랑하는 분이고 자녀는 없는 것 같다고 예상했다. ‘마흔 살의 산전 검사라는 제목을 보고 조금은 늦게 임신 계획을 했는가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뒤에 나오는 임신 관련 제목의 글을 뽑아 읽었다. 임신에 성공했길 기대하며 읽었는데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글 임산부 배려석은 일종의 반전이었다.



같은 소재의 글만 먼저 추려내어 읽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데 이번에는 살짝 부작용이 있었다. 임신 소재의 글을 먼저 읽고 나머지를 읽어서 그랬을까. 따스한 문장들 사이사이에서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블랙 컨슈머 때문에 이름조차 빼앗긴 콜센터에서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었다는 글은 반가운 반전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마음으로 읽으면 그 글의 참 맛을 못 보게 된다. 조심해야겠다. 리뷰는 썼지만 친구 일기 몰래 엿보듯 이 책을 한번 씩 꺼내 읽고 싶다. 그리고 미처 못 봤던 예쁘고 귀여운 이야기를 발견하곤 씨익 웃을 거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