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캠핑 여행 - 아이와 함께 떠나는 새로운 제주 여행법
이지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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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적 경쟁심.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에 나오는 표현이다.

시위 한 번 나가보지 않은 내가 민주화 운동으로 국가 유공자증까지 받은(동생 황광우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황지우 시인의 발 끝에도 못 미칠 테지만 내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는 데 이만한 표현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아니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좋은 사람이 도덕 교과서에서 말하는 선한 사람인지, 타인에게 이로운 사람인지 불분명했으나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실제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타인에게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군요.' '~는 참 사람이 좋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 이런 말을 듣고도 표정을 컨트롤할 수 있을 적정 수준의 수줍음을 느끼고 여유롭게 웃을 수 있는 사람, 어쩌면 좋은 사람보다 '좋음' 그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 좋음의 화신. 

  

 돌아보니 나는 생각보다 윤리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의식이 강한 만큼 잘 지키진 못한다. 이 윤리 의식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아버지'에 가까운데 내 경우 아버지가 정말 산처럼 커다랬던 것이다. 그렇다고 칸트 같은 도덕주의자는 아닌데 무엇이 윤리적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회의적 윤리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행동은 존재sein가 아닌 당위sollen의 목소리에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충동에 충실하고, 자유롭게 사고/행동하는 예술가형 인간에 대해서도 예술가의 그 '좋음'- 칸트가 천재라고 말한 인간 유형으로서의 장점에 매료되어 예술가를 닮고자 했다. 하고 싶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면에서 '하고 싶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해야 한다에 파묻힌 삶. <삶이라는 직업>. '아버지'를 죽이라는 데 정말 죽여도 되는 걸까? 그게 옳은 걸까? 망설이다가 은근슬쩍, 어물쩍 넘어가버린 모양새. 좋음과 옳음의 세계. 이 감옥으로부터 나를 구출해내는 것이 내 과제였다. 


 제주 캠핑 여행에 대해 리뷰를 쓰는 데 왠 뜬금없는 자기고백이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제주. 바로 이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뽑힌 남쪽 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제주에 딱 한 번 가본 적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솔직히 말하면 거기서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풍경을 보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숙소에서 잠들기 전 진실게임 비슷한 사춘기 소년들의 고백 시간에 흥을 돋구기 위해 평소 나답지 않은 소설을 즉석에서 즉흥적으로 써냈다는 것, 희미하게 기억나는 건 20대 후반의 아름다운 외모의 음악을 가르치셨던 담임 선생님이 두 남학생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내게서 멀어지는 모습-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했던 레파토리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이래저래 애증이 있던 관계여서 그랬는지 그 뒷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은 그때 당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학생을 멀리서 바라보는 내 모습. 황병승 시인이 선언의 천재라면 난 관조의 수재 정도는 됐을 것이다.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사춘기 소년의 감정구조라는 게 어떤 성절의 것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사춘기 소년에게 관조란 불가능한 능력에 가깝다. 어려서 (미리) 늙어버렸다는 시인들을 보면 또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추상과 형이상학의 세계와 친했던 나도 '소녀' 앞에선 감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감정 대신 감각을 발명하는 법을 일찍 깨쳤더라면 그때부터 시나 소설을 끄적였겠지...). 어쨌든 나는 멀리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 습관이다. 


 그 이후로 제주도를 찾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찾게 된 건 작년 봄 즈음이었던 것 같다(제주도에 간 것은 아니다). 강정 해군기지 찬반 논란. 친구의 블로그에 인혁당 사건 같은 어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보도연맹 사건 같은 어휘들을 접하게 됐다. 나는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류에 대해 나름의 논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에 대해선 잘 모른다. 활발하게 논의가 되던 시기에서 한 발짝 뒤로 눌러나 있던 것도 컸지만 한꺼번에 모든 문제들을 감당하기에 버거웠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대신 용산참사 같은 경우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등을 이용해 공부했고-그나마 이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밀양 송전탑의 경우 1달 정도 함께 했던 '나눔 문화'라는 단체를 통해 많이 배웠고, 강정의 경우 3권의 책, 1편의 논문, 이런저런 기사, 칼럼, 강정 docu jam,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만난 미라클 여행기 등을 통해 가장 넓고 깊게 공부했다. 강정 해군기지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한 공부였는데 마음과 감정이 앞서서 글 수준이 아주 개판이 되었다. 현장에 직접 가보지 않고 자료만 가지고 쓰는 글의 한계도 있었을 테고, 강정을 여전히 사회의 문제로 다뤘을 뿐 내 문제로 다루지 못한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전히 존재sein가 아닌 당위sollen... 


 오멸 감독 덕분에 알게 된 4.3 사건과 강정으로 제주도는 내게 관광지보다 피의 역사를 간직한 섬에 가까워졌다. 물론 아름다운 이미지가 완전히 증발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고등학생 즈음 SBS 다큐멘터리에서 제주도를 자전거로 혼자 여행하는 여대생을 본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아마 나는 그때 무의식적으로 포카리 스웨트 광고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토리니 섬과 제주도는 그렇게 내 무의식 속에서 동급이 되었다. 아니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여대생의 존재가 제주도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왠지 제주도로 여행가게 되면 그녀 혹은 그녀 같은 매력쟁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맞다. 바람이 많은 섬이라 그런지 이야기만 들어도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것이다. 그 판타지의 감각을 최대한 활성화시켜 <제주 캠핑 여행>을 '예습'했다. 


