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 - 플뢰르 펠르랭 에세이
플뢰르 펠르랭 지음, 권지현 옮김 / 김영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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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수잔 브링크라는 여성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피부색이 다른 나라에 입양된 아동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이후 해외 입양 관련 뉴스나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보아왔다. 한국전쟁으로 고아수출국이 된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위권인 현재까지도 중국에 이어 고아 수출국 2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몹시 부끄럽다.


박근혜 정부 당시 프랑스로 입양된 여성(플뢰르 펠르랭)이 문화부장관이 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버릴 때는 언제고 입양된 나라에서 장관이 된 것을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 성공한 한국인이라는 공식에 꿰맞춰 호들갑을 떨어대는 언론에 나는 치를 떨었다. 저 여성은 한국의 이런 식의 대응이 얼마나 얼떨떨할까 싶었다.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교육을 잘 받았는가보다 정도로 생각했고 그 후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김영사에서 에세이를 냈다고 하기에 서포터즈 서평단 책으로 신청했다. 몇 년 전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만으로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는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낯이 화끈거렸다. 내가 궁금해 했던 게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물음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나는 얼평하는 사람과 남의 개인사에 시시콜콜 관심을 두는 이들을 싫어한다. 그의 개인사를 알고 싶어한 나는 내가 싫어한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혹시 그의 치부 같은 걸 확인하려는 관음증적 심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플뢰르 펠르랭2013년 한국 방문 당시 한국인들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던 것들을 풀어낸 에세이이다. 그는 생후 6개월에 프랑스에 입양되어 어떻게 성장하여 정치인, 사업가로 활동했는지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그간 해외입양아 스토리에서 자주 다루던 친부모 찾기는 아니다. 첫 방한 당시 당신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프랑스인이라고 답했던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 때의 답변에 대해, 혹은 플뢰르 펠르랭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영유아기 부모의 양육태도와 건강하고 적정한 부모의 교육열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했다. 입양아인지 아닌지의 차이와는 상관없다. 친부모가 학대를 일삼는 경우도 있고, 입양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양부모도 많다. 그러나 해외입양의 경우 부모와는 다른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인 자신의 모습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펠르랭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입양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정부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이혼을 하면서 딸에게서 친부를 빼앗았다는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학교생활에서 도드라지지 않도록 행동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되고자 했던 노력들이 자신의 상처를 부인하려고 했던 행동임을 그때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p.33


나는 그것이 상처였음을 항상 부인했기 때문에 상처를 의식하지 못한 채 아프기만 했다.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기만 하는 사람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나로서는 그런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아무리 친가족처럼 아껴주는 양부모 밑에서 커도 다른 성인들과 똑같이 자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식하지 못했던 친부모에 대한 수치심, 양부모를 사랑하면서도 갚을 수 없는 채무의식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학교생활에서 특별히 차별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그는 게이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문화부장관 당시 했던 인터뷰가 악의적인 편집으로 왜곡 보도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나와 벤처사업을 시작하면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독자들에게 당부했다. 스스로 만든 내면의 한계가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니 경계의 일부라도 깨도록 노력하길 바란다고.


이 책으로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사회 문화적 분위기, 정치권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물론 플뢰르 펠르랭이라는 인물을 관통하는 일면이었지만 한국 출신 입양아였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독특성이 있다. 해외입양아를 다루는 여느 미디어와 이 책이 차별되는 지점이다.

 


 

**위 리뷰는 김영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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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인생
저우다신 지음, 홍민경 옮김 / 책과이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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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 저우다신의 소설 <우아한 인생>450쪽이 넘는데도 단숨에 읽어 내렸다. 노년을 위한 지침서 같아서 이런저런 정보를 취할 수 있었고, 너무나 소설적이라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소설 맞다. 소설이란 걸 알고 읽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설마 이럴 수가 있을까 기막혀 했다. 그건 작가의 구성능력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70대 노인의 간병인으로 들어간 20대 여성의 체험을 강연하는 형식이다. 초반에는 실버타운과 간병 로봇 홍보에 이어 노년기의 특징이 서술되어 실버타운 홍보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노화 방지나 장수를 위한 각종 제품 소개가 이어져마치 실버타운에 들어간 노인이 되어 그런 제품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간병인 중샤오양이 나와 강연을 시작하는데 자신이 겪었던 일을 술회한다.

