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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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서평단 책 몇 권이 도착해 있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었다. 어떤 책이었더라 잠시 고갤 갸웃거리다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를 봤으나 감이 잡히질 않았다. 워낙 여러 군데에 서평단 신청을 했고 일상을 비운지 2주 가까이 되다보니 그랬다. 뒷표지를 펼치니 시각장애인의 이야기였다.


목차를 훑다가 가장 끌리는 제목이 마지막에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60을 먼저 읽었다. 시각장애인의 사랑이야기일거라고 예상했던 나는 한 방 먹었다. 아이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불안해하던 임신 7개월차 된 손님의 출산 후 고백에 이어 작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엄마가 생활고 때문에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려고 했다가 차마 그러지 못했던 60일간의 이야기였다. 이 글 때문에 작가 모녀의 돈독한 애정 에피소드들이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잇따라 읽은 마지막 글에서 더 크게 한 방 먹었다. 딸이 장애인이 될 거라는데 창피했다고 말하는 엄마, 그에 치열하게 대거리하는 딸의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랐다.


마지막 두 글을 읽은 후 일상 적응에 바쁜 나머지 며칠간 책을 덮어두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귀국 후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26인치 캐리어를 들들거리며 서울 지하철을 몇 번 이용했다. 큰 캐리어를 끌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이용은 무리였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뱅글뱅글 돌았고 금방 나갈 수 있을 길을 많이 둘러다녀야 했다. 열다섯 살까지 멀쩡하던 눈이 안 보인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아니 비참했을까? 겨우 이틀간 크고 무거운 캐리어 때문에 불편했던 일을 겪어서 그랬는지 책을 펼치지 않아도 작가의 불편한 일상이 자꾸만 그려졌다.


이 책은 너무 가난해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고, 한창 예민할 사춘기에 시각 장애가 생겼고, 엄마를 일찍 여읜 여성의 에세이다. 하나같이 자신이 원한 일이 아니다. 제목처럼 참으로 지랄맞다. 작가의 일상은 분명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지랄맞음이 축제가 될 거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긍정적이다. , 긍정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책을 다 읽고 보니 그녀는 이글이글거리는 불꽃같았다. 과거가 어떠했든 그녀는 지금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첫 글 불꽃축제가 있던 날 택시 안에서에서 작가가 밝혔다시피 그녀의 내면에는 별과 불꽃들이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하니 이 책을 시작으로 펑펑 불꽃을 터뜨릴 것 같다.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 가족, 친척, 친구라 불렀던 이들, 장애인 보조 활동지원사, 그리고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까지. 그녀의 직업은 마사지사다. 손님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말랑말랑하게 마사지해준다. 마사지를 받고 간 손님들은 잠을 푹 잤을 것이다. 마사지를 잘 받아서 그렇다고 여기겠지만 분명 마음의 이완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자신이 대나무숲이 된 것 같다고 표현했듯 말이다. 마사지사 경력이 오래되었다 해서 모든 손님들이 대하기 쉬운 건 아닐 것이다. 일상에선 편견어린 시선과 비하성 발언이 따라붙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손님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는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읽고 학생들은, 나는 저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글을 쓴다. 나는 무어라 피드백을 해야할 지 난감하다. 발달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시조카를 보며 내 자식이 그렇게 태어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애가 불편할지라도 불쌍한 건 아니라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면서는 마음 한쪽이 뜨끔거린다. 자신의 잣대로 그녀에게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보조활동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내 이중적 태도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책에서 애증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가 모녀의 관계는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다.그런 관계는 내 주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친정엄마에게 자식의 도리라는 의무감만 남은 나는 이제 엄마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나는 딸이 없기 때문에 아웅다웅하다가도 금세 알콩달콩하는 모녀 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이런 내 입장에서 작가와 엄마의 살벌하고도 애정 넘치는 사이는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화끈하고 열정적인 모친의 성정을 빼닮은 작가는 오늘도 땀 흘리며 탱고를 배운다. 그리고 손님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자신의 편견을 발견하면 선뜻 사과한다.