 역시나였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떠나버리고 싶은 충동을 즐기면서 한 장 한 장 읽을 수 있었다. 캠핑은 경제적으로 부담되고, 같이 갈 사람도 없기 때문에 실질적 도움은 지금 당장 되기 힘들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정보도 제공돼서 제주도 상상여행에 핍진성을 더할 수 있었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자연환경, 멋진 볼거리... 같이 갈 사람만 있다면 공사판을 뛰어서라도 자금을 마련하리! 


 제주여행에서 좋았던 점은 미술을 공부한 저자가 감각적인 스케치로 사진을 대신했다는 점(이 장점은 제주도 캠핑 여행 놀이 부분에서 극대화된다), 볼거리-먹거리 등 여행서가 갖춰야 할 기본사항을 충실히 갖췄다는 점, 여행다닐 때 들고 가기 좋은 크기/무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표지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아, 제주. 그런데 최근 제주를 다녀온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놓고 투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오멸 감독의 <지슬>의 부제가 끝나지 않는 세월2였는데 제주도의 피의 역사, 고난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뭔가를 하고 싶은데 실상 광화문 세월호 시위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도덕적 경쟁심. 이걸 극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난 성자/순교자가 될 그릇은 아니다. 대신 내 나름대로 고민하고, 사유하고, 대화하면서 길을 찾을 것이다. 그 누구/무엇을 위한 경쟁심이 아닌 나를 위한 도덕적 경쟁심으로 방향을 바꾼다면 충분히 좋은 재료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투사/순교자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진보를 위해선 의식 있는 시민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한 명의 투사/순교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여러 명이 나눠서 진다면 한 명이 십자가에 못 박힐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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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바나나 2014-09-0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조금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지라.
책에 관해선 사진이 아닌 감각적인 스케치라고 하니 관심이 가네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각적'이라는 거^^
칼비노 전집의 관한 정보는 감사합니다.
근데 그때까지 사고 싶은 욕구, 읽고 싶은 욕구를 자제할 수 있을지^^

rendevous 2014-09-03 23:33   좋아요 0 | URL
사실 전집 류는 한 권, 한 권 모아가는 재미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말이죠 ^^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한 권 한 권 모으다간... 가계 경제가 흔들릴 지도 모르지마 이탈로 칼비노 전집 정도라면 용돈 아껴서 한 권씩 모아도, 혹은 지름신 강림으로 한꺼번에 장만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내 몫의 표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





1.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천명관


'프랭크와 나'로 등단해 이듬해 '고래'라는 메가소설로 한국문단을 휩쓸었다는 전설의 소유자 천명관을 읽은 건 작년 여름이었다. 재작년에 유쾌한 하녀 마리사 연극을 대학로에서 봤기 때문에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천명관이란 텍스트를 읽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겠지만 꼬질꼬질한 종이를 한 장씩 넘겨가면서, 손 끝에 전달되는 종이의 질감- 이전에 그 책을 서로 다른 흥분과 감정으로 넘겼을 독자들의 지문과 시간성이 축적된 지도-과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소리, 리듬을 느끼면서 읽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아니라 이 고래가 첫 경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비문학,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변사'에 가까운 입담을 느껴보지 않고 천명관을 읽었다고 말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 될 것이기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최근에 본 소설/소설집 제목 중에 최고인 듯하다 ^^ 

(박민규 소설가의 신작도 하루빨리 신간추천리스트에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ㅜㅜ) 
















2. 필립 로스 -유령퇴장 


미국의 목가로 그의 필력을 맛볼 수 있었다.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 필립 로스. 


 













3. 토마스 베른하르트 - 옛 거장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로 만나본 적 있는 베른하르트. 다양한 작가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 작가의 세계로 더 깊게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고 있는 요즘.. 베른하르트... 황병승 시인이 애정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좋아하고 싶어진 작가 ㅎㅎ 














4. 안나 제거스 - 통과비자



반파시즘 망명문학. 꽤 만만치 않은 독서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읽어보고 싶은 작품. 루마니아 출신의 동독 작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 등을 읽었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풍부한 콘텍스트와 함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창비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작가 중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아서 반갑다 ^^ 
















5. 필립 로스 -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 로스 독파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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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2014-09-0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씀이 아주 결연합니다. ㅎㅎ독파해봅시다....후후
옛 거장들, 고민하다가 넣지 않았는데 흐흠 읽고보니 궁금하네요.
되도록 다양한 작가의 것을 읽자 싶어서요. 흐이짜, 칠면조 응원합니다!