 

20대 여성 중샤오양이 70대 남성 샤오청산의 간병인으로 일하며 쓴 일지 같은 내용 속에 의학 관련 전문지식과 중국의 장수 지역, 대증요법들을 섞은 구성 방식 때문에 소설보다는 실제 경험담을 읽고 있는 느낌을 받게 했다. 우리는 이미 노년이거나 노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제 아무리 젊었을 때 전문직으로 활약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소설 속 주인공 노인 샤오청산은 판사 출신임에도 노인들을 노린 사기에 번번이 당한다. 사기꾼들은 역사나 통계, 의학 지식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꾀었다. 불로초를 찾는 진시황이 저랬을까 싶을 만큼 홀랑홀랑 넘어갔다. 심신이 허약해지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지만 주인공은 장수를 위해 맹목적이었다.

 

작가는 주인공 샤오청산을 통해 70대에서 80대까지의 나이에 노화로 인해 나타나는 변화와 발생 가능한 질병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이 읽으면 자신의 상황에 깊이 감정이입하여 읽게 될 것이다. 곧 자신에게 닥칠 상황들이므로 주의 깊게 읽으며 도움이 될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노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다가올 일들이고 부모는 이미 노인일 것이므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엄마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는 생활의 불편함이나 질병에 대해 그리 표현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엄마는 여러 질환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졌고 현재도 각종 약들을 많이 복용중이다. 현재 자신의 상태가 몹시 불만스럽다. 양쪽 무릎 모두 인공관절 수술을 했음에도 통증이 있고 보행에 불편하다. 거기에 심장 석회화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별 무리없이 잘 걸어다니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나는 모양이다. 전화 통화할 때마다 나는 왜 이 모양이냐며, 왜 이러고 사냐며, 팍 죽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 편하게 먹으시라고,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좋은 거 아니겠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실 지겹다. 나는 나중에 애들에게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나이가 들어도 뭔가 몰두해서 할 일이 있어야겠다고 뼈져리게 느꼈다. 지금 하는 여러 가지들 중에 계속 하고 싶은 건 서평단 활동이다. 과연 노년이 되어서까지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든 생각,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늙었다고 출판사에서 신간 서평단으로 뽑아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사서 읽고 쓰면 될 일!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 후반부에서처럼 샤오청산에게 확연히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은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래도 가장 두려운 것은 치매다. 몇 년 전 읽은 책 <조력살인>에서는 말기암이나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이가 자신의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스위스에 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존엄사법이 생겨나면 좋겠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케어할 수 없어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피폐할까.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소설에서 샤오청산은 자살을 선택한다. 뇌출혈 수술 후에도, 청각과 시각이 사라져갈 때도, 버텨왔으나 자신의 기억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10년 넘게 가족처럼 지내온 중샤오양은 그의 자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자료를 찾고 약을 찾다가 도교사원에 가서 치료법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책 후반부의 이 대목에서 독자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내용을 밝히려니 상당한 스포를 하는 것 같아서 못하겠다. ‘사랑이라는 치료법이 무엇일지, 그래서 과연 치매가 치료되었을지 예상해보는 재미를 주고 싶다. 늙고 병들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되는데 그간 자신이 살던대로 똑같으리라는 건 욕심이다. 노화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몸의 상태와 마음의 간극이 먼 사람일수록 우아하지 못한 일들이 생길 것이다.

