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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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에 있다. 기쁨은 두려움에 대면할 수 있도록 삶이 제공하는 몇 웅큼의 에너지일 뿐..."

 

 

 모순적인 저 문장이 이 소설에서 밑줄 그어두었던 여러 문장들 중 가장 와닿았다. 소설가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소설에서 주제의식으로 드러낸다. 그 주제가 독자에게 오롯이 가닿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독자의 경우 자신의 배경지식이나 책을 읽을 당시 처한 상황에 따라 소설에서 느끼는 감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최수철 작가의 장편소설 <독의 꽃>은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이 연상된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보들레르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맞다고 했고 독에 대한 작품을 구상한 것은 10년 전부터였다고 한다.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엔 어려웠는데 작가 자신의 고질적 두통을 중심에 두고 가지를 뻗어나가야 겠다고 생각하여 소설 <독의 꽃>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세상에 독이라는 게 이렇게 많았단 말인가, 그것을 독으로도 혹은 약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그처럼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또한 그것들을 인물과 이야기에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소설을 완성해냈다는 것에 경탄하게 된다. 무려 500쪽이 넘는 분량이다.

  내가 들어본 독이름이라고 해봐야 복어독인 테트로도톡신이나 은행열매의 피리독신 정도이고, 사과씨나 매실에도 어느 정도의 독성물질이 들어있지만 과복용하지 않으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 정도가 독에 대한 얕은 지식이다. 소설에는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독에 대한 지식들이 많다. 실제 등장인물들은 그것을 적극 활용하여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독을 독으로 물리쳐서 자신의 환증을 고치기도 한다. 언뜻 생각하면 세상에 이런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또 실제 생활에 활용하는 이는 또 얼마나 되겠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작가는 왜 그렇게 독에 대해 방대하게 다루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아마도 스토리를 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독을 직접적으로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실제 독성물질에 관해 많은 정보와 용례가 등장하지만 이것은 소설이므로 분명 은유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을 드러낸 문장들은 이렇다.

"술이란 인간의 몸에 작용하는 독이고, 섹스는 인간 영혼에 작용하는 독이다."

 

"인간속의 불건전한 기운도 차가운 벽과도 같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면 오그라들어 병이 되고 악이 되고 독이 되는 거야. 때문에 인간이 어떤 폭력을 저지를 때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독이 치밀어올라 그의 행동에 묻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지."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은 자기 스타일을 갖지 못하는게 아니라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제 스타일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타일이라는 것 자체가 선택하거나 바깥에서 주어지는게 아니라 태어난 모습 그 자체가 취향이고 스타일이다."

 

 작가는 육체에 직접 작용하는 독으로 전체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하는 바는 정신이다. 마음, 정신, 기운 같은 단어들은 결국 영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자신의 내면 세계에 들어있는 것은 밖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으며 그 또한 타고나는 것으로, 작가는 보고 있다. 우리는 보통 외모를 스타일링할 수 있다고 여기는데 작가는 '태어난 모습 그 자체가 취향이고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운명론에 가까운 듯한데 사실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때 자기계발서식의 사고, 특히나 "하면 된다"식 사고는, 나를 원하는 대로 충분히 스타일링할 수 있다고 여기고 노력도 해봤지만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변하지 않는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태어난 모습 자체가 취향이고 스타일이라는 말에 실망과 위로를 동시에 받았다. 그러면 독과 해독 부분이 정신에는 어떻게 적용되는 것일까?

 맨 처음 인용한 문구, "삶의 의미는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에 있다!"는 말의 아이러니를 곱씹어 본다. 그동안 내 삶의 의미는 뭘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를 생각할 때 "기쁨"은 자동 완성 단어처럼 한 세트였다. 그런데 아니란다. 기쁨보단 두려움이란다. 토요일에 집에 들인 새끼고양이는 내게 기쁨보단 두려움, 아니 무거움을 안겨주었다. '왜 기쁨이 아닌가?'

'나는 기쁨을 얻으려고 고양이를 데려온 게 아닌가?'

 기존에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취하는 태도를 보니 두려웠다. 내가 쟤들에게 못할 짓을 한 건 아닌지, 새로운 존재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로 인식되어 받는 스트레스는, 받지 않아도 될 일이었는데... 새로 온 아이의 발랄하고 활달한 행동을 보며 집안 물건에 입힐 상처가 얼마나 될지 두려움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이런 두려움과 걱정보다 새로운 대상이 줄 기쁨만 크게 생각했던 어리석은 자신을 본다. 무거운 마음을 이 문장으로 위로 받는다. 두려움에 대면할 그저 몇 웅큼의 에너지를 더 크게 보는 인간은, 마약처럼 독처럼 그 에너지 그 기쁨을 삶의 의미라 여기며 쫒는다. 결국 우리는 삶의 의미를 기쁨이라 여기는 착각을 착각이 아니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이 끝나지않는 한 계속되는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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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빛나는 별이다 - 우주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 아우름 38
이광식 지음 / 샘터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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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를 알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있는 곳, 바로 우주를 알아야 한다.

