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 교양선집 6
시몬느 뻬트르망 지음 / 까치 / 197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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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는 시몬 베유의 친구였던 시몬 뻬트르망이 쓴 베유의 전기이다. 시몬 베유 전기 중 가장 표준적이고 충실한 전기로 평가받고 있다. 역자 고 강경화 선생님은 옮긴이 후기에서 레이먼드 로젠탈이 번역한 영역본 <<Simone Veil, A Life>>를 번역 대본으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 원서는 자료 중심에다 분량이 워낙 방대해서 베유의 생애의 자취를 중심으로 줄였다고 설명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시몬 베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시몬느는 나와 같이 솔본느 대학의 자격시험도 치렀다. 그녀의 뛰어난 지성과 악명 높은 옷차림에 대한 소문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무척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시몬느는 솔본느에 다니는 알렝의 제자들과 함께 교정을 산책했는데 한 손에는 늘 책을 들고 있었다. 대규모의 기아가 중국을 휩쓸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시몬느는 진심 때문에 더 그녀를 존경했다. 전 세계의 정의를 위해 고동칠 수 있는 심정을 지녔다는 것에 감탄했다. 나는 그녀의 철학적인 재능보다도 이 눈물 정을 지녔다는 것에 감탄했다.”(40)

 

 시몬 베유는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교육기관 중 하나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우등으로 입학했을 만큼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보부아르가 증언했듯 베유는 무엇보다 약자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지닌 탁월한 영혼이었다. 선천적으로 병약한 신체를 타고났으나 육체노동에 뛰어든 학출이었다.

 

1980년대 한국에서 시몬 베유 전기가 널리 읽혔던 데는 순수성의 화신이자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베유의 도덕성이 한국 청년들에게 실존적인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70~80년대 독서 문화를 저항으로서의 독서’, ‘운동으로서의 출판으로 해석했던 국문학자 천정환과 정종현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변증법적 유물론, 종속 이론 등 사회과학의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과학서적과 더불어 체제의 억압과 폭력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지키려 했던 양심적 지식인을 형상화한 소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다이허우잉의 <<시인의 죽음>>, <<사람아 아, 사람아!>>,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같은 책은 당대 대학생 사이에서 베스트셀러였다.

 

 1980년대 학출이었거나 학출-되기를 고민했던 청년들에게 시몬 베유와 전태일이 동일 선상에서 읽혔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신의 영달을 포기하고, 시몬 베유의 경우 지식인 계층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약자를 위해 '존재 이전'을 감행했던 순수성의 화신. 마르크스나 레닌이 아닌 신과 대면하며 '세계의 비참'에 맞서 실천을 고민했던 영성의 전사. 역자 강경화 선생님이 '불꽃의 여자'라고 불의 이미지로 시몬 베유를 은유한 데는 자신을 산화시켜 세상에 빛을 가져 온 구도자적 생애와 더불어 당대 지식인들의 양심에 불꽃을 당긴 전태일의 최후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인간은 존재를 파괴하는 고통 속에서 신과 대적하며 영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지상에 두 발을 붙이고 을 자신의 문제계로 삼아 도약하는 영혼. 중력은총은 인간과 신의 간격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몬 베유 전기를 읽으며 시몬 베유가 유리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날카로운 지성으로 세계의 부조리를 도려내 분석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타인의 고통에 쉽게 전염돼 곧잘 긁히고 깨지고, 자신을 투명하게 비우기 위해 단식에 가까우리만치 먹지 않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강박적으로 기피했던 사람. 선천적으로 약한 체질을 타고났으나 신체에 영혼이 구속되길 거부하려는 듯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현장에 뛰어들길 두려워하지 않았던 활동가. 자본주의적 노동 현장에서 벌어지는 소외와 착취, 전쟁터에서 말살되는 존엄성에 통감하면서도 '신을 기다리며'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을 멈출 수 없었던 예언자적 사상가(그래서 발터 벤야민과 살짝 겹쳐 보이기도 했다). 그의 생애를 알고 나니 사상이 궁금해졌다. 최근 좋은 번역으로 시몬 베유의 책들이 여럿 출간됐다. 이제 읽기만 하면 된다.

