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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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카사디안, 니콜 키드먼, 엘튼 존, 리키 마틴... 모두가 아는 이 할리우드 스타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리모를 통해 출산을 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연예계에서도 연애중으로 알려졌던 두 연예인이 비밀 결혼후 미국에서 대리모를 통해 출산한 사실이 (역시나 비밀) 이혼 과정에서 폭로되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요원하게 들리지만, 이미 대리모는 우리 삶에 바짝 다가온 문제이다. 이 맥락에서 <베이비팜>은 굉장히 시의적절하다.


필리핀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제인과 아테에게 돋보기를 대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부족함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프리미엄' 대리모 레이건과 대리모 합숙소 골든 오크스를 빈틈 없이 관리하는 야망 가득한 메이에게까지 반경을 넓혀간다. 싱글맘 제인은 지병으로 쓰러진 사촌 아테를 대신하여 보수가 후한 신생아 입주 시터로 일하게 되지만, 곧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갓 태어난 딸 아말리아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제인은 아테의 소개로 골든 오크스의 대리모가 되고, 그곳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자립하기 위해 골든 오크스에 입소한 레이건과 친구가 된다. 제인과 레이건이 속한 골든 오크스를 총괄하는 메이는 중국계 이민 2세로, 카네기의 '열정적으로 행동하면 열정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를 만트라로 삼을 만큼 야심 넘치는 인물이다. 메이는 대리모와 대리모 출산에 관련된 모든 단계를 완벽히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 노력하며, 호스트라는 '상품'의 마케팅과 운용을 탁월하게 해낸다. 메이가 대리모를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상업적이고 계급적이다. 대리모 여성이 갖고 있는 속성 하나 하나가 쌓여 위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립된 위계에 따른 노골적인 차별은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범죄이지만, 골든오크스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레이건은 프리미엄 호스트 중에서도 성스러운 트라이팩터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백인이고 (메이는 면담을 통해 그녀가 아일랜드와 독일 혈통이 매력적으로 섞인 여성임을 확인했다), 예쁘며(하지만 섹시하지는 않은데, 이는 메이의 경험상 대단히 중요한 요건이다), 교육을 잘 받았다(듀크 대학의 우등 졸업생이니, 똑똑하되 위협적일 만큼 똑똑하지는 않은 셈이다). 만약 골든 오크스에서 일하도록 레이건을 설득해 덩 여사와 연결할 수만 있다면 ...메이는 새해가 시작되고 고작 몇주 만에 기록적인 연말 보너스를 향해 착착 나아가게 될 것이다. p.81


어떤 호스트가 누구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느냐가 호스트와 메이 모두의 보너스와 직결되어 있는 이 산업에서, 메이의 VIP 고객이자 엄청난 갑부인 덩 여사의 아이를 누가 임신하고 있는지가 골든 오크스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한 조각씩 모인 힌트와 정황이 수많은 호스트들 중 제인과 레이건을 가리킨다. 과연 덩 여사의 아이를 임신한 사람은 누구인가? 제인과 레이건은 무사히 아이를 출산하여 보너스를 받게 될 수 있을까? 제인은 아말리아와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저자인 조앤 라모스는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필리핀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와 필리핀 돌봄 노동 여성들로부터 간접경험한 현실, 그리고 실제 본인이 겪은 '아메리칸 드림'에 상상력을 엮어 <베이비 팜>을 완성했다. 현실에 기반한 생생하고 세밀한 서술은 신생아 입주 시터로 일하게 된 제인에게 아테가 주는 업무지침에서 특히나 빛을 발한다. 각 인물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써내려간 심리 묘사는 멀게만 느껴졌던 필리핀 이주여성 커뮤니티를, 각기 다른 모종의 이유로 대리모가 되기를 자처한 여자들을, 그리고 어쩌면 악역으로 비치기 십상인 메이 같은 인물까지도 연민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호스트들은 마냥 절박하고 불행하기만 한 대리모들이 아니며, 때로는 시기하고 질투하기도 하지만 힘이 닿는 한 연대하고 서로를 돕는다. 아테는 필리핀에 두고 온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수완과 리더십으로 이미 필리핀에 집을 몇 채나 소유한 사업가이기도 하다.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두고 치열하게 사는 메이 역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는 냉혈한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와의 가정을 꿈꾸는 말랑말랑한 마음도 있는 사람이다. 이렇듯 모든 등장인물에게 끝까지 돋보기를 거두지 않는 조앤 라모스의 시선이 좋았다. 모든 인물들이, 특히 호스트들이 '대리모'라는 정체성 하나만 갖고 있는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배경과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 입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다만 아기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10개월 동안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사라진 호스트들에 - '결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아를 산모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가차 없이 제거한다거나, 암이 의심되는 산모의 수술마저도 골든 오크스와 예비 양육자의 의견에 따라 수술여부를 결정한다 - 대해 쓰면서도 대리모 이슈에 관해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저자의 소극적인 태도는 다소 아쉬웠다. 해답을 찾으려 책을 펼치진 않았지만 적어도 의견은 듣고 싶었다. 하지만 찬반을 떠나 대리모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제3자 외에 당사자인 대리모를 선택하는 양육자와 대리모의 입장 모두 두텁게 서술되지 않아 조금 실망했다. 인종, 계급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대리모 문제에 중첩시켜 더 넓은 사유를 촉발시킨 점은 좋았지만.


대리모 문제에 관해 '넓게' 사유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별도 사례 없이 도서만 제공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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