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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 여행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29
하인리히 하이네 지음, 황승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하인리히 하이네의 여행기는 여행을 통한 주관적인 감상을 넘어 정치, 사회, 철학 등 여러 카테고리로 생각의 범위를 확장해 진행된다. 형식적인 운문이 더 고급예술로 추앙받던 당시에 새로운 형식의 여행산문을 발표한 하이네는 당시 신진작가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번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하이네 여행기(Reisebilder zweiter Teil)』는 총 4권으로 출간되었던 여행기 가운데 대표작인 「북해(Die Nordsee)」연작과 「이념-르그랑의 책(Ideen-Das Buch Le Grand)」가 수록되어 있다. 하이네는 1825년 8월에서 9월, 1826년 7월에서 9월까지 독일 북해에 위치한 노르더나이섬에 머물며 북해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총 3부로 나뉘는 「북해」는 1부와 2부는 연작시, 3부는 산문으로 구성된다. 여행기를 서사시로 읽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산문의 형식으로 구성된 3부를 먼저 읽고 연작시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연작시는 바다와 향해 외에도 백사장, 파도, 해안지역이라 생겨난 지역의 전설 등 여러 소재가 등장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떠올리는 작가의 장면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별도 없는 가마득한 밤바다 풍경에서는 아버지와 오빠를 기다리는 어린 소녀를 그리고(p.19 해변의 밤), 잔잔한 바다의 윤슬에서 그리운 잃어버린 이의 환영을 마주한다.(p.41 바다의 환영)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을 관찰함으로써 다시 일상의 것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3부에서 이러한 면모를 확실하게 읽어낼 수 있다. 섬 주민의 생활태도와 특성을 관찰하면서 하이네는 종교에 대한 비판을 지적하고, 괴테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한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인상에서 확장되어 당시 독일사회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기록하고 있다. 글을 흐름은 저널리즘 글쓰기 기법과 유사한데, 당시에는 새로운 방식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기존 작가의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인용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주제에 대한 태도를 드러낼 때 무겁게만 다가가지 않도록 한다. 당시 검열 후 지워진 글을 대신에 끄여진 –하이픈을 줄표로 활용하며 재치있게 표현하는 등 풍자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이념-르그날의 책」에서는 이런 부분을 더 실감할 수 있다. ‘에벨리나’라는 가상의 인물에게 편지하듯 써내려간 20장의 글은 사랑, 자유, 진리 등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다. 특정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는 글이 아님에도 여행기에 수록된 연유가 궁금했는데, 어쩌면 물리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전통적인 여행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대와 서로 다른 지역에 대한 단상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고 정립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여행기라 부를 수 있을 터이다.
『하이네 여행기』가 마냥 편한 글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이네의 풍자적인 글쓰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여러 작가, 통치자, 평론가, 유럽 역사 속 인물, 그리스 신화 등 선지식이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상세한 각주로 이런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으며 하이네의 유머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러한 사전정보를 기꺼이 찾아보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이네는 독일문학사에서 문제적 인물로 회자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고 있는 것은 그의 뛰어난 문학성에 있다. 체제에 대해 확고한 신념과 태도를 드러내고, 이를 선전이 아닌 예술로 기억되게 하는 그의 뛰어난 글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