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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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이갈리아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메갈리아를 경유하지 않는 건 불가능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 페미니즘 역사에 중요한 모멘트로 기록될 2016년에 있어 강남역 살인사건과 더불어 메갈리아가 결정적인 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는데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메갈리아가 만들어지는데 있어 <이갈리아의 딸들>에 빚을 지고 있기에 둘을 엮어서 함께 다루는 건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메갈리아에게 미러링 전략의 영감을 주었던 <이갈리아의 딸들>은 왠지 읽어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거기에는 나는 여성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에 공감하고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전제에 동의하고,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성들에게 역지사지를 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목적 아래 쓰였다고 생각되는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맨 앞쪽에 있는 이갈리아의 용어들에서 페호를 접하고 내 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철학이나 사회과학과 같은 학문의 언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문학의 언어가 한다는 것을, 그래서 작품에 대한 글을 읽었다고 해서 작품을 읽었다는 착각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읽으면서 직접 두 눈으로 읽고 느꼈을 때만이 독후감이 생겨 리뷰를 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독서와 글쓰기 모두 몸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처서야 비로소 완수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이는 내가 본격적으로 읽은 최초의 페미니즘 도서인 <정희진처럼 읽기>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남성작가들이 몸과 정신을 분리시켜 순수성이나 절대성 같은 형이상학적 것을 추구할 때 여성작가들은 몸으로 쓴다는 여성적 글쓰기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남자 얘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의 페미니즘은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극단적이다’, ‘평등주의egalitarianism가 페미니즘의 대안이다같은 주장들을 반복적으로 접할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들에는 이 탈각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고, 몸으로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더 많은 페미니즘 예술들이 나와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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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독서초반에는 예상했던 대로 내용이 진행되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56페이지에서 웃음이 터졌다. 루스 브램이 맨움용 잠수복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느껴 크리스토퍼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었다.
페호 없이 맨움용 잠수복을 만든다면 그 문제가 간단하게 풀릴 거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루스 브램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 생각에 전율했다 (...) “아니!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어, 귀여운 크리스토퍼.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야! (...) 맨뭉들을 위한 옷에는 페호가 있어야 해. 항상 그래 왔고 미래에도 늘 그럴거야. 변하는 것은 단지 높이가 얼마나 올라가는가이고 그것은 팍스의 패션 여왕이 정할 문제야. (...) 나는 내 아들이 그것을 다리 사이에서 흔들며 돌아다니게 하지는 않을거야. 죽어도!”
보수적 입장에서 무질서 혹은 급격한 변화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무질서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이 불안을 조장하고, 기존의 가치에 반하는 행동들을 낳는다는 데서 그렇다. 특히 사회에 있어 비록 사회질서가 이상적인 원리를 따르고 있지 않더라도 이상적인 원리를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실현가능한 가치의 편에 서 있는 질서를 지킴으로써 사회를 좀 더 이롭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합리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어떤 생각을 이상주의적’‘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준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이 반드시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이라는 게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불변적인 대상이 아니라 주체들에 의해 구성적으로 만들어지는 수행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는데 현실을 바라보는 데 있어 시간성과 실천의 측면을 모두 소거하고, ‘어떤현실을 영구적으로 고정시키고 박제시킴으로써 구현되는 질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합리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무질서는 보수적인 입장에서 기존의 가치가 위협되고 훼손되는 위기상황일 수 있으나 진보적인 입장에서 낡은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태동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충만한 상태다. 질서는 단순히 법이나 사회제도의 차원뿐만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과 감수성의 영역에도 침투한다. 주의할 점은 법이나 사회제도의 경우 도로 위의 차선과 같이 질서와 무질서를 나누는 경계가 가시적인 데 반해 상상력과 감수성에 내면화된 질서의 경계는 비가시적이라는 데 있다. 상상력과 감수성에 그어진 가이드라인 혹은 폴리스 라인이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기에 상상력과 감수성은 특정한 구획 안에서 작동된다. 그래서 상상력과 감수성을 해방시키고자 한 68혁명은 상상력에게 권력을’, ‘금지를 금지하라같은 구호에서 볼 수 있듯 기존의 질서 외부,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욕망했다. 파시즘 정부가 정권교체로 사라진다고 해도 통치과정에서 파시즘을 내면화한 마음들에서 일상 안의 파시즘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정권교체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통감한 결과였다. 지금, 여기의 외부, 너머를 상상하는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랑시에르가 말하는 감각적인 것의 ()분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남성주의적 사회를 완전히 뒤집은 이갈리아를 통해 여성이 타자이자 외부였음을 남성들에게도 보이게끔, 느낄 수 있게끔 만든다. 혹자는 브래지어를 안 한 여성의 가슴에서 불쾌감을 느낀다고 솔직한심정을 토로하지만 타자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일방적인 솔직함은 폭력적일 따름이다. ‘니들이 동성애를 하든 안 하든 상관 안하는데 내 눈앞에는 얼씬 거리지마라고 말하는 이에 있어서도 타자에 대한 포용과 이해는 외부에 있는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는 동성애 혐오에까지 적용되었을 때 자기기만적 오인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논의해보고 싶은 대상은 시선강간과 관련된 사안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남성들은 대체로 움츠리고 있다. 움츠림, 이거야말로 보이지 않는 권력의 교묘한 행사인데 어떤 문화적 헤게모니가 주체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움츠림을 선택하도록 만들기에 여기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다니는 능동적인 여성이라고 해서 남성의 응시에 따른 성적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혹자는 연예인의 사례를 들며, 혹은 아름답게 꾸미고 다니는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욕망하기 때문에 응시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건 웃기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 응시에는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자신의 아래로 두려는 권력의 행사의 성격이 있기에 여성이 타인의 시선을 욕망하는지 안 하는지는 차치하고서도 폭력이다. 만약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다면 시선강간 대신 시선폭력 정도로 언어를 순화할 수 있었겠으나 젠더에 따른 권력 차이가 사회적으로 실재하기에 강간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혐오의 미러링>에 이어 <포비아 페미니즘>을 출간한 박가분은 블로그에서 시선강간이란 용어가 응시에 따른 폭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는 점이 있지만 개념으로서 정합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읽을 당시 타당한 지적이라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봤을 때 문제화의 차원에서 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윤여일의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http://sanzinibook.tistory.com/532)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념의 정합성, 기능성, 윤리성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시선강간'은 정합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시선에 있어 젠더적 권력-폭력의 문제를 가시화하고 관음증적 시선처리의 폭력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수행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기능성의 측면에서 좋은 개념이라 판단된다. 윤리성은 지식이 지적 주체를 변화시켰는지를 여부를 묻는데("지식의 윤리성은 지식과 지적 주체의 관계에서 빚어진다. 물론 지식은 지적 주체가 생산하지만, 지식의 윤리성이란 그 지식을 매개 삼아 지적 주체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다." (본문 17쪽) 시선강간이라 명명했을 때 가해자가 심리적 저항감을 느껴 개념이 담지한 메시지를 거부하려 들 수 있다는 점에서 표현강도를 강하게 한 전략에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된다. 여성에 대한 시선폭력과 시선강간을 비교해봤을 때 후자 쪽이 남성의 관음증적 욕망을 명시하고 있기에 강력하게 시선의 윤리성을 환기시킨다는 면에서 지식-개념의 윤리성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된다.



