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안개초등학교 1 - 뻐끔뻐끔 연기 아이 쿵! 안개초등학교 1
보린 지음, 센개 그림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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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우유조마조마또

이 무슨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주문일까? <! 안개초등학교>를 이끄는 4인방의 이름을 줄인 별명이다. 4인방은 평범한 반쪽이 묘지은’, 입만 열면 맞는 말을 하는 반장 같지 않은 반장 우유주’, 넷 중 가장 이상한 아이 조마구’, 입이 건 연예인 출신의 입이 건 도래오.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 안개초등학교><! 안개초등학교> 시리즈를 썼던 보린 작가의 신간이다. 1뻐끔뻐끔 연기 아이는 창비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받아 읽게 되었다.


안개초등학교에 며칠 째 탄 냄새와 함께 연기가 술술 흘러다닌다. 어느날 묘지은은 교실에서 연기가 뭉쳐져 사람 모양으로 보이는 것을 보았다. 반쪽짜리 아이 묘지은에게는 늘 이상하고 묘한 것이 잘 들러붙는데 이번에도 연기 아이가 엉겨붙었다. 연기 냄새가 나니 탄지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묘지은은 연기 아이를 떼어낼 방법을 궁리하다가 과학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은 나침반을 주면서 꼭 제자리로 데려다줘. 뭐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탈이 안 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은 뒷마당 공동묘지 옆에 있는 썩은 창고. 그곳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갑자기 1950년으로 시간 이동을 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로 가게 된 4인방이 만난 사람도 어린이다. 묘지우유조마조마또는 그곳에서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경험하고 요괴를 만난다. 그들은 배곯는 아이들에게 자기들이 갖고 있던 간식을 나누어주고 요괴를 물리친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에 공포동화라는 홍보문구를 내걸었지만 은유적인 서술로 짐작하도록 해서 그리 잔인하지는 않다. 마지막에 몸을 키운 조마구가 불길을 내뿜는 장면은 판타지스럽다. 조마구의 활약으로 요괴는 어린 아이가 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4인방은 다시 안개초등학교로 돌아온다. 창고에는 아이들이 먹고 싶었던 소떡과 함께과학선생님의 쪽지가 있었다. ‘조마구 의자는 제자리에 돌려놓고 왔니?’라는 의미심장한 문구와 함께 묘지은이 공동묘지에서 버들잎에게 조마구의 정체를 묻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다음 편을 기대하게 하는 마지막이다.


<! 안개초등학교>는 교훈과 재미를 한꺼번에 잡았다. 특이한 면면을 지닌 주인공 4명을 내세워 어린이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사람을 어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으랴. 인간에게 다양한 면면이 있음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어 주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를 수 있게 해준다. 초등학생이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듯 접하는 사건이나 상황 역시 제한적이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한다. 아픈 역사이지만 그 현장 속으로 인도해 그곳에서 행동하도록 한다. 간접경험이지만 어린이 독자들은 주인공을 통해 용기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 동화는 판타지스런 분위기에 오컬트적 요소가 가미되어 어린이 독자들에게 색다른 장르의 맛을 선사한다. 그동안 만났던 생활동화와는 결이 다른 분위기가 상상력을 자극한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게 될 것이다. 이번 여름, 늘 접하던 슴슴한 맛 동화 대신 약간 매운? 마라맛 동화를 맛보게 해주는 것은 어떨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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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여기자 최은희 여성 인물 도서관 8
한영미 지음, 인디고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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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같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던 최은희,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여기자였다. 그녀는 1904년 황해도 연백군 은천면의 부유한 집 막내딸로 태어났다. 깨어있는 부모님 덕분에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닐 때 31운동에 앞장섰다가 시위주동자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풀려난 후에는 고향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켜 반 년 동안 감옥 생활을 했다. 일본여자대학 사회사업학부에서 공부할 때도 감시 대상자가 되었는데 조선일보사에서 입사 제안이 들어와 유학을 중단하고 돌아와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여자라는 약점을 적극 활용하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탐방 취재를 했다.


지금은 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자 일을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 뛰어들어 직접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19264월 순종 서거 이후 비밀리에 610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던 것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100여명의 독립운동가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최은희는 이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최은희는 여성이 자유롭게 활동할 단체가 필요하다며 1927년 근우회를 창단하여 여성을 위한 교육과 계몽 운동,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갔다.


