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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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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을 추천할 때 창비세계문학이 눈에 띠었다. 두 권 모두 미국문학이었다. 윌리엄 포크너가 미국문학의 아버지라 평하는 마크 트웨인의 <얼간이 윌슨>과 해럴드 블룸에 의해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함께 현대미국문학의 4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토마스 핀천의 <느리게 배우는 사람>. 이전 시대 작가의 장편소설과 현 시대 작가의 단편집, 나는 경로우대 차원은 아니었지만 마크 트웨인을 선호했으나 다른 평가원들에 의해 최종적으로 선택된 건 핀천이었다(친구들 사이에서 운 좋은 놈으로 통하는 필자는 후에 창비 책 읽는 당원 2기에 뽑히면서 <얼간이 윌슨>을 결국 받고 읽게 되었다). 돈 드릴로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국내 수용이 미진한 것 같긴 하지만 필립 로스의 경우 이동진 평론가의 팟캐스트에서 <에브리맨>을 다루면서 알려지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고(이언 매큐언의 <속죄>나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처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는지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파급력이 있었을 거라 예상된다), <휴먼 스테인>,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포트노이의 불평>, 가장 최근에 <미국의 목가>까지 출간되면서 중요한 책들이 (늦었지만/그래도 이게 어디야) 소개되었다. 코맥 매카시의 경우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드>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고, 특히 전자는 코엔 형제의 손을 거쳐 미국아카데미를 싹쓸이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민음사의 모던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국경 3부작이 모두 출간되었고, 민음사 패밀리세일을 이용해 책들을 책꽂이에 모셔놓는데 성공했다. 토마스 핀천의 경우 <49호 품목의 경매>을 장만해놓고 거실 인테리어로 열심히 써먹다 결국 <느리게 배우는 사람>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주워들은 얘기에 의하면 서양문학 판에서는 장편소설을 단편에 비해 더 우대한다고 한다. 문단 사회 내에서 그런 건지, 작가들이 장편에 더 자부심을 느끼는지 몰라도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앨리슨 먼로의 말을 들어보아도 장편 우세의 풍토가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수상으로 단편작가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가길 바란다고 전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 역사만 봐도 단편작가로는 최초의 수상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서양사회에서 근대소설의 탄생배경, 과정, 그 역사에서 문학의 역할 및 위상 같은 거시적 관점의 문학사적 지식이 있다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움이 부족한 이에게 도움을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요즘은 시집이나 철학서들을 주로 읽어서 그런지 시집에 비해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철학서에 비해 표면적인 지적 만족도가 낮은 장편소설에 손이 잘 가지 않았는데 단편집이라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점이 만족스러웠다. 또 체홉이나 유명한 단편작가 이외에 서양의 단편을 읽어본 적 없어서 나름 색다른 독서체험이었고, 최근 그 동안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김연수 작가의 매력에 눈을 떠, <꾿빠이 이상>을 필두로 작품을 읽던 중이여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란 공통분모로 비교해가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또 작가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처럼 시상식장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이라고 쓰면 뭔가 중립적인 표현이 아닌 것 같아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작가라는 점과 서문에서 겸손함과 솔직함이 묻어나 읽기 전부터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하지만 ‘1953년 고등학교를 최우수로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코넬 대학 공학물리학과에 입학하였다. 2학년 때 문리학부로 전과해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1959년 전과목 최우수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였다.’ 같은 이력에서 매력이 조금 감퇴되었다).