 새로운 언어의 생산은 시각/관점을 생산하며, 문제를 생산한다. 문제화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정상/일상의 비정상성, 모순과 부조리가 인식되게끔 만든다.  정확하고 좋은 질문을 하느냐가 좋은 답변을 도출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4  H 평론가와의 뒷풀이 경험.
 예전에 H 평론가의 수업을 들은 바 있는 분이 새롭게 오셔서 자리를 채워주셨다. 나중에 그분은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셨다. H 평론가는 그분이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있고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는 알았지만 수술을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음은 몰랐다며, 그래서 처음 봤을 때 긴가민가했는데 수술사실을 확인하고 조금 놀랐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후 H 평론가는 대학원 시절 페미니즘 수업을 들었던 흑역사에 대해 얘기했다. H 평론가는 자신이 페미니즘의 정전에 해당되는 책들을 어느 정도 숙지한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가 비판적인 질문을 던졌던 것인데 교수님이 이를 탐탁지 않게, 불편하게 여겨서 그런지 자신을 소외시켰다고 했다. 그러자 트랜스젠더 분은 남성이 페미니즘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기껏 해야 대학원 수업에서 소외되는 정도인데 그것 자체가 권력이라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 이후에 트랜스젠더 분의 비판이 이어졌는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H 평론가의 답변만 확실히 기억난다. ‘“그건 네가 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본인이 남성 지식인으로서 젠더에 있어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공공적 지식인으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페미니즘에서 하는 얘기를 들으려고 귀 기울이는 편이지만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서동진처럼 실존적인 이유에서 공부하면 몰라도 단순히 실존적인 이유가 없으면 공부하는 데 있어 한계가 있다고 했다. H 평론가는 페미니즘으로 어느 수준 이상으로 깊숙이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곤혹을 토로했는데 그로 인해 자신의 뭔가가 흔들리고 상실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사실 페미니즘에 있어 남성으로서 주체성을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의 고민은 나 또한 해본 적이 있는 것이었기에 이를 테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나는 페미니즘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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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대동여지도
김정호 지도, 최선웅 도편, 민병준 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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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도 그렇지만 공간이 가진 힘이 대단함을 느낍니다. 특히 구글맵 등으로 종이지도를 볼 일이 없는 지금 대동여지도를 읽는 건 독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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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박단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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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파리? 에펠탑? 와인? 세느 강? 샹송? 혁명? 각자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프랑스에 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사적인 경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TV나 인터넷, 책 같은 매체를 통해 재현된 프랑스의 이미지들 중 자신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부분을 꼽을 것입니다. 책갈피 세대라면 이자벨 아자니, 소피 마르소 같은 여신들의 얼굴을, 좀 더 이전 세대로 가면 알랭 들롱이나 이브 몽땅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교류는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교통수단과 통신기술이 발달되기 전까지 소수의 탐험가나 정부에서 파견한 사신들을 제외하고 먼 이국을 가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맞닥뜨린 사건은 병인양요라 할 수 있습니다. 병인양요 이후 프랑스 신부님들이 조선으로 와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읽혔다고 합니다. 불어 원전 번역본이 아닌 영역된 축약본을 중역한 판본이었다고 하네요. 그 당시 소위 상징주의로 분류되는 일군의 프랑스 시인들이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조선의 시인들은 보들레르와 랭보를, 베를렌과 말라르메를, 로트레아몽을 읽었을 겁니다(번역사를 검토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방 이후부터 이중에서 해방 이후부터 읽히기 시작한 작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별 헤는 밤>을 통해 시인 동주가 프랑시스 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50년대에 지식인들의 교과서로 통용된 사상계잡지 등을 통해 사르트르가 널리 읽혔다고 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다룬 사르트르와 카뮈의 작품들이 한국인들의 정서와 잘 맞았던 것 같고,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앙가주망)과 지식인의 현실참여에 대한 생각들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잘 부합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김현 같은 불문학자, 평론가에 의해 프랑스의 지성은 한국사회에 꾸준히 수용되었습니다. 80년대까지 지식 공론장의 지배 헤게모니는 마르크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가 장악하고 있었다면,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들뢰즈, 푸코, 데리다,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같은 철학자들의 대거 수입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철학과를 다녔던 분들 중에는 철학자라고 하면 미셸 푸코밖에 없는 줄 알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당대 프랑스 철학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로벌 지식장에서 미국의 위상이 지배적이지만 프랑스 지식은 여전히 한국에서 활발하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쇄신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로 범주화할 수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같은 정치철학자들의 저작들이 꾸준히 번역되고 있고,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자크 라캉 같은 정신분석학자의 이름도 한 번쯤 들어본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EBS에서 만든 3부작 드라마 <내 여친은 지식인>에서 1화에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개념을 설명하고, 2화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취향의 계급화, 상징자본에 대해 설명하고, 3화에서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설명하는 등 프랑스 이론 편향적(?)인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실제 인문학계와 대학가에서 프랑스 사상가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반증일 겁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를 야기하고,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페미니즘 분야에 있어서도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고전을 꼽을 때 첫 손으로 꼽히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저자 올랭프 드 구주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수 있다면 투표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선언에서 여성의 인권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은 제1의 페미니즘 물결에서 중요한 시민권, 투표권 투쟁으로 이어져 여성해방의 기나긴 혁명의 첫 걸음을 떼게 했습니다. 2의 페미니즘 물결 역시 프랑스의 철학자가 쓴 글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주인공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2의 성>인데 제목이 함축하고 있듯 여성은 남성의 타자로 구성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그동안 이면에 숨어 있었던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들을 표면으로 부상시켰습니다.

 

 

철학과 사상에 있어서도 탁월한 프랑스지만 아무래도 독일은 철학과 사상,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제 세대는 샹송을 접할 기회가 잘 없는 편인데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땅의 대표곡 정도는 들어본 바 있습니다. 제 세대에게는 다프트 펑크를 프랑스 음악의 대표적인 명사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들었던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침대광고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김연아 선수를 통해 알게 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마티유 드뷔시의 <달빛>, 현대음악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를 클래식 쪽에서 좋아하고, ECM 쪽의 재즈 뮤지션들을 좋아합니다. 프랑스가 스웨덴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큰 재즈신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여행가게 된다면 꼭 재즈 카페를 가보고 싶습니다.

 