-물리학자 조용민-

 

 

"우주"하면 나와는 별 상관없고, 그저 머나먼 이야기 같다. 아마 전공자나 특별히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누군지를 알려면 우주부터 알아야 한단다.

왜냐??

우리가 있는 곳이니까!!

알겠다!

알긴 알겠는데!!

천문학, 우주 관련 책은 선뜻 손길이 가지 않는 분야이다. 그럼 천문학 작가 이광식씨의 책 <우리는 스스로 빛나는 별이다>를 추천한다.

샘터 출판사의 아우름시리즈 38번째 책이다.

우주에 관련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이 책은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천문학 입문용으로 접하기에 알맞다.

 

 

위 목차를 보면 1장에는 우주의 역사와 크기에 대해서, 2장은 별과 은하수에 대한 지식을, 3장은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에 대해, 4장은 최근 관심집중된 블랙홀을 다루고, 마지막 5장은 우주탐사에 대한 내용이다. 책 중간중간에 지루하지 않도록 설명에 적절한 사진들도 실려있다.

 

 

올해 5월에 나온 책이라서 4월에 최초로 찍힌 블랙홀 사진과 그에 대한 내용도 실려있다. 이런 과학책은 최신의 정보가 들어있어야 하고 믿을 수있는 저자가 쓴 것이어야 하는데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고 있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재미난 쉼터]라는 페이지를 두어 잘못 알고 있는 천문상식을 바로 잡아준다. 요 코너의 재미가 쏠쏠하다.

 

↑↑↑ 그동안 음모론으로 제기되어온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관련된 내용에 대해 깔끔하게 정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자는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여러번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흑암으로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

우리는 별들이 만든 원소들, 곧 별 먼지로 이루어진 존재들이다. 초신성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폭발로 제 몸을 아낌없이 우주로 뿌리지 않았다면,

지구도, 인간도, 새들도, 나무도 지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우주와 맞먹는 기적이다.

 

 

 책을 덮으며 캔사스의 노래 "DUST IN THE WIND"가 흥얼거려졌다. 그들은 세상사 먼지와 같고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고, 그래서 집착하지 말자고 노래했다. 오늘 이 책을 통해 그 먼지, 그 티끌이 우리를 만든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그 작음의 위대함을 새삼 몸으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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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the Crawdads Sing (Hardcover)
델리아 오웬스 / Little, Brown Book Group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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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맞다!!

그렇다고 나이 7살때부터 처절하게 혼자서, 외로움과 한 몸인듯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여기, 그렇게 사는 아이 카야가 있다. 때는 1952년, 장소는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해안습지대이다. 엄마와 언니 오빠들은 2차대전 상이군인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집을 나가버렸다. 그저 사랑과 보호만을 받아도 모자랄 나이인 7살 카야는 어떻게하면 아빠 비위를 잘 맞출수 있을까 궁리하며 집안일을 열심히 한다. 그들이 사는 곳은 외딴 습지. 마을 사람들과 분리된 곳에서 격리대상 취급 받으며 살아간다.

이야기의 한 축은 어린 카야의 #성장소설 이고 교차진행되는 다른 한 축은 체이스라는, 동네에서 인기많던 청년의 죽음을 다루는 살인사건이다. 어린 카야의 시절인 1952년과 살인사건이 일어난 1970년 사이의 간극이 점점 좁혀지면서 #법정스릴러 로 바뀌고, 체이스의 살인용의자로 카야가 법정에 서게 된다. 여기에 카야의 첫사랑 테이트와의 이루어질듯 말듯 애틋한 러브스토리( #로맨스소설 )와 바다 습지 생태계( #야생생물 #생태학 )까지 더해진다. 소재가 여러가지라 산만할 수 있을텐데 하나의 이야기로 잘 버무려냈다. 그런데 또 작가는 신인이라네~ '올드한 신인'이란 말이 어울리겠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70이 다 된 #과학자 가 작년 여름에 첫 출간한 소설이라니!! 나이 많다고 다 소설 잘 쓰는 건 물론 아니지만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씨줄로, 성장에 바탕을 둔 스토리텔링을 날실로 하여 잘 직조해 낸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thecrawdadssing 이다. 455페이지나 되는데도 몰입해서 읽을만큼 흡입력 있었다. 이 소설의 주 시간적 배경은 52년부터 70년까지로, 당시 미국 남부 사회의 분위기와 훼손되지 않은 해안습지 생태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중에서도 주인공 카야가 겪은 외로움과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분노하고 눈물 흘렸다. 그녀는 보호받아야 할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음에도 꿋꿋하게 혼자 사는 법을 익혀서 어른이 된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 것이 생고생하는 것을 보니, 세상 모두다 떠나고 홀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도 발딱 일어나는 것을 보니 어찌나 애잔하던지... 그나마 글자를 가르쳐준 테이트, 혼자 사는데 필요한 물품을 제공해준 흑인부부 점핑과 메이블이 없었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테이트가 선생님, 점핑이 아버지가 되어 준 것이나 마친가지다.


