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575호 : 2023.01.05 - #큐레이션의 시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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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엇을 구독하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누군가 어디선가 이 문장을 써먹었으리라 예상된다. 그만큼 오늘날 구독, 큐레이션은 경제와 문화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박물관/미술관Museum 바깥으로 나온 큐레이션. 큐레이션은 뮤지엄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설명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정보 과잉 시대에 가치 있는 정보, 사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맞춤'으로 선별하고 추천해주는 일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마케팅, 저널리즘, 출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아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큐레이션은 이제 '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알려주는 것'이란 뜻으로 통용된다.


이 글에서 큐레이션을 두 가지로 분류해보려 한다. 인간 큐레이션과 기계 큐레이션. 큐레이터-큐레이션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다. 기계 큐레이션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걸 추천해준다. 유튜브를 실행하면 열리는 창의 화면은 이미 큐레이션이 적용된 결과물이다. 유튜브와 OTT 플랫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온라인 공간일 이곳들은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가 최대한 시간을 쏟아붓게끔 설계되었다. 오죽하면 넷플릭스 창업자가 자신의 경쟁자는 사용자의 수면시간이라고 말을 했겠는가. 누구나 한 번쯤 유튜브에 접속하고 눈 뜨고 코 베이듯 시간을 '순삭'당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찾아보기'가 아닌 '추천'을 원하는 사회>의 최홍규는 추천 알고리즘이 낳는 문제를 비판하며 '자신이 원하는 정보가 무엇이며 그러한 정보를 통해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싶은가에 대한 메타적 사고'를 키워야 함을 역설한다. 추천 알고리즘이 자신의 생각, 입장, 취향과 비슷한 콘텐츠'만' 긁어모아 자연스레 '닫힌 계'를 형성하여 이용자를 편협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콘텐츠를 무작위로 추천하는 기능이 추가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다. 큐레이션, 추천 서비스가 보편화된 만큼 이제 큐레이션/추천 자체에 대해 성찰적,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메타적 사고를 키우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하는 시점임에 분명하다.


인간 큐레이션의 사정은 어떠한가. 인간 큐레이션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온라인은 최근 들어 급부상한 '뉴스 레터' 서비스를 예로 들고 싶고, 오프라인은 본문에서도 소개된 '큐레이션 서점'의 예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얼리어답터'가 못 되는 느림보인 탓에 '일간 이슬아'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각종 구독 서비스가 범람하던 시절에 한걸음 물러서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구독하고 있는 뉴스 레터만 해도 13개 정도가 된다. 그중 꾸준히 열람하는 레터는 유유출판사의 <보름유유>, 마티 출판사의 <마티의 각주>, 오월의봄 출판사의 <오!레터>, 한겨레신문의 <반올림(#)책>, 민음사의 <한편> 정도다. 세상사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줄어든 환경에서 <뉴닉>을 점점 안 읽게 되었고, 재미있게 읽었던 클래식 뉴스레터 <GLIT>이나 <인스피아>는 출판사의 뉴스레터를 우선적으로 읽다 보니 후순위로 밀려버렸다. 그런데 여기서 개인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뉴스레터를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문학평론가 최가은의 <리뷰레터>와 영화평론가 김철홍의 <원데이원무비>. 구독은 창작자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 기술이 효율적으로 내 관심사와 연관된 콘텐츠를 추천해줄 수 있을지언정 지인의 추천처럼 효과적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안면을 튼 사이가 아니더라도 글을 통해, 혹은 다른 정신적, 심리적 교감을 통해 쌓은 친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추천을 따른다.


이실직고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읽을 책을 스스로 정하는 편이다. 읽을 만한 책인지 아닌지 스스로 검증하고 판단하고 확인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고, 관심사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지점에 가장 가까운 책을 찾고자 탐색에 열심인 편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좌표의 책을 선물받으면 바로 독서에 돌입하기 어려워한다. 그렇다고 당연하게도 항상 다음에 읽을 책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어서 책의 본문에서 추천된 책이나 평소에 좋아하고 신뢰하는 저자가 어느 인터뷰나 방송에서 추천한 책에는 마음이 동해 안전한 모험을 나서곤 한다. <어쩌다산책>과 <어쩌다책방>의 디렉터 김수진 님의 글을 읽고 큐레이션 책방을 방문하면 전시된 책의 내용뿐 아니라 책들의 진열, 전시, 배치에 따른 공간의 형식을 헤아려보고 싶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어쩌다산책>의 특집 테마는 '존 버거'다. 열화당에서 나온 미니멀한 디자인의 존 버거 책들이 그야말로 미술품처럼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 <A가 X에게>를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집 책장에도 꽂혀 있는 책들이었지만 책장과 조명, 여백을 고려해 책 자체를 제대로 관찰하고 감각할 수 있게끔 배치해둔 덕에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 총서, 열화당의 존 버거 책 등의 아름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책의 판형과 형태에 알맞게 책을 진열하고, 책장에서 한 권이 빠졌을 때의 변화/차이가 주는 부담감을 고려해 같은 책을 여러 권 꽂아둔다는 내용을 읽고 큐레이션 책방은 아무나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느꼈다.