미술 쪽으로 가면 워낙 많아서 일일이 화가의 이름을 열거하기 힘들지만 인상주의부터 초현실주의까지 굵직굵직한 프랑스 화가들이 많았다면 미술계의 패권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간 이후부터 아무래도 현대미술에서는 프랑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계인들에게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의 아성은 여전히 굳건해서 문화예술의 강국 이미지를 통한 (프랑스 경제에서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산업은 문제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영화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칸느영화제가 세계 최고의 영화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고, 알랭 기로디, 올리비에 아사야스, 미아 한센-러브, 프랑수아 오종, 자비에 돌란 같은 좋은 감독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는 걸 보면 프랑스 영화계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학의 경우 최근 창작되고 있는 젊은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읽어보지 못했지만 르 끌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같은 거장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조르주 페렉을 위시한 울리포 그룹, 파스칼 키냐르와 이브 본느프와를 추천합니다!). 최근 개봉된 <발레리안>이나 <설국열차> 같은 영화들의 원작이 그래픽 노블인 걸 보면 그래픽 노블 강국인 프랑스의 선전은 쭉 이어질 것 같습니다(<아스테리오스 폴립>으로 그래픽노블의 세계에 입문한 저는 미메시스에서 나온 책들을 몇 권 읽어보았고,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찾아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한 정보 중에 제게 흥미로웠던 사실은 프랑스가 기록의 강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필립 가렐 감독의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을 보았을 때 필름들이 보관되어 있는 아카이브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기록이 없기로 악명이 높은 한국의 경우와 비교되어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한국 또한 <조선왕조실록> 같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한 유산을 보유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식민지 시기 일제에 의해 기록물들이 말소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기록들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종종 전해 들었습니다(특히 식민지 영화연구의 경우 필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도 식민지 시대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나운규의 <아리랑>의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유학하신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접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프랑스의 경우 세계적인 석학이라 판단되는 학자가 사망하면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그가 남긴 메모 하나까지 모두 국가에게 수거해간다고 합니다. 전집 발간을 위해서인데 어린 시절 연애편지부터 해서 온갖 잊고 싶은 흑역사들까지도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죠. 어떤 교수님이 본인은 그 정도로 유명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농담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만약 오늘날 한국에서 세계적인 석학이 돌아가셔서 프랑스 식으로 아카이빙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작업담당자들은 그분이 부디 SNS를 안 하셨기를 간절하게 소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를 엄청나게 뒤져야 하는 수고는 일기나 편지 등 인쇄매체의 글들을 끌어 모으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내게 프랑스는 처음 지단과 앙리, ‘아트싸커의 나라로 각인되었다. 앙리-트레제게 세계 최고의 투톱을 가지고도 골대 6-7번을 맞추는 불운 끝에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프랑스. 외국나라의 수도를 어느 정도 외울 수 있을 때쯤 프랑스는 막연히 고급스러운 선진국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자유·평등·박애의 삼색기, 에펠탑이 있는 수도 파리, 와인과 더불어 프랑스 혹은 세계 3대 음식으로 꼽히는 푸아그라,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가 있는 미식의 나라, 아직까지 프랑스의 문화예술 및 역사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 대중매체를 통해 이식된 프랑스의 정체성이란 이런 것들이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초1 때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얇은 레미제라블을 읽었는데 장발장이란 이름에 혼란을 느꼈다. 만약에 지네딘 지단이나 티에리 앙리 같은 이름이었으면 프랑스식 이름이구나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한국인 성씨로도 쓰이는 이 나와서 성은 장이요, 이름은 발장인 이상한 한국이름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장발장이 신발장과 비슷한 유의 가구는 아닐지 헷갈렸다. 책을 읽어보면 사람은 사람인데 이름이 장발장이라니... 레미제라블은 내게 빵을 훔쳐서 에서 십 몇 년 동안 썩었다는 줄거리보다 이름으로 기억되는 작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세계사 시간을 좋아했기에 프랑스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갈리아, 프랑크, 아비뇽 유수, 백년 전쟁, 절대왕정의 상징 태양왕 루이 14, 마리 앙투아네트, 1789 프랑스 대혁명(이때 18187월 혁명, 18482월 혁명을 다뤘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아마 고등학교 때 가볍게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폴레옹, 영국과 세계를 양분해서 통치했던 제국주의 국가, 양차세계대전을 거쳐 유엔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선진국 프랑스 정도의 정보를 정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세계문학을 읽기 시작하면서 프랑스는 확실히 문화예술 강국으로 입지를 굳혔고, 까뮈와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와 에밀 졸라 같은 모랄리스트’‘리얼리스트들의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대학 입학 이후엔 누벨바그의 진원이자 현대사상의 메카로 인식되었다. 지금은 위세가 많이 꺾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문화예술의 중심지이며, 사회적 국가로서 복지제도나 프랑스산 현대사상과 담론들이 한국사회에서 활발히 수용되고 있다. 추후에 다루겠지만 친불 성향?의 지식인들에게 프랑스에 대한 호평만 듣고 선진국인 줄만 알았던 프랑스가 생각보다 많은 모순들과 문제들을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책을 읽은 감상을 정리하자면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한편 최근에 신문이나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들었던 최신 소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것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어 유익했다.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비시 정부, 페텡, 샤를 드골, 미테랑, 시라크, 사르코지, 올랑드, 마크롱 같은 지도자들을 역사적 좌표 아래 위치시킬 수 있었다. 독불 전쟁에서 패해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로 편입된 경험이 있는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전후 부역자 재판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책에서는 많은 프랑스인이 나치에 협력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며 비판했지만, 또 다른 입장에서는 프랑스가 두 번이나 알자스로렌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지식인들의 흑역사인 알제리 문제의 경우도 그전까지 사르트르는 알제리 쪽에, 까뮈는 프랑스 쪽에 서면서 알제리 문제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다는 일화가 흥미로워서 알제리 문제가 프랑스 지성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막상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었다. 책에서는 워낙 오랜 식민지였기에 알제리 없는 프랑스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여기는 프랑스인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전쟁 중에 알제리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고, 당시 열강들이 추구하던 핵무기 실험의 장소로도 알제리 영토인 사하라 사막만큼 적절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 프랑스에게 알제리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져 갔습니다.(p60)’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맞서 알제리는 민족해방전선FLN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는데 마치 조선에서 실력양성론이나 식민지 근대화의 논리로 일제의 편에 섰던 사람들처럼 알제리를 위해 알제리의 해방에 맞섰던 알제리인들의 존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생각나는 대목이었고, 한편으로 친일/반일(친불/반불)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넘어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역사를 재인식하는 게 대두되는 현 시점에서 알제리는 우리와 어떤 차이를 갖고 현대사를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히잡 사건 또한 단순히 이슬람포비아의 산물인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온 정교분리의 원칙이란 명분 아래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수확이었다. 이처럼 비가시적으로 행해지는 이슬람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IS 테러로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IS 테러 이후 한국사회에서 보인 이슬람포비아 반응이나 인종주의적 차별의식이 앞으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커다란 사회갈등을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숫자도 늘어나 다문화사회로 점점 더 바뀌어가고 있고, 전반적으로 세계화 시대를 살면서 국경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경계가 느슨해졌지만 물리적이고 양적인 교류의 증가가 타자에 대한 질적 이해도의 상승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서구에 대한 열등감 내지 콤플렉스는 여전히 모양을 바꿔가며 잔존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우리보다 까만’ ‘못 사는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차별 및 인종주의적 편견 역시 강하다. 남한이라는 고립된 너머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보편적인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세계시민교육이 요구된다고 생각된다.

 

 

항상 나오는 얘기지만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진 독일(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합작해서 만든 역사교과서를 만들 정도로 민족사관이든 식민사관이든 일국의 관점에서 서술된 역사와 비교했을 때 진일보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모범적인 독일사회 역시 통일의 후유증과 이민자들의 유입에 따른 사회갈등으로 네오나치를 위시한 세력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축소시키고, 나치를 긍정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어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에 개봉한 <나는 부정한다denial>을 참고해볼 수 있다)과 비교했을 때 난징대학살,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화해 및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동아시아 삼국이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은 너무나도 협소하다.

 

()아시아라는 인식론적 지평을 첨예하게 사유하는 젊은 사상가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를 읽어보면 이런 역사인식의 난점들과 고뇌들이 담겨 있다.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데 있어 식민지 근대의 경험이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에 남긴 상흔은 무엇이었는지, 그게 어떤 식으로 현재에 영향을 미치면서 일본에 대한 이중으로 왜곡된 인식과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 개도국(혹자는 이를 올챙이 개구리 적 생각 못 한다라고 평한 바 있는데 이를 교훈적 메시지로 환원해버리지 않고, 복합적인 함의들을 잘 읽어낸다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문제성을 담지하고 있는 문장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개입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 한국대학에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중국사에서 거의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서 중국-티베트 문제라든지, 홍콩의 우산혁명이라든지 트와이스의 쯔위 사건으로 표출된 중국-대만 갈등관계를 이해하는 폭이 굉장히 좁을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듯 EU와 유사한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한다고 했을 때 풀어야 할 숙제가 산재되어 있지만 삼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점점 더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있어 통일이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겠지만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간도 지역으로 가서 독립 운동가들의 흔적을 살피고, 만주 지역에서 삼국의 제국주의-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탐구를 협력적으로 진행하고, 제주-오키나와를 평화의 섬으로 연결시키고, 베이징/상해-서울/부산-동경/오사카 등 도시 간 교류를 좀 더 활발히 이어간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좀 더 넓어지고 한결 다채로워질 것이다. ‘쪽바리’, ‘조센징’, ‘짱깨’, ‘때놈’, ‘왜놈을 넘어 동아시아 시민으로서 보다 넓고 깊은 보편성을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꿈꿔본다.