조승리 작가는 샘터 수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그간 써온 글들을 이번에 책으로 냈다. 이 펄떡거리는 글들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에 눈이 부시다. 앞으로 축제 같은 글들을 팡팡 써낼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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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 - 베네수엘라가 여기에
서정 지음 / 난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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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라는 국가 이름만으로 연상되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석유, 미인 정도였는데 우고 차베스와 구스타보 두다멜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10년도 더 전에 차베스에 대한 책을 읽은 기억만 남아있고, 두다멜은 코로나 전에 LA필을 이끌고 내한했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주로 뒷모습이었지만이 정도가 내가 베네수엘라라는 이름으로 떠올리는 명사들이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대한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신청했다. 출판사는 서평단 참여자를 카라카스 학생이라 표현했다. 이 책으로 카라카스를, 베네수엘라를, 배우는 학생이 되어보려고 했다.


작가 서정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을 책으로 냈고 러시아어와 영어를 번역하고 있다. 그는 두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카라카스에서는 스페인어를 배워야 했다. 낯선 곳에 도착해 살 곳을 정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산책하듯 천천히 만난다. 나도 작가의 눈을 통해 카라카스를 만났다. 그가 소개하는 다양한 문학작품들에 오버랩되는 그곳을, 나는 공부하는 자세로 찬찬히 읽어보았다. 베네수엘라에 가본 적이 없고 너무나 무지하니 다소곳한 학생이 되었다.


1부에서는 차베스 사후에 불어닥친 경제 공황과 사회 혼란 때문에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와 같은 이방인에게는 더욱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세계 여러 곳에서 살아온 경험들은 카라카스 곳곳을 누비며 노크했고 사람들은 응답해주었다. 2부는 카라카스의 문화를 다양하게 읽어주는데 음식, 미술, 음악, 건축 등을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촘촘히 엮어 알려준다.


카라카스는 물리적으로 너무나 먼 거리에 있어서 정보가 적기도 하지만 우리 관심 밖의 대상이다.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동하는 이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여행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카라카스 곳곳을 꼼꼼하게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정보책이 될 것이다.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컨셉의 책이라 생각해도 좋겠다. 그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한 달 살기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그저 명소를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이 적재적소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1부의 대정전을 읽으며 석유 부자로 알고 있었던 베네수엘라에 왜 정전 사태가 일어났고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전기 공급이 끊긴 도시가 소설 <눈 먼자들의 도시>처럼 되지 않은 것을 읽으면서는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시간들을 견뎌낸 작가는 절묘한 문학 작품을 소환하고 그 문장들을 덧붙였다. 이러한 구성이 바로 이 책의 묘미다.


2부에서 두다멜이 수혜를 받은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 유소년 및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국가 시스템)과 전용 음악 센터를 소개해주어 반가웠다. 엘시스테마 출신은 두다멜 밖에 몰랐는데 테레사 카레뇨라는 음악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만 7세 때인 1860년 첫 작품을 작곡했고 1863년에는 처음으로 작품을 출판했으며 1876년에는 <돈 조반니>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다. 70여 편의 작품을 남겼고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1880년대에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오페라단을 조직하고 음악원을 설립했다.


앞서 여행책이라고 썼지만 가볍게 읽을 여행책이라면 서평단을 카라카스의 학생이라고 표현했을까? 이 책을 통해 카라카스가 어떤 곳이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정도로만 읽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소개한 역사적 인물과 예술가들, 그리고 문학 작품을 순서대로 정렬한 뒤 벽돌 깨듯 하나씩 알아간다면 그야말로 공부하는 학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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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 책이 좋아 3단계
박효미 지음, 임나운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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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미 작가의 신간 단편동화집 <일단 치킨 먹고, 사춘기!>를 서평단 자격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5편의 단편 동화가 수록되어 있고 주 소재가 연애라서 초등 고학년 이상이 읽기에 적당하다. 아이들이 무슨 연애인가 싶겠지만 어리다 해서 사랑의 감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춘기에 접어들면 이성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는 시기이지 않는가. 각각의 동화는 연애 감정 뿐 아니라 일상의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 매일매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것이 전부인 것 같아도 가족과 친구사이의 인간관계를 통해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이다.