세상에 좋은 콘텐츠는 넘쳐나고 우리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같은 2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좋은 콘텐츠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이 '최선의 선택'을 유도하는 큐레이션 시장은 고도화되고 확장되고 있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고심 끝에 고른 선물의 감동도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적절한 콘텐츠를 추천받아 향유하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취향을 찰떡 같이 잘 알아맞히는 큐레이션을 찾아 환승할 테고, 누군가는 큐레이션의 홍수에 질식해서 고전적인 방식으로 회귀할 지도 모른다. 큐레이션의 시대에 어떻게 읽고 보는 것이 현명할까. 허희 문학평론가의 <미디어 큐레이션의 어제와 오늘>에 등장하는 한 단락을 소개하며 글을 끝맺을까 한다.


큐레이션은 '돌봄, 관심, 책임'과 연관을 맺고 영혼을 돌보는 행위와 같다. (...) 상업적 욕망에만 휘둘리지 않고 타자와 함께 나의 영혼을 돌보게 하는 큐레이션이 과연 있을까. 어쩌면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이 벌써 저마다의 자리에서 예사롭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감응한 책 속 문장을 캘리그래피로 공유하고, 자발적 독서모임 등을 여는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실천들로.

<기획회의> 575호, 37p


큐레이션의 큐레이션. 메타적 사고와 비평이 활성화된다면 단순히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밥상에 누구를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타자와 함께 나의 영혼을 돌보게 하는 큐레이션이 수월해지리라 생각한다. 관점과 태도, 수많은 별무더기에서 당신이 그려낼 별자리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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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 우크라이나 전쟁의 자원봉사자를 만나다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81
안드레이 클류치코 외 지음 / 스리체어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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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작년 11월에 입대했다. 그리고 올해 2월, 부대의 행정반이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장소. 핸드폰으로 속보를 접한 간부님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껴있다가 알게 되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2022년에 전쟁이라니. 그것도 평소에 분쟁이 잦았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중동 지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서. 국제정치 및 시사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전쟁의 감운이 이미 감돌고 있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지만 종교, 민족, 인종, 좌우 이데올로기 등을 이유로 타 집단을 말살하려는 극단적인 폭력은 더 이상 재현되기 힘들 거라 막연히 믿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돼 있다는 명제가 불행히도 아직 유효했다. (자국의) 이익을 얻기 위해 무력이란 수단을 동원해 극단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정치적 행위... 문득 내가 군대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전쟁에 대비한다는 말이 그저 공염불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실재하는 위협이 현실화되지 않게끔 억누르는데 아주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일 21시 뉴스 시청시간과 정신전력 교육시간에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접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참전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미국, EU 등 주변국의 군사 원조, 우크라이나의 끈질긴 항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자발적인 입대와 단결된 모습, 공습과 폭격으로 처참히 파괴된 민간 주거지역,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전쟁의 이미지들에서 이상하게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쟁은 무기와 기계, 그것들로 무장한 군인들만 치루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 속한 모든 사람들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4월인가 5월 즈음에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영토를 수복하고 일상을 회복한 도시의 모습이 비춰지자 오묘하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았다. 최전방과 후방,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과 아닌 지역의 격차가 확연해서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과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분명한 건 각자 겪고 있는 전쟁의 현실이 같지 않을 거라 예상되었다.

전쟁 발발한 직후에는 충격에 휩싸여 유니세프를 통해 일시적으로 후원금을 납부했었다. 하지만 일병 월급으로 생활비 이외에 추가지출이 부담되기도 했고, 인류애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먼 나라를 지원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SNS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는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는 영화연구자 S, 후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며 목소리를 내는 걸 멈추지 않았던 인문학 연구자 A, 대기업 출판사에서 나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첫 책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책을 낸 편집자 Y 등 학문과 예술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이 휘발성이 강한 동정과 슬픔, 분노와 문제의식을 물질화시켜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이내 일상에 매몰돼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점점 멀어졌다.

시간이 흐르자 뉴스에도 점차 우크라이나 소식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뉴스를 접한 이들은 ‘아직도야? 아직도 안 끝났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잔인하리만치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나라고 크게 다를 바 없었기에 함구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예스24 리뷰어클럽에서 이 책을 만났다. [전쟁을 짊어진 사람들]. 우크라이나 현장을 누비며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인터뷰집이란 설명에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전쟁터에서 생명을 살리고, 일상을 복구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공동체를 복원하는 이들의 이야기. 포탄과 미사일,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의 전면이 아닌 후면에서 묵묵하고 조용히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안드레이는 IT 계열 종사자였으나 ‘방탄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되어 전쟁 발발 이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료품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활동을 했다. 우리가 영화에서 접하는 전쟁의 이미지는 날아오는 포탄, 미사일 폭격, 총탄에 목숨을 잃는 것이지만 전쟁의 리얼리티는 가스와 수도가 끊기고, 물류유통망이 파괴되어 생필품을 조달받는 게 어려움을 겪는 것과 같이 ‘의식주‘ 문제의 디테일에도 있다. 안드레이는 방탄조끼를 입고 배달을 했다. 원래 시장의 동력으로 이뤄졌던 물류의 이동을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곳에 도착할 수 있게끔 재개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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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상태는 어땠나?