무엇보다 재밌었던 부분은 지리였다. 수도 파리와 남부의 마르세유, 칸느 같은 도시들이 관광지로 유명한 해안도시라는 점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략적으로나마 각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앞서 언급한 알자스로렌 지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라는 단일하고 균질적이고 순수한 정체성으로 포섭되지 않는 지역의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프랑스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다. 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의 배경이 되는 보수화된 노동운동의 성지 노르파드칼레, 세계사 시간에 많이 들어봤던 알자스로렌 지역, 특히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대한 비판적인 독해를 소개해준 대목이 흥미로웠다. 책에서는 소설이 지나친 프랑스 문화 우월주의, 민족주의와 반독일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원래 알자스로렌은 독일어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마치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서 더 이상 일본어를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슬퍼하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비판이 있다고 설명한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이 작품을 다뤘을 때만 해도 나는 마지막 수업을 식민지 조선-일본의 관계에 이입시켜서 읽었는데 알자스로렌 지방의 역사에 대한 무지가 낳은 오독이었던 것이다.

 

 

조금만 옆길로 새보자면 사실 세계사 시간에 프랑스의 왕자가 덴마크의 왕이 되는 식의 역사적 사실을 접하면 반 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의 서사로 설명되는 한국사를 배운 한국인 입장에서 궁금증을 품을 법도 한데 한 번도 여기에 대해 질문해본 기억이 없다. 아마 처음에 봤을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 묻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기에 궁금증의 수도꼭지가 일상적 타성의 냉기에 얼어버렸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서술한 대로 알고자 하는 욕구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뭔가를 알고자 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데 완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수학과 같이 순수한 지성적 활동이 아닌 경우 학습 자체에서 산출되는 자족적인 기쁨 이외에 지식이란 수단을 통해 어떤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지 묻게 되는데 학창시절 지식은 단순히 시험점수를 위한 수단으로 환원되다 보니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설 자리가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의 아비투어와 함께 거론되는 바칼로레아는 프랑스 교육의 상징처럼 거론되지만 최근 너무 높은 합격률로 인해 시험의 변별력이 없고, 논술형 답안지를 채점하는데 너무 많은 인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비용문제로 인해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번외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한예종의 입시문제가 바칼로레아 못지 않은 창의적인 시험문제로 화제가 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교육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데 대전제에 동의하지만 단순히 인공지능을 기술적으로 계발하기 위한 지식을 전달한다고 해서 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들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와 같이 외국의 핵심기술을 빌려와 가격대가 합리적인 상품을 찍어내 수익을 창출했던 하청노동의 모델을 답습하는 꼴을 면치 못하고, 이런 모델로는 더 이상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새로운 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어느 전문가(EBS 다큐 프라임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대혁명참조)는 새로운 시대의 인재를 길러내는 데 필요한 역량은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인간보다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과 기계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을 때 시너지를 효과를 내며 공생할 수 있을지를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베이스를 키워야 인공지능 시대 시민을 양성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참고로 2017년 철학 시점 문제는 다음과 같다.

 

알기 위하여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예술 작품은 꼭 아름다워야 하는가?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곧 이익을 옹호하는 것인가?

 

얼마 전 EIDF를 통해 프랑스 영화학교 페미스의 입시과정을 다룬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전쟁>이란 다큐에서도 나왔듯이 프랑스는 기회는 평등하게 제공하되 최고를 위한 교육을 한다는 엘리트주의적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68혁명 이후 대학 간 위계를 철폐하고, 공화국의 이념에 맞는 공공성을 실현하는 사회기구로서 파리 1대학, 2대학 식으로 대학제도를 재편했지만 최상위 교육기관인 그랑제콜(베르그손,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 부르디외 같은 프랑스 지성계의 기라성 같은 존재들은 대부분 그랑제콜의 인문계열이라 볼 수 있는 고등사범학교 출신이다. 혹자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쓰기가 그렇게 난해하고 어려운 이유는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어야 하고, 고등사범학교 같은 엘리트 집단에서 평범하고 쉽게 써서는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아서 라는 식으로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얘기한 바 있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바른문장이라 생각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사뭇 대비되는 대목이다) 출신들이 엘리트주의와 폐쇄성으로 재계, 정계, 학계를 독식하다시피 해 비판받는다고 한다. 특히 고급 행정 관료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국립행정학교ENA’가 정계 및 관계를 지배하는 풍토에 대해 ‘ENA 망국론이 있다고 할 정도이니 과거 한국사회의 서울대 출신들이 만들어낸 학벌사회 현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교의 경우도 낙제가 있어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신경을 기울이기 힘든 이슬람 가정의 아이들이 주로 낙제를 받아 교육에서 사회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보인다.

 

 

한국의 교육철학은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해본다면 남들 하는 만큼은 한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교육에 대한 정부와 대중의 인식이 어떤 변천사를 겪었는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대학진학이 상례가 된 시점부터는 일단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남들 하는 만큼은 한다가 아니었을까. 물론 여기에는 80년대 전두한 정권이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로 실시한 정책으로 인해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신자유주의화의 흐름 속에서 대학이 취업예비 기관으로 바뀌면서 바야흐로 개나 소나다 가는,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던 사실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대중의 교육에 대한 의식이 이러했다고 친다면 정부의 교육철학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한 관료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충원하기 위해 ENA를 설립한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자국에서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학생운동, 1980>에 의하면 1970년대 경 경제관료 엘리트가 일본 유학파 출신에서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물갈이된다고 서술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처럼 미국과 일본을 모델로 놓고 따라잡기 식catch up modernity’ 근대화를 추진하다 보니 애초에 자생적 생산시스템을 갖추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인문사회 과학이나 기초과학 분야 같은 토대학문에 대한 이해부족에 대한 미비한 투자로 이어진 게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하고. 국가행정을 책임질 엘리트는 고시제도로 선발하는데 사실 이는 고등교육 제도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기에 정부의 초점은 기술자나 노동자를 양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오랜 시간의 투자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장기적 비전은 정부에게 부재했을 것 같다. 정부의 정책도 정책이지만 한국사회의 교육열에는 입신양명을 중시하고,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유교의 정신문화적 유산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기계적 비교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상고, 공고가 어떠했는지 본다면 한국이 노동()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즉각 알 수 있다.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이번 정권에 들어 수능과목들을 점진적으로 절대평가로 바꾸고, 특목고나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쉽고 간단하게 풀릴 유형의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기다려봐야 알 것 같다.

 