 

책 제목처럼 누구나 우아하게 살고 싶을 것이다. 과연 <우아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자신의 우아한 모습을 그려보자. 80대의 나를 상상해보았다. 외모가 단정하고 말과 행동이 구질구질하지 않으면 좋겠다. 질병이 있더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웃으면서 책 읽고 서평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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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모둠의 용의자들 VivaVivo (비바비보) 49
하유지 지음 / 뜨인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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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드름쟁이 최은율은 잘하는 것도 없고 예쁜 구석도 없고, 베프가 없어서 밥도 혼자 먹는다. 그런 최은율에게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내년에는 같은 반 되기 싫은 사람?

난 최은율.

왜냐하면...


새고방(새별고민방:새별중학교 수학선생님이자 상담실 부담당인 홍강주 선생님이 만든 익명 채팅방)에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떴다. 닉네임 ‘...’, 점셋의 메시지 옆에 붙은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점셋은 왜냐하면...”만 남긴 채 위 두 메시지만 지우고 방을 나가버렸다.


넋이 탈탈 털린 은율은 점셋이 누군지 찾고 싶었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지 않을 거라면 찾아내야만 한다. 최은율도 최은율이 싫지만 대체 누가 최은율과 같은 반이 되기 싫다고 한 건지 알아내고 싶다. 홍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엔 더욱 확고해졌다. 홍쌤은 무시와 직시 중에 직시를 선택했을 때 알게 될 진실이 상쾌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은율은 처음에는 누구인지가 궁금했는데 이젠 왜 그랬는지가 더 알고 싶어졌다.


전교에서 가장 예쁜 이엘라의 힌트 덕분에 책의 제목대로 제 3모둠의 용의자들 다섯 명이 추려졌다. 은율의 범인 색출 작전이 시작되었다. 하유지 작가의 <3모둠의 용의자들>은 중학교 1학년 최은율이 익명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쓴 사람을 찾는 이야기다. 은율이 다섯 명의 용의자를 만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추리 소설 형식을 띠기 때문에 장르적 재미가 있다.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의 청소년 독자라면 공감하며 읽을 내용이 많다. 중학생이 겪는 고민들이 은율을 포함한 다섯 용의자들에게서 드러난다.


그 나이 대에 고민은 무겁기 그지없다. 갑자기 솟아난 여드름을 보면 평생 이런 얼굴로 살까봐 한숨이 푹푹 나오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어깻죽지는 한없이 땅으로 꺼진다. 그 누구도 나만큼 힘들 리 없다고 생각한다. 은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섯 명의 용의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깨닫게 된다. 나 빼고 다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으며 저마다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혼 위기의 부모 때문에 불안한 친구,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부모님이 공부만 강요하는 경우,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는 아이 등등. 은율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청소년 독자들이 감정이입하기에 충분하다.


절친 현서가 전학을 가면서 외톨이가 되었던 은율이 점셋을 찾으려고 만난 용의자들과 친구가 된다. 범인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고민을 알게 되고 묵혔던 오해도 풀게 된다. 작가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디테일한 생활상을 촘촘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른들이 읽으면 좋다. 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진 요즘 아이들의 일상은 교사나 학부모의 어린 시절과 천양지차다. 통화보다 문자가 편한 이들은 SNS로 자신을 드러내고 낯모르는 타인과도 곧장 친구가 되지만 현실에서 직접 소통하는 건 힘들다.


그들의 이러한 현실을 소설 속에서 너무 이상적으로 그린 게 아니냐는 비판적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의 목적성에 부합한다. 한없이 자신에게만 매몰될 수 있는 시기에 이런 책을 읽고 나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들 나만큼 힘들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무 의미 없는 배경 같던 존재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또한 스스로 자신과 친구가 되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등장인물들을 통한 간접 경험이지만 자신의 생활에 투영할 기회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 시기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고 어른도 이런 책을 같이 읽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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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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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더라도 그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을 몰라도 영화 <쇼생크 탈출>, <미저리>, <그린 마일>, <그것>은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영화들의 원작자가 바로 스티븐 킹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어본지 너무 오래 되어 이번에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나중에>의 서평단에 신청했는데 다행히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프롤로그 격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주인공 제이미 콘클린은 제목 나중에라는 단어를 너무 반복했음을 사과, 아니 양해를 구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스물 두살인 지금, 여섯 살 때의 기억을 떠올려 썼으니 마흔 줄에 만약 지금을 돌아본다면 제대로 알게 된 게 너무나 많을 것임을 깨닫게 될 거라고. 그러니 항상 나중에' 라는 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두 페이지밖에 되지 않은 글에서 작가는 문장에서 어휘 선택법과 인간사의 지난한 문제와 떡밥까지 살짝 뿌려놓았다. 사실 이 두 장을 빠르게 읽고 본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런데 다 읽은 후 앞부분으로 돌아와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얼마나 위트 있고도 짧게 소개했는지를 확인하게 되어 슬며시 웃음짓게 되었다.