각 동화의 짧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문자로 갑작스레 이별 통보를 받고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체중계의 사랑”, 혼자 연애의 감정에 휩쓸려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랑의 물 분자”, 오래된 남사친이 제 언니에게 사랑고백을 하자 둘의 사이를 막으려고 하는 이야기 전류 차단의 원칙”, 고등학생 오빠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SNS로 그 오빠를 스토킹 아닌 스토킹하게 되는 나는 여기 있다”, 전학 와서 단짝이 된 친구가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는 괜찮나요?”


초등학교 고학년은 어린이라고 불리는 건 거부하고 싶어 해도 청소년이라 하기엔 애매한 나이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솟아나는 마음들은 어른의 그것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푹 빠지게 되면 그것 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세상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 그 사랑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가늠하지 못하면서 제 마음이 상대와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될 때 받는 충격은 엄청나다. 실패라 여기는 것이다.


이 동화집의 주인공들은 제 마음을 온전히 알아채지는 못하는 것 같고, 어긋나버린 감정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통해 다시 다가올 사랑에는 이전보다 조금은 성숙하게 대처할 것임을 어른 독자들은 안다. 어린이 독자라면 저와 유사한 경험을 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할 것이며 그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아이들은 몸이 자라듯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배우고 커나간다그 안에서 자신을 만나고 제 감정의 실체를 또렷이 알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요즘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에 좋은 책이다. 나는 책으로 초등학생들과 만나기는 하지만 그들과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 나누기엔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다. 부모들이라 해서 자녀들과 속속들이 감정을 속속들이 나누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매일 할 일을 점검하는 스케줄 매니저 역할에 급급했다. 나 같은 학부모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 자녀들과 세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여 대화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이 책을 슬쩍 건네주면 좋겠다.



@체중계의 사랑 중에서

나는 내 몸을 시험지로 만들었다. 키의 점수는? 몸무게 점수는? 뱃살의 점수는? 뒤태의 점수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내 몸에 점수를 매겨 떠들고 다녔다. 그러니 다른 사람 또한 나에 대해 멋대로, 함부로 말한 것이다. 그래도 된다고, 상관하지 않겠다고, 내가 허락했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다.


@사랑의 물 분자 중에서

경지완 말에 틀린 게 없었다. 경지완 주인은 경지완이다. 내 맘대로 경지완을 바꿀 순 없다. 산소와 수소가 만나면 물이 되지만, 우리는 산소나 수소 같은 원자가 아니다. 규칙이 있다고 해서 납을 금으로 만들 수도 없다. 나는 멍청하게 서서 문득 생각했다. 경지완은 경지완이고, 조하나는 조하나였다. 우리가 사귀어도 우리는 여전히 각자 자신인 것이다.


@나는 여기 있다 중에서

나는 유니컬 카페를 탈퇴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인스타 계정도 없앴다. 가상의 세계는 날 끊임없이 불러들인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곳에만 있을 생각이다. 우리 집, 내 방, 내 책상, 진짜 내가 사는 곳. 나는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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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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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해저터널 안에서 40년을 살았다. 바닷물이 터널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터널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 피부가 없어 뼈와 근육이 다 드러나는 괴물, ‘무피귀’를 피해 고립을 선택한 이들이 과연 터널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일명 ‘차폐문’을 열 자는 누구인가? 터널 바깥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위험천만한 곳으로 누가 나갈 것인가.

제4회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소설상 대상 수상작 <터널 103>은 이렇게 시작부터 압박감이 상당하다. 그런데 어린 소녀 서다형이 제물 아닌 제물이 된다. 어릴 때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이 터널에서 언젠간 나갈 수 있을거라는 꿈을 자신이 실현시키고 싶었다. 그것은 모두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긴 하나 제 목숨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일! 다형을 사지로 내모는 이는 촌장 황필규다. 폐렴을 앓고 있는 다형 엄마에게 페니실린을 주겠다는 거래처럼 보이지만 예전에 다형 엄마가 자신을 배우자로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치졸한 복수다.