 

그러나 어엿한 작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고 1급 살인용의자로 법정에 세우기에 이른다.

이 소설은 개인이 혼자 고립되었을 때에 겪는 비참함과 슬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집단이 가지는 편견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작동되었을 때, 얼마나 길고 지독하게 이어질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카야의 변호사 톰은 최후변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캐서린 클라크를 소외시켰던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와 달라진 건가요? 우리가 일원으로 받아주었다면, 지금 그녀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그녀를 먹이고 입히고 사랑해 주었다면, 우리 교회와 집에 초대했다면, 그녀를 향한 편견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범인으로 기소되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결국 그녀는 무죄로 풀려나 첫사랑 테이트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체이스를 죽인 사람은 누구일지를 추리해보는( #추리소설 ) 맛과 끝까지 비밀로 남겨둘 것인지 ( #살인미스터리 ) 궁금증을 유발하게하는 쫄깃함도 있었다. 궁금하다면 꼭 필독하길 강추한다. 미국에서 2018년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올해의책 에도 올랐다고하니 이미 검증된 소설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소설이 복합적인 구조를 품고 있어서 어느 하나만 부각시켜 글쓰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이제, 한 가지는 명확하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우리는 두 팔 벌려 환대해야 한다. 조건없는 사랑이야말로 먼먼곳으로 날아가 어딘가에서 자리잡고 꽃을 피울 홀씨를 퍼뜨리는 것과 같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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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지도 샘터역사동화 5
조경숙 지음, 안재선 그림, 이지수 감수 / 샘터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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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사의 샘터역사동화 시리즈 다섯번째 챽으로 <비밀지도>가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문학의 즐거움과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호기심까지 선사해주고자 기획되었다. 역사 속 의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동화로 만나볼 수 있다.

<비밀지도>는 역사 속 실존인물인 '이소바야시 신조'의 비밀스런 행적을 토대로 조경숙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해 완성한 이야기다. '이소바야시 신조'는 구한말 일본이 침투시킨 참모 본부 소속의 장교였다. 1882년 하나부사 공사와 함께 들어온 장교들 중 한명이었다. 그들은 서울을 비롯한 부산, 원산 등의 개항장에 근거지를 두고 첩보활동을 했고 이소바야시는 1882년부터 1884년까지 임진강 일대부터 중부지방전역을 측량하고 비밀스레 지도를 제작했다. 일본은 이렇게 불법적 정탐 활동으로 조선침략에 대한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했다.

 

보통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학교 때 배웠더라도 이렇게 미시사적인 부분까지 잘 알기는 힘들다. 일제가 저지른 사건이나 정책 위주로만 배우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소바야시의 지도작업을 돕게 된 재동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일본이 조선침략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어린이가 이해하기 쉽게 그려지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읽기에 적합하다. 물론 그 이상이나 어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씩식하고 영리한 주인공이 용감하게 역사의 한페이지를 만들어 나갔다는 이야기는 비록 동화지만 독자에게 뿌듯함을 준다.

 

신미양요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몸이 안좋아 가장노릇을 하게 된 재동이는 아는 아저씨의 소개로 일본인의 보조일을 하게 된다. 그 일본인은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금계랍' 이라는 약을 팔러 다니는데 그 길에 재동이가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재동의 눈에 그는, 약을 열심히 파려는 장사치처럼 보이지 않았다. 약파는 일은 오히려 재동이 열심이고 그는 망원경과 나침반으로 길과 산을 살피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데에만 열중하는 것이었다.

 

영리한 재동은 그가 우리 산천을 지도로 그리고, 도로를 중심으로 만든 그 지도를 이용해 일본군대가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저 사람은 사람들 눈을 피해 은밀히 우리나라의 지도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곧 우리 조선 사람들도 일본 말을 하게 될 거라고 한다. 그건 곧 일본이 우리 조선을....."