동기 중에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종종 <비정상회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 친구와 만나면 종종 <비정상회담> 얘기가 나온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국-이탈리아 혼혈이지만 국적이 이탈리아여서 외국인이기도 하고, 또 혼혈이기에 완전히 외국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경계인의 정체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볼 때보다 <비정상회담>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탈리아에서 한국을 대표/대변하고, 한국에서 이탈리아를 대표/대변하는 경험이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이야기에 녹아들었다. 아시아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이탈리아 친구가 있었다는 얘기와 나치를 숭배하는 인종주의자에게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한 경험을 얘기해준 게 기억에 남아 있다. 친구는 이전까지 한국에서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크리스티나가 대변했다면 지금은 알베르토가 대변하고 있는데 굉장히 젠틀하고 로맨틱하고 지적인 이탈리아 남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참고로 알베르토는 친구의 대학 선배라고 한다). <비정상회담>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패널들이 왜 전부 남성인지(가끔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긴 하지만), 특히 논리적으로 토론을 나누는 회담은 남성 패널들로 채우고, 시시껄렁한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은 미녀들로 채우는 한국의 예능방송이 외국인들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고,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터키나 중국의 패널들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프랑스나 미국의 패널들은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형국이 있어 본의 아니게?’ 특정 국가에 대한 코드화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한 바 있다. 이를 테면 그들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비공식 홍보대사인 셈인데(프로그램이 잘 되면서 실제로 공식적인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사람도 생겼겠지만) 제작진이 패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적용시킨 기준이 무엇이었을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국가가 일종의 브랜드가 된 시대에 부드러운 문화정치학이 이렇게 일상에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이 유럽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여 차이가 무화될 수 있는 것처럼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 일본, 중국은 아시아란 거대한 정체성에 포섭되어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인접해 있는 서유럽 국가들 간 차이, 동아시아 3국 간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특정 국가에 대한 특징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책에서 종종 인접 국가들과 프랑스를 비교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이탈리아는 어떻고, 영국은 어떻고, 독일은 어떤데 프랑스는 이렇더라 하는 식으로) 평소에도 이런 식의 비교는 자주 접해볼 수 있었다. 프랑스 남자는 ~, 프랑스 여자는 ~ 이런 식으로 내셔널리티와 남성성, 여성성을 결부시켜 설명하는 방식 내지는 특정 국가의 시민들에 대한 코드화된 이미지의 재생산은 여전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가장 최근에 들은 사례로는 한국에 살며 영어강사를 하다가 일본으로 간 영국인들이 유튜브 방송에서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이고 편향된 이미지들을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자가진단과 비슷할까? ‘백마로 표상되는 서양여자와 어떻게든 한 번 자보려고 안달 난 똥양남자’? 여성혐오적 시각을 갖고 있는 한남에 의해 서양남자에게 쉽게 자신의 성을 주는 김치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해외수교의 역사가 짧은 한국이 프랑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싸이의 강남스타일? 35시간 노동에 대비되는 OECD 최상위권의 긴 노동시간을 갖고 있는 나라? 유럽 최대의 재즈 신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나윤선이 대중적으로 유명할까? 르샹피오나의 팬들이라면 박주영, 정조국, 권창훈의 이름을 아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지젝이 변기 형태를 가지고 독일-프랑스-영국을 비교한다든지 아무래도 서양철학 분야에서 영국경험론, 독일관념론, 프랑스 철학의 전통 및 특징이 분명하다 보니 삼항의 비교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자면 독일에서 문학을 공부하신 교수님은 독일문학은 너무 관념적이고, 프랑스문학은 너무 감상적인데 러시아 문학이 둘의 중간 정도라고 설명하시며 문학 초심자들에게 러시아 문학을 권하신 적이 있다. 프랑스문학이 너무 감상적이며, (‘따라서가 괄호 쳐져 있다고 느껴졌다) 수준이 좀 낮다고 얘기했을 때 이 얘기는 그냥 걸러야겠다고 판단이 섰지만 간혹 명자’(명자는 여성임에도 남성의 시각을 일반 남성보다 더 강하게 견지하고 있는 명예남성을 얕잡아 부르는 명칭이다)처럼 본인이 수학하신 나라를 신성화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의 멘털리티를 분석해볼 필요성을 느끼곤 한다. 특히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의 탄생부터 한국전쟁, 이후 냉전질서 아래 베트남전 참전 등으로 고도성장을 달린 끝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미국이라는 항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였고, 어떤 역할들을 해왔는지 앞으로 알아보고 싶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가 소련 시절 자료들을 공개해 냉전 연구가 핫하다고 하는데 포스트 냉전 체제의 기미가 보이는 요즘이라 그런지 더 관심이 가는 분야다.

 

 

특정 나라에서 특정 나라가 어떤 식으로 이미지화되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이를 테면 20세기 중반 미국인들에게 프랑스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표상된다고 알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못지않게 아무리 요즘 사람들이 성당에 거의 다니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톨릭의 보수적인 문화가 스며있는 프랑스가 문란하고 방탕한 성의 아이콘이 된 데에는 68혁명의 영향이 크지 않나 추측해본다. , 프랑스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재현된 이미지가 대상화되고 타자화돼서 그 나라의 본질인 양 일반화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한국에서 일본 여성을 순종적인 현모양처 식의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대상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전에 개인들의 자유로운 해외여행 자체가 거의 금지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이미지만을 접하는 환경이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인 친구를 서울에 데려오면 어디를 데려가서 보여줘야 하나 고민이 되는 데 가이드북을 한 번 훑고 왔을 그들 이상으로 서울의 속살이라고 할 만한 전통이 우리에게는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창경궁, 종묘 같은 건물이야 남아 있지만 문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들을 이식시켜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토양에서 오랜 세월의 시간성을 품고 있는 향기 나는 곳으로 어디를 꼽아야 할지 고민인 것이다. 서울역 고가도로 2017이나 DDP를 보면서 공공적, 집합적 기억을 생산하고 매개하는 신체로서 건축이 아닌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디즈니랜드’(보드리야르)로 서울에 새로운 피부를 입히는 박피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그렇게 매끈하고 세련된 피부 아래 역사도, 깊이도 없는 허공만이 자리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는 프랑스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 독자들에게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에 대한 전반적인,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한 후에 본인이 관심 가는 분야를 좀 더 세부적이고, 전문적으로 파고들어가 본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의 경우 파리 이외에 다른 도시들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겨울에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세비야 같은 대도시들이 명성대로 볼거리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고 좋았지만 빌바오, 성 세바스티앙, 그라나다 같은 도시들이 그 못지않게 좋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는 못 끌지만 저에게 딱 맞는 도시를 만났을 때의 그 쾌감이란! 유럽은 자전거로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뚜르 드 프랑스처럼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구석구석을 여행해보고 싶습니다. 봉쥬르, 사바, 메르시보꾸, 드 리앙, 트래비앙... 본 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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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책을 본격적으로 사기 시작하고, 2012? 2013년부터 알라딘 중고매장을 부지런히 다닌 결과 내가 소장한 책 중 절판된 게 꽤 많이 생겼다. 생물로 따지면 멸종된 셈인데 DNA 정보는 있으니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든 다시 생명을 되찾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이?' 하게 만드는 꽤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책이 절판된 걸 확인하면 씁쓸한 마음이 들긴 한다. 학술서는 성격상 대중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어쩔 수 없다 쳐도 한국의 출판 ㅡ 학술 인프라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소장목록 중 절판된 책 목록(알라딘 기준)
김춘수 시 전집(현대문학)
부조리극(한길사)
파르지팔(한길사)
니체(문예출판사)
한국영화연감 2010(커뮤니케이션북스)
수학과 음악(경문사)
바흐친의 산문학(책세상)
존재와 진리(철학과현실사)
신학요강(나남출판사)
헐리웃 문화혁명(한나래)
산티아고 가는 길(민음사)
아날로그맨1(새만화책)
현대문학이론 입문(시유시)
정치적 책임에 관하여(이후)
아미엥에서의 주장(솔)
남성성과 젠더(자음과모음)


절판된 책 중에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코넬의 남성성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
카를 뢰비트의 헤겔에서 니체로
루이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하여
라인홀트 메스너의 죽음의 지대
는 정가보다 좀 더 비싸게 팔았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최초의 주문이 들어왔을 때만 해도 불로소득이랄까 예전에 페북에서 어떤 젊은 인문학자 분이 꼭 필요한 학술서인데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측정해서 못 샀다는 얘기가 마음에 걸려서 중고최저가보다 9천원 정도 싸게 해서 팔아치웠는데 그 이후로 다른 사람들이 책정한 최저가에 맞추거나 일단 비싸게 책정해놓고 안 팔리면 점진적으로 낮추는 식의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읽었던 책이나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책을 지금 당장 필요한 책이나 생활비로 전환할 수 있어 좋긴 한데 책을 보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빈 서판은 아직 못 읽었는데 스캔을 하기에 책이 너무 두꺼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고책 셀러를 하면서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어떤 책을 어디 사는 분이 주문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교회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을 주문했을 때. 한국에는 그렇게 극단적 무신론으로 기독교를 공격하는 (비판하는) 논자는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극우 반공 ㅡ 반동성애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기독교에 진보적 기독교 세력과 페미니즘 세력 외에 리처드 도킨스 같은 부류가 추가된다면 논쟁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죽음의 지대 같은 경우 이동진의 언급 및 추천으로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4년 전 히말라야 트랙킹 갔을 때 재밌게 읽고, 정가보다 만원 정도 더 받고 팔게 돼서 이동진 님께 심심한 감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책을 팔다 보니 문득 책이란 사물의 생산과 유통, 상품으로서 책이란 사물, 매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여유가 된다면 낭시의 사유의 거래에 대하여 를 읽어 내용을 좀 더 풍성하게 채우고 싶지만 그 일은 추석 연휴로 미루고 생각나는 대로 단상을 늘여놓아 볼까 한다.