내가 사는 곳은 주코프스키라는 마을이었는데 폭격이 가장 심했던 살토프카 지역과 도보로 15분 거리다. 주로 북동부 지역을 따라서 교전이 일어났는데, 러시아는 하르키우 북부의 치르쿠니를 점령해 살토프카를 비롯한 하르키우 북동부 지역을 공격했다. 살토프카는 길이만 10킬로미터가 넘는 넓은 동네라 지역 내 건물의 파괴 정도가 매우 달랐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은 대부분 건물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고 남부로 이동할수록 폭격의 흔적이 조금씩 줄었다. 치르쿠니가 5월에 해방되며 일부 지녁엔 슈퍼마켓이 열리고 지하철이 운행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일상을 보내고 한쪽에서는 전쟁이 이어지는 묘한 상황이었다.

-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독 공습이 심한 지역에 있으니 억울한 마음도 들 것 같다.

복잡한 심정이다. 누군가가 투쟁할 때 누군가는 살아가야 한다. 때때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일상을 되찾는 것을 보면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전쟁 중인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하르키우의 위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우리가 여기서 더 버티고 견뎌야 서쪽 르비우에 있는 우리 지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하루라도 더 안전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나. (...)

(22-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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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이외에도 이 책에는 체르니하우의 테타냐, 부다페스트의 나스차, 키이우의 올레나 발베크, 드미트로와 아르촘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테타냐는 체르니하우를 중심으로 폐허가 된 지역의 부서진 잔해를 수습하고 망가진 건물을 수리하는 재건-복구 작업을 한다. 디제이의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파티를 열면서. 테탸냐가 소속된 ‘리페어투게더‘라는 단체는 IT 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들과 파티 플래너였던 친구들 일곱 명이 만든 자원봉사 단체라고 한다. 재건복구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즐겁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 자신의 장기를 살려 파티를 접목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테타냐의 사례를 보며 ‘두리반‘ 투쟁을 기록한 영화 [파티 51]이 떠올랐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기업 자본의 횡포로 보금자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홍대 두리반(칼국수집)이 예술가들의 연대를 통해 공연장으로 탈바꿈하며 긴긴 투쟁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파티 문화를 즐기는 일상을 빼앗겨버린 테타냐에게 ‘리페어투게더‘ 활동은 물리적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복구하는 일임과 동시에 폐허 위에 일상의 축제를 쌓아올리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리베카 솔닛이 말한 ‘재난 유토피아‘처럼 누군가에게 이 복구 현장은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끈끈하고 뜨거운 유대감과 이타심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재미와 행복의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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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 클린업‘이 정말 인상 깊었다. 어떻게 자원봉사에 음악을 곁들일 생각을 했나?

지금 키이우는 그나마 안정적인 상태가 됐고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통행 금지가 있고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는 어려운 상태다. 자유롭게 일상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봉사를 하면서 우리 자신들도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을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의 삶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며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 자신부터 필요했다(강조는 데부씨). 그러다 테크노 음악을 떠올렸고 자원봉사 현장을 마치 파티처럼 만들어 보고자 했다.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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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의 나스차는 우크라이나를 돕는 러시아인이다. 그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정착을 도우며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헝가리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출신 교사들이 전쟁 이후 삶을 살아가고 사회를 만들어나갈 학생들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학교를 운영하는 ‘국경 없는 교실‘ 단체에서 활동한다. 전쟁 이후 러시아인을 바라보는 우크라이나인의 시선은 어떨까. 그리고 극우정권이 들어선 헝가리의 시민들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의 예상대로 국적은 사람들을 반목하게 하고 갈라서게 만들지만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장소에서 갈등보단 협력이 꽃핀다고 한다.

-

-아무래도 러시아인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러시아인이 많은가?

정말 많은 러시아인이 난민들을 돕고 있다.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구소련 국가 출신 사람 중에도 난민을 돕는 사람들이 많다. 나에게 돈을 보내고 침구와 장난감을 가져다주며 여러모로 지원해 준다. 그런데 이들이 왜 직접 나서지 못하는지 어느 순간 깨달았다.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러시아인들은 직접 우크라이나인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진 말을 듣지 않을지, 도움을 거절하진 않을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엔 그런 것이 없다. 온라인상으로는 모두 서로 증오하고 욕하고 모진 말을 내뱉지만, 사실 온라인은 현실의 일그러진 거울이다. 현실에는 오로지 ‘도움‘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밖에 없다.

-우크라이나인들과 처음 대면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나?

