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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처음 책장을 펼치면서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지금은 이미 사라져버린 경성의, 그것도 철저한 주관의 영역인 맛집의 고증이 가능할까?
철저한 고증이 가능하다고 해도 영상 매체가 아닌 책에서 얼마나 그 시절을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먹지도, 가볼 수도 없는 그 시절 맛집을 탐구하는 것이 무슨 효용이 있을까?
그렇게 갸웃거리면서 책장을 넘겼다가 나는 순식간에 경성으로 빠져들었다.
저자는 당대 소설, 잡지, 신문 등 가용 가능한 모든 범위에서 수집한 텍스트로 단단하게 뼈대를 만들고, 삽화와 사진으로 살을 붙인다.
이렇게 '튼실하게' 책에서 구현된 당시 경성의 모습과 맛집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생동감 넘치고, 또 무엇보다도 재밌었다.
메뉴판만 보아도 그렇다. 커피가 15전인데 아이스크림이 30전이나 한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4,500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이스크림이 9,000원인 셈이다. 당시 설비나 기술의 한계를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만, 이렇게나 비싼 아이스크림이라니.
아이스크림 플로트를 먹는 모습 등을 묘사한 소설 대목도 재밌었다. 아이스크림을 풍덩 빠뜨렸을 때 튀는 소다나, 소다를 급하게 들이켜 사레가 걸린다거나 하는 장면은 꼭 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이렇듯 우리에게 익숙하고 사소한 지점들이 뒤틀려있거나 천연덕스럽게 튀어나온 부분들이 종종 나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나는 그럴 때마다 기꺼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맛집을 즐기는 손님들 뿐만 아니라 일급을 받으며 일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은 어떤 사연을 가졌을까, 라는 생각에 마음을 쓰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도를 짚어가면서 옛 미쓰코시 백화점 등이 있었던 자리에 현재의 명동, 을지로 쪽의 모습을 대입해보니 먼 과거라고만 느껴졌던 경성이 부쩍 가깝게 느껴졌다. 아무리 요즘 Y2K 감성이 부활해서 발토시 팔토시 끼고 다닌다고 해도 경성이야 말로 레트로 중의 레트로가 아닐까.
당시 경성의 많은 명소들이 도쿄 본점의 분점으로서 출발하여 제 기능을 다했던 모습 위로 짙게 드리운 식민지의 그림자 때문에 순전히 즐길 수만은 없었지만, 이 책은 내게 미술 장치와 극의 배경으로서만 납작하게 존재했던 ‘경성’이라는 도시를 더 풍성하고 두텁게 해주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본다. 내가 써내려갈 ‘서울 맛집 산책’은 어떨지.
메뉴판이나 플레이트의 구성처럼 내가 항상 사소하게 여기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어떤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을지.
경성을 걷고 나니 지금 여기 서울도 특별해보이기 시작한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