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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내 몫의 표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





1.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 천명관


'프랭크와 나'로 등단해 이듬해 '고래'라는 메가소설로 한국문단을 휩쓸었다는 전설의 소유자 천명관을 읽은 건 작년 여름이었다. 재작년에 유쾌한 하녀 마리사 연극을 대학로에서 봤기 때문에 바르트 식으로 말하면 천명관이란 텍스트를 읽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겠지만 꼬질꼬질한 종이를 한 장씩 넘겨가면서, 손 끝에 전달되는 종이의 질감- 이전에 그 책을 서로 다른 흥분과 감정으로 넘겼을 독자들의 지문과 시간성이 축적된 지도-과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소리, 리듬을 느끼면서 읽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아니라 이 고래가 첫 경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비문학,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변사'에 가까운 입담을 느껴보지 않고 천명관을 읽었다고 말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 될 것이기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최근에 본 소설/소설집 제목 중에 최고인 듯하다 ^^ 

(박민규 소설가의 신작도 하루빨리 신간추천리스트에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ㅜㅜ) 
















2. 필립 로스 -유령퇴장 


미국의 목가로 그의 필력을 맛볼 수 있었다.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 필립 로스. 


 













3. 토마스 베른하르트 - 옛 거장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로 만나본 적 있는 베른하르트. 다양한 작가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 작가의 세계로 더 깊게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고 있는 요즘.. 베른하르트... 황병승 시인이 애정하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좋아하고 싶어진 작가 ㅎㅎ 














4. 안나 제거스 - 통과비자



반파시즘 망명문학. 꽤 만만치 않은 독서가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읽어보고 싶은 작품. 루마니아 출신의 동독 작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와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 등을 읽었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풍부한 콘텍스트와 함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창비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작가 중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아서 반갑다 ^^ 
















5. 필립 로스 - 굿바이 콜럼버스 


필립 로스 독파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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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2014-09-01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씀이 아주 결연합니다. ㅎㅎ독파해봅시다....후후
옛 거장들, 고민하다가 넣지 않았는데 흐흠 읽고보니 궁금하네요.
되도록 다양한 작가의 것을 읽자 싶어서요. 흐이짜, 칠면조 응원합니다!

rendevous 2014-09-01 18:04   좋아요 0 | URL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에 밀란 쿤데라 글에서 본 '자기만의 소설사'란 표현을 보고 저도 몇몇 작가를 독파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작가로는 박상륭, 최수철, 정영문/ 외국 작가로는 밀란 쿤데라, 필립 로스,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 보르헤스... 한 작가 전집을 소장하고, 독파하면 약간 부동산 사놓은 것 같은?!(실제로 그러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지만요 ㅎㅎ) 기분이 약간 들더라고요 ㅎㅎ 신형철 평론가가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밀란 쿤데라 전집' 출간을 놓고 (무의미의 축제 신간이 나오긴 했지만) 도망갈 수 없는 상대를 정복하는 쾌감에 대해 얘기했는데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어요 ㅎㅎ 문자 그대로 산을 오르고 정상을 찍는 - 정복이란 표현은 오만이지만 -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봄밤 2014-09-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부분 기억납니다ㅎㅎ왠지모를 공감에 대해서도 공감해요ㅎ맞아요 전작주의는 당연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동산이라니, 깨알같습니다ㅎ 넓게 읽는 것에 대해서는 다만 신간평가단의 활동에 한정한 말씀으로 살펴주시기를요ㅎㅁㅎ!
말씀해주신 국내외 작가들 담아갑니다. 참 저번에 페루애님 서재에서 어깨너머로 추천 들었던 예외들(맞는가요)샀어요! 밀도 높은 문장이라 무척 기대됩니다

rendevous 2014-09-01 18:19   좋아요 0 | URL
앗 예외들 보단 얼굴 없는 노래 를 추천했었는데 ㅜ 예외들 분량에 비해 가격이 좀 비싸거든요 ㅜ 이상 관심 있으시면 '시는 아무 것도 모른다' ,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도 추천드립니다 ^^ 맞아요~ 신간평가단은 아무래도 다양한 맛을 보기에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ㅎㅎ 다만 제가 무분별한 책 구매로 인해... 책 쇼핑을 끊어서 ㅜㅜ 시립도서관 도서신청란에 자주 들낙날락거리고 있습니다 ㅎㅎ(그런데 예산이 모자라서 적당히 신청하라는 압박이... 미술/사진/그래픽노블은 신청도 잘 안 받아주고요 ㅜ)