나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유리 두즈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기차역에서 난민을 만났을 때 그들이 내게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있는데 원래 모스크바 출신이라고 답했다. 그때 공기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침묵이 아픈 침묵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절절하게 깨닫게 하는 침묵이었다. 어떤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에 가서 사람을 죽이고, 어떤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을 돕고 있고.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미쳐버릴 것 같다. 다만 내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은 적은 없었다.

(74-75)

-

국경 없는 교실‘ 프로젝트 말고도 나스차(아나스타샤의 애칭)는 ‘훈헬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훈헬프라는 플랫폼에 난민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식료품 카드를 구입해 우편으로 보내준다. 이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그들에게 음식의 선택권을 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스차는 음식의 선택권을 줘서 입맛에 맞는 익숙한 음식을 고르고 먹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익숙한 음식이 주는 아늑함과 선택권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70).

내가 지원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정말 그랬을 것 같다. 난민에 대한 구호 활동과 지원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라면 굶지 않는 걸 감사하게 여기며 주는대로 먹을 것을 종용하고, 음식 ‘선택권‘을 부정하려 들 거라 예상된다.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의식주, 그중에서도 먹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이며 구체적인 지원 과정에서 어떤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이 사례를 통해 세심하게 엿볼 수 있었다. 과연 한국의 공무원들은 이런 세심한 배려와 존중을 발휘할 수 있을까(했으면 좋겠다).

[전쟁을 짊어진 사람들]을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세상에는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자리에서 남을 돕는 봉사활동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한 일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하루빨리 전쟁이 속히 종결되길 마음을 모아 기도하며 작은 도움이나마 건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려 한다. 책에 소개된 ‘헬핑 투 리브‘나 ‘리페어투게더‘에 성금을 보내는 방법도 있겠고, 책을 좀 더 찾아보고 친구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는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좀 더 확실하게 평화주의자가 되었다. 러브 앤 피스. 사랑과 평화가 이 땅에 영원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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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 본격 동네고양이 단편 만화집
다니 지음 / 프레스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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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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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이란 사이트가 있다. 이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문학사이트이다.


https://teen.munjang.or.kr/whatisteen

 


소설/시/수필/감상&비평 글을 올리면 현역 작가 분들이 멘토로서 피드백을 해주는 혜자로운 공간이다. '라떼는' 매주 장원을 뽑는 주장원 제도를 운영했었는데 현재는 주장원 없이 월장원만 간소화해서 운영하는 모양이다. 아마 많은 청소년들이 글을 혼자 쓸 거라 생각한다. 예중/예고에 진학하거나 사적으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거나 과외를 받지 않는 이상 자신의 글을 봐줄 만한 문우, 선생님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외로운 문학소년/소녀에게 글틴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과 비밀을 고백하는 고해성사의 장소이자 자신과 같이 글 쓰는 또래 친구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문학 '광장'이다.


내가 글틴에서 활동한 기간은 약 1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라떼는' 소설 부문은 무협소설을 쓰시는 '진산' 작가가 소설 멘토를, 유종인 시인이 시 멘토를 담당했던 걸로 기억한다. 추억여행 삼아 오랜만에 글틴 사이트에 접속해 내 10대 시절 발자취를 찾아봤다(아마 싸이월드에 박제된 흑역사를 보는 기분이 딱 이러려나). 비평/감상글과 시 부문에서 월장원을 한 번씩 수상했음을 확인하고 기분이 좋아졌으나 '중2병'에 '문학병' 말기라 진단받을 법한 서면 인터뷰를 보고 부끄러움에 호다닥 홈페이지를 종료했다.


월장원을 받을 당시 썼던 시의 소재가 바로 길고양이었다. 그즈음까지만 해도 도둑고양이와 길고양이가 함께 사용되었던 것 같다. 순간적으로 길냥이를 '도둑'이라 명명하는 인간주의적 시선에 낯선 이질감을 느껴서 아이디어를 착상했고, 문장력이나 이미지는 부족하지만 발상에 큰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현재 본가는 아파트이지만 빌라에서 오래 살았다. 2년마다 한 번씩 전세로 이사도 많이 다녔었고. 빌라 A, B, C동이 붙어 있는 구조였고, 입구에서 나오면 바로 있는 주차장(이라 할 수 있는 공터)에 세워진 전신주 쪽이 쓰레기장이었다. 종량제 봉투에 담지 않은 쓰레기, 분리수거가 전혀 되지 않은 쓰레기, 물이 줄줄 흐르는 음식물쓰레기... 아파트로 이사 온 이후로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였다. 엘리베이터가 생겨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책 주문을 할 수 있게 된 것(빌라에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우리집은 4층이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쾌적하고 깔끔하고 편리하게 버릴 수 있게 된 것.