 

 

<중력과 은총>(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이종영 옮김, 리시올)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이종영 옮김, 새물결)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이종영 옮김, 리시올)


[책 속에서]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시몬느에게는 어떤 철학적인 신념에 앞선 일종의 본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분명히 나타나 있듯이 시몬느는 불의를 미워하고 진실한 유대감으로 맺어진 참다운 인간 관계를 열망했다.(24)

 

나중에 시몬느가 굶어 죽은 것 역시 자신의 성실과 순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종의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행위였을 것이다. 살아서 더 많은 것을 이룩함으로써 다른 이상을 추구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시몬느는 자신의 영혼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에도 양보하지 않았다.(30)

 

어느 날 나(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녀와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단 하나이며, 혁명이 일어나게 되면 이 세상의 굶주린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그런 식으로는 사람이 그저 생존하게 될 뿐이지 행복하게 될 수는 없다고 말하자, 시몬느는 나를 아래 위로 훑어 보면서 당신은 아직 배를 곯아 본 적이 없군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뒤로 우리의 관계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나는 시몬느가 나를 잘난 체하는 소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 때문에 좀 괴로웠다. 나는 계급적인 문제에서는 완전히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40)


작업 속도도 너무 빨랐다. 반면에 시몬느는 손으로 하는 일은 너무 서툴렀다. 제자에게 쓴 편지에서, 시몬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한번 생각해 보렴. 일은 느려지기만 하는데 무자비하게 책정된 책임량은 자꾸만 쌓이는데다가 이걸 해낼 수가 없으면 해고당한다 말이다! 나는 아직도 제대로 속력을 낼 수가 없단다. 아직은 일이 서툰데다가 원래 타고나기를 동작이 느리고, 두통에 시달리고, 또 자꾸만 생각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말이야. 아무리 해도 이 버릇만은 떨쳐버릴 수가 없구나.”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는 작업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잔인한 일이다. (140)


배고프다는 것은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느낌이다. 굶주림이 혹사당하며 먹는 것보다 더 괴로울까? 잘 모르겠지만……더 괴롭다.”(150)


공장 생활은 시몬느에게 순교의 생활이었다. (153)


더욱이 그녀가 공장에 들어간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억압받는 자들의 운명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153)


시몬느에게 인간 심리의 본질을 깨닫도록 해 준 것은 이 힘의 개념이다. 이 개념에 의해 시몬느는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랑받는 작품 일리아드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시몬느의 일리아드, 혹은 힘의 시라는 글은 정치 문제나 사회 문제를 떠나서 쓴 것으로서 당시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글은 일반적인 전쟁이나, 일반적인 불행의 견지에서 볼 때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몬느가 일리아드에서 특히 감동을 받은 것은 인간 영혼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인간 영혼은 힘과 폭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가 하는 점이었다. 힘을 행사하는 자이든지, 그 힘의 지배를 받는 자이든지 간에 인간은 힘에 의해 변형된다. 때로는 용기와 사랑으로 이 폭력에 의한 근본적인 변형을 피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상처를 면하지는 못한다. 시몬느는 일리아드에 대해, “일리아드의 고통은 인간 영혼이 힘에 종속됨으로써 생겨난 것이므로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고통이다. 개인의 본성에 따라 약간씩은 다르지만 힘에 대한 종속은 인간의 공통된 운명이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인물들은 아무도 이것을 피하지 못하며, 우리들 역시 아무도 이것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힘에 종속되는 그 누구도 멸시받을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영혼 내에서, 혹은 인간 관계 속에서 힘의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비극적이다. 파멸의 위험이 항상 그의 머리 위를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213~214)

 

시몬느는 6월 초에 내게 안부 편지를 보내왔다.

무엇을 하고 지내니? 공부하고 있니? 전에 생각했던 주제를 살려 논문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속히 완성해서 출판도 했으면 좋겠어. 이곳에 G. 베르제르라는 훌륭한 철학자가 있는데 그의 논문이 요즘 파리에서 출판되었어. 네가 여행할 수 있다면 올 여름에 만났으면 좋겠구나. 여기는 모두 잘 지내고 있어. 무슨 책을 보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소식을 전해 주기 바란다.”(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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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문학적 우정을 찾아서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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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학림다방이 있다면 신촌에 독수리다방이 있다. 학림다방은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에 이성복, 황지우 같은 서울대 출신 문인, 예술가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독수리다방은 1980년대에 성석제, 기형도 같은 연세대 출신 문인,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였다고 한다. 독수리다방에서 성석제와 기형도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둘은 연세문학회의 일원이었으니 서로 글을 읽고 비평하는 대화를 많이 나눴을 테다. 기형도는 성석제에 시보다 소설이 낫다고, 성석제는 기형도에게 소설보다 시가 낫다고 평가했을지도 모른다(소설가로 잘 알려진 성석제는 시로 등단했고, <기형도 전집>에는 기형도의 습작 소설이 실려 있다). 그런데 둘이 서로 비평한 텍스트는 문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인생. 기형도는 인생 비평을 시도한 적이 있다.

