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음 / 더라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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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는 러브스토리다.

선우는 갓난아이 연우를 데리고 앞집으로 이사 온 아랑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상대를 순수하게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마음이라는 것. 아랑은 바로 그 선물을 내게 준 사람이다. 처음이자 유일한 사람.”


제대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던 선우는 자신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사랑에 5년 만에 절절한 고백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그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때 선우가 스물이었고 아랑은 선우보다 열 살이 많은 나이였다.


그리고 현재, 서른 다섯 선우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비오는 날 아침 학교 캠퍼스에서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 준 여학생 지우가 아랑과 너무나 닮아 깜짝 놀란다. 지난 15년 간 사라진 아랑을 계속 찾았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는데 그녀와 닮은 지우를 만나며 선우는 속절없이 흔들린다. 제 평생 유일한 사랑인 아랑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스며들게 되는 자신이 당황스럽지만 이 설레는 감정이 싫지만은 않다


선우 이야기는 선우의 사랑이야기다. 아랑은 선우에게 첫사랑이자 끝사랑이었고 말없이 떠나버린 그녀를 15년 동안 찾아 헤매고 있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다는 건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선우 이야기는 사랑의 정의를 묻고 있다. 작가는 독자들이 사춘기 남학생의 치기어린 사랑으로 여길 수 없도록 선우의 상황을 완벽히 세팅해놓고 선우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한다. 하나의 단편처럼 완결성이 있으며 이어지는 아난 이야기’ ‘연우 이야기역시 그러하다. 세 편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랑의 절실함은 선우 이야기에 가장 극대화 되어 있다.


<너를 찾아서>는 박산호 번역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인스타에서 출판사 작품 소개를 봤을 때 스릴러물이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영어 번역으로 유명한 그가 쓴 소설은 어떨지 아주 궁금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 명의 등장인물 각각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첫 서술자 선우의 이야기에 미스터리적 요소가 가장 많다.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앞에서 궁금했던 것들이 하나씩 풀리는데 이 소설은 마치 퍼즐 맞추기 같았다.


처음, ‘선우 이야기는 사각 퍼즐 판 중앙에 눈에 띄는 조각 몇 개만 올려둔 채 네 귀퉁이와 가장자리만 채운 형국이었다. 안쪽의 그림이 무엇일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두 번째 아난 이야기에서 어려운 조각들의 자리가 착착 맞춰지더니 세 번째 연우 이야기는 가속도가 붙어 남아있는 퍼즐 조각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완성이 되면 좋으련만 퍼즐 맞추기가 꼭 그렇듯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게 한다. 이 소설도 마지막, ‘모두의 이야기에서 마지막 조각의 역할을 하는 반전의 반전이 드러나면서 스릴러적 요소의 정점을 찍는다.


스릴러 소설의 시점이 1인칭인 경우가 많다. 화자가 보고 생각하는 것으로만 서술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의 한 면만을 보여준다. 그것이 독자가 오해하는 장치로 작동해 독자가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화자를 여럿 내세워 각기 다른 시각을 서술함으로써 독자에게 사건의 다른 면을 볼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이러한 기법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위해 특수한 능력을 등장인물 한 명에게 부여한다. 두 번째 화자 아난은 타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했을 때 그 사람의 기억 속 어떤 장면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인칭 화자의 서술로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초능력적 요소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 아난의 외할머니를 무당으로 설정하여 독자가 아난의 능력을 무리 없이 인정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 반전에서도 아난의 이 능력이 큰 역할을 하는데 독자에 따라 아난과 선우 사이의 대화를 반전으로 인식할 수도, 아난이 별장으로 돌아오기 전 선우의 독백이 더한 반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안해, 연우야. 널 사랑하지만 아랑은 영원히 나만의 아랑이어야만 했어...”


우린 첫사랑에 이중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뭣 모르고 하는 사랑이라 폄하하는 한편 순수함에 영원성을 더해 숭고한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것이 열다섯 소년의 사랑, 사라진 그녀를 찾는 선우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주인공 나이 때문에 설득 안 된다는 독자를 위해, 사랑은 죽음조차 불사를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는 선우의 아버지를 사랑한 선아 누나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선아 누나는 선우에게 남긴 편지에 이렇게 썼다.