그렇게 음식물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주차장 쪽에 길냥이들이 많이 지나다녔고, 밤이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많이 났다. 당시에는 그게 고양이 울음소리인지 몰라 아기 울음소리인가 의심하고 걱정하기도 했었다. 당연히 TNR 수술의 존재도 알지 못했다. 나는 <세상에 이런일이>에 나왔던 사례처럼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건이 우리 동네에서 벌어지지 않길 기도했다. 그때 당시 내게 고양이는 얼굴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지만 종종 마음이 쓰이는 이웃 정도였다. 집사, 식빵 굽기, 뚱냥이, 치즈냥 등등 고양이 세계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이후 내 고양이관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사건은 팟캐스트로부터 시작되었다. 창비에서 운영한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들었던 에피소드와 뒤섞였을 지도 모르겠다)에서 법학자 김두식 선생님이 황정은 소설가에게 문학-소설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류의 묵직한 질문을 던지셨고, 황정은 소설가는 이렇게 대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웹툰작가 강풀의 사례를 들면서 세상을 즉각적으로 변화시키고 가시적인 파급력을 지닌 매체는 문학이 아닌 트위터다. 대신 소설은 가장 느리게, 그리고 가장 오래 기억하는 방식의 글쓰기이기에 소설만이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길고양이 급식소. 길고양이 보호소. 길고양이를 보호하고 구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느슨한 연대를 이뤄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인식론적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기존 세계관의 논리로는 잘 해석되지 않는 낯선 언어들의 조합, 그래서 내 상식을 뒤흔들고 사고방식을 새롭게 갱신할 것을 촉구하는 언어, 이미 미래에 당도해 있는 자리에서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 보내는 시차의 언어. 이런 '사회운동'을 실천하는 '활동가'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니 이런 활동가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길고양이에게 급식을 주는 활동을 하는 그룹이 있었고, 본격적으로 고양이 임시보호를 맡거나 길고양이에 대한 독립잡지를 만드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길을 걷다가 고양이를 마주치면 고양이 생선가게 못 지나치듯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고 가능하면 쓰다듬고 대화를 나누곤 했다. 평소에도 동물 영상을 시청하고, 주변 지인들과 공유하고, 동물을 키우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처음에 나는 잠시 소외감이랄까, 남들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뭔가가 내게 결여돼 있다는 결핍감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동물-특히 고양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워갔다. 그렇게 나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인류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부대에는 '짬타이거'들이 여럿 거주하고 있다. 수송관 님이 특히 고양이에 진심이셔서 수송부에 캣 타워를 설치하고, 고양이들의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계신다. 얼마 전에 사람을 정말 잘 따르고, 애교가 넘쳐 흘렀던 냥이가 운명을 달리해 직접 땅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나도 그 냥이를 엄청 애정했던 터라 슬펐다. 점심을 먹고 잠시 햇볕을 쬐며 쉬고 있으면 어느샌가 곁에 다가와 배를 뒤집고 누워 뒹굴뒹굴 애교를 부렸던 기억, 내가 야간근무를 서는 동안 상황실까지 내려와 냥이를 안고 올라갔던 기억, 선임에게 '억까'를 당하고 닦이던 시절 냥이를 쓰다듬는 동안 구겨졌던 마음이 펴지는 마법을 경험했던 기억, 점호시간이었나 연병장에 집합해 있는데 고양이가 사열대에 등장해서 '씬스틸러' 역할을 하고, 그런 고양이를 내쫓지 않고 교감해주는 간부님의 모습을 보고 잠시 마음이 녹았던 기억... 부대에 인간, 그중에서도 군인들만 존재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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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길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만났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작가가 반려인으로, 활동가로 살아가며 해온 생각과 관찰을 담아낸 만화이다. 길고양이 매거진 <매거진 탁>에 연재된 만화를 텀블벅 펀딩을 통해 단행본으로 엮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지은이 다니는 프롤로그에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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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우연히 고양이를 만났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왜 고양이가 길에 있는지 궁금해졌고, 자연스럽게 다른 비인간 동물도 보이기 시작했다. 만화가 된 그간의 생각과 관찰들을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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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이 책은 길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의 풍경, 그 풍경에서 만난 고양이와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고양이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부드러게 녹여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책의 배면에 깔린 문제의식이 나이브하거나 물렁물렁한 건 아니다. 무무 편집장이 쓴 에필로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좀 분량이 되지만 전문을 옮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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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고양이 전문 출판사 프레스탁의 첫 단행본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길을 집 삼아 살아가는 동네고양이가 주인공이다. 집고양이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지만, 길에 사는 동네고양이는 쉽게 혐오와 학대의 대상이 되어왔다.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이 오래된 이웃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지 우리는 대체로 모른다. 동네를 집 삼아 살아가는 동물을 수 도날드슨과 윌 킴리카는 "야생이지만 인간 정착지 중심에 사는" 경계동물이라고 칭했다. 경계동물은 집에서 함께 살거나 야생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동네이웃인 것이다.