 (줄거리 요약은 출판사 서평보다 잘할 자신이 없어 부득이하게 빌리고자 한다) 소설집에 담긴 다섯편의 이야기는 소재나 배경 등이 각기 다르지만 죽음, 무기력, 권태, 획일화, 무질서, 파국, 단절감을 공통적으로 그리고 있다. 핀천의 첫 단편 이슬비는 군대라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죽음과 다를 바 없는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는 청춘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러바인은 도망치듯 군대에 들어온 인물인데, 그는 군대를 떠나려 하기보다 반복적이고 정체되어 있는 그곳에 안주하려 한다. 주인공은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인근 뉴올리언스에 파견되어 시신 인양작업을 하면서 죽음의 문제와 맞닥뜨리고 우연히 만난 여자와 의미없는 섹스를 한다. 그런 뒤 그는 휴가를 가는 대신 군대생활로 되돌아간다. 작가는 주인공의 삶을 폐쇄회로와 같은 고립적이면서 단절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슬비>를 한마디로 평한다면 내겐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소설이었다.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듯 모를 듯해 논리적 해석과 감성적 추론(상상) 사이에서 둥둥 부유하게 만드는 작품,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 몽환적인 느낌을 들게 만드는 작품, 약간의 외부충격만으로 깨질 얇은 꿈을 꾸는 기분을 들게 만드는 작품, 요즘은 이런 작품에 곧잘 마음이 유출되곤 한다.

주인공 러바인은 군에 복무 중이다.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통하지만 의자에 커다란 엉덩이를 얹혀 놓고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보통의 군인이다. 휴가에 대한 기대도 보통, 휴가취소에 대한 실망도 보통일 것 같은 그에게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사막의 배경과 폐쇄적인 군대조직이 중첩되면서 러바인의 고립감은 배가되고, 그의 일상은 건조한 공간과의 동화에 의한 마모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그는 조용히 표나지 않게 현지인처럼 되어갔으며, ‘원래 쓰던 날카로운 브롱크스 악센트는 느린 말투 속에서 무디어지고 부드러워졌다’. 그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희박한 존재. 희박한 존재감은 미지근한 피에서, 둔한 심장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권태(倦怠). 게으름과 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피로한 상태, 차라리 그 상태에 대한 예감. 이 피로는 때로 정신적으로 주체 내부를 소진시키는 불안에 의해 은폐된 채로 축적되곤 한다. 만성피로의 진원지를 찾지 못한 이는 무기력이란 진앙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이 무기력에 중독된 상태는 결국 삶 자체에 대한 게으름으로 현상된다. 불안의 원인을 알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올까? 불안이 사회구조처럼 정교하게 조직되어 있다면, 어쩌면 사회구조에 의해 정교하게 조직됐다면 문제가 되는 사회를 변혁하지 않는 이상 불안의 일상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불안이 젖줄을 대고 있는 한 지류는 죽음일 것이다. 인간이 언제라도, 선하게 살았든 악하게 살았든 상관없이 이유 없이 한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삶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꺼트리기도 한다. 러바인은 죽음의 공포를 목격하고 그 충격에 의한 반동으로 불장난을 해보지만 그 불은 오래가지 못한다. 부정에서 짜낸 의지는 순간적으로 강렬한 작용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한다. 폭력이 사람을 파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회구조에 의해 은폐된 폭력에 의해 사람들은 상처받으면서 아픈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한 시인이 말했던 대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그날을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p.s 다른 단편에 대한 감상도 적어보았지만 <이슬비>와 크게 다르지 않아 여기까지만 올리고자 한다. 언젠가 <중력의 무지개>에 대한 리뷰를 올리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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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06-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렵더군요. 일단, 글자와 글자속 내용이 따로놀아서, 읽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소설이었습니다. 읽기도 어려웠는데 쓰려니 어려웠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더군요 ㅠㅠ.

rendevous 2014-06-16 22:28   좋아요 0 | URL
제49호~ 는 그나마 대중성 있다고 하니 읽어보려고요 ㅎㅎ 저도 연역적으로 이게 이래서 이렇고~ 하는 논리적 이해는 힘들었는데 묘하게 어슴푸레하게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가 매혹적이더라고요 ^^ 그나저나 자유로운 삶은 다 읽으셨나요? 전 아직 1권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ㅜㅜ

CREBBP 2014-06-17 11:22   좋아요 0 | URL
중국 작가라, 소설 쓰는 형식이 완전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속도가 이리 더디 나가는 책도 드물더군요. 다른 소설들도 처음 부분을 통과하기가 어려운데, 이 소설은 특히나, 1/3까지가 진도 엄청 안나갔어요. 1편 거의 다 읽었는데, 일단 1편 먼저 쓰고 2편 쓰려구요.