rendevous 2014-09-01 18:04   좋아요 0 | URL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에 밀란 쿤데라 글에서 본 '자기만의 소설사'란 표현을 보고 저도 몇몇 작가를 독파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작가로는 박상륭, 최수철, 정영문/ 외국 작가로는 밀란 쿤데라, 필립 로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보르헤스... 한 작가 전집을 소장하고, 독파하면 약간 부동산 사놓은 것 같은?!(실제로 그러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지만요 ㅎㅎ) 기분이 약간 들더라고요 ㅎㅎ 신형철 평론가가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밀란 쿤데라 전집' 출간을 놓고 (무의미의 축제 신간이 나오긴 했지만) 도망갈 수 없는 상대를 정복하는 쾌감에 대해 얘기했는데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어요 ㅎㅎ 문자 그대로 산을 오르고 정상을 찍는 - 정복이란 표현은 오만이지만 -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봄밤 2014-09-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부분 기억납니다ㅎㅎ왠지모를 공감에 대해서도 공감해요ㅎ맞아요 전작주의는 당연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동산이라니, 깨알같습니다ㅎ 넓게 읽는 것에 대해서는 다만 신간평가단의 활동에 한정한 말씀으로 살펴주시기를요ㅎㅁㅎ!
말씀해주신 국내외 작가들 담아갑니다. 참 저번에 페루애님 서재에서 어깨너머로 추천 들었던 예외들(맞는가요)샀어요! 밀도 높은 문장이라 무척 기대됩니다

rendevous 2014-09-01 18:19   좋아요 0 | URL
앗 예외들 보단 얼굴 없는 노래 를 추천했었는데 ㅜ 예외들 분량에 비해 가격이 좀 비싸거든요 ㅜ 이상 관심 있으시면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도 추천드립니다 ^^ 맞아요~ 신간평가단은 아무래도 다양한 맛을 보기에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ㅎㅎ 다만 제가 무분별한 책 구매로 인해... 책 쇼핑을 끊어서 ㅜㅜ 시립도서관 도서신청란에 자주 들낙날락거리고 있습니다 ㅎㅎ(그런데 예산이 모자라서 적당히 신청하라는 압박이... 미술/사진/그래픽노블은 신청도 잘 안 받아주고요 ㅜ)

봄밤 2014-09-0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얼굴 없는 노래였군요! 아아 그러나 저는 창비 세일로 샀습니다 과연 이만원은 조금 비싼 감도 있습니다ㅜ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제목이 정말 끝내주네요. 이상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책 구매는 언제나 무분별해지는 곳 같아요ㅠ얼마나 많이 신청하시면 그런 압박이 오나요ㅋㅋ으항 그나저나 그 도서관은 윤스리님으로 복되겄습니다아@ㅁ@

rendevous 2014-09-01 18:31   좋아요 0 | URL
인문까페 창비 이용하셨나요? 가고 싶었지만 ㅜㅜ 여기서 약간 고급(?) 정보 공유해드리면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의 경우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1년에 한 번씩 이장파티를 엽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로 연기됐다가 무산되는 분위기인데 원래 봄 즈음에 하거든요. 저는 여기서 반값으로 세계문학전집 두 번 샀어요 ㅎㅎ 뭐 요즘은... 출간된 지 몇 년만 지나면 4~50%로 금방 떨어지니 자랑할 것도 안 되지만요 ㅜ 그리고 민음사 창고세일에서 '민음사 북클럽' 회원 자격으로 70% 할인 받았습니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 전집, 현대 사상의 모험 시리즈 장만하고,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등등 충동구매하는 바람에 빈털털이된 것이었던 것입니다 ㅜ

봄밤 2014-09-01 19:14   좋아요 0 | URL
으앗!!..윤스리님 저는 이 할인판매 만큼에서 '우리'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런 고급정보를 이렇게 오픈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디서 어떻게 박스를 끌며 만났을지 모르겠네요. ㅋㅋ으힝 현대 사상의 모험 시리즈 저 또한 장만했습니다 ㅎㅎ하지만 전집은 끝내 구하지 않았다는! 가슴을 쓸어내릴 소식 전합니다. 소설에 대한 욕심이 없는지, 그것을 채우기엔 책장이 없던 모양인지 저는 주로 시집을 샀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문동에선 전집을 두 번이나 사셨다니, 그렇다면 꼼마에는 수시로 오시겠군요! '우리', 모르는 사이에 몇번은 만났겠습니다.

rendevous 2014-09-01 19:19   좋아요 0 | URL
꼼마는 르 끌레지오 옹 보러 갈 때 딱 한 번 갔어요 ㅎㅎ 시집은 문지 시집 빠돌이라 ㅜㅜ 홍대 와우북 할 때 왕창 사놓고 요로코롬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

문득 마주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낭독 행사나 재밌는 일 생기면 정보 공유하자구요~~ 저는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 열심히 다니려고요 ㅎㅎ

봄밤 2014-09-0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그렇군요+_+ 정보공유 좋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라니!! 정말 축제같은 기분이 들어요. 홍대 와우북, 기다려집니다. ㅎㅎ이번에 가면 시집을 사고, 윤스리님도 불현듯 뵈었으면, 해요. 시집 추천 그 무렵에 여쭐게요!