선우야,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해. 하지만 잊지 마. 사랑은 항상 널 실망시킬 거야.”


우리는 사랑에 끝이란 없길 기대한다. 해피엔딩이라는 말조차 둘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뜻이라고 여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절하게 사랑했건만 배신하고 죽인다. 둘의 사랑을 양팔저울 위에 올려놓으면 수평이 될까. 내가 더 많이 사랑하면 실망하고 슬플까. 사랑하면 충만함만 그득할 것 같지만 사랑해도 쓸쓸하다.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이고, ‘선우의 이야기를 한 남자의 사랑이라고 요약하기도 힘들다.


나에게 이 소설의 반전은 선우의 사랑이 아니라 선아의 사랑이었다. 이 소설은 사라진 아랑을 찾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줄거리이지만 선아의 이야기를 마지막에야 발견했다. 선우의 사랑이 순수한 이미지였다면 선아의 사랑은 구질구질했다. 눈여겨 읽고 싶지 않았고, 그녀의 행동이 사랑이란 말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비난하고 싶었다. 대체 왜 저런 인간을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에 가서야 작가가 숨겨둔 소설 속 소설 같은 이야기를 찾아냈다. 프롤로그에 배치한 작가의 대범함에 엄지 척했다. 내가 늦게 눈치 챈 둔감한 인간일 수도 있다. 선아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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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오스트리아 & 부다페스트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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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만 해도 코시국이 끝날 것 같은 분위기라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맘 설레었던 사람들 많았을 것이다. 나는 2020년에 예약되어있던 호주여행을 취소했었다. 그 여행 멤버들과 봄에 만나 하반기엔 유럽으로 가자며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얼마 못가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계획은 또 무기한 연기되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을 그동안 해시태그 출판사의 책을 보며 대리만족 해왔다. 한 권만 들고 출발하면 될 정도로 꼼꼼하고 생생하게 가이드 해준다. 그러니 이번에 출간된 2022~2023년 개정판 <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 서평단에 바로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목차부터 살펴보면,




오스트리아에 대한 간단 소개와 오스트리아 각 도시의 유명 장소, 마지막엔 헝가리 (부다페스트 위주) 정보까지 알차게 실려 있다.

 

↓↓ 한 눈에 보는 오스트리아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오스트리아의 사계절 사진을 보니 정말 그림의 떡이로구나!! 이렇게 책으로 꿈만 꾸는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직접 가보나 싶다. 그래도 멋진 사진 보는 게 어디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여행코스 짜기에 앞서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문화, 인물, 음식까지 소개한다. 이 책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단지 일정 짜는 법과 숙소와 식당, 명소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출발 전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






↑↑ 추천 일정은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두 도시에만 머무는 45일 일정부터 1213일까지 총 13가지이다. 각 일정을 하나씩만 잡은 게 아니라 여정 별로 2~4가지 씩이라서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오스트리아 한 달 살기'내용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한 도시 한 달 살기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현지인과의 교감은 없고 맛집 탐방과 SNS에 자랑하듯이 올리는 여행의 새로운 패턴인가, 그냥 새로운 장기 여행을 하는 여행자일 뿐이 아닌가?”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여행지를 선정하고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면 좋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여행지에서 한 달 동안 여행을 즐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한 달 살기의 핵심이다.”

 

내가 원하는 한 달 살기의 주제는 음악 축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루체른 페스티벌에 얼마나 가보고 싶어했는지...

 

이 책에서 아바도가 빈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는 내용이 나와 반가웠다. 빈이 예술의 도시라는 걸 누가 모를까만 유수의 음악가와 화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유명 건축물과 자연경관 사진 못지 않게 가슴 두근거리게 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발자취를 좇고 음악당에서든 길에서든 클래식 음악을 직접 들으면 얼마나 충만한 시간이 될까.

 


음식 소개는 문화를 알 수 있어 배경지식 확장 차원으로 읽었고 식당 정보는 대충 읽었지만 카페 정보는 자세히 봐두었다. 현지인들은 어떤 ☕️ 를 좋아하고 어디가 맛있고, 같이 판매하는 디저트는 어떤지~~

 

 

마지막에 소개한 부다페스트는 한 도시이기에 전체 분량의 6분의 1정도를 할애했다.