광명시에는 기형도문학관이 있고, 기형도문학관에서는 기형도 추모행사가 열린다. 2010년대 중반에 한 번 행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성석제는 기형도와의 일화를 소개해 줬다. 거의 십 년도 더 된 기억이라서 틀린 부분이 많을 테지만... 기형도가 작가 지망생이었던 친구들에게 인생 비평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는 워낙 강렬했던 터라 명확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기형도는 거침없이 신랄하게 친구들에 대한 평을 내렸고, 비평을 당한 한 친구는 분을 삭이지 못 하고 화를 냈다고 했던 것 같다. 울음을 터뜨린 친구도 있었다고 했던 것 같다.

왜 기형도는 친구들에게 인생 비평을 제안했던 걸까. 내 짐작으로는 기형도는 ‘척하는 삶’을 살지 않았고, 삶과 글의 간격-간극을 응시하며 진실을 쓰고자 하는 시인이었기에 관습, 예의, ‘선’(‘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암묵적인 도덕적 규칙)을 뛰어넘어 어떤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당대 문학, 사회 운동 내에서 요구되었던 민중을 재현해야 한다는 지식인-예술가의 책무, ‘소시민적 부르죠아의 허위 의식’을 바수어야 한다는 도덕적인 압박과 다른 방식으로 친구들에게 개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미학적인 질문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윤리적인 질문과 급진적으로 충돌시켜 만나게 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고 추측해 본다. 난폭하고 어수선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형성된 선험적 규범을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처단하는 세태에 맞서 비판-비평 정신을 살려 문학적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적과 아군으로 편 가르기가 횡행하는 가운데 문학적 우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실험을 감행한 거라고 해석해 본다.

2
평전은 인생 비평의 장르다. 평전 작가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가정사, 연애사, 서랍장에 묻어 뒀던 일기장, 내밀한 마음을 꼭꼭 눌러 쓴 편지 등 모든 기록들을 읽는다.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적 공기를 흡입하고자 역사학자가 된다. 평전 제목으로 ‘OOO과 그의 시대’가 애용되는 데에는 김윤식의 <이광수의 그의 시대>가 차지하고 있는 독보적인 위상 탓이 클 테지만(독창적인 제목을 짓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저자들이 애용하는 수법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그의 시대’라는 해석적 지평선 아래에서 공과를 따지는 평전 특성에 기인한 일이기도 하겠다. 평전 저자는 한 인물의 인생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다시 한 번’ 살아 보는 불가능한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

김윤식은 <이광수와 그의 시대> 집필을 중단할 뻔했다가 일본 유학 시절 이광수가 썼던 자료를 발굴하며 글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시간상으로 선후 관계에 있는 ‘A 이광수’와 ‘B 이광수’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했던 김윤식에게 그 자료가 ‘미싱 링크’였던 셈이다.

삶은 인과 관계로 설명되기 힘들다. 점심 메뉴로 김치찌개를 고른 이유를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것조차 버거운 게 인간이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찬 불연속적인 과정에 가깝다. 무질서하게 흩뿌려진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서사적인 형식을 부여하려는 평전 작가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인간을 모순적이고 양면적인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해하기. 눈 먼 채로 코끼리 만지듯 단편적으로 기억되고 이해(오해)되는 타인의 생을 편집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생의 조각들로 체계적으로 모아 거대하고 탄탄한 기억의 집을 짓기.

복잡하고 복합적인 인간을 가까스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단면을 선명하게 도려내 낙인찍고 처벌하는 경향이 이전보다 우세해 졌다고 느낀다. 필연적으로 벽돌책이 되기 쉬운 전기, 평전, 자서전(이하 ‘전기’로 통칭)을 읽으며 책이 점점 얇고 가벼워지고, 서사는 코드의 조합으로 환원되고 있는 현상을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벽돌책 전기는 너무 길다고 느낄 때가 많다. 중도 하차 충동이 반복해서 휘몰아친다. 대신 ‘잘 쓴’ 전기는 과장을 보태면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든다. 한 사람을 어디까지 풍부하게 깊이 있게 서술할 수 있는지 극치를 맛보고 싶어진다. 한 사람을 잘 이해하면 그 시대의 정수를 파악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찾아온다. 무엇보다 내 주변, 이 시대에서 찾기 힘들었던 긴 대화의 상대자를 찾은 것 같아 반가움이 든다. 아직까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목적으로 전기를 펼쳐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사용법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수긍했다. ‘인생 사용법’의 사용자 후기.