 

로쟈는 📚종이책이 더 이상 진화하기 힘든 완벽한 사물에 가까워 전자책이나 다른 매체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얘기한 적이 있다. 확실히 '가성비'로 따지면 책만 한 게 없다. 하드커버 는 꼭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페이퍼백은 넘사벽이다. 물론 🌳로 남아 있는 게 나았을 쓰레기 또한 출판시장에 판을 친다. 푸코 말대로 자기에게 운명적으로 정해진 독자를 초과하며 잉여의 대중소비자를 끌어모으는 책이 있는데 82년생 김지영처럼 시대정신과 만나면서 인민의 사유와 감수성을 집결시키는 병참기지와 같은 베스트셀러가 있다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나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이 시장의 트렌드를 잘 읽어 히트친, 그래서 유행이 지나가고 나면 폐기물로 버려질 일회용 상품들도 있다 ㅡ 그들 모두 독서사 연구의 중요한 자원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ㅡ

바우만의 책 중 쓰레기가 되는 삶들 이란 제목이 있는데 어떤 책들은 자신의 사용가치만으로 끝끝내 쓰레기가 되기는커녕 조물이 되어 세월을 견뎌낸다. 이는 저자를 비롯한 출판노동자들의 장인적 노동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시간에 쉽게 풍화 침식되지 않는 뿌리가 깊고 줄기가 튼튼한 지식 ㅡ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고, 성실하게 주체적으로 앎의 네트워크를 조직해 삶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지성체들의 존재 때문이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혁명의 중요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대중출판을 통해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담론을 형성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걸 보면 책이라는 게, 사람 얼굴만한 종이뭉치에 혁명적 잠재성에 새삼 놀라게 된다.

 

더불어 도서관이란 공간, 소사회가 생각해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란 생각이 든다(영화관 또한 민주주의를 공간적으로 생각할 때 중요한 모델로 참조될 수 있다). 오늘날 각광받고 있는 공유경제의 기원적 모델이 도서관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용해도 소모되지 않는다는 점과 휴대하기 편하다는 점으로 인해 책 ㅡ 도서관의 공유모델이 빨리 만들어진 것일 뿐 사물 인터넷을 잘 활용하면 우리는 좀 더 많은 공유지, 공통적인 신체의 발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에 실린 배인철의 <알파고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하나의 가설>을 읽어보면 알파고가 상대방과의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수가 아니라 자신의 학습에 있어 가장 도움이 되는 '최선의 수'를 둔다고 했을 때 알파고vs알파고의 대국에서 양쪽이 데칼코마니 같이 대칭적으로 수를 배치하는 형국이 연출된다는 식으로 설명한 바 있다. 승부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당황시킬 만한 변칙적인 수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승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는 알파고에게는 이를 테면 추접한 난투극에 의한 승리보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예술로서의 바둑’을 두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이를 테면 알파고에게는 먹여 살릴 처자식이나 승패에 따른 심리적 동요가 없기에 프로그래밍된 언어를 그대로 실현하는 순수이성의 주체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에서 협력으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하자는 주장은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생물학을 위시한 자연과학 분야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입을 모아 인류의 발전 원동력으로 이타심 및 협력의 증가로 꼽는다. 미래사회는 초연결사회라 불리는 현대사회보다 좀 더 연결될 것이다. 기계와 신체 및 정신의 결합이 늘어날 것이며(포스트 휴먼), 기계와 도시의 결합이 늘어날 것이며(스마트 도시, <1984>빅 브라더?), 트랜스한 운동들이 기존의 경계들을 넘나들 것이다. 책-도서관의 모델에서 우리는 ‘오래된 미래’를 발견할 수 없을까? 사실 거칠게 생각해서 책-도서관에서 연구만 추가되면 이게 대학(<살롱 안드로메다>의 트인 선생님이 얘기했듯 대학‘교’가 아닌)의 원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인문사회 계열에 한정시켜야겠지만 대학의 연구자는 책을 읽고 홀로 지식을 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발전시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의 새로운 것을 생산해 선순환적 구조를 이룬다. 이걸 우정의 고리라 부를 수 있다면 그건 함께 읽고 쓰고 사유하고 느낌으로써 시대와 국경의 경계를 뛰어넘어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소크라테스와 젊은이들이 그랬듯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가 되기 때문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육체적이고 에로틱한 활동이라 하지 않는가. 누군가 자신의 글을 세심하게 읽고, 공감하고, 자신이 글로 미처 다 쓰지 못한 ‘쓰여진’ 공백을 말해준다면, ‘쓰여지지 않은’ 문자를 읽어준다면 영혼이 어떤 흥분도 느끼지 못하고 차분함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해질 것이다. 사유의 거래, 감정의 교통, 누군가의 독자가 되겠다는/되었다는 선언은 그/녀를 사랑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가장 내밀하면서도 가장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기술이 책과 도서관을 통해 발명되고, 재발명된다.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 우리 시대 최고의 책쟁이 중 한 명이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책 제목이다.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지만 원제와 상관없이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잠깐 자랑을 하자면 나는 2010년경 즈음에 이벤트에 당첨돼서 움베르토 에코 컬렉션 + 미의역사 + 추의 역사를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받은 바 있다. 흥해라 열린책들-미메시스!!). 열린책들 얘기가 나온 김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얘기를 잠깐 하자면 그는 어디선가 정치가 천 년이나 미래 후속세대를 고려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좇는 세태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한탄한 바 있다. 뭐, 이 발상 자체는 굉장히 나이브하지만 어쨌든 권력의 마수에서 벗어나 있는 지성인들은 고민해야 한다. 천 년을 살 것처럼 오늘을 사는 방법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 저절로 우리는 별의 자식들이란 생각이 떠오르지만 오늘은 이렇게 바꿔야겠다. 우리는 책의 자식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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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역사적 인간 4
하타노 세츠코 지음, 최주한 옮김 / 푸른역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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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청

 

 20살 3월에 6학년 때 좋아했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이후 몇 번 수원에 놀러왔고, 한 번은 길가다가 마주쳤지만 인사를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 친구와 같이 있던 얘(나도 아는 사이였던)가 과자를 사달라고 부탁해서(삥을 뜯어서) 과자를 사준 기억이 있다. 그게 마지막이었고, 이후 그 친구의 흔적을 찾아보았으나 문을 닫은 싸이월드에서 몇 장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20살 입시를 망치고 방에 틀어막혀 동굴러로 살아서 외로움이 고여 있어서 그랬는지, 단순히 남들이 다 하니까 유행의 시류에 편승했던 것인지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하루는 종일 기억나는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보며 쉴새없이 친구추가를 요청하고, 승인하는 작업을 반복했고, 한 일주일 동안 타임라인을 기웃거리다가 소외감과 열등감에 절어 탈출하듯 빠져나왔다.