 

↓↓ 부다페스트로 여행 가야하는 이유 6가지를 앞부분에 배치했다.




1. 저렴한 여행 경비 : 서유럽 경비의 절반이다.

2. 동유럽의 파리 : 동유럽의 장미로 불린다.

3. 다양한 건축 양식 : 바로크, 신고전주의, 아르누보 양식이 뒤섞여 있다.

4. 안전한 치안 :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안전하다. 

5. 온천의 도시 : 1년 내내 실내와 노천탕을 개방하고 있는 곳이 많다.

6. 화려한 야경 :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하면 파리인데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면 반전이라고 느낄 정도로 화려함에 감탄하게 된다.

 

부다페스트도 역사와 인물, 유명 장소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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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꿀꺽
현민경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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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딱 어울리는 말놀이 그림책이 나왔다.

 

싱그러운 연두색으로 시작하는 앞면지를 열면 왼쪽 아래엔 연두초록 포도가 주렁주렁~

오른쪽 위엔 이글이글 빠알간 해님이~

아이가 포도 한송이를 따서 오두막으로~


 

포도 한알을 꿀꺽~

포도~

페도~

 

 

아이가

포포포포~~

하면서 하늘로 휘이익!!

도도도도~~~

하면서 내려오는 포도를

~~~울 꺽!!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노래하듯 포오도~ 폼동폼동~~

연두 포도 한 알을 던졌더니 해님에 통!하고 튕겨나올 땐 보라색!

보라색 포도를 맛나게 먹었더니

구름이 와서 같이 먹고 포동포동 살찌워 보라색 비로 도도도도~~

세차게 내려 아이가 보라색 강에서 폼동폼동 헤엄치고,

해님도 메뚜기도 거미도 신나게 물놀이~~

 

다음 두 페이지는 내지 전체가 보라~

아이가 빨대로 포로록 빨아먹는 포도주스가 되고, 점점 줄어드는 보라~

이어

나타나는 해님과 오두막, 구름~


한 송이 더?”


 

아이는 즐겁게 포도 한송이 따러 가고,

왼쪽엔 구름과 해가,

오른쪽엔 보라 포도가 주렁주렁~~

그리고 마지막 두 면지는 보라색~!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색의 변화를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최소한의 글자속엔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평면 위에 그려진 아이의 표정과 포도알이 살아 움직인다.

곤충들과 해와 달과 빗방울도 역동적이다.

이 모든 게 포도이기에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 이 그림책을 보고나면 벌어질 일!

냉장고를 열어 포도 한송이를 꺼낸다.

가족 모두 둘러앉아서,

포도알을 포도독 떼어

포포포포~~ 하며 입으로

도도도도~~ 하면서 씨를 뱉고 나면,

마주보고

파하하하~~~~ 웃는다.

포도의 계절에 딱이다.

이젠 포도가 나는 때가 오면

이 그림책을 꺼내 포도를 먹게 될 거다!

 

​☞ 내가 고른 이 한장!

저 단순한 그림 속에 깃든 극강의 만족감이라니!

포도를 먹을 때 내 표정도 꼭 저렇다.


 

​☞ 이 그림책에 한마디~

"단순한 디테일"

 

​☞ 요 그림책 읽고 아이와 할 수 있는 독후 활동

1. 그림대로 따라하기, 그려 보기

2. 그림책에 쓰인 낱말로 노래 만들어 불러보기

3. 좋아하는 과일로 그림책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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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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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하우스>는 스코틀랜드 작가 피터 메이(1951년생)의 장편소설이다. 그는 기자로 시작해 20대에 장편소설 <리포터>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 작품이 BBC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시나리오 작가로 보폭을 넓혔다.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블랙 하우스>루이스 섬’ 3부작의 첫 작품이다.


내가 경험한 섬을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 휘몰아치는 바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깎아지른 절벽과 매서운 파도... 그리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섬사람들의 가혹한 삶까지도.”


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펼쳐든 독자들을 루이스 섬으로 단숨에 데려다 놓는다.


스코틀랜드에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언덕 높은 곳에 중세 성이 있고, 성 뒤쪽으로 인도하는 카메라의 눈을 따라가면 성을 삼킬 듯한 흰 포말이 넘실대는 장면이 나타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런 장면은 으스스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그곳이 스코틀랜드가 맞는지는 알 수가 없다. 스코틀랜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스코틀랜드 북서쪽 루이스 섬이므로 스코틀랜드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육지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이라고 해봐야 고작 제주도 같은 관광지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 섬 생활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은 위 인용한 작가의 표현처럼 위협적인 섬의 이미지에 섬칫 놀라면서도 인간과 새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활자를 읽는 게 분명한데도 루이스 섬의 척박한 날씨와 몰아치는 파도와 전반적으로 음침한 분위기, 비밀스러운 사람들의 표정, 가넷새 사냥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내 눈앞에 펼쳐졌다. 시나리오 작가로 오래 활약한 작가의 장점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소설이므로 타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루이스 섬 3부작의 나머지 두 소설도 어떨지 기대가 된다.