청어람 주니어의 여성 인물 도서관 시리즈여덟 번째 책,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 여기자 최은희>는 우리나라의 여성언론인과 문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기자 매일신보의 이각경, 최초의 민간신문 여기자 조선일보의 최은희, 최초의 의학전문기자 동아일보의 허영숙을 비롯해 허정숙, 송계월, 김일엽, 정충량, 정광모가 그들이다. 그 중 최은희의 삶과 활동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녀는 기자로 활약하면서 소외된 계층의 삶을 알리고 여권 신장에 평생 힘썼으며, 1983년에 최은희 여기자상을 만들었다.


여성 인물 도서관 시리즈100여년 전 각계각층에서 한 획을 그었던 여성들의 업적을 조망하는 동화책이다. 시대적 상황이 녹록치 않았음에도 신분에 상관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노력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시대와 신분 같은 장애가 있더라도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을 학생들과 함께 읽을 교사나 학부모들이 청어람 주니어에서 제공하는 독후활동지를 적극 활용하길 추천한다. 토의 토론 논제 중 언론기관에서 일하려면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가는 꼭 다루어보면 좋겠다. 지난 자료를 짜깁기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부풀려 쓰지 말고 직접 취재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100년 전 조선일보 국장의 일성은 요즘 기자들에게도 당연히 요구되는 자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자들이 훨씬 더 많은 작금의 상황이 개탄스럽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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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부카를 위한 소나타
아단 미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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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소개를 보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라는 제목과 첼로를 연주하는 미소년 같은 청년이 그려진 표지가 나를 이끌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3년 정도 피아노를 배웠고 중학교 이후로는 피아노와 멀어졌다. 어른이 되어 배워보고 싶은 악기가 첼로였다. 10여 년 전 자클린 뒤프레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녀의 파워풀한 연주에 푹 빠져버렸다. 그 다큐를 통해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사랑, 그와 행복했던 연주 시절, 그리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극적인 삶을 알게 된 후 연주를 찾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함은 자동 반사적이었다.


클래식 음악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다 보니 소설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도 기대하며 읽었다. 이 소설에 첼로를 연주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 소재는 저작권 분쟁 소송이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음악 저작권 등록 및 사용료 징수에 대한 사건이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작가 아단 미오는 이 소설로 서점대상을 비롯해 미라이야 문학상 대상,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받았고,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


주인공 다치바나 이스키는 일본 저작권 연맹 직원인데 상사 시오쓰보로부터 비밀 업무를 부여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작권 위반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미카사 음악교실에 수강생으로 위장하는 업무였고, 그러한 스파이 활동은 2년간 지속해야 했다. ‘아사바 오타로가 다치바나의 강사로 배정되었다. 둘은 나이 차가 두 살밖에 나지 않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다치바나는 어릴 적에 납치당할 뻔 했던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수면장애 때문에 클리닉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그 사건 이후로 첼로를 그만두었다. 아사바는 전공자이고 부다페스트 음악원을 수료했지만 이름이 알려진 연주자는 아니다. 사제 지간으로 만난 둘 사이에 우정이 피어나 아름다운 하모니로 승화된다든지, 감춰진 천재성이 드러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다든지 하는 극적 결말로는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소개하면 책을 직접 읽어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재미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줄까봐 저어된다. 그러나 음악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면서 저작권 사용료 분쟁이라는 현실적 사안에 스파이 영화와 주인공의 처지를 교차하여 촘촘하게 엮어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클래식 곡을 연주할 때 저작권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인공이 음악학원에 잠입해서 사례를 수집한다는데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는 게 아니어도 사용료를 내야 하나?’ 같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미카사 음악교실에 수강한 성인들은 귀에 익고 비교적 배우기 쉬울 것 같은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반 사례는 클래식 곡이 아니다. 일본 저작권법에 의하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연주하는 것은 다 해당되며 강사와 수강생이 일대일로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매주 금요일 다치바나는 볼펜형 녹음기를 켜둔 채 아사바를 만난다. 그에게서 음악을 상상하며 켜는 법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음악교실 사람들의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다치바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한다. 다치바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라부카(심해 상어)가 심해에서 수면 위로 올라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는 심연에서 올라온 다치바나 자신을 위한 위로의 연주다. 조직의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만 했지만 그것이 결국 다치바나를 변화시켰다.