여담으로 일기 장르가 부흥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아니 부흥하는 신호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어 ‘자기 서사’의 희망은 유효하다고 생각 중이다. 호흡, 리듬, 매체,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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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평전, 자서전, 회고록, 일기, 편지 등 ‘자기 서사’ 장르를 좋아하고, 여성 지식인, 예술가의 자기 서사를 주제로 한 연구 논문과 인문교양서를 집필하고 있는 장영은의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를 읽었다. 그가 훗날 평전 작가를 꿈꾸고 있다는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는데 출처를 찾지 못했다.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버지니아 울프, 캐서린 맨스필드, 비타 색빌웨스트
버지니아 울프와 레너드 울프
버지니아 울프와 에설 스미스
페기 구겐하임과 주나 반스
시몬 드 보부아르, 시몬 베유, 비올레트 르뒤크
시몬 드 보부아르와 엘렌 드 보부아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코코 샤넬과 미시아 세르
다이앤 아버스와 리젯 모델
한나 아렌트와 라헬 파른하겐
한나 아렌트와 메리 매카시
아드리엔 모니에와 실비아 비치

프랑스혁명의 3대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로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 박애는 우애, 형제애로 옮겨야 본뜻에 가깝다. 공화국 시민들의 우정, 연대 의식이 남성적으로 젠더화된 개념으로 전유돼 온 서구의 역사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유럽 지성사에서 우정은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등 남성 철학자들에 의해 논의돼 왔고, 우정을 예찬하는 서사 또한 남성이 독점해 왔다. 동양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삼국지의 ‘도원결의’ 일화는 여전히 우정의 이데아로 수용되고 소비되고 있다. 장영은은 여성들의 우정에 주목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도원결의를 비롯한 비장한 영웅담으로 귀결되는 남성들의 우성 서사가 불편했다. 한날한시에 같이 죽자는 다짐은 지키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켜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정에 더욱 가깝다고 믿어 왔기에(블로거 강조) 글을 매개로 친구가 되어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쓴 박경리와 박완서 같은 여성들의 우정에 주목하게 되었다.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전자책, 프롤로그)

여성들의 우정, 그중에서도 특별히 글 쓰는 여자들이 읽기와 쓰기로 맺은 ‘문학적 우정’의 기록을 읽으며 “치열하게 읽고 쓰면서 드물고도 귀한 친구를 얻”는 상상에 푹 빠질 수 있었다. 문학적 우정은 친구의 첫 번째 독자가 되고, 친구의 글을 꼼꼼하게 읽는 식으로 나타난다.

맨스필드의 죽음은 울프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맨스필드가 소설을 발표할 때 느꼈던 긴장감과 경쟁심을 가질 수 없게 되자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맨스필드처럼 자신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정확하게 논평해 줄 동료를 또 만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같은 책, ‘맞수와 동반자’)

두 사람은 오직 읽고 쓰는 삶을 지향했다. 서로 돕고 격려하면서 꾸준히 성장하기를 원했다. 버지니아와 레너드는 함께 삶을 꾸려 가되 자신의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최선을 다했다.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연대는 나날이 견고해졌다. 서로의 첫 번째 독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집 안에서 자주 편지가 오고 갔다. 꼬박꼬박 일기도 썼다. 상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책, ‘함께 살고, 각자 쓰다’)

미드와 베네딕트는 상대방의 글을 ‘모조리’ 읽는 방식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동시에 치열하게 경쟁했다.
(같은 책, ‘친구의 삶을 친구의 언어로 쓰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최초의 독자이자 최고의 논평자 역할을 매우 성실하고도 훌륭하게 수행했다. “너의 논평은 아주 흥미로웠어.” “나는 그 논평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 등등의 표현이 담긴 편지가 자주 오고 갔다. 하지만 논평의 내용은 찬사 일색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들은 신뢰와 친분의 두터움만큼이나 날 선 비판을 유지했다. 상대방의 글을 읽은 후,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던지며 희열을 느꼈다.(같은 책, ‘친구의 삶을 친구의 언어로 쓰다’)