리뷰를 쓰자니 4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좀 막막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뒷 표지에 쓰인 공포의 패러다임을 재창조한 스코틀랜드 스릴러의 정수라는 문구를 넘어서거나 부연할 말을 만들어내지 못하겠다. 어떻게 쓰면 이 글을 읽고 소설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순서대로 풀어내려고 한다. 주인공 핀 매클라우드 형사는 아들을 사고로 잃고 휴직 중이었는데 자신의 고향 루이스 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가라는 복귀명령을 받는다. 몇 달 전 그가 다루었던 살인사건과 유사하며 사망자가 핀이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8년 간 찾지 않았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수사를 하는 챕터에서는 3인칭으로, 핀의 어린 시절을 서술하는 챕터는 1인칭 시점이며 두 장면이 번갈아 나오기 때문에 영화적 느낌을 준다.


핀과 절친 아슈타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만나는 마샬리라는 여자아이를 포함 다른 등장인물들 소개와 학교 생활이 앞부분에서 자세히 그려지는데다, 현재 시점의 핀이 수사를 위해 인물들(옛 친구들)을 만나는 장면들 역시 더디게 진행되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뒤에 가서 얼마나 큰 걸 터트리려고 이렇게 밑밥을 촘촘하게 까는 걸까 싶었다. 여기에 더해 그곳의 오래된 전통인 가넷새 사냥까지 들어오니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많이 펼쳐놓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루이스 섬에서 80km나 떨어진 안 스커라는 가넷새의 서식지에 가서 부화된 새끼 새를 사냥하는 장면과 폭풍우 몰아치는 섬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사건들 묘사가 소설 후반부까지 삽입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알게 되었다. 그 장면들이 없었다면 이 소설의 스릴러적 요소가 반감되었을 것이라는 걸. 가넷새 사냥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 사람이 살인사건과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떡밥으로 사용한 걸까 의심했지만 그보다 더 주요한 쓰임, 아니 가넷새 사냥이 빠지면 이 소설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반부 즈음에 반전 내용이 하나 나오고 핀의 옛 친구들과의 사연도 까발려지면서 미스터리적 요소를 더해가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안 스커섬의 묘사가 시선을 사로잡게 한다면 등장인물들 마다의 사연과 핀과 아슈타르, 마샬리의 삼각관계는 대체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서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만들었다.


작가는 소설 중반이 넘도록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던, 어쩌면 숨겨두었던 것들을 후반부에 휘몰아치듯 터트려버린다. 그러니 이 소설은 약간의 참을성을 필요로 한다. 초반 진행이 조금 느리다고 덮어버리면 안 된다. 중반에 출생의 비밀이 드러났다고 삼류 막장이라며 성급히 판단하지 말길 바란다. 나 역시 이런 설정 식상한 걸 하며 살짝 실망했다. 그들(, 아슈타르, 마샬리)의 관계 설정을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비밀이 열리면서 그 이유를 수긍했다. 그러니 초중반을 잘 넘기면 후반부에 기대했던 스릴러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동네 개차반으로 이름 난 앵거스 존 맥리치(일명 에인절)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당연한 듯 받아들였고, 어릴 때부터 악동이었다는 자세한 서술에 독자 역시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천하 무뢰한이라고 여겼던 에인절에게도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작가가 인간의 다중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인절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더욱 그러하다. 범인이 누군지 여기서 밝히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므로 그럴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살인자를 찾는 수사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주인공 핀의 과거 찾기이다. 