비의딸 2014-09-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하게도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에 꽂히네요. 천명관과 필립 로스 응원합니다. 로스의 책은 '유령 퇴장'보다는 '굿바이 콜럼버스'로 간택되길.. '유령 퇴장'은 이미 질러버렸거든요!
이렇거나 저렇거나 개인적으로 나는 하루키 책을 읽기에는 가을날이 너무 아까운데...

rendevous 2014-09-02 13:45   좋아요 0 | URL
저는 무의미의 축제 두 권입니다 ㅜ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굿바이 콜럼버스가 처녀작이니(근데 굿바이네요...) 굿바이에 저도 한 표~ (굿바이 레닌 이란 영화도 문득 생각납니다 ㅎㅎ)

CREBBP 2014-09-0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요. 봄밤님도 여기서 뵙는군요. 차남들의 세계사 대신 뭘 추천할까 순례왔는데. 전작주의라는 말을 들으니 이왕 세권이나 읽은 필립로스로 골라서 깊게 들어가볼까 생각중이네요.

rendevous 2014-09-04 16:19   좋아요 0 | URL
필립 로스는 문학동네에서 계속 출판 - 아마도 정영목 번역가가 도맡아서 할 것 같아서 도전하시면 남는 장사?일 것 같아요 ^^ 저는 최근에 시집 많이 읽어서 그런지 호흡이 짧아져서 2권 짜리 소설 읽기가 예전보다 힘들어졌습니다 ㅜ 그런데 역설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에 도전하고픈 마음도 불현듯 생기고 있어요~ ㅎㅎ
 
하룻밤에 읽는 불교 - 개정판, 2천5백년 불교사와 불교사상을 한눈에 그림으로 읽는다 하룻밤 시리즈
소운 스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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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불교. 

 

하룻밤에 못 읽었다 ^^ 

 

끝.

 

^ ^ 

 

 

 

 

 

 

 

 

 

 

 

 

 

 

 

 

 

 

 

 

 

 

 

 

 

 

 

음...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청년출가학교 얘기를 하면 좋지 않을까? 맞아. 청년출가학교. 거기서 시작된 인연이었어. 

내게 불교란 뭐였지? 고려 시대 국교? 동국대 백일장인가 만해 백일장 때 틀어주던 오세암의 세계(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궁예????!!!! 대머리? 염주? 사리? 악기가 된 뼈(정약용 선생이 복숭아뼈였나? 거기 구멍이 세 번 날 정도로 열심히 정진했다는 에피소드를 읽고 스님을 연상했다) 불 속 결가부좌? 시 속 철학적 뿌리? ... 

생각해보니 불교와 나의 개인적인 접촉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 불국사를 간 걸 제외하곤 거의 전무할 정도로 절은 '옛날의 유산'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불자도 아니었고, 주변 얘들도 불자가 아니었다. 내겐 너무 먼 불교. 

그런데 청년출가학교에 별 고민 없이 지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존적인 고민도 고민이고, 참여해주신 선생님들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불교의 '수행'하는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내게 기독교는 노래 부르고 기도하는 이미지라면, 불교는 절하고 염불 외우는 이미지. 

 

극빈. 무아에 이르기 위해 고행하는 구도자. 무성욕 혹은 절대적 절제.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자연인. 

   

이런 끌림들이 있었다. 지속가능한 마조히즘? 하루하루 - 삶을 수행으로 가져간다면 공부/휴식의 분리를 좀 더 부드럽게 완화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 예상은 적중했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 들고, 깨끗한 공기 마시며 말끔한 정신 상태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질문하고, 대화하기, 밥 먹는 것 - 걷는 것 - 작은 것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게 생활하기,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시간, 정말 좋았다. 

스케줄을 짜고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잘 못하는 나에게 어느 정도 꽉 짜인 스케줄은 오히려 다른 것에 신경쓰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정말 다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불교에 너무 무지했다는 점, 그로 인해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스님들께 여쭙지 못했다는 점과 스님들이 해주시는 불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하룻밤에 읽는 불교. 

 

불교라는 거대한 세계에 들어가는 데 글을 읽지 않도록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책으로, 지도를 그려보고, 영토를 더듬어볼 수 있는 책으로 괜찮을 것 같아 서평단에 신청했고, 운 좋게 인연이 닿았다. 

 

요약-정리된 부분을 보면서 고등학교 때 풀던 문제집이 생각났다. 그만큼 일목요연하게 요약이 잘 돼 있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불교입문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 입문서를 표방하고 나온 콘셉트에 충실한 책이었고, 처음 불교용어를 접하는 나에겐 또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책이기도 했다. 

 

p26

 

<우파니샤드>의 어원적 의미는 '가까이 앉다'로, 스승에서 제자로 구전되어온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베다> 문헌의 가장 끝부분에 실려 있기에 베단타라고도 일컫는다.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16세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편찬되었다. 

 <우파니샤드>에 나타나는 철학적 특색은 범아일여, 즉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과 개인에 내재한 아트만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브라만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있게 하는 근원적 실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이를 추구했다. 그리고 현상계와 신들의 의지처가 되는 근본 원인인 브라만 개념을 고안해냈다. 