 

책쾌 박씨아저씨의 심부름을 하며 얻게 된 대동여지도에 대한 지식과 어린 나이에 사람들을 상대하며 얻은 감각으로 상황파악을 빠르게 한 재동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이 책은 독자에게 지식적인 면으로는 일제가 제국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한 주인공 어린이가 스스로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동화적 요소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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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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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고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 읽고 싶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당첨되어 받은 책,

<너의 이야기>

일본 소설 특유의 감성이 있을거라 예상했지만 앞부분을 읽다가,

'헙, 잘못 신청한건가? 오글오글, 간질간질, 닭살을 문질러야 하는 거야?'라며 걱정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이제 겨우 스무살, 중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의 반 백년 가까이 살아보니, 무슨 책이건 드라마건 사실성, 개연성, 논리성을 따지며 불뚝불뚝 비판정신만 솟아오르는 고질병이 생겼다. 거기다 어린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입견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인생 얼마 살지 않은 젊은이가 뭐 얼마나 깊이 있는 소설을 쓰겠나?' 라며 내심 얕잡아 보기도 했다.

 

 책은 이미 받았고 리뷰도 써야하니 계속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 만나는 작가였고 어차피 정보도 모르니 내용부터 펼쳐서 읽다말고 작가 소개를 봤다. 1990년생이고 고등학생때부터 글을 썼으며 2013년에 정식 데뷔한 작가였다. 올해 출간된 <너의 이야기>로 일본 주요 문학상 '요사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온라인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글을 쓴지는 10년이 넘었고 일본에서 인정받는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말은 너무나 형식적 설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작가 소설을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나이로 평가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고, 촘촘한 구성과 무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책 내용이나 줄거리에 대한 부분은 스포일러가 많고 직접 읽을 때의 즐거움과 설렘을 뺏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감상 위주로만 쓰려고 한다.

 

 책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운명의 상대가 있다."

 

얼마나 식상하며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말인가. 그런데 작가는 이 평범하고도 유명한 문장을 그렇지 않게, 아니 진짜 믿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 문장은 소설 거의 말미에 나오는데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거의 20여년 전 내 기억속의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족들과 함께 광안리 바다에 놀러 갔던 한여름날의 어느 밤이었다. 바닷가 옆에는 놀이기구 몇 개를 두고 운영하는 조그만 놀이동산 같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바이킹을 탔다. 내 반대쪽에 앉아있던 청년의 얼굴이 너무나 화사하고 밝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껏 그 사람처럼 환하게 웃는 낯을 본적이 없다. 바이킹을 타면 보통 환호하거나 괴로워하는데, 그의 괴로운듯 즐거워하던 그 표정과 인상이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어서 저 문장과 오버랩 되었다. 내 표현, 참 비루하다... 그를 본 내 심정은 요즘 말로 하자면 "심쿵할" 정도였지만 말을 붙여보지는 못했다. 난 이미 남편도 있고 아들 둘도 있었으니까...  

 

 운명의 상대를 만나도 그런 영화같은 일은 있을리가 없다며 스쳐지나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소설 속 '히로인'을 믿는다면 스쳐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쩌면 둘 중 누구부터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말을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을 덮으며 작가는 우리에게 미래 언젠간 일어날 지도 모를 일에 대한 환상으로 만족감을 주는 것이란 생각을 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이것은 소설이라는 비현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몇 시간 동안의 환상여행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나노로봇이라는 것이 인간의 기억을 콘트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 과학 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고, 남녀간의 로맨스소설이라고도 분류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느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봤을법한 상상을 잘 풀어낸 복합 장르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때까지 자신이 못해 본 어떤 사랑을 꼭 한 번은 이루고 죽고 싶어한다. 그것이 통속적이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라고 생각하지 않나.

 

 작가가 소설에서 천착한 것은 기억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결코 정확할 수 없으며 실제로 자의건 타의건 시간이 지난 기억은 각색, 윤색되고 아예 자기 멋대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지고 싶은 추억, 혹은 기억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까지 미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 낼 만한 능력까지는 안되므로 대개는 영화, 드라마, 소설 같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만족감을 얻는다. 자신이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상대가 나의 연인이거나 배우자이길 바란다.

 

 내가 계속 생각해 온 지점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나면서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한 상대를 평생 만나본 적이 없다. 흔히들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데 나는 중학생때부터 그 소울메이트를 찾아헤맸다.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내가 상상하는 미디어 속의 인물 중에 일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과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것의 폐해는 만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아쉬움만 커지는 것이었다. 그럴때면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따지 못한 채 뒤돌아서는 여우처럼' 어차피 저 사람도 실제로는 분명 단점이 많을 것'이라며 자위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서는 '내가 원하는, 내게 꼭 맞는 사람을 만들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소설을 써야하는데 그러기엔 내 능력이 너무나 일천하니 머릿속으로 그냥 이생각, 저생각만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맞춤한 소설을 만들어낸 것 같다. 내가 그리던 것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동안 연애소설을 읽으며 말도 안된다는 후회로 책장을 덮었는데, 이 소설은 그 부분을 불식시키기에 딱 맞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하지만 늘 갈구한다. 외로움을 잠재워줄 어떤 존재를. 그러나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실제 그럴 확률이 꽤 높다. 그럴 땐 이런 소설을 읽으며 대리만족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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