rendevous 2014-06-18 00:17   좋아요 0 | URL
저는 1권 절반 정도밖에 못 읽었습니다 ㅜ 다 못 읽고 써야할 것 같아요 ㅜ 최근 이창래 소설가에게 관심이 생겼는데 비슷한 처지의 중국작가 작품이라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 이름만 들어본 문화대혁명이나 텐안문 사건도 소설로 먼저 만나면 나중에 딱딱한 글들을 만났을 때 당혹감과 어색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6-16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핀천, 어렵죠. ㅎㅎㅎㅎㅎ. 저는 주로 장르 소설을 읽어서리....... 중력 무지개 고가에 팔아서 화딱지나서 아직 안 사고 있는데..

rendevous 2014-06-16 22:25   좋아요 0 | URL
잔인한 가격대 ㅜㅜ 시립도서관에 신청했는데 받아줄지 미지수인 것 같습니다 ㅜㅜ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으로 만나본 적 있는 레이먼드 카버. 이동진, 김중혁 작가가 진행하는 빨간책방에서 카버의 이름을 처음으로 듣고, 카버-헤밍웨이 등 미국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손보미 작가를 통해 한 번 더 만나고, 가장 최근 빨간책방에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전문낭독을 통해 대성당이 왜 카버의 대표작이라 불리는지 알게 된 지금 이 책이 아닌 다른 책을 첫 손에 꼽지 않을 수 없다. 



1. 

한강 - 소년이 온다


 순서를 잘못 정한 것 같다. 대성당도 좋지만 이 소설이 먼저 와야 한다.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 - 신형철의 평론가의 평도 평이지만 문학동네와 창비 팟캐스트에서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던 집필과정. 치열하고 고통스러웠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끝내 도망칠 수 없었던 작가의 인내와 용기, 진실함에... 모국어로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소년이 온다를 강력추천한다. 







3 필립 로스 - 미국의 목가


 미국의 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지정한 4대 미국 작가 중 한 명인 필립 로스. 얘기는 정말 많이 들었는데 아직 접해보지 못했다. 빨간책방을 통해 '에브리맨'을 간접적으로 접해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 대가인 듯하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덕분에 토마스 핀천의 소설세계에 입문하게 됐는데, 이런 식으로 토마스 핀천 - 필립 로스 - 돈 드릴로 - 코맥 매카시(코맥 매카시는 로드로 만나본 적 있지만)와의 기분 좋은 만남을 꿈꿔본다.  














5


좋아하는 작가들과 관심 가는 작가들이 많아 읽어보고 싶다. 특히 박솔뫼 소설가! 최진영 - 박솔뫼 -한유주 - 김사과, 젊은 작가 특집으로 몰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4.


의식 - 세스 노터봄


필립과 다른 사람들로 만나본 적 있는 세스 노터봄. 사실 이 네덜란드 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아마 2010년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에서 주관한 낭독공감이란 행사에서 헤르타 뮐러를 국내외 작가 통틀어 처음 만나고 작가를 직접 만나는 데 눈을 뜨게 됐는데 마침 필립과 다른 사람들로 알게 된 작가였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 야자를 빼먹고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에 몸을 실었다. 결과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 저번에 행사가 진행됐던 교보생명 빌딩이 아닌 신사동 가로수길? 신사동인가 어쨌든 강남 쪽 동네였던 것 같은데 결국 장소를 찾지 못해 열심히 길만 헤매다 돌아왔다. 길도 못 찾으면서 쓸데없이 낙관적이여서 당담자 측 전화번호도 저장해놓지 않았고, 2G 폰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거기까지 간 게 아까워서 어떤 머리띠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거의 가장 싼 머리띠를 샀다. 2년 뒤 그 머리띠는 주인을 찾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머리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세스 노터봄은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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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6-0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분야는 그래도 서평단이 비슷한 결과를 선택하네요.
인문 쪽은 책이 방대해서 다 중구난방입니다..ㅎㅎ

rendevous 2014-06-03 13:54   좋아요 0 | URL
인문/예술/과학 따로따로 나누고, 시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고, 소설도 한국소설/외국소설 나누고... 작금의 출판계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불온한 상상을 해봅니다 ㅋㅋㅋ ㅜㅜ 소년이 온다와 미국의 목가가 될 것 같아요 ^^(그랬으면 !)