 브라만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 안에 내재되어 있으며, 현상들의 차별적인 모습은 브라만 안에서 하나의 원리로 귀결된다. 그리고 아트만은 개인의 영적 존재로 다른 물질들과 구분되는 본질적인 어떤 것이며, 인식의 주체이자 윤리적 주체로서 육체가 죽어서 사라진다고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의 신봉자들은 브라만을 개인의 영적 존재인 아트만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개인의 내면적 탐색이 극치에 이르면 아트만을 발견하게 되고, 바로 그것이 유일의 실재인 브라만과 동일하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범아일여적 사고는 우주의 본질을 내적 자아성찰을 통해 추구하게 만들었다. 개인은 대우주를 반영한 ㅅ우주이므로 우주의 본질을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출가학교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 단어들. 

사성제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해탈의 방법을 고, 집, 멸, 도 네 단계로 설명하는 가르침. 첫째, 존재하는 그 자체가 모두 고통의 연속이다. 둘째, 고통의 근원은 집착이다. 셋째, 고통의 소멸을 열반이다. 넷째,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이어 열반에 이르는 수행을 다시 여덟 가지로 말했으니, 이것이 팔정도, 즉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말,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 올바른 주의, 올바른 선정이다. 

 

진은영 시인이 쓴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에서 본 적 있는 나가르주나 용수의 <공> 사상. 

p58

 

나가르주나의 가장 큰 업적은 <반야경>에서 말한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고, 항상 변한다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다. 나가르주나는 <중론>에서 공성(사물의 본성 또는 실체)이 바로 석존이 발견한 연기임을 밝히고 있다. 연기란 현상계의 사물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상호의존적으로 공존하면서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으로, 모든 현상계의 물질의 실제 모습을 밝힌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나마 불교의 주요 개념들을 익힐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나라마다 불교가 어떤 변천사를 겪었는지 대략적인 역사적 흐름을 잡을 수 있어서 앞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거란 걸 예감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청년출가학교에 강의해주신 분으로 광고인 박웅현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때 본인은 <하룻밤에 읽는 ~~> 이런 제목이 달린 책을 싫어한다고 ^^ 하룻밤에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내용을 하룻밤에 읽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에 대한 비판적인 광고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독자 입장에서 그 책이 하룻밤에 읽는~ 이든, 두 글자로 읽는 ~~든 책 내용만 알차다면 상관없다. 대신 한 가지 드는 아쉬움이 있다면 본격적인 전문서적과 초보자들을 위한 입문책 중간에 위치할 만한 책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그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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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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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된 말. 불어의 음악성을 닮은 음악적인 세 음절. 불.란.서. 험버트 험버트에게 롤리타가 있었다면 나에겐 불란서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불란서는 그 이름만으로 좋아하기에 충분했다. 찰스가 아니라 샤를이라서, 처음 들었을 때 한국 성씨로 착각할 수 있는 '장'이 있어서(미국에도 kim이나 lee는 많지만), 'r'발음이 특이해서... 가끔 이유 없이 좋은 것 앞에서는 무의식이나 정신분석과 관련된 생각들을 접고 사근사근 피어나는 상냥함을 음미하고 싶어진다. 주머니 속에 구겨진 종이를 펴 운명이란 단어를 찬찬히 쓰다듬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르 끌레지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어쩌다 운 좋게 파주북소리축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문학사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손 꼽히는 르 끌레지오의 강연이라 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크게 화제가 된 <황금물고기>도 좋았기 때문에 빗발을 뚫고 파주 출판단지로 거침없이 향했다. 르 끌레지오는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강연을 했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내용은 별로 없었지만 크게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난다. 하나는 의미를 해석하려 들지 말고 텍스트가 내 안에 흐르게 둘 것, 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어떤 여유의 태도에 대해 말한 건 맞다. 다른 한 가지는 다섯 명 정도 되는 질문자들의 질문이었는데 한 분은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주셔서 놀란 동시에 부러웠고, 한 분은 불문학 전공이었는데 문학의 현실참여에 대해 질문했고, 나 또한 '문학이란~'으로 운을 떼는 비장한 질문으로 르 끌레지오에게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은 완전히 쓸모 없는 것' 대답을 이끌어내 스스로 절망감의 나락에 떨어졌다. 문학무용론에 대한 김현 평론가의 말이나 다른 무엇이 할 수 없는 예술만의 고유한 영역에 대해 알았더라면 괜히 자기가 왜 혼나는지도 모르고 벌 받는 아이처럼 끙끙 앓을 필요 없었을 텐데 어렸기 때문에 가능한 해프닝이었던 것 같다. 앞에서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질문자 덕분에 '봉~쥬르' 한 마디만 하고 불어를 못한다는 고백을 하면 웃음이 유발될 것이란계산이 적중한 덕분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도 난다. 그때 웃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 

 

 운 좋게도 불문학 전공자 분이 강의가 끝나고 카페에 남아주신 덕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전공 시간에 누구의 텍스트를 읽냐는 질문이었는지, 작가 혹은 프랑스 작가 중에 누굴 좋아하냐는 질문이었는지 헷갈리는데 그때 '모파상'이란 이름이 나왔던 건 확실하다. 모파상. 거의 2여 년 만에 귀환한 이름. 이제 그 편지에 답장할 수 없지만 편지를 받았으니 읽을 수 밖에. 미황사 청년출가학교에 가 있는 동안 책 추천이 이뤄져서 신간추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없었는데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과 모파상 단편집을 받았을지 쾌재를 불렀다. 두 작가 모두 이름과 호평은 익히 들어 익숙했지만 실제로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파상의 경우 오 헨리와 더불어 단편소설의 귀재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했다. 