간절히 떠나고 싶었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에 기어코 다시 발을 디디게 만든 운명이, 묻어두었던 그의 기억을 봉인해제 시킨다. 20여 년 전 핀이 죽을 뻔 했다 살아난 그날, ‘안 스커에 함께 했던 이들 모두 오랜 시간 입 다물고 있었던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 한 명을 위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 비밀을 통해 작가는 복잡 다단한 인간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미약한 존재이면서 잔혹함을 칼처럼 휘두를 수도 잘 벼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섬 3부작의 나머지 두 편도 어서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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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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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동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반려동물이 된 고양이들 덕분에 동물복지나 개공장 관련 책들을 읽게 되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들여다 볼 눈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부터 식물에 관심이 생겼고 관련 도서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직 애착가는 반려식물까지 생긴 건 아니나 그동안 식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다른 집들 마당에 수국은 저리 탐스렇게 꽃을 피우는데 우리가 심은 수국이 시들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최근 반려식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식물 관리법을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식물 관련 신간이 나오면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나이를 먹은 만큼 세상의 지식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지만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새로운 정보를 어서 섭렵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자꾸 새 책을 사라고 부추기고 신간 서평단 모집에 자동적으로 신청서를 입력한다. <나의 초록 목록>은 김영사 서포터즈로 받은 책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식물학자가 전하는 우리와 함께 살아온, 우리가 지켜야 할 풀과 나무의 기록들이라는 소개를 보니 욕심이 동했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 박사가 처음 출간한 이 책의 저자 소개에는, ‘1년의 절반 이상은 전국 곳곳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 노동자로 살아간다. 식물 관련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고 되어 있다. 저자는 그동안 비무장지대나 산간, 무인도등 척박한 현장 곳곳을 누비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식물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아냈다. 일반 독자가 이 책에 소개된 식물들을 얼마나 많이 알까? 나는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고 그나마 안면 있는 식물은 10%도 안되었. 집에서 화분을 키우거나 마당에 식물을 심고 가꾸는 사람이라 해도 숲이나 해안가에 피어나 자라는 식물의 이름을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전문가가 소개하는 우리 산천에서 자라는 식물이야기다.


식물분류학 전문 서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식물을 소재로 하는 에세이이므로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일반인들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발견한 식물을 쉬운 말로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을 시와 연결하기도 한다. 현장을 누비는 사람의 글이 투박할 거라는 예상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문학적 표현들도 자주 등장한다. 모든 관심은 식물에 기울이고 전문서적만 읽을 거라고 생각한 건 내 편견이었다. 아마 시집을 늘 끼고 사는 사람일 게다. 그렇지 않고는 식물을 보며 시를 떠올리기가 어디 쉬운가.


또 다른 편견 하나! 저자가 할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시골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만으로 나이가 지긋할 거라고 예상했다. 초등학교 때 솔이끼와 우산이끼가 수업준비물이었다고 하기에 더 그렇게 여겼다. 치우친 눈으로 보니 계속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는데 삼십대라니! 놀라웠다. 연구하고 현장만 다녔을 것 같은데 문학과 함께 하며 매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저자가 소개한 식물들 중 이름과 모양을 알고 있는 식물이 나와서 반가웠다. 우리 동네 공터나 길가에도 흔히 피어나는 개망초다


꽃이 계란프라이 모양 같아서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를 소개한 부분을 살펴보면 저자의 글솜씨와 이 책의 전반적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귀화 식물은 죄가 없다라는 꼭지인데 시로 시작한다. ‘베트남 엄마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박후기 시인의 가족 도감1”이라는 시를 그대로 옮긴다.

 

엄마는 귀화식물,

주로 시골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원산지는 베트남,

겁이 많고

키가 작다

 

한국 전역의

산과 들에 피어나지만

엄마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꽃말은 안녕하세요

몸은 질기고