뒤팽 2014-06-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립 로스 책과 레이먼드 카버 책에서 또 고민을 했었요...같은 출판사의 책을 담지 않으려고 부던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꼭 되었으면 좋겠어요>_< 한강 작가님의 시각을 꼭 보고 싶어요.

rendevous 2014-06-16 22:50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은 사실 돈 주고 사서 읽어야 하는데... 최근에 민음사 창고세일에서 탈탈 털려버려서요 ㅜ 대신 책 선정되면 정말 열심히 읽고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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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장 중요한 20세기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철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제자들에게 의사나 기술자의 길을 권했다. 자신의 충고를 거부하고 교수가 되려하는 제자 노먼 말콤에게는 다음과 같이 경계하기도 했다. "만약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얻는 효용이 그저 어떤 심오한 논리학의 문제들 등에 관해서 어느 정도 그럴 듯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것이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너의 생각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만약 그것이 너를,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 위험한 말들을 사용하는 여느 기자들보다 더 양심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확실성, 확률, 지각 등에 관해서 잘 생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너의 인생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 진정으로 정직하게 생각하는 것, 또는 생각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가능하긴 하지만 훨씬 더 어렵다.“

 철학의 길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자칫 범인(凡人)이 잘못 발을 들여놓으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헛소리로 철학적 탐구가 끝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고독한 천재로, 세속의 성자로 철학을 한다기보다 철학을 살아낸 그였기에 그의 충고에서 허세나 소명의식이 아닌 진심을읽어낼 수 있었다. 천재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소설의 화자인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삼촌보다 더 뛰어난 천재라고 치켜세운다. 루드비히가 교향곡을 통쨰로 휘파람으로 불었다고 하는데 파울 역시 오페라공연의 성공여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오페라 광이었다. 루드비히가 어렸을 때 집안에 브람스, 클라라 슈만,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유명음악가들이 초대되기도 하고, 그의 형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걸 보면 비트겐슈타인 가문의 음악적 기질은 유전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

 

 천재적 철학자는 칸트가 천재라 부른 이들은 예술가였다. 자신을 끊임없이 뛰어넘는 초인사상을 전개했던 니체가 어린이를 찬양한 것도 예술가와 어린이의 근친성에 기인한 것일 것이다. 요즘 자주 사용되는 뇌가 섹시한파울 비트겐슈타인은 토마스의 시선에서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다. 과거 축구황제라 불렸던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무릎부상 등으로 기량이 하락한 것을 두고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논평했다. 인간의 육체가 신적 재능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어쩌면 파울의 정신병도 인간의 육체가 감당해낼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재능의 악마성의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물론 그가 작가의 진술처럼 정말 삼촌만큼의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는지(‘나는 그와 같이 예리한 관찰력과 비상한 사고력을 갖춘 사람을 예전에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p34) 확인할 방도는 없지만 사실진위 여부가 그다지 중요해보이진 않는다. 적어도 광기에 있어서는 파울이 천재적이었다는 것을, 그가 광기의 천재였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토마스는 이를 특유의 냉소적 모놀로그로 읊조린다.

 