 모파상을 읽기 전에 기억이 났던 건 독일 문학과 프랑스 문학 간의 거친 비교. 프랑스 문학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면, 독일 문학은 무겁고 삶과 죽음, 형이상학적 문제(독일 문학의 고전 중 하나가 '파우스트'인 것만 봐도...)에 대한 사유가 깊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불문학사나 불문학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던 중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나오셔서 프랑스 문학이나 철학이 '현장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해주셨다. 독일 철학의 대표 기수로 꼽히는 칸트, 헤겔, 피히테, 셸링,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들이 세계 전체와 우주만물을 설명하려 했다면 프랑스 철학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동시대적 문제에 천착하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생각난 철학자 에밀 시오랑. 루마니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프랑스 정신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는 시오랑은 <독설의 팡세>에서 이렇게 적었다. 


일부 민족들의 심각한 기질을 안부인 기질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의 미래는 그 문제에 달려 있다. 만일 독일인들이 다시 예전처럼 일하기 시작한다면, 만일 러시아인들이 게으름에 대한 그들의 오래된 애정을 되찾지 못한다면 서양은 곧 파멸하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무위안일, 무관심, 낮잠의 취미를 개발해야 하고, 모두를 무기력과 변덕의 즐거움으로 빛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이센이나 시베리아가 우리의 도락주의에 강요하는 해결책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헤겔이 독일의 재앙이었듯(강조는 윤스리), 루소는 프랑스의 재앙이었다. 체계에도 정신병에도 무관심했던 영국은 하찮은 것들을 가지고 엮어왔다. 그들의 철학은 감각의 가치를 주장했고, 그들의 정치는 흥정의 가치를 주장했다. 경험론은 대륙의 졸작에 대한 그들 나름의 대답이었고, 의회주의는 유토피아, 병적 영웅주의에 대한 그들 나름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한가한 사람들, 즉 사교를 즐기는 사람들, 무사태평한 족속들, 말로 먹고사는 모든 인간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세련된 태도의 모태는 대화이다. 거기에 무감각했던 독일인들은 형이상학에 파묻혀버렸지만, 프랑스인과 고대 그리스인처럼 수다스러운 백성들은 정신적 우아함에 단련되어 사소한 일들에 탁월한 기술을 발휘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말이 '정말' 많다고 하는 프랑스 남자들. 형이상학에 파묻혀버린 독일인과 수다스러운 프랑스인. 분명히 두 나라 간 사회문화적 배경에 상이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유가 깊기 때문에 독일문학이 프랑스문학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헤겔의 역사론을 연상하게 만든다. 어떤 목적(의미)을 상정하고, 그 목적에 따라 과정이 종속되는 모양. 이는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면과 거의 딱 들어맞는다. 최근 밀란 쿤데라의 신간이 출간됐는데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무의미의 축제>. 위의 문학무용론과 대조시켜 보면 재밌는 방식으로 공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해설에서 김현 평론가가 발레리가 음악적 시세계를 추구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도르노가 예술의 최고의 단계? 형식?을 음악이라 했던 말과 부딪치면서 시와 음악, 문학과 소설, '예술'이란... 대책없는 질문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밀란 쿤데라, 파스칼 키냐르, 아도르노, 파울 클레... 등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화음' 속에서 자란 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김정환 선생님은... 괴물이시니까 ㅜㅜ) 


 플로베르였는지 다른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모파상에게 거리를 하루종일 쳐다보라고 시켰다고 한다. 모파상은 그게 그거인 것 같다고 특별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선배 작가가 그건 네가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줬다고 한다. 관찰력. 편린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내는 능력. 모파상의 단편들을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몇몇 작품들만 읽어도 뛰어난 관찰력을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고, 무엇보다 그때 당시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어 미시사회학의 자료로, 사회학자들의 필수자료로 사용되곤 한다고 하는데 이 작가도 그 목록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군중. 이야기가 없는 사람의 덩어리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 역사란 거대한 흐름 속에 기록되지 못한 하찮고 자잘하고 '수다스러운', 하지만 역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어떤 진실을 담지하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을 나는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작가가 다 매력적이어서 다 읽어보고 싶다.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마스 만, 데이먼 러니언, 대실 해밋, 허버트 조지 웰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오 헨리, 대프니 듀 모리에... 아이맥스 영화 한 편 볼 돈으로... 라고 하면 영화팬 입장에서는 조금 치사한 교환등식으로 비칠 지도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도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




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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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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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블로그에 쓴 글을 가져왔습니다 http://blog.naver.com/yadohy6407/220086859328)


최근 본 책들의 표지에서 유독 한 작가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문학과지성사 2008.10.01