이 소설은 초반부터 어린 주인공을 선택의 기로에 세우고 지도자인 어른의 바닥을 가차없이 보여준다. 다형이 환기팬을 통해 터널을 나간 후부터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한 편의 영화처럼 휘몰아친다. 계급으로 나뉜 것 같은 여러 형태의 무피귀들과의 오싹한 전투, 터널에서 태어난 다형이 실제 자연과 인간을 만나면서 겪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탄생한 무피귀가 인간을 위협하게 되었으며 터널에 대한 비밀까지. 책을 잡은 누구라도 몰입감에 손을 놓지 못할 것이며 영화화 된다면 새로운 크리처물의 탄생이 될 것 같다. 무피귀의 외모를 실감나게 살리는 게 관건이겠지만.

인간의 본성을 두고 성악설, 성선설로 논쟁하는 이들이 있고, 이기심과 이타심도 왈가왈부하는 주제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해 온 것은 이기적으로 군 인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소설 속 상황처럼 집단을 위해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감히 다형처럼 행동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이 소설은 딜레마 상황을 비롯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나오므로 청소년들이 읽고 재미있게 독후활동을 하면 좋겠다. 만약 내가 다형이나 승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자신이나 주변 사람과 비슷한 등장인물 찾아보기, 책 속의 실패 사례인 인간병기가 현실에서 AI로 바뀌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예상해 보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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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삶 -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마주한 죽음과 희망의 간극
라훌 잔디얼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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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학 드라마를 즐겨보고 의사가 쓴 책도 찾아 읽는 편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환자를 대하는 저런 따뜻한 의사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낭만닥터 김사부”는 실감나는 수술 장면에 매료되어 보았다. 이국종 교수나 김승섭 교수, 남궁인씨의 책들도 읽어왔다.

책 <칼날 위의 삶>은 제목부터 긴장되었다. 20여 년간 1만 5천 명 이상의 환자를 만나고 4천 건 이상의 수술을 진행해온 의사가 쓴 책이라는 소개를 보니 꼭 읽어보고 싶었고 기대했다. <골든 아워>의 긴박감과 “낭만닥터 김사부”의 피 튀기는 수술 장면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머리말의 첫 문단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문단에서 저자 ‘라훌 잔디얼’은 전혀 다른 책이 나왔다고 했다.

외과 의사는 환자보다는 그 환자가 받을 수술에 관심이 더 많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수술을 한 적이 없다. 내게 수술은 인체 해부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관한 탐구였다. 나는 수술이라는 기술의 덕을 많이 보았다. 수술은 나와 환자를 발가벗기고, 둘의 사활을 칼날 위에 올려놓는다. 수술은 외로운 상황이 될 수 있고, 쉬운 답은 거의 없다.

(……)

내가 환자와 함께했던 여정은 인간의 나약함, 용기,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상급자 코스였다. 그리고 그 고통을 치료하려고 내 자신의 고통을 전면에 내세워야 했다. 그동안 내가 환자와 함께 겪었던 윤리 문제와 갈등에 대처한 여정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이 어떤 환자를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수술했다는 자랑이 아닐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수술 현장의 모습을 구경하려고 했던 나를 반성했다. 책은 10개의 장으로 나뉘었으며 각 챕터의 주 제목 아래에 부제가 붙어있다.