이 소설은 격정적이거나 기막힌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소송 관련해서 작은 반전이 있고, 심약해 보이는 다치바나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직장 동료와 인간적 교류를 하지 않고 자발적 고립 상태를 유지하던 다치바나가 아사바나 첼로 모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배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장소설이라 하겠다. 음악을 통한 교감이었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다치바나는 아사바에게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것은 바흐라고 말한다. 3년이 걸렸다. 그리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켜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은 저작권 사용료 분쟁을 통해 작곡가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작곡가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또한 일상에서 즐기는 음악이 우리를 얼마나 인간답게 해주며 악기를 매개로 한 교류에서 피어나는 유대는 대체 불가하다는 것도나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해보고 싶은데 아직 첼로를 배우지 못했다. 그저 이런 책을 읽고 뒤프레, 요요마의 연주를 들으며 활을 잡을 날을 꿈꾼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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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 - 펫로스, 반려동물 애도의 기록
최하늘 지음 / 알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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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 애도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사례담을 엮은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는 ‘펫로스 전문 상담소 살다’를 운영하며 반려동물 애도 상담 및 교육에 앞장서고 있는 최하늘씨가 썼다. 이 책에는 개, 고양이뿐 아니라 토끼, 앵무새까지 10건의 사례가 나오는데 모두들 사랑하는 아이를 보내고 힘들어하다 상담을 통해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했다. 극복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곁을 떠나간 존재를 위해 제대로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극복이라는 단어가 합당한 듯하다.

사람이든 가족이든 사랑하는 대상이 떠났을 때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게 당연하다. 무한 슬픔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애도의 과정을 잘 보내지 않으면 슬픔에서 빠져나오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아무리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졌다고 해도 모두가 상실의 슬픔에 공감해주는 것은 아니다. 겪는 이마다 그 슬픔의 크기가 같은 것도 아니며 동물을 키우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은 아예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다. 동물 죽은 걸 가지고 유별나게 군다는 말을 들으면 상처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만나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펫로스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슬픔을 수용하고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책의 구성은 각 사례별로 앞에는 떠난 반려동물과의 사연을 공개한 후 저자의 상담일지로 이어진다. 상담 내용을 일부 공개하면서 조금 더 깊이 상담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어떠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애도와 회복의 과정에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개인 펫로스 상담과 ‘펫로스 서클’이라는 사별 집단 모임을 비롯해 역할 바꾸기 기법, 드라마치료 기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에게 치유 방법에 대한 정보를 준다. 현재 그러한 상황이라면 상담을 받아볼 수 있고 직접 상담 받지 못하더라도 책에서 다룬 사례를 읽으며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이든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엔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부록에 실린 ‘파비스 펫로스 유형’이라는 자가 진단 도구는 자신의 상태를 쉽게 파악하고 치유 및 애도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6가지 유형의 항목에 4개 이상 체크가 된 경우 해당 유형이며 그 유형에 따른 심리치료 추천방법까지 나와 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함께 한 시간이나 동물의 종류에 따라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토끼가 죽으면 개보다 덜 슬플까? 1년을 함께 한 것보다 15년을 함께 한 게 더 슬플까? 그렇지 않았다. 그 누구도 당사자의 슬픔을 측량할 수 없다. 저마다 애정의 시간과 상실의 고통 모두 최대치이다. 그러니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이해와 공감이 안 되더라도 조용히 지켜봐주고 슬픔 속에 너무 오래 있지 않도록 이 책을 권유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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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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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는 육십대에 낸 첫 에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순하 작가의 필력 내공이 돋보이는 책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60여 년의 시간 동안 먹고 사는 일이 이다지도 파란만장할 수가 있을까. 이북에서 내려온 작가의 아버지, 대구에서 한의원을 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에 외갓집 식구들 및 친구와 먹었던 음식들을 작가가 하나씩 차려낼 때마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펼쳐졌다.