 

 

 



김연수 소설가의 <밤은 노래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 배수아 옮김

필로소픽 2014.03.24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피라미드

윌리엄 골딩 | 안지현 옮김

민음사 2013.10.04

 

 

 



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 

 

의식

세스 노터봄 | 김영중 옮김

민음사 2014.05.09

 

 

 



세스 노터봄의 <의식>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김춘미 옮김

민음사 2004.05.15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왜 에곤 쉴레일까? 쉴레의 그림이 책 판매에 도움이 줄 거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해골바가지에 피부를 덧씌운 것 같은... 그림의 첫 느낌은 <불쾌>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미술책이나 평소에 접했던 그림과 많이 다른데 그 차이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그림들이, 또 '명화'라고 불리는 과거에 그려졌던 그림들이 대상을 '아름답게' -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대상 이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힘썼다면(앵그르의 <오달리스크>의 여인의 허리가 길게 그려진 것처럼) 쉴레의 그림은 이런 표현이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위추'(일부러 추하게)적으로 보일 만큼 대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사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리얼리즘과는 다른 지향성이 쉴레의 그림에서 풍겨지는 독보적인 아우라를 형성한다. <밤은 노래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피라미드>의 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이거...'하고 쉴레의 그림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독보적 아우라 때문이었다. 치명적 불온함, 포르노그래피의 적나라함과는 다른, 그렇다고 에로티즘의 언어로 해석하기도 애매한... 뼈와 살거죽! 

그의 그림을 보면 <소외>와 <고독>이란 키워드가 떠오른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건에 의해 '벌거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쓰곤 한다. 벌거벗겨짐. 상대방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맹목적 공격성과 이에 대응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의 자신, 숨막힐 정도의 부끄러움/수치심 앞에서 우리는 쥐구멍을 찾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할 지도 모른다. '나는 나로부터 절대 도망갈 수 없구나' 아무리 자유로운 정신이라도 육체를 벗어날 수 없다. 글이나 음악, 미술 등에 정신을 옮겨놓거나 이식할 순 있지만 살아 있고 운동하는 정신은 인공지능을 제외하곤 육체를 토대로, 전제로 존재한다. 니체는 심신이원론,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사유하게 만든 소크라테스와 기독교를 거침 없이 비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 선언(서양정신사와 대결하고자 한 니체의 출사표라 볼 수 있다) 이후 유물론의 물결을 거쳐 다시 '신성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지구 반대편으로 하루나 이틀이면 갈 수 있고 이메일과 SNS 등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역설적으로 현대인이 호소하고 있는 감정은 '외로움'이다(SNS에 전시된 외로움을 보라!)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신의 '유동하는 근대'라는 사유 아래 현대사회는 '과잉'연결되어 있다고 분석, 지적하면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고독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인권을 말하면서 <자기만의 방>의 필요성을 역설했듯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고 살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의 카카오톡도 경박한 토크쇼의 웃음소리BGM도 침략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토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가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선 수행, 명상 + 자연 ... (+차담) 청년출가학교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 중 하나가 '명상'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미황사의 <참사랑의 향기> 프로그램도 참여해보고 싶다 ^^

 민음사의 밀란 쿤데라 전집과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들을 보면 '커플'을 확인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 - 르네 마그리트, 도스토예프스키, 에드바르트 뭉크. 장르는 다르지만 영혼으로 통하고 공명하는 영혼의 단짝(들). 에곤 쉴레의 영혼의 단짝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 나는 프란츠 카프카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카프카와 쉴레. 살과 살이 아닌 뼈와 뼈를 맞대고 사랑할 것 같은 커플. 고독의 실존의 발명자들.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과 <소송>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한 번 쉴레의 자화상을 멍하니 쳐다보길... 뭔가가 벗겨지고 처음엔 불편함과 불쾌함에 시달릴 지도 모르지만 이내 자유로움을 느낄 지도 모른다. 나같지 않은 나와의 어색한 조우. 잘 지냈지? 어색한 관계 사이에 인사법이다.  


...


