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유광수의 고전 살롱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광수 교수의 전작 <문제적 고전 살롱:가족 기담>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 고전 문학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가로 생각했는데 소설도 썼다고 해서 <싱글몰트 사나이>도 찾아 읽었다. 역시 이야기꾼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월말 김어준이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유광수 교수의 목소리를 듣고 놀랐다. 텍스트로만 만났던 유교수는 점잖고 진중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 톤은 높았고 말의 속도도 빨랐다.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는 내내 하이 텐션을 유지하며 속사포처럼 쏘아대는데 정신을 쏙 빼놓았다. 그래서 신간 <복을 읽어드리겠니다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바로 신청했다


이번 책은 월말 김어준의 텍스트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입말체로 되어 있어 글을 읽고 있지만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나처럼 팟캐스트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음성지원이 될 것이고 이 책으로 유교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푹 뺘져들에 읽게 될 것이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고전 문학을 어렵고 재미없게 배웠던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옛이야기 속에 이런 숨은 뜻이 있었다니!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니! 하며 놀랄 것이다.


이번 책 <복을 읽어드리겠습니다>는 고전 문학 속 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늘 머피의 법칙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들은 나보다 노력하지 않는 것 같은데 운이 따르는 것 같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면 또 이 책을 추천한다. 내 추천 이유로는 설득이 안 된다면 아래 저자의 말을 보면 읽고 싶어질 것이다.


"고전은 인간의 이야기고 삶의 이야기다. 거기에는 인간의 바람이 담겨 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바람,

복 받고 싶어하는 우리 마음,

모두가 담겨 있다.

돈이 많으면 세상살이가 편하다. 입도 편하고 몸도 편하다. 하지만 복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입에 들어가는 산해진미가 모래처럼 깔끄럽다. 아무리 편한 잠자기도 가시가 돋힌 듯 한없이 불편하다. 복이 없으면 쓸데없는 바람에 붕 뜨기만 한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만 한다. 곧 사라질 헛된 바람에 아까운 시간을 날려버리고 삶도 행복도 떠나보낸다.

복을 알아야 잘 먹고 잘 살 텐데, 그걸 모른다.

복을 알아야 삶도 행복도 떠나지 않을 텐데, 그걸 도무지 모른다.

복을 일러드리겠다.

헛된 바람들로 가득 채운 가시나무에 아파하지 말고, 따스하고 포근한 공기가 된 바람에 미소 지으시라

복 받으시라

행복하시라."

 

이 책은 총 13개 장으로 구성했고 각 장을 으로 이름 붙였다. 극장에 입장하여 전기수의 이야기를 한 편씩 듣는 듯 했다. 복을 일러 준다고 했으니 복이 깃들게 하는 비법 같은 게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동안 알고 있던 옛 이야기의 교훈은 지극히 표면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잘못 해석된 것을 배운 거였다.


혹부리 영감을 한 번 보자. 이 이야기의 교훈을 욕심을 너무 부리면 안 된다 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건진 모르겠으나 이런 속담도 있지 않은가.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 이야기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한다. 혹부리 영감의 핵심은 진심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혹부리 영감도 노래를 불렀고 욕심쟁이 영감도 노래를 불렀으나 결과는 달랐다.


왜 그랬을까? 유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혹부리 영감은 자신의 처지를 담은 노래를 진심으로 불렀다고. 그는 노래로 자신의 삶을 승화했으나 욕심쟁이 영감의 노래에는 진심과 마음이 담긴 게 아니라 전략과 기술만 있었을 뿐이라고. 저자는 이 이야기를 우리 인생과 연결한다. 세상에 완벽한 이는 없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 부족한 것을 노래로 채우라고 한다.


p.118


모두가 만점이 되려 할 때, 모두가 완벽한 1이 되려 할 때, 그냥 부족한 대로 내 길을 걸어가도 된다. 조금 흐릿하게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

0.8로 살아도 된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불편해졌어도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부족해도 0.8로 살면 웃을 수 있다. 부족한 0.2는 노래로 채우면 된다. 혹부리 영감이 그랬듯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자기만의 진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모자라면 노래를 불러라. 노래는 도깨비도 춤추게 한다. 금은보화? 그건 당신이 부른 노래에 비하면 먼지 같은 것이다. 부질없는 혹 같은 것이다.

인생은 모자람을 즐겁게 노래하는 놀이터다. 웃으며 노래하며 살면 그만이다. 도깨비들이 한껏 웃을 것이다. 즐거운 춤을 출 것이다. 도깨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은 인생을 노래로 춤으로 승화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띠지에 크게 적혀 있는 문장, 옹졸하면 귀신이 찾아온다!”는 옹고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옹고집은 심술궂고 불효자식이라서 어떤 스님이 그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려고 지푸라기로 똑같은 옹고집을 만든!!게 아니었다. 옹졸해진 옹고집이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도플갱어를 만들었다. 옹고집에겐 필살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필살기?? 자기다운 핵심이 없었기에 자기가 없어도 집안이 잘 굴러간 거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남들과는 다른 당신의 필살기는 무엇인가?”


커피를 자주 사시는가?

남들보다 먼저 인사하시는가?

신발 정리를 하시는 것이 당신인가?

그도 아님 자주 웃기라도 하시는가?

남들이 떠올리는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


위 질문을 읽으며 뜨끔했다. 이 책은 분명 고전을 재해석한 거라고 했는데... 복을 읽어준다고 했는데...

옹고집을 떠올리며 옹졸해지지 말고, 옹골차게 살며, 당신의 필살기를 갈고 닦으라고 했다. 고개 끄덕이다가 갸웃했다. 아니이것은 거의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p.104


살다 보면 인생에 때가 묻는다. 먼지가 앉는다. 때론 아무 생각없이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옹졸해지면 나만 손해다. 옹고집이 되면 나만 억울하다. 내게 주어진 것이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굳이 내게 주어졌다면 내가 할 만한 거란 의미다. 난 그걸 하면 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묵묵히 하나씩 하나씩 당신만의 필살기를 보여주시라. 그리고 정말 때가 되면 모두 놓고 미소 지으며 떠나면 그만이다.

옹졸해지면 귀신이 찾아온다. 도플갱어가 찾아온다.

아쉽다고, 아깝다고, 남들이 몰라준다고, 마음이 다칠 일이 생겨도 옹졸해지면 안 된다. 당당하게 옹골차게 뚜벅뚜벅 당신의 길을 가시라. 당신의 필살기를 보여주시라.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차복이와 석숭이이야기에서는 우리는 누구 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들려준다. 우리가 하는 큰 착각 중에 하나가 자기는 제 복으로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복이 오롯이 내 능력과 노력으로 가진 것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내용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야기하는 존 롤스의 공동선을 떠오르게 한다. 능력주의의 신화에 빠지지 말고 내가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공동체 안 다른 이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이다.


복을 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문장이 바로 주제어가 아닌가 싶다.


유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고전 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살라는 조도 해준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