단지 파울은, 그의 재산을 그랬듯이 사고력마저도 끊임없이 창밖으로 집어던져 버리곤 했다. 그러나 창밖으로 던져진 재산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바닥나버린 것에 반해 그의 사고력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그는 사고력을 쉴 새 없이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러면 사고력은 (동시에) 쉴 새 없이 증폭되었다. 그가 사고력을 (머리속의) 창밖으로 던지면 던질수록, 사고력은 더더욱 증가했다. 자꾸만 쉴 새 없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동싱, 머릿속에서는 (그들 머릿소의) 창밖으로 정신적 능력을 던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의 속도로 정신적 능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처음에는 미쳤다가 나중에는 광증환자로 발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들이 점점 더 많은 정신적 능력을 (그들 머릿속의)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동시에 그것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더 늘어나고, 따라서 당연히 점점 더 위협적이 되고, 종구에 가면 그들이 정신적 능력을 (그들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가 머릿속 정신적 능력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어,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정신적 능력이 꾸역꾸역 쌓이다 못해 마침내 머리가 터져 버리게 된다. 그렇게 해서 파울의 머리도 터져 버린 것이다. 정신적 능력을 (그의 머리에서) 밖으로 집어던지는 속도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니체의 머리도 터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광적인 철학자의 머리가 마침내는 터져 버린 것이다.(p34~35)

 

 이 작품이 자전소설로 알려졌는데 작품을 다 읽고 나니 토마스는 왜 굳이 파울과의 관계에 대한 기억을 소설의 소재로 삼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분명 파울은 루드비히와의 혈연적 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소설의 무대에 올린데 이견이 없지만 그와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전소설이라 해서 특별한 독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과거에 읽었던 외젠 이오네스코의 외로운 남자나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에 비해 입구를 찾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아마도 자전소설이지만 주인공의 내면보다 파울에 집중하는 관찰자 시점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옮기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는 인간을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그만큼 냉혹하게 증오했다. 그는 부자의 입장에서 부자를 보았으며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 가난한 자를 보았다. 건강한 자의 입장에서 건강한 자를, 병자의 입자에서 병자를 보았다. 그리고 미치광이의 입장에서 미치광이를 보았으며 정신착란자의 입장에서 정신착란자를 보았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다시 한 번 더, 이미 수십 년 전에 자신과 친구들이 만들어 낸 화려한 전설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장전된 리볼버 총을 손에 들고 잔뜩 흥분한 상태로 노이에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쾨세르트 보석상으로 들어간 것이다. (...)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문턱에 서서 진열대 뒤편에 서 있는 보석상 주인이자 자신의 사촌인 고트프리트에게, 어떤 특정한 진주를 내놓지 않으면 당장 총을 쏘아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다는 것이다.(...)그러자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 왕관에 박혀 있는 진주 말이다! 그가 장난을 쳤던 것이다. 그것은 파울의 마지막 장난이었다.(...)내가 땅에 묻히는 날 이백 명의 친구들이 모일 거야. 그날 자네가 내 무덤에서 연설을 해 주었으면 해, 하고 파울은 나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내가 듣기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합해서 여덟 명 혹은 아홉 명이 저부였다고 한다. 그때 나는 크레타에 머물면서 희곡을 쓰고 있었다. 그곳에서 썼던 희곡은 완성된 다음에 찢어 버렸다. 나중에 나는 사람들에게서 들었다. 그는 사촌의 보석상을 습격한 지 며칠 뒤, 내 짐작과는 달리 그가 매번 실려 갔던 곳이고 그 자신도 사실상의 고향이라고 불렀던 그 슈타인호프가 아니라, 린츠의 한 병원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빈의 중앙묘지에서, 흔히 하는 표현대로하면, 안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그의 무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p139~141)

 