 

유령을 보는 아이라는 책 소개에서 영화 <식스 센스>를 떠올리는 건 무조건 반사처럼 몹시 자연스런 현상이다. 독자들이 그럴 것이란 걸 충분히 아는 작가는 초반부에 미리 밝힌다.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그 영화와는 다르다라고. 스티븐 킹이니까 <식스 센스> 급 반전에 버금가는 충격적 반전이 나올 거라는 기대에 김을 빼려는 작전이었을까. 아니면 <식스 센스>와 다른 점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보라는 뜻이었을까. 작가의 의도를 가늠해보기 위해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제이미는 죽은 사람의 유령()을 본다. 엄마에게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가 옆집 버켓 교수의 부인이 죽은 후 반지를 찾아주게 되면서 엄마도 확실히 믿게 된다. 작가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엄마의 사업이 휘청하게 될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수년간 시리즈물을 써오던 작가가 완결을 짓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비윤리적인 걸 알지만 엄마는 제이미를 통해 유령인 작가에게서 후속편의 줄거리를 듣고 사후 출간본을 완성한다. 그래서 이 모자 가정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제이미의 능력으로 엄마의 사업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견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제이미는 저주스러울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어 뿌듯함을 느낀다.

 

제이미가 유령을 보긴 하지만 그 유령들은 살아있는 가족이 궁금해 하는,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제이미를 통해 남기고 며칠이 지나면 사라진다. 사실 유령들은 죽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에 잔인하게 살해된 모습인 경우 무섭게 느껴질 법도 한데 여기에 등장하는 유령들은 그리 무섭지 않았다. 작가가 처음에 공포물이라고 밝혔음에도 말이다. 그간 보아온 영상물의 흉측하고 잔인한 모습들에 내성이 생긴 탓이기도 하고, 외모에 비해 유령들의 행동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런데 제이미가 성장할 때까지 주위를 계속 맴도는 유령이 있는데 폭파범 테리올트이다. 사후 며칠 후에는 사라지는 유령에 비해 지속적으로 제이미에게 나타나는 테리올트는 섬뜩함을 자아냈다.

 

여기까지 보면 유령 테리올트 외에 특별히 공포감을 유발하지 않았다. 제이미에겐 아빠가 없을 뿐이지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엄마가 챙겨야하는 알콜중독자 외삼촌이 있고 비리경찰관이며 마약중독자인 동성애인 리즈가 있다. 유령보다 산 사람이 더 무시무시한 존재인 셈이다. 병원에 있는 외삼촌 때문에 돈이 많이 들고, 시시때때로 나타나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리즈 때문이다. 후반부에 가서 리즈가 결정적 사건을 일으키는데 바로 마약 때문이다. 이미 경찰에서 잘린 리즈는 이번에도 마약을 찾기 위해 제이미를 납치한다. 죽은 마약범 유령에게서 마약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듣기 위해서다. 여기서부터 마지막까지의 줄거리에 반전이 들어있다.