열매는 검붉다

 

가슴속 씨방에는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있다

 

자생식물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것은 외래식물이며 외래식물 중 도입 시기가 오래되어 토착한 식물을 귀화식물이라 부른다. 아주 오래전에 들어온 은행나무나 수양버들 외 개화기 이후 들어온 식물에 대한 시각이 곱지는 않은데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려한다.


대표적으로 북아메리카에서 온 망초는 구한말 서방 문물과 함께 식물이 들어온 후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쩜 이름부터 멍에를 뒤집어 쓴 채 사람들에게 알려지다니! 망초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지 않고 마당이나 도로변 버려진 집처럼 인간의 활동이 빈번한 곳에 무리지어 산다. 이런 망초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내 마당과 정원에 침입한 망초는 아무 죄가 없다. 인간에 의해 타국에서 건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제 삶을 살아갈 뿐이다."


망초가 유입된 역사와 이름의 유래를 읽다보니 서두에 소개한 시와 꼭 맞아 떨어진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시가 대변하는 듯하다. 어떻게 찾아냈을까. 세상에 시가 얼마나 많은데 저렇게 맞춤하게 연결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연구하는 식물에 대한 애정은 물론 시를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저 꽃을 계란꽃으로 알고 있다가 망초앞에 접두어 부정적 의미의 접두어 를 붙여개망초가 진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충격을 받았고 한다. 계란꽃과 함께 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모두 지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며. 개항 이후 우리가 걸었던 많은 길에 개망초가 한들대며 피어있을 것이고 그 이름에서 우리 민족의 설움이 읽히기도 한다며 한반도의 고난과 역경을 지켜본 꽃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보듬어 주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망초의 종류와 개망초에 대한 소개 후 꼭지의 제목에 걸맞게 다른 귀화식물에 대해서도 다룬다. 병충해에 강하다는 이유로 들여온 가시박때문에 우리종인 쥐방울덩굴이 사라졌고 "꼬리명주나비"도 같이 자취를 감췄다. 북한 식물학자들이 외래종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도 소개하면서 외래식물이 자국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부분을 인상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꼭지의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식물은 아무 죄가 없다. 그들은 원산지에서 따라온 그리움이 멍울처럼 뭉쳐 있어서낯선 타국에서 더 강인하게 살아갈 뿐이다."


사실 나는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부터 걱정이 앞섰다. 저자가 일반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식물을 자세히 다루고 친절하게 사진까지 첨부한 것을 보니 우려스러웠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그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훼손한다거나, 아니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이 무분별하게 채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내용을 읽으니 기막혔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보호종이 수두룩한데 눈 밝은 이들은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벌써 식물들을 싹쓸어 가버렸다니 말이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꼭지의 제목은 나를 오해하게 했다. 워낙 시가 여러 번 언급되다보니 시를 낭독하면서 뭔가 알아냈다는 뜻 인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낭독(狼毒)이라는 식물이 있다. 낭독은 뿌리를 약용하는 식물로 오랫동안 뿌리 채 뽑히기만 했을 뿐 보호받지는 못했으며 국내에서 멸종되었다고 추측했단다. 그런데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저자가 발견했다.


낭독과 비슷한 다른 식물들 사이에서 발견해 찍은 사진이고 낭독이 만병에 용한 악성이 뿌리에 농축되어있다는 설명을 붙였다. 나는 저자가 낭독이 있는 곳을 찾아들어가는 곳 주변에 피어난 다른 식물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만화방창(萬化方暢: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표현을 처음 알았다. 뭉게뭉게 피어난 귀룽나무와 각시붓꽃과 홀아비꽃대, 그리고 치명적 향기를 내뿜는 분꽃나무까지. 하나도 모르는 이름의 식물들이지만 그 깊은 산 속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식물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저자가 소개하는 우리나라 식물들에 대해 알려주는 이 책으로 많은 식물들을 소개받았다. 일독으로 그칠 책이 아니다. 가까이 두고 한 꼭지씩 읽어보거나 자연에서 만나게 될 식물들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면 이 책을 꺼내 다시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위 리뷰는 김영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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