 ‘오직 떠나 온 장소와 도착할 장소 사이에 있을 때만이 행복한 인간에 속하는 토마스는 이렇게 친구를 보냈다. ‘머리를 최대한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대도시가 자신에게 아둔한 맹목에 빠진 채 자연을 감상적으로 칭송하면서 그 안에서 퇴화해가게 하는 시골보다 백배나 더 나은 장소라고 말하는 토마스는 이렇게 친구를 보냈다. ‘상이란 한 사람에게 똥물을 뿌리는 행위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토마스는 이렇게 친구를 보냈다. 물론 그는 크레타 섬과 장례식장 사이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그만의 애도 방식이 아닐까 희미한 의심을 가져 본다. 슬픔의 해소를 거부함으로써, 슬픔을 생의 끝까지 유예시킴으로써 슬픔과 결부한 한 인간의 기억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겠다는 삐뚤어진 사랑이 그의 부재를 꽉 채우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그의 마음을 내 맘대로 해석하기로 한다. 불온하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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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06-1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질문하신 부분 답글 달아놓았는데(질문이 좀 어렵더군요 ㅎㅎㅎ) 윤스리님이 안읽으셨는줄 알고, 댓글이 좀 엉뚱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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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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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저자이름을 눈으로 훑어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공동묘지잖아. 실로 그랬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이름들은 적게는 수십 년 전, 많게는 수 천 년 전 죽은 이들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나무-숲 관계의 반대버전이었다. 나무 한 그루, 작가 개개인의 개별적인 작품과 약력을 봤을 때 이들은 그저 비범한 재능과 비상한 성실성으로 대단한 성취를 거둔, ‘성공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만 그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보니 이들을 한데 묶는 어떤 근원적인 에네르기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몇 천 년 전부터 내려져온 신화에서부터 가장 전위적인 언어로 쓰인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색깔(인종), 모양(외모), 장르도 제각각이었지만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물질적 근친성 때문인지 텍스트라는 기표적 통일성 때문인지 그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이들을 함께 흐르게 하는 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문학의 신같은 낭만적, 추상적 표현보다 좀 더 실재적, 구체적인 표현을 찾고 싶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책의 등뼈를 응시해본다..세상의 모든 것을 향해 줄기를 뻗으며 곧게 서 있는 뿌리의 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지금의 나로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고독


고독은 내면 깊은 곳에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하고(릴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하며(고독의 발명-폴 오스터), 그렇게 실존적 고독을 통해 고독의 실존자가 된 이들은 고독이란 근본감정 속에서 연대한다(고독의 연대-은희경). 모든 문학이 고독을 다루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문학이 고독의 자궁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만난 책들 중에 가장 섹시한 뒤태의 소유자였던 김중혁 작가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통해 간간이 들을 수 있었던 그 소설이 소설’, 정확히 말하면 이런소설이란 걸 알게 되고 약간의 고충에 시달리게 되었다. 어떻게 리뷰를 쓸 것인가. 그의 스텝은 경쾌하다. 경쾌한 상상력과 유머로 무장해 좀 더 느슨한 세상”(빨간책방에서 언급)을 지향하는 그의 소설은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에서 적었듯 37.5도의 미지근한 열정이 느껴진다. 독자를 주눅 들게 하면서 동시에 작가를 경탄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문장력이나 인간과 세상에 대한 대가적 통찰은 그의 소설의 무기가 아니다. 김천 출신 문인 3인방 김연수, 김중혁, 문태준을 놓고 각각 도서관형, 박물관형, 마을회관형이라 표현한 것처럼 김중혁의 세계는 박물관, 세상에 잡다한 존재들이 한데 모여 그들만의 독특한 온도와 분위기, 질감을 만들어내는데 그 느낌이 꼭 밴드음악과 닮았다. 보컬과 기타, 베이스, 드럼 혹은 트럼펫, 키보드 같은 악기들이 처음엔 좀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더니 투덕거리며 시간을 함께 견뎌가면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내게 볼매. 뇌쇄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으로 어필하기보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천천히 마음에 스미는 정든 친구 같은.

 

 실제로 '모든 게 음악' 음악에세이를 낸 작가이기에 밴드 이야기를 조금 꺼내봤다. 그의 부드러운 칼날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멀어져가는 휘파람 소리처럼 은은하게 유혹해오는 책의 뒤태를 살펴보자.

 

제 귀는 아주 깊은 우물입니다

당신의 비밀을 말해주세요

 

나를 둘러싼, 내가 모르는 세계로 향하는 비밀의 문

여기가 구동치 사무실이 맞습니까?”

 

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어요.