인간과 고양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나고 지나치기에 때로는 우연한 만남으로 가족이나 이웃을 맺는다. 프레스탁의 에디터이자 이 책의 작가 다니도 그렇게 고양이를 알게 되었다. 고양이를 알아가면서 귀여움 외에도 고양이가 가진 깊고 넓은 결을 발견하고, 고양이, 그리고 동물권의 관점에서 동네고양이와 관계맺기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고양이를 사랑하지만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평행세계를 상상하기도 하고, 날씨가 궂는 날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그린 다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동네를 산책하듯이 생각에 잠겼다가 새로운 고양이의 모습을 보았다가 멍 때리다가 어느새 경쾌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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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선의만으로는 길고양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 나도 한 번 동네에서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려 시도했으나 30분 정도 동네를 배회하다가 깨달았다. 이곳에 고양이를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애초에 일회적으로 주는 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길고양이 네이버 카페 게시글에서 읽고 배웠다. 그나마 종종 오르는 광교산의 정상에서 급식소가 마련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아야만 동물이 먹고 살 수 있구나 싶어 씁쓸했던 적이 있다. 기후위기, 인류세, 동물권... 읽고 쓰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로 부상했다. 더 이상 지구에서 현생 인류만을 위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고양이라는 타자, 비인간 존재와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지 이제 정치의 차원에서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예전에 흥미로워 보여서 킵해둔 논문의 링크를 남겨두는 걸로 그만 글을 줄이고자 한다.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129974?mode=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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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직접 만나러 갑니다 - 축구 대장 곽지혁의 사인 도전기
곽지혁 지음 / 영진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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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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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12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팬들에게 큰 기쁨과 감동을 주었다. 나는 월드컵 경기를 라이브로 챙겨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2시면 취침에 들어가는 군의 특성상 특별히 'TV 연등'을 허용해줘야만 경기를 시청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지금까지 월드컵 경기를 보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가 들려왔고, 상급부대의 지침으로 월드컵 경기 시청 여건을 보장해준 덕분에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 브라질전 모두를 시청할 수 있었다. 


 내 축구인생(?)은 2002년부터 시작된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꼬꼬마 시절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를 함께 하면서 나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부터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이면 운동장에 뛰쳐나가 공을 차기 시작했고,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고 2005년부터 EPL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한 날에도 맨유의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으면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때 봤던 경기 중에 챔스 8강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는 왼발 결승골을 작렬한 첼시전, 챔스 16강에서 피를로를 꽁꽁 묶어 맨유의 압도적인 압승을 이끌었던 AC 밀란전 등이 떠오른다. 

 

 30-40대에게 '해버지' 박지성이 가장 상징적인 아이콘이라면 10-20대에게 뭐니뭐니 해도 손흥민 선수가 우주최강슈퍼스타일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챔스권의 문을 꾸준히 두드리는 강팀으로 성장한 토트넘 팀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면서,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EPL 득점왕, 푸스카스 상 수상 등의 걸출한 업적을 남겼다. 이번 월드컵이 사실상 손흥민의 최전성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을 것이다. 손흥민은 안와골절 부상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신의 투혼을 보여줬고, 결국 팀을 기적적으로 16강으로 이끌었다. 항상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으면서 피치 위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누구와 달리 주장으로서 품격과 리더십을 보여줬으며 아이 같이 순수한 웃음과 눈물을 보여주는 손흥민 선수의 인간적인 매력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붓는 이의 열정, 꺾이지 않는 마음..! 스포츠의 결정적인 순간은 예술이나 종교가 영혼을 고양시키고,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때처럼 사람을 혼이 나가게 만들고, 미치게 만든다. 한 번 이 맛을 본 사람은 평생 이를 잊지 못하고 '신자'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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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축구 직접 만나러 갑니다]의 저자 곽지혁은 이렇게 축구에 영혼이 빼앗겨버린 '성덕'이다. '축구 대장 곽지혁의 사인 도전기'라는 부제는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해준다. 손흥민, 기성용, 이청용, 이강인, 이재성, 서영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모하메드 살라, 안토니오 발렌시아, 페르난도 요렌테, 트렌트-알렉산더 아놀드... 세계적인 선수들을 직접 만나 사인을 받기 위해 그는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킬부터 주로 신혼부부들이 여행으로 찾는 스페인의 휴양도시 마요르카 등 전세계를 순례자처럼 주유한다. 경기장이나 훈련장, 혹은 선수들이 묵는 숙소에 미리 도착해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사인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부풀고, 기대가 좌절돼서 실망감에 빠지기도 하고, 선수들의 호의와 행운 덕분에 선수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실착 유니폼(경기 중에 실제로 입고 뛰었던 유니폼)을 받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어느 선수를 만나 사인을 받게 되기까지의 '썰'을 열거하는 식이라 책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찾아보니 저자는 더 이상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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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말에 가장 재밌게 본 예능 프로그램 중 '골때리는그녀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재밌었다. 기술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아 투박하고, 미숙하고, 엉성한 플레이를 하는데 경기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여느 프로선수 못지 않게 진심에 넘친다. 이 낭만 과잉의 아마추어리즘이 직관적으로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다. '검은리본' 아이린이 성장하는 과정이라든지, 패스-빌드업이 전혀 되지 않았던 팀원들의 손발이 조금씩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자뭇 감동적이었다. 시즌2, 시즌3를 거듭하면서 골때녀들의 실력이 원숙해짐에 따라 더 이상 골때녀를 보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걸 배우는 초보자-초심자가 되어보는 것, 갓 태어난 송아지나 망아지처럼 위태롭게 자세를 잡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 내디뎌보는 것, 순수한 무지 상태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순수한 배움의 기쁨을 느끼는 것, 몸으로 하는 일을 새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품고 있다. 가령 수령 같은 운동... 