미드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드는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대학 시절’의 꿈을 베네딕트와 함께 평생에 걸친 공부와 글쓰기로 완벽하게 이루었다. 친구를 기억하며, 친구의 삶을, 친구의 언어로,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는 우정은 아름답다. 무척이나 숭고하다.(같은 책, ‘친구의 삶을 친구의 언어로 쓰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읽는다는 행위는 곧 독자가 저자와 친구가 된다는 의미임을 아렌트의 삶과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책에 압도당하지 않으면서 저자를 만나고 그 저자를 다시 자신의 책에 주인공으로 소환하는 읽기와 쓰기의 선순환이 아렌트의 삶에서 일어났다. 아렌트는 파른하겐과 자신의 삶을 겹쳐 읽고 다시 썼다. 아렌트가 완성한 파른하겐의 전기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여성의 삶 쓰기(life-writing)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같은 책, ‘정직한 친구들’)

이 우정이 추앙과 존경 일변도로 발현된 건 아니었다.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가 “신뢰와 친분의 두터움만큼이나 날 선 비판을 유지”했듯 우정은 건강한 긴장을 유지한 경쟁과 협력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 친밀함, 애정과 같이 우정 하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우정을 거절할 때 비로소 우정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는 ‘없음’의 우정, 교환도 증여도 아닌 우정의 낯선 면모를 보여준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비올레트 르뒤크를 “묵묵히 응원하면서도 정작 만나면 엄격하고 냉정한 말만 했”고, 미드와 베네딕트는 “재능과 지성의 격차가 현격하게 벌어지는 순간 우정이 위태로워진다”는 믿음하에 “서로에게 가장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학문적 동반자”가 되었다. 자신을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바라보며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던 베유에게 보부아르는 그녀가 남긴 윤리적 자극을 발판 삼아 자기 세계를 확장했다. 울프와 스미스의 관계도 비슷했다.

울프는 스미스의 과도한 자기 도취가 버거웠다. 스미스는 울프 특유의 쌀쌀맞은 태도에 자주 마음을 다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에게 울프의 문학 작품은 구원이었다. 자기 자신을 늘 최고라고 생각했던 스미스는 울프의 글을 읽고 나서 잠시나마 조금은 겸손해졌다.(같은 책, ‘문학과 음악의 정치적 결합’)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를 읽으며 나는 희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친구를 사귄 이후에 우정의 정원을 가꿔 나가는 데 여전히 서툴고, 자주 실패해 왔던 것 같다고 내게 우정의 또 다른 문법이 있음을 배웠다. 읽고 쓰는 이들의 세계에서 문학적 우정, 지적인 우정을 돌보고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이 책은 문학적 우정 그 자체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다. 그런 우정은 “상상만 해도 행복”할 만큼 드물고 고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4
기획회의를 하러 인문교양팀 사무실에 갔다가 양희정 부장님이 노트에 희랍어 문장을 쓰고 계시는 모습을 목격했다. 맞은편 책상에서 이한솔 대리님은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을 쌓아 놓고 밑줄을 치며 읽고 계셨다.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새롭게 읽고,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는 것으로 양희정 부장님, 박혜진 부장님, 이한솔 대리님께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같은 책, 에필로그)

5
아렌트 선생님, 우정이란 무엇인가요?

우정은 친구와의 진실한 대화(아렌트)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며 세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지적인 우정(아렌트)
정직이 우정의 전제 조건(아렌트)
우정은 공동의 세계에서 동등한 파트너가 된다는 것 즉 친구들이 함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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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 진지한 민주주의자를 위한 선언
수전 니먼 지음, 홍기빈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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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론과 정체성 정치(저자가 ‘부족주의‘로 비판하는)가 주류가 된 좌파 진영에서 (포스트 이론이 해체해 버린) 규범을 옹호하고, 계몽과 보편주의를 주장하는 책인 것 같은데...추천사 말마따나 꽤 논쟁적인 독서가 될 것 같은 예감. 미국과 다른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어떻게 읽히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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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건강과 면역의 과학 - 미생물을 생각하는 식단이 몸을 살린다
에머런 메이어 지음, 김홍표 옮김 / 궁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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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생각한다‘ 뇌-장-미생물 네트워크를 알았더라면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코기토 철학이 달라졌겠죠? 몸속에 좋은 미생물을 키우는, 아니 한 지붕(?) 아래 좋은 미생물과 이웃으로 공생해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배우고 갑니다. 번역도 너무 좋고요. 그래서 어떤 유산균을 먹으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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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 면의 대화 - 지금, 한국의 북디자이너
전가경 외 지음 / 아트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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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 있으면 배, 서 있으면 건물, 펼쳐져 있으면 새 같은, 지극히 평면적이고 상당히 입체적인 사물. 책의 형태를 만드는 북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은 ‘펼친 면의 대화‘라니! 스마트폰 표면 위를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있는 이들에게 ˝지문의 존재 이유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종이책˝이 곧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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