 한 권이 추가됐다. 성석제의 투명인간. 고등학교 다닐 때 문제 푸는 걸 싫어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작품들을 포함한 한국문학을 알게 모르게 멀리 했다. 작가 성석제를 처음 알게 된 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였던 것 같다. '신은 죽었다'는 문장을 직접 읽어보기 위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고(읽었다기보다) 있었기 때문에 성석제 작가가 니체를 패러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기회에 고등학생들에게 두 가지만 말해주고 싶다. 1 고등학교에서 추천하는 추천책/필독서를 필히 읽지 말 것. 단테의 신곡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1,2... 나는 내 지적능력이 또래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권장'/'필독'도서를 꾸역꾸역 읽어야 했다. 그 결과 그 시간 동안 읽을 수 있었을 수많은 책들을 읽지 못하고 내 머릿 속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의미'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이 그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평균 500페이지가 넘는 무의미와 씨름해야 했던 불임의 독서의 후유증...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고, 좀 더 어려운 책을 읽고 싶으면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요즘엔 아트엔스터디, 다중지성의 정원, 수유너머, 시민행성 등 이용할 수 있는 질 좋은 인문학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일정 수준의 경제력만 뒷받침된다면 혼자 헤매는 시간을 줄이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안광복 선생님 같은 분을 보니까 좋은 고등학교엔 '철학'교사가 있는 것 같던데 뭐, 대한민국도 언젠가 프랑스처럼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 가면 프랑스도 지금과 많이 달라지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서론이 길었다. 에곤 쉴레에 대한 다른 글까지 끌어오면서 서론을 길게 '끈' 이유에 대해 고백하고자 한다. 그 동안 독후감은 대부분 책을 읽자마자 썼다. 세세한 줄거리까지 모두 기억나는 것은 책에서 마음으로 스며든 감정이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에 머리와 손이 달아올랐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A4 두 장 정도 분량은 거뜬히 채울 수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배출에 제동을 걸고, 양보다 질을 추구해보잔 생각에 공백을 만들었다. 망각에 휩쓸리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을 선명하고 세세하게 복원해보자는 마음으로 알라딘 리뷰들을 써보았다. 결과는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공백기간을 말 그대로 비워두었다면 또 달라겠지만 그 시간 동안 다른 책을 읽고, 배우고 하는 '채움'의 시간을 거치면서 침전된 마음에서 순수한 결정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뜸'을 들이게 된 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컸다. 아마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인용한 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루키는 여행기를 여행지에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지에서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돌아온 다음에 쓴다고 한다. 시간성을 획득한 기억, 마음의 결에 따른 자연스럽게 걸러지고 남은 것들에 대해 말하기. 접근방향은 좋았으나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결정적으로 잠에서 깬 직후 '따끈따끈'한 상태로 글쓰기를 즐겼다는 마르케스의 말을 듣고, 독후감 쓰기를 즐기기 위해 차분함보다 따근함/뜨듯함을 즐기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 쉬운 사람


 에곤 쉴레의 그림이 있는 표지와 제목을 보았을 때 예상한 내용은 카프카적 소외였다. 이를 테면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인간이 사회의 코드에 읽히지 않아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한다는... 뻔한 생각. 투명인간을 읽고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소설은 성석제만이 쓸 수 있다. 성석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스타일이나 장점에 대해 '곰곰생각하는발'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키워드는 이랬다. 시골, 입말, 이야기꾼. 가독성이 뛰어났고, 묘사하는 대상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문장들의 달리기에서 가끔 냇물 바닥의 조약돌의 매끈매끈한 질감이나 반짝이는 윤슬(오호 내가 좋아하는 단어 ><) 같은 것이 느껴져서 지루하지 않았다. 


 만수. 만수를 한 마디로 정의내리자면 이랬다. 착한 사람. 혹은 바보. 내 아버지 세대 정도가 쓴 글에서 '착한 바보'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응답하라. 그 많던 착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 가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다. 착한 사람들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조금 손해보더라도 착하게 사는 것을 선택한 바보들은 만수처럼 파산당했다. 생존경쟁이 흔해진 말이 보여주듯 약간의 손해가 아닌 생존 그 자체를 놓고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만수들은 온정주의에 빠져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퇴행적 존재로 자연도태되었다. 투명인간, 그것은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다른 이름이었다. 죽여도 처벌당하지 않고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벌거벗은 생명. 투명인간은 자본주의의 만신전에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잉여적 존재이며, 죽여도 처벌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2009년 투명인간들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수도가 되려는 꿈의 이미지로 가득 찬 서울의 한 복판에서 다섯 명이 경찰 공권력의 투입에 의해 죽었고, 그들의 장례식은 치뤄지지 않은 채 300일 넘게 순천의 냉동고에 보관되었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 정체성의 승인을 요구해야 했던 절규의 건너편에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나누는 정치/법 권력의 서슬 퍼런 기준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인간보다 '시민'이란 개념에 좀 더 가깝지만 무자비한 폭력 앞에 스스로 '인간'임을 말하고,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 하는 상황은 '뼈와 살'이 인간의 충분조건이 더 이사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뼈와 살 위에 어떤 사회적, 문화적 코드를 덧입어야 인간으로 해독되는 상황은 현대사회를 수용소라 설명한 아감벤의 규정이 대한민국의 입시체제를 설명하는 은유로서가 아니라 삶 전반에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네이버가 민음사가 후원하는 <열린연단> 첫 번째 강좌에서 인문학자 김우창은 이런 말을 남겼다.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돼야 한다. 착하게 살기 위해 예수나 부처, 루터 급의 결단이 필요한 사회는 지속되기 힘들다.


 조금 모자라도 이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웃음을 주고 빛이 되는 만수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 그런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시란 생각에 김종삼의 시 한 편을 남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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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08-2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쉴레의 표지, 제가 가진 책은 알라딘에서 받은 두 개인데, 다른 것들도 갖고 싶군요. 말씀하신 그 아우라 말에요. 작품성을 보증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암튼

rendevous 2014-08-21 18:14   좋아요 0 | URL
쉴레 그림 표지 책들을 일렬로 쭉 줄세워 놓으면 뭔가... 재밌는 광경이 펼쳐질 것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