 

 이 일주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6학년 때 좋아했던 친구와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아 하루 시간을 함께 보낸 일과 중학교 1학년 때 음악시간에 내가 자위를 했다는 소문을 퍼뜨려 인생 최대의 곤혹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만든 친구와의 채팅이었다. 전자는 내가 먼저 연락을 했으며, 후자는 상대방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사건의 발달은 점심시간에 미친 듯이 뛰어놀고, 5교시 음악시간에 바지에 손을 집어넣어 사타구니를 긁었던 게 화근이었다. 참기 힘든 수준의 가려움이었던 것도 있지만 사실 학원에서나 그 동안 대놓고 한 건 아니고, 나름대로 은밀하게 해왔던 행동이라 습관적으로 별 생각 없이 긁었던 게 빌미를 제공한 셈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다섯 명 정도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쉬는 시간에 나를 불러 음악시간에 자위를 했냐고 물어보았을 때 ... 당혹스러움과 수치심이 밀려 들어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더 헌트>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원인이 여기 있었던 것 같다) .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친구가 이야기를 퍼뜨린 여자 아이에게 해명을 전달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후에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고 원만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섬뜩하다. 그런 기억을 안겨주었던 친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먼저 연락을 걸어와서 굉장히 심경이 불편했고, 그 사건을 언급하며 일종의 사과를 요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생기는 격이 될까 싶어 상투적인 대화만 나누다가 연락이 끊겼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성년이 되어도 불완전하긴 마찬가지인데 청소년기를 불완전하고, 자기통제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른들의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미시정치적 통치를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에 격렬하게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이제 막 성에 눈을 떠 성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시기의 여중생과 아직 자신을 객관화시켜 유아론적 자기중심성으로부터 탈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남중생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딱히 그 친구가 내게 피해준 것도 없기에 원한 감정은 남아 있지 않지만 한 가지 궁금증은 남아 있다. 만약 그때 내가 채팅창에 그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면 그녀는 어떤 식으로 반응했을까. - 혹시라도 나중에 중학교 동창회를 간다면 나를 음악실에서 '딸딸이' 친 변태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갈 일도 없겠지만.

 

 이광수에게 고아 컴플렉스가 무의식상의 핵심적인 중추를 이루듯 내게 있어 무의식에 남겨진 원초적인 상흔은 카프카식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대문자 '아버지'의 형상이거나-그래서 초자아란 빅브라더의 감시 아래 내 욕망을 끊임없이 유예하거나 어느 수준이 되면 포기하거나- 내 통제 아래 있지 않은 언행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삼키는 형상-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흰 종이 위에 모든 생각과 감정을 배설하려 해도 정신적, 심리적 괄약근에 가해진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이 풀어지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공간에는 어떤 식으로든 기록이 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청문회'적 상황을 생각하며 자기검열을 반복적으로 해온 탓에 말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조금 감퇴되는 데 영향을 준 게 아닌가 싶다. 또, 올해에만 생애 최초, 그리고 두 번째로 필름을 끊기는 경험을 했는데 정말 공포스러웠다 -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문학소년' 같다는 얘기를 듣고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스스로를 문학소년으로 정체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타자에 의해 그렇게 '호명'된 경우는 거의 처음이었기에 기분이 묘했다. '문''학''소''년'. 새삼 어감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문구를 마주할 때를 제외하고 책에서나 박제화되어 있지 실생활에서 만날 수 없는 화석 같은 '소년'이란 단어가 이렇게 상냥하고 몽글몽글할 수 있다니 ! 친구에게 문학소년이라고 불릴 수 있음에 문학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별동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2 끔찍한 모더니티

 

 문학소년 시절 백지와도 같은 상태였기에 스펀지처럼 예민하게 텍스트를 흡수하면서 생각에 있어서나 감정에 있어서 과잉과 결핍이 자주 돌출되었다. 이원 시인은 이런 과잉과 결핍에서 시적인 것이 출현한다는 식으로 얘기한 바 있는데 나는 그런 과잉과 결핍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보다 중도에 가깝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모난 부분들을 깎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문학이 그런 '모범생'적인, 거짓된 완벽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진실된 불완정성을 용기 있게 보여주는 거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내게 문학은 철학의 개념적 사유로 포착되지 않은 감성적인 부분까지 아울러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예술, 뭐 그런 비스무레한 것이었다. 이런 인식은 대두와 같은 형상을 띠고 있을 내면적 자아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광수가 세상을 움직이는 동인을 욕망과 힘에서 찾고, 문명개화론과 사회진화론에 감화되어 민족의 개조와 계몽을 외치는 민족지도자를 자처하기까지(그래서 최남선은 이광수를 <무정>을 두고 칠흑 같이 깜깜한 밤에 홀로 울리는 쇠북과도 같았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절망과 무기력에 빠진 불모의 땅 조선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뜨거운 피가 되기를 자처한 춘원...) 그의 고아의식과 자전적 정보들, 특히 일본유학의 경험-근대(성)과의 충격적인 조우 : 황지우가 문학앨범에서 기차를 처음 본 경험을 두고 모더니티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해 증언한 바와 같이. 이광수의 경우 근대를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일본으로 표상되는 근대를 선망과 열등의 이중적인 시선으로 봤다는 차이가 있지만- 등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경험들에서 마음의 지도와 궤적을 그려볼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오늘날 우리도 한국보다 선진적인(사실 이 표현 자체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먼저' 나아갔다는 측정기준에 대해, 먼저 나아간 국가들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catch up modernity의 무의식에 대해 말이다) 나라에 가서 그 나라를 거울 삼아 '헬조선'의 후진성과 선진국(천조국과 구라파)의 선진성이 강렬하게 대비되면서 선망과 열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소세키는 영국 유학 당시 자신의 왜소한 체구를 강렬하게 자각했으며 서구인들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얼마 전부터 읽고 있는 <산시로>의 초입 부분을 보면 서양 미녀에 대한 찬미적인 시선이 제시되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효석이 러시아 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취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어 동양 및 한국남자들의 서양미녀에 대한 동경과 배면에 깔려 있는 열등감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서 여성학자 정희진, 권김형영이 '식민지 남성성'에 대한 글을 실었고, 오혜진 등의 여성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주제인데 제국주의-인종주의 담론과 더불어 복합적으로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이다.

 (고대 웹진 민연에 연재되었던 염운옥 선생님의 글은 독일의 미술사학자 빙켈만에 의해 그리스적 미적 기준이 보편적 미의 표본으로 승격되고, 이 쿠데타가 정당한 권력으로 인준받아 역사를 왜곡하고 재구성했음을 보여준다. 동물원의 동물처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고통받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고국의 땅에 묻힐 수 있었던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갈등 등 정치적 갈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특한 질감의 애니메이션과 기계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극을 통해 색다르게, 시적으로 보여준 윌리엄 켄트리지 전에 대한 비평 등 흥미로운 글들이 실려 있다.   