저자가 했던 뇌수술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실패 사례도 다룬다. 장마다 각기 다른 환자의 질환과 수술, 결과 뿐 아니라 당시 저자 자신의 상황과 심리 상태로 연결했다. 각각의 케이스가 너무 절박하고 극적이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기 어렵고 드라마에서도 접하기 힘든 사례들이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과 실패담을 드러냈고, 심리학 용어와 자연스레 연결해주어 독자도 자신에게 대입해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뇌 관련 질병명 뿐 아니라 저자가 수술하는 장면에서 뇌의 세부 명칭과 혈관의 이름을 언급할 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소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소화 관련기의 위치와 하는 일, 관련 질병에 대해 공부를 하는 중이다. 몇 년 전에는 친정엄마가 급성 신부전으로 큰 일을 겪을 뻔 했던 적이 있어서 신장까지. 그동안 뇌과학 책들을 읽어왔는데도 이 책을 읽다보니 뇌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수술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서술했지만 나는 장님 코끼리 다리 더듬는 기분이었다. 뇌가 하는 일과 수술 순서가 나오지만 여러 혈관의 이름을 언급할 땐 대체 그것이 어디 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모르니 답답했다. 그래서 뇌 해부도와 각 혈관의 위치를 검색해서 이미지를 보며 읽었더니 수술 장면이 어슴프레하게나마 그려졌다. 독자마다 감동포인트가 다르겠지만 나는 뇌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저자의 글솜씨에도 감탄했다. 의학 관련 지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현장감이 잘 전달되었고,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저자는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물론 매끄럽게 번역한 역자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각 장마다 다루어진 환자의 사례는 그 어떤 소설보다 몰입하게 만들었다. 순간적 판단 미스로 하반신이 마비된 12살 소녀, 6개월 후 아들의 졸업식을 보기 위해 마지막 수술을 요청한 어머니, 레지던트 수련의 시절 수술실에서 교수의 집도가 잘못되었다고 했다가 신경외과의를 못하게 될 거라고 협박당한 일, 감금증후군 환자의 영혼을 놓아주었던 사례까지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었다.

저자는 어릴 때 주위로부터 받았던 냉대와 과소평가가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입증하며 살아야 했다. 적을 갖는 것이 추진력의 원천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이끌어주는 자양분이 아니라 결점이며 삶에 장애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이를 망친 그저 그런 외과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완벽해지고 싶었다. 다른 이들이 할 수 없는 수술을 중독적으로 맡아 했다. 다행이 그는 아버지 덕분에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수술 과정에 집중하면서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자는 암 전문 외과의사로 일하는 것이 심적으로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오히려 환자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고 용기를 준다고 답한다. 그는 암환자들이 위협을 안고 살아간다고 꼭 무기력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현실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했다. 암환자들은 그에게 인생 대부분의 경험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저자가 옆집에 살던 이웃 형에게 당했던 괴롭힘은 자신을 협박한 교수와의 사건을 이겨낼 힘이 되었다.

또 환자들이 감사인사를 보내면 의아하단다. 그들의 가장 치열하고 가장 개인적인 순간에 개입할 수 있도록 관대하게 허락해준 환자들에게, 그들의 시련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허락해준 환자들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환자들의 인생을 지켜보는 관객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여정에 감동을 받고 교훈을 얻었다.

p.207

뇌는 마음의 승객인 동시에 운전사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결정을 내린 그 마음이 정처 없이 표류하다 다시 돌아와 뇌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결정을 바꿀 수도 있다. 뇌는 우리 몸에서 기계적인 일을 처리하지만 그보다 한 수 위의 일도 가능한 유일한 기관이다. 한쪽만 묶이고 다른 쪽은 자유로운 연과 같다. 뇌는 신경생물학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 원리를 넘어 자유롭게 떠다니며 춤을 춘다. 인간은 생각하는 육신이다.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다.

p.211

자신이 살면서 추구하는 보상이 무엇인지 한번 의식해보고 무슨 동기로 그런 보상을 열망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혹시 파괴적인 동기는 아닌가? 우리 뇌는 보상을 좇아갈 태세가 되어 있다. 그게 우리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추진력이다. 이런 동력이 없으면 우리 삶에 주도권이나 방향이 없어진다. 바람이 잔 바다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갈망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갈망을 의식하고 잘 관찰해서, 궁극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내적으로 갈망을 이끌 통제력을 잃으면, 우리는 중독이라는 병에 걸린다.


p.263

자신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창조자로서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최종으로 답할 발언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유서로 인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가장 중요시하는 대의에 자신을 기증하면서 사후 이 질문에 답한다. 제인은 자신의 뇌종양을 연구에 기증했다. 제인은 암에게 정복당했지만 그 서사는 계속되고 그의 세포는 번식해서 과학적 발견과 미래 의학을 이끈다. 제인은 유산을 남긴 것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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