 

이 책은 음식에세이이며 작가의 자서전이자 한국 현대사 속에 숨은 생활문화사이기도 하다. 매 꼭지는 하나의 음식을 소재로 한 단편 소설 같았다. 아버지가 첩실을 여럿 두었어도 참아야만 했던 엄마, 쥐고기를 먹고 기력이 회복된 언니의 이야기, 여중생에게 휘두르던 교사의 일상적 폭력, 키다리 아저씨 같았던 친구의 아버지, 지금 상식으론 어불성설인 작가 시어머니의 행동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소재가 되는 음식의 유래와 조리법을 자신과 가족 및 주변 인물들의 삶과 맛깔스럽게 버무려 일품요리로 차려냈다. 눈과 코를 자극하는 문장들은 비유로 넘실거려 독자를 아름다운 문학의 세계로 이끈다.

 

여자는 갱죽에 수제비를 떠 넣고 있었다. 화덕의 화기를 돋우려고 부채로 불을 일구었다. 넘실거리는 화력에 뜨거워진 여자의 얼굴은 홍옥처럼 붉었다. 그녀는 선 채로 뜨거운 갱죽을 소리 없이 먹었다. 여자의 소음 없는 수저질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에 대한 비정이 비탄으로 바뀌어 귓속의 달팽이관이 울듯 마른 울음을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온기가 사라진 구들목을 다시 데우는 데 내동댕이쳐져 흠씬 젖은 장작은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잔한 추억과 눈물로 범벅된 작가의 인생 음식들 중에서 독자가 먹어본 것도 있을 것이고 처음인 것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소개된 음식을 보며 자신의 경험이 오버랩되면 공감할 것이며 생소한 음식은 맛보고 싶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음식들보다는 작가가 써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감정이입되었다. 뜨겁고 달콤한 호떡으로 인생의 쓴맛을 일찍 알아버렸던 중학교 때, 작가의 중학생 시절을 견디게 해준 영미와 영미 아버지 이야기에서 나도 내 친구 영미를 떠올렸다. 나의 중학교 시절을 가장 즐겁게 해준 친구가 바로 김영미였다. 작가처럼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어 영미와는 연락이 끊겼고 이후로 지금껏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작가는 어른이 되어 영미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친구는 엄마 병원비를 내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작가는 수중에 있던 제 병원비 몇 푼을 쥐어주고 돌아섰는데 영미에게 병원비를 대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못했다. 작가도 당시에 곤궁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 뒤늦게 돈을 마련하여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영미를 만날 수 없었다. 중학교 시절 작가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던 영미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신의 행동은 너무나 부끄러운 짓이었다. 작가는 호떡을 볼 때마다 용서를 떠올린다. 은혜를 갚을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혹여 작가의 친구 영미씨가 이 책을 보게 되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백열전구가 절간의 풍경처럼 매달려 있던 어둠고 침침한 동굴 같은 호떡집이었다. 낡아빠진 양은쟁반에다 호떡을 담아주었다. 뜨거운 호떡을 베어 물면 먹물 같은 검은 설탕물이 줄줄 흘렸다. 혀가 델 정도로 뜨거웠지만 뜨거울수록 맛이 있었다. 호떡집을 자주 드나들다보니 호떡처럼 몸을 낮추어야, 뜨거워도 견더야 단것이 입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제 고통이 크면 타인을 돌아볼 겨를이 없고 가난은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언젠가 은혜도 갚고 힘든 사람을 돌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행복을 저금해두었다 나중에 행복해질 수 없듯 말이다. 작가의 친정엄마는 젊은 시절 딴집 살림을 여럿 차린 남편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남편이 52세에 세상을 뜬 후 가장이 되어 자식 넷을 먹여살려야 했다. 씩씩한 대장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노년에는 페루로 이민간 셋째딸네에 가서 그 동네의 대모가 될 정도로 맘씨 넓고 자애로운 한국여성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그리고 페루로, 일생을 종횡무진 거침없이 살다가신 작가 친정어머니의 생이 존경스러웠다. 작가도 사랑과 존경의 뜻을 담아 책 제목을 이렇게 지은 것 같다.

 

마지막에 "늬 아버지 마음만은 어찌할 수 없더라."는 당신의 말에 작가는, '오랫동안 가슴속에서 삭고 삭아 이제는 향기조차 날아가버린 오래 묵은 씨간장 같은 말'이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한 남자에게 오롯이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을까. 가족을 위해 한평생 열심히 살았던 사람에게 그다지도 큰 욕심이었을까. 같은 여자로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 친정엄마의 생을 이 책으로 만나보니 질곡의 세월을 살아낸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경외심이 든다. 물론 우리 엄마에게도.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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