 

http://rikszine.korea.ac.kr/front/article/humanList.minyeon?selectArticle_id=550&selectCategory_id=70[출처] 서양사의 재조명 강의 참고자료 안내 (역사는 즐거워) |작성자 염운옥)

 

 여행을 통한 자타의 구분 및 인식,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이런 관점에서 많은 징후들을 읽어낼 수 있는 문제적 텍스트이다. 팟캐스트 <살롱 안드로메다>에서 조셉 콘래드, 유길준, 발터 벤야민의 여행을 비교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초반에 타자를 인식할 수 있는지 인식론적 논의는 조금 정신없는 감이 있는데 폴란드에서 태어나 영어를 작가언어로 선택함으로써 모국어로부터 추방을 스스로 선택한 콘래드의 이중언어적 상황, 지배엘리트 계급의 문자인 한자의 철장에서 나와 '언문'과 '영어'를 혼용해서 글을 썼던 유길준(심지어 윤치호의 경우 나쓰메 소세키와 같이 영어로 글을 쓰면 갑자기 조선어(일본어)가 튀어나오고, 조선어(일본어)로 글을 쓰면 영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번역하는 근대, 번역된 근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상황, 파리-베를린-모스크바- '유대인'으로서, 또 주류 학계에 인정을 받지 못한 아웃사이더로서 유럽을 주유하며 스페인 국경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비평가 벤야민은 '번역가의 과제The task of translator'라는 획기적인 글을 제기했으며, 보들레르 등의 번역가였다. 문화는 필연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에 의한 번역의 과정을 거처 발전하게 되는데(때문에 문화의originality-고유성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며,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강화하는 데 동원된다. 원본과 사본, 모방과 창조 그리고 표절, 문화 간 번역 등의 주제들을 다룬 단편소설의 박형서의 <아르판>이 있다) 근대는 제국주의로 말미암아 번역이 국가와 문명 단위로 전개된 시기였다. 경전 같은 개별 텍스트에 대한 번역이 아닌 서양과 동양(이 번역어 자체가 메이지 유신의 번역가들이 만들어낸 용어라고 들었다), 구라파/미국과 아시아, 일본 (고유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같은 문제의식들이 본격적으로 발아하고 성장하기 시작했고, 에르네스트 르낭이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서술된 도식대로 이런 타자와의 조우를 통한 민족-국가nation state 단위의 자기인식은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을 통해 수행되었다. 서양의 과학기술에 일본의 정신을 이식시켜 세계의 중심부에 서고자 했던 일제의 멘탈리티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식의 수상한 수사학(물론 다른 식으로 읽힐 여지가 얼마든지 열려 있지만)에서 변형된 형태로 회귀하여 출현했다.

 

 이런 인식론적 논의에 있어 동아시아 차원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 이는 다케우치 요시미이다. 일본의 중국문학 연구자였던 다케우치 요시미는 중국이란 타자를 통해 일본사회를 보고자 했다. 타자 없이 자기동일적 인식의 굴레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다케우치 요시미는 동아시아적 지평, 보편성의 차원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를 연구한 쑨거는 동아시아 학자 윤여일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타자는 내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안에 있다고도 바깥에 있다고도 고정시킬 수 없는 타자에 의해 구축되는 '시차성'은 사유의 윤리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간주체성intersubjectivity이나 김상봉이 말하는 서로주체성이 주체 중심적 서양철학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제기된 '시차적 관점'들이라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 등 아직까지 식민지 역사의 적폐들이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식민지 조선과 일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역사를 어떻게 다시/새로 쓸 수 있을지, 연극 <1945>가 하고자 했던 것처럼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정화 교과서 논란에서 굴절된 방식으로 비판이 제기된 민족사관의 한계를 뛰어넘어 심판할 것들을 심판하고, 화해할 것들을 화해하고,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3 국민문학, 국민국가

 

 내게 문학이 타인으로부터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준 처소이자 친구였고, 빈곤한 어휘와 무딘 언어감각을 단련시키고 연만하는 대장간이었다고 한다면 이광수에게 문학은 민족개조의 소명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이자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선이 끝나고 대한제국이 탄생하는 시점에 태어나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동일시했던 이광수. 천재적인 두뇌로 사서삼경을 통달했으나 전통적인 지식이 쓰레기가 되어버린 급변하는 격동의 시기에 '힘'과 '실력'을 양성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생물학'을 모르면 안 된다는 격) <무정>의 결론이 기차역에서 만난 네 남녀는 신식 학문을 배워 민족을 부흥시키자는 계몽적 의지에 가득 차 일본과 미국으로의 유학길을 응원하며 헤어지는 게 될 수밖에 없었다. 민족(주의)에 대한 고전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에서 지적했듯 구텐베르크 혁명의 사회적 파급력을 현행화시키는 매체로서 신문은 '민족어'라는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한 민족공동체를 상상하게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순국문체로 쓰여진 <무정>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언문일치, 벤야민이 그 유명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지적했듯 영화의 발명으로 인해 시지각의 방식 자체에 변화가 일어났듯 말과 글이 일치된 소설 텍스트 읽기경험은 언어를 운반하고 매개하는 대리인agent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고 감각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입말을 문자언어로 고정하는 데 있어 표기, 글쓰기ecriture의 문제가 개입되고, 애초에 한자를 훈독하여 소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고안된 한글이란 매체의 문제가 더해졌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최초로 제기한 사람은 <서유견문>의 저자 유길준이었고, 그는 국한문체의 사용을 주장했다. 이광수, 최남선을 거쳐 순국문의 언문일치라는 이상을 실현한 것은 '-다'체를 적극적으로 주장, 활용한 김동인 이었다(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30503&cid=41799&categoryId=41800)

 

 표음주의와 내면의 발견, 근대적 자아의 확립은 걸어둔 링크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단,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문자체계를 어떤 식으로 한자를 읽고, 소리를 고정할 것이냐의 관점으로 읽어낸 황호덕의 흥미로운 주장을 조금 소개해볼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sinographic cosmopolis 한문공유체에서 sinographic mediapolis한자매개체로의 이행을 논증한다(“The Geopolitics of Vernacularity and Sinographs and the Making of Bilingual Dictionaries in Modern Korea: from Sinographic Cosmopolis to ‘Sinographic Mediapolis’”.) 한문맥,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 등 동아시아를 묶는 범주로 한문공유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구라파 국가들이 라틴어라는 보편문화를 자국의 민족언어로 번역하면서 vernacular한 universality 토착적/지역적 보편성(사실 보편적 토착성과 토착적 보편성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겠다)을 구현했듯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자라는 보편문화를 각자의 음성적 테크놀로지에 의해 소리를 고정시키는(문학/문쉐?/분가쿠) mediapolis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조선어-한국어의 형성과정에서 일제의 식민통치 등 정치적인 힘이 강력하게 개입했기에 mediapolis 개념은 지리정치학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규율장치로서 언어를 동아시아의 지평과 국민국가의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읽어내려는 의지의 소산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삼천포로 빠졌는데... 김현은 이광수에 대해 한국문학사의 너무나도 아픈 상처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1960년대 생활문화사>에 실린 글에서 표현했던 대로 한국의 현대사는 그야말로 패배의 역사, 일본의 식민통치와 미소의 신탁통치, 6.25 동란과 이승만 독재, 군부 쿠데타 및 군부독재로 얼룩진 주인됨과 주체성이 소거된 역사였기에 이런 비극의 역사에서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이광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친일을 선동하고 부역했던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에서 말한 바 있는 '부끄러운' 역사의 결정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의 경우 카뮈와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 같은 작가들이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종전 이후 독일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과 정리가 제대로 이뤄진 반면 한국은 제 힘으로 해방을 이뤄내지 못한 탓에 일제 시대에 근무했던 경찰이 해방 이후에도 계속 근무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19 - 5.18 - 6월 민주항쟁으로 상징되는 투쟁의 역사가 있어 건국 이후에 최초로 정권교체에 성공하기도 하고, 부패한 반민주주의적 정권을 민주주의의 힘으로 몰아낸 승리의 역사 또한 가지게 되었다. 이런 역사의 시점에서 이광수를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각자가 고민해볼 문제겠지만 후기식민적 상황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죽기살기로 생존해야 하는 헬조선에서 난민들에게 이광수는, 또 무정은 문학사에 박제된 화석이 아닌 돌, 몸속 깊숙이 숨어 있다가 고통스럽게 배출되는 결석과도 같은 게 아닐까. 이광수를 읽는다는 건 그런 돌들을 꺼내 잠복된 상처/고통과 마주하고 고뇌하는, 현재에 남아 있는 식민지의 중층적 시간성, 비동시적 동시성을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s 황호덕 교수님이 언급한 1962년도 판 무정을 영상자료원에 볼 기회가 생기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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