 군대 와서 십 년 만에 축구를 다시 해봤다. 가슴이 터져라 미친듯이 뛰고, 서로 눈빛교환을 한 다음에 패스 플레이를 하고(크로스 홋은 컷백으로 넘긴 공을 슛으로 연결하고), 땀으로 온몸이 젖은 다음에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샤워를 하는 시간. 역시 축구는 재밌었다. 하지만 허리 힘이 약해져서 그런지 온힘을 실어 강하게 공을 차면 무리가 왔고, 같은 팀을 비난하거나 '꼽'주는 행태 때문에 축구를 안 하게 되었다. 헬스 같이 개인운동이 아닌 단체 협동 스포츠가 줄 수 있는 끈끈한 기쁨이 있는데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다른 종목으로 누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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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또한 해외축구 직관 경험이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홈구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홈 경기를 본 것과 빌바오의 홈구장에서 유로파리그 조별리그 경기를 본 것. 스페인 여행 중에 조금은 충동적으로 직관을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중계 화면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속도감, 현장감, 패스의 리듬(템포), 분위기가 있었다. 만약 중립팬이 아니라 내가 응원하는 팀이 상위라운드로 진출하느냐 마느냐 여부를 판가름하는 '외나무다리' 결전이었다면 훨씬 가슴 쫄깃하게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마드리드만의 특성인지, 스페인 축구문화가 그런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이대가 조금 있는 팬들은 경기장에서 해바라기씨를 영화관에서 팝콘 먹듯 먹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면 관중석은 그야말로 해바라기씨 껍질의 잔해로 지저분messy하다. 그렇게 해바라기씨를 옴뇸뇸 먹었던 스페인 아저씨가 아센시오(레알 마드리드의 윙포워드)의 쐐기골이 터지자 이방인인 날 향해 활짝 웃으며 기쁨을 나눴던 장면이 떠오른다. 같은 팀을 응원하면 잠시나마 친구가 될 수 있는 경기장 ! 


  p.s 지하철역 개통이 완료되면 종종 수원종합월드컵경기장을 찾아야겠다. 이승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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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 완전한 휴식 속으로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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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적이 두 번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의 수영장에서, 22살 때 싱가포르의 수영장에서.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에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습하는 두려움, 위로 폴짝폴짝 뛰면서 겨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전력으로 레일을 가로질러 수영장 옆면으로 향하는 몸부림,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급격하게 소모해서인지 산소가 부족해서인지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화이트 아웃‘의 시간.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 초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캐리비안베이에 갔다. 메인 코스(?)인 파도풀을 재밌게 타고 나서 자율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기구나 코스에서 놀던 중에 뒤따라가던 친구를 놓치고 물살의 힘을 못 이겨 다른 쪽으로 떠내려갔다. 변기물에 심연으로 빨려들어가는 휴지처럼. 뒤돌아 역방향으로 열심히 물장구를 쳤지만 당시 내 근력으로는 물살을 거스를 수 없었다. 자아의 완전한 내려놓음, 나를 압도하는 힘에 대한 완전한 순종, 온전한 체념을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었던 것 같다. 고요한 수면 아래로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끔 만드는 마성의 힘을 지닌 물의 이중성. ‘맥주병‘이란 표현이 시사하듯 사람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 목숨을 잃게 만들 수 있는 물의 위력. 중력이 지배하는 평평하고 단단한 대지와 다른 원리로 작동하는 물의 세계.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 탓인지 몰라도 물에 대한 호감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2015년 여름방학, 친구와 함께 한 달 정도 수영장에 다닌 적이 있다. 많은 수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물 밖의 세계에서 물 속의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찾아오는 정적이 너무 좋았다. 외부의 소리가 차단됨과 동시에 내면의 소란까지도 일순간에 잠잠해져 고요와 평정이 찾아왔다. 굳이 어렵게 명상을 할 필요가 있나 살짝 현타가 오기도 했다. 수영을 제대로 할 줄 몰랐고, 물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상태였으나 상관 없었다. 물 속에 몸을 맡긴 순간부터 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거두고 단순해질 수 있었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거기에 수영장(대전 용운국제수영장) 물이 좀 달랐는지 몰라도 대충 누워도, 몸에 힘을 완전히 빼지 않은 상태에서도 몸이 떠올랐다. 그래서 배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배영을 하다 보니 자신감이 살짝 붙어 친구에게 교습을 받아 자유형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심이 깊어져 발이 닿지 않는 구간 직전까지만 딱 찍고 돌아오는 식으로 안전하게 수영을 즐겼다.