 

 뒤표지의 그림이나 전체적인 느낌의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제법 닮았다. 비밀의 은유로 그림자가 자주 쓰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빛을 받으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어둠이 내장처럼 길게 늘어진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비밀을 품고 있는 존재다. 인간에 내재한 어둠 속에 고이는 비밀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성(빛의 언어)으로 정복할 수 없게 만든다. 근원적 한계이자 일종의 안전장치라 볼 수 있다. 존재 내 이질성, 내가 아닌 나,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나, ‘라는 확고한 주체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작은 나()와의 끊임없는 불화를 통해 페소아나 이상 같은 시인들은 헤테로의 언어를 발명해냈다. 비밀이 그 자체로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문학은 비밀의 비밀을 꿰뚫고 있다. 비밀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형식 중 하나이다. 인식론의 문제나 물 자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뭔가를 아는 존재라기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에 가깝다. 광활한 우주에서 코딱지보다 한참 작은 지구에 살지만 우리는 당장 옆집에 사는 이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정보의 영역은 물론이요,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운 진실의 영역이 천 길 물속보다 알기 힘들다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러니까 70억 이상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 단지 중력의 존재로 말미암아 추측할 수 있는 암흑물질이라고 하니 그런 점에서 볼 때 어쨌든 우리는 우주의 섭리에 잘 따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비슷한 문장을 다른 탐정 이야기에서 들은 적이 있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 10기 탐정들의 진혼가에서 한 남자는 비밀은 남녀의 사랑을 돈독하게 해준다고 했다. 자신의 일부지만 그 일부로 인해 전부인 자신이 파괴될 수 있는 비밀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뜻이 될 것이다. 관계는 상대방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많아지면서 깊어지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어느 한계선을 넘어가면 비밀과 관계의 역학 그래프가 변곡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공범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살인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의 신뢰가 굳건히 유지되리라 생각하기 힘들다. 비밀에 의한 신뢰도 형성에도 브레이크 포인트, ‘알면 다치는판도라의 상자가 있는 것이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비밀,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는 자신의 모든 기록들을 딜리팅하는 직업을 가진 전직 경찰 겸 사립탐정 겸 딜리터(deleter)이다. 줄거리를 자세하게 적어 독자들의 서사를 따라가는 재미를 빼앗고 싶지 않다(고 핑계를 댄다). 비밀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들의 각축전을 작가는 노련한 솜씨로 능수능란하게 그려낸다. 그의 소설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섹스묘사도 비록 영화 속 장면이긴 하지만 있다(그것도 떼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타는 남녀 주인공의 밀당이나 조금은 엉뚱한 매력을 어필하는 조연 캐릭터의 존재가 그의 전작 장편 좀비들을 연상시켰다. 당신의 그림자의 월요일의 후배탐정과 좀비들의 뚱보가 오버랩됐다. 어떤 매너리즘에 대해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 김중혁 세계의 고유성, 그만의 느낌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다. 김중혁 월드의 입구에는 그림자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딱 귀여운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상한 포즈로.

 

 나의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정소윤이 그랬듯 나의 기억은 우리의 기억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숙명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하는 기억, 우물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자세에서(이영광 우물) 윤리를 논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지식은 체계화된 기억이다. 90%이상 소멸되는 죽음의 늪을 지나 살아남은 기억이 장기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말로, 글로, 음악으로, 영상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져 인간은 현생에서 수많은 영혼이 농축된 오래된 현재를 살고 있다.

 하지만 망각의 문제 역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선을 침해하지도, ‘일리아드‘let it be’처럼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망각될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자신의 기록을 지워 저승에서까지 이생에서 좋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을 이기적이라 지적했지만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보존돼 자연스럽게 망각, 정신적 차원에서의 죽음을 맞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기억에 대한 문제의식을 피력한 바 있다. 이는 마지막 딜리팅의 대상인 사진을 피오르드 바다에 던짐으로써 망각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인간에게 우의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기록하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기억은 하드디스크에 파일이 저장되듯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의 정보의 감각과 감성의 영역이 뒤섞인 총체적 감각에 의해 이뤄진다. 단순암기라 생각되는 작업의 경우에도 우리는 텍스트를 읽어 청각적 자료로 변환하거나 머릿속에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등 감각과 감성을 이용한다. 또한 기억할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인의 지향성에 의해 선택된기억만이 생을 이어갈 수 있다. 물론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또 달라지지만 인간이 기억과 망각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재단하는 존재라는 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구만 지키지 말고 그림자도 지켜야 할 것이다. 이승에 버려진 그림자가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물에서 허우적대는 이처럼 길을 잃지 않도록 기억(망각)의 책임이 있는 자들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생사를 결정하는 천계의 심판관처럼 무엇을 기억하고(잊고) 살 것인지, 무엇으로 기억되고(잊히고) 죽을 것인지.