 

이 소설에는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문화와 사회상, 인간 군상의 모습이 들어있다. 자극적인 내용과 충격적 반전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스티븐 킹이 이렇게 말랑말랑했던가 하고. 그러나 나는 한 소년의 회상일기처럼 서술된 이 소설을 성장소설로 읽었다. 전술한 바 있지만 특이한 능력을 가진 제이미가 했던 대부분의 행동들은 엄마를 위한 것이었고 그것은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아들로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였지만 이 가정에 부재한 아버지(남성성)의 자리를 메우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마지막에 제이미는 자신의 능력으로 아빠가 누구인지 확인했고 그에 대해 변명 내지 옹호하는 내용을 상술한다. 이는 오랫동안 사회문화적으로 터부시되어온 시각을 깨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예상해 보았다.

 

<나중에>가 스티븐 킹의 신작이라고 매운맛 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좀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텔링력에 있어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므로 스릴러적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읽는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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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빌드업 책담 청소년 문학
최민경 지음 / 책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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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빌드업>의 주인공 천강호는 축구 유망주였다. 그러나 연습경기 도중 친구 정태수에게 과도한 태클을 걸었고, 태수의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태수는 전국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고등 유스에 스카웃될 기회를 잃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었다. 그 때부터 강호에게 악몽 같은 시간이 시작됐다. 친구의 축구 인생을 망친 대가는 혹독했다. 일진 무리와 어울리던 태수의 사주로 나쁜 짓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엔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병 훔쳐오는 거였으나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강호는 결국 소년원에 들어갔다.


강호는 태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대한고 1학년으로 전학 와서도 계속되었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친구의 앞길을 막은 가해자라는 이유로 쥐 죽은 듯 지내는 강호를 보니 마음이 답답해지면서 지인의 아들이 생각났다. 그 아이도 소년원에 10달간 들어갔다가 나왔다. 강호는 자의가 아니라 강제에 의해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아이는 왜 그랬을까? 아빠가 재혼했다는 것 외엔 그 집안의 사정을 알지 못하니 섣부르게 추측할 수도 없다. 그 아이는 소년원에 갔다 와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며칠 다니지 않고 그만두었다. 강호가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듯 그 아이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며 마음이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강호에 지인 아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고, 강호의 저 셔틀 생활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하는 갑갑함도 있었다. 태수의 잔인한 태도가 도를 넘은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강호에게 기울었다. 강호가 화자인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어 그런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작가는 늪에 빠진 것 같은 강호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낼까 몹시 궁금했고 강호가 걱정되었다. 고영표라는 전 국가대표가 대한고에 감독으로 오게 되는데 그의 도움으로 다시 축구를 시작할 것 같은 예감은 들었다.


이후 줄거리는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그만 쓰겠다.


청소년 소설은 모두 희망적으로 끝이 난다. 청소년들이 이런 소설을 읽으며 세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어른들 입장에선 뻔하디 뻔하고 진부하기만 한 내용들이지만 청소년들에게는 간접 경험을 하게 해준다. 또한 주인공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은 미래에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일이므로 예방주사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이런 성장소설을 읽어야 한다


학부모나 교사들도 청소년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읽을 필요가 있다. 어른도 이런 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어른이라고 해서 어디 다 어른스럽던가. 인간은 죽을 때까지 되어가는 존재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책을 안 읽는 시대이지만 꼭 읽어야할 책을 꼽으라면 단연 청소년 소설!


이 소설은 축구가 소재이며 제목에도 축구 용어 빌드업이 쓰였다. 축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니다. 빌드업을 하려면 기초부터 팀원 전체가 차근차근 다져서 상대방 골문 앞까지 가야한다. 우리도 혼자 사는 게 아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특히나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청소년이 비록 타인에게 주는 도움이 적다할지라도 상호보완관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축구에서 빌드업해나간 작전이 골인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다시, 또다시! 빌드업 해서 시도하면 된다. 그게 청소년 시기의 특권이다.

   


인생에서 절대라는 건 없다.”

 

내가 살아 보니까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더라. 내가 도와달라고 하면 자기 일이 아닌데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그러니깐 너도 힘든 일 있으면 먼저 손을 내밀어봐.”

 

변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최고가 되고 싶으면 너랑 함께 뛰는 선수를 최고로 만들어라. 그건 생각보다 훨씬 기분 좋은 일일 거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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