그때 기억 때문이었을까. 한창 슬럼프에 빠져 있던 시기에 수영을 배워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딱 <가능한 불가능>의 ‘할 수 있어 프로젝트‘마냥 한동안 별다른 성취나 배움의 기쁨 없이 지내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증이 찾아와 의욕 상실, 무기력, 일상의 활력 저하와 생기 잃음을 겪던 차에 번득 ‘수영‘ 생각이 났던 것이다. 휴식과 놀이, 운동이라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최고의 카드 ! 하지만 집 근처 마땅한 수영장이 없었으며 시간대가 안 맞는 이유 등으로 강습을 수강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휴식을 가능하게 하는 세계로서의 물/수영장. 그런 수영을 소재로 한 그림과 더불어 휴식에 대한 에세이를 담은 책이란 설명을 듣고 <풍덩!>에 다짜고짜 ‘풍덩!‘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주말 동안 <풍덩!> 덕분에 주말을 주말답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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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말한다. 모두가 지쳐있다고. 이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축에 속하는 ‘과로사회‘인 탓도 크지만 사람들이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 성과를 내기 위해 쉬는 법을 잊어버리고 일에 중독된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휴식의 욕구 자체를 억압하고 부정하거나(휴식의 가치를 폄하하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 쉬면서도 죄책감을 느껴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법을 몰라 스스로 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쉬는 게 아닌 결과를 낳는다. 일반적으로 휴식 하면 ‘수면‘을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잠이 다시 노동을 하기 위한 재생산의 기능에 그친다고 했을 때 잠이 휴식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쉼‘ - 휴식은 일-수면-일-수면으로 무한반복되는 루틴에서 벗어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간의 리듬을 잠깐이나마 바꾸는 일, 깨어 있는 상태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심신을 충전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일례로 지친 몸을 침대 위에 내동댕이치듯 던져 자고 일어나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아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다. 수면이 생존을 위한 생명 에너지를 보존하고 충전하는 최소한의 휴식에 가깝다면 저자 우지현이 말하는 휴식은 ‘삶을 회복시키는 방법‘이다. 뭔가를 하고 싶은 의욕을 되살아나게 하고, 창조적인 영감이나 생각을 들게 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행위. 이처럼 삶에서 휴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휴식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하는 영역으로 주변화되어 있고, 성과지향/중독 사회에서 ‘나태함‘이란 도덕적 굴레를 덧씌워 휴식의 가치가 왜곡되고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쉬어야 한다고, 휴식을 잘 하면 삶을 잘 살 수 있다고 설파한다.

글은 조금 심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휴식을 옹호하고 권하는 힐링 에세이에 있을 법한 평이한 내용들이 부분적으로 보였다. 이런 약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인 이 책의 강점은 수영을 소재로 한 그림(무려 100여 점!)이 배치된 그림 에세이라는 점이다. 수영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9세기의 회화부터 동시대에 그려진 작품까지 수영을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들을 제시해 수영-휴식의 이중주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이 책은 수영과 휴식을 넘나든다. 수영 그림으로 채워져 있지만 수영만을 논하지 않는다. 휴식에 관해 말하지만 휴식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화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미술책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수영과 휴식에 대한 산문집일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그림을 감상하는 화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독자들의 몫이다. 어떤 종류의 책으로 다가가든 책을 보며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책을 덮고 각자의 휴식을 즐기게 된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기쁠 것 같다.(10p)

책에는 강렬한 햇빛 아래 여름바다를 만끽하는 작열하는 청춘의 이미지(마치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 속 청년들처럼)가 있고, 해수욕장에서 누워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하며 사람 없이 텅 비어 있는 수영장이지만 왠지 모르게 평온한 분위기를 풍기는 풍경이 제시된다. 수영장은 수영장대로, 해수욕장은 해수욕장대로, 개인 풀장은 개인 풀장대로, 인적이 드문 바닷가는 바닷가대로 뉘앙스는 다르지만 보편적인 휴식의 정념과 분위기를 풍긴다. 물이 인간을 헐벗음에 가까운 몸둥어리로 존재하게 만들어서인지 물 속의 세계에서 인간들은 순수하게 동물에 가까워지는 듯하다. 물 속에서 움직이고, 지치면 밖으로 나와서 쉬고, 배가 고프면 뭘 먹고, 졸리면 자고... 자연적인 욕구를 강렬하게 감각하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삶. 휴식이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깃들게끔 사람을 순하게 길들이는 물살의 손길.

아무래도 내년에는 수영을 꼭 배워야겠다. 그리고 잘 쉬는 법을 꾸준히 배우고 연습할 생각이다. 미술관에 가지 못하더라도 그림 에세이, 화집, 사진집이 대상과 나의 시선, 내면의 풍경만이 존재하는 ‘사이‘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실감했기에 또 이런 류의 그림 에세이를 찾아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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