 

p.s 이제야 읽는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 중 종이물고기에서 공동묘지에 대한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다. 기억이여, 당신은 언제나 태어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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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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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4권(마르셀 프루스트)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새롭게 번역됐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만난 건 고1 때로 기억하는데 독서력이 일정 수준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들었으니 결과는 (안 봐도)'비디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국일미디어 판으로 나온 이 시리즈를 7권까지 읽었다는 것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나 칸트의 순수이성/실천이상 비판 같은 책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 그땐 정말 지금보다 미련했었던 것 같다. 좋은 교육자는 정말 필요한 것이다!). 아니 읽었다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다. 봤다. 시각 정보를 책에서 머리를 운반했다. 문장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숫자 세듯 눈으로 좇았다. 때로 반 장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하마터면 한 문장으로 한 장을 다 채울 뻔한, 혹은 채우기도 하는 '신기한' 문장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내겐 특별한 독서경험이었다. 


재작년 파주 북소리축제에서 르 끌레지오가 마르셀 프루스트로 강연을 했는데, 그 이후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이런저런 강연이나 글귀에서 프루스트의 문학적 가치와 의의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워들으면서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왕이면 새롭게 번역된 책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읽고 싶어서 리스트에 살짝 올려본다. 



3. 얼간이 윌슨(마크 트웨인)


창비 세계문학 전집 31번째로 마크 트웨인의 얼간이 윌슨이 출간되었다. 마크 트웨인, 참 이름은 많이 들어봤는데 정작 톰 소여의 모험 한 권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꼭 읽을 생각인데 요즘 소설을 잘 읽지 않다 보니... 언제가 될 지 기약할 수 없는, '통일' 같은 약속인 것이다. 한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는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되었던, 지금은 단행본으로 묶여 출판된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에서 톰 소여의 모험을 한 적이 있는데 읽어준 한국작가가 다름 아닌 박민규 작가였다. 나는 이 연재를 꼬박꼬박 챙겨봤는데 그 이유는 한 줄 백일장을 통해 당선된 이에게 책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가면의 고백, 톰 소여의 모험, 수레바퀴 아래서, 총 세 번 당선된 걸로 기억한다. 그때 박민규 작가가 내 덧글에 덧글을 달아줘서 꽤 기분이 좋았는데 창비 홈페이지에서 피터, 폴 앤 매리 연재글을 보니 매 덧글마다 덧글을 달아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그때의 기쁨이 조금 퇴색된 감이 없지 않다. 어쩄든 문학동네에서 덧글을 달아준 박민규 작가의 아이디는 killboy였고, 마크 트웨인의 얼간이 윌슨은 'killboy' 못지 않게 섹시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리틀 드러머 걸(존 르 까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같은 작품으로 친숙한 스파이소설의 대가 존 르 까레의 작품이다. 잘 몰라서 이하 생략.(근데 읽고 싶은... )





5. 느리게 배우는 사람(토마스 핀천) 


해럴드 블룸이란 미국평론가에 의해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더불어 현존하는 미국의 4대 작가로 꼽히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기수 토마스 핀천의 작품이다.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샀는데 아직 못 읽어봤다... 느리게 배우는 사람과 함께 읽어야 겠다는, 통일 같은 약속을 다시금 해본다. 어쨌든 언젠가 이뤄질 약속이니까. 죽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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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5-01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갈이와 리틀드러머 읽고 싶네요. 카레.. 이 양반 확실히 매력덩어리입니다.
그보다는 마크 트웨인 할아버지가 한수 위죠... ㅎㅎㅎㅎㅎ
이 할아버지 정말 좋습니다.

rendevous 2014-05-01 12:54   좋아요 0 | URL
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제목이 쥑여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