봄밤 2014-09-0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얼굴 없는 노래였군요! 아아 그러나 저는 창비 세일로 샀습니다 과연 이만원은 조금 비싼 감도 있습니다ㅜ시는 아무것도 모른다 제목이 정말 끝내주네요. 이상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것 같습니다. 책 구매는 언제나 무분별해지는 곳 같아요ㅠ얼마나 많이 신청하시면 그런 압박이 오나요ㅋㅋ으항 그나저나 그 도서관은 윤스리님으로 복되겄습니다아@ㅁ@

rendevous 2014-09-01 18:31   좋아요 0 | URL
인문까페 창비 이용하셨나요? 가고 싶었지만 ㅜㅜ 여기서 약간 고급(?) 정보 공유해드리면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의 경우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1년에 한 번씩 이장파티를 엽니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로 연기됐다가 무산되는 분위기인데 원래 봄 즈음에 하거든요. 저는 여기서 반값으로 세계문학전집 두 번 샀어요 ㅎㅎ 뭐 요즘은... 출간된 지 몇 년만 지나면 4~50%로 금방 떨어지니 자랑할 것도 안 되지만요 ㅜ 그리고 민음사 창고세일에서 '민음사 북클럽' 회원 자격으로 70% 할인 받았습니다~ 여기서 밀란 쿤데라 전집, 현대 사상의 모험 시리즈 장만하고,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등등 충동구매하는 바람에 빈털털이된 것이었던 것입니다 ㅜ

봄밤 2014-09-01 19:14   좋아요 0 | URL
으앗!!..윤스리님 저는 이 할인판매 만큼에서 '우리'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런 고급정보를 이렇게 오픈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디서 어떻게 박스를 끌며 만났을지 모르겠네요. ㅋㅋ으힝 현대 사상의 모험 시리즈 저 또한 장만했습니다 ㅎㅎ하지만 전집은 끝내 구하지 않았다는! 가슴을 쓸어내릴 소식 전합니다. 소설에 대한 욕심이 없는지, 그것을 채우기엔 책장이 없던 모양인지 저는 주로 시집을 샀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문동에선 전집을 두 번이나 사셨다니, 그렇다면 꼼마에는 수시로 오시겠군요! '우리', 모르는 사이에 몇번은 만났겠습니다.

rendevous 2014-09-01 19:19   좋아요 0 | URL
꼼마는 르 끌레지오 옹 보러 갈 때 딱 한 번 갔어요 ㅎㅎ 시집은 문지 시집 빠돌이라 ㅜㅜ 홍대 와우북 할 때 왕창 사놓고 요로코롬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

문득 마주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낭독 행사나 재밌는 일 생기면 정보 공유하자구요~~ 저는 이번 서울국제작가축제 열심히 다니려고요 ㅎㅎ

봄밤 2014-09-0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그렇군요+_+ 정보공유 좋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라니!! 정말 축제같은 기분이 들어요. 홍대 와우북, 기다려집니다. ㅎㅎ이번에 가면 시집을 사고, 윤스리님도 불현듯 뵈었으면, 해요. 시집 추천 그 무렵에 여쭐게요!

비의딸 2014-09-0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하게도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에 꽂히네요. 천명관과 필립 로스 응원합니다. 로스의 책은 '유령 퇴장'보다는 '굿바이 콜럼버스'로 간택되길.. '유령 퇴장'은 이미 질러버렸거든요!
이렇거나 저렇거나 개인적으로 나는 하루키 책을 읽기에는 가을날이 너무 아까운데...

rendevous 2014-09-02 13:45   좋아요 0 | URL
저는 무의미의 축제 두 권입니다 ㅜ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굿바이 콜럼버스가 처녀작이니(근데 굿바이네요...) 굿바이에 저도 한 표~ (굿바이 레닌 이란 영화도 문득 생각납니다 ㅎㅎ)

CREBBP 2014-09-04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요. 봄밤님도 여기서 뵙는군요. 차남들의 세계사 대신 뭘 추천할까 순례왔는데. 전작주의라는 말을 들으니 이왕 세권이나 읽은 필립로스로 골라서 깊게 들어가볼까 생각중이네요.

rendevous 2014-09-04 16:19   좋아요 0 | URL
필립 로스는 문학동네에서 계속 출판 - 아마도 정영목 번역가가 도맡아서 할 것 같아서 도전하시면 남는 장사?일 것 같아요 ^^ 저는 최근에 시집 많이 읽어서 그런지 호흡이 짧아져서 2권 짜리 소설 읽기가 예전보다 힘들어졌습니다 ㅜ 그런데 역설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에 도전하고픈 마음도 불현듯 생기고 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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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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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이유 없이 좋아하게 된 말. 불어의 음악성을 닮은 음악적인 세 음절. 불.란.서. 험버트 험버트에게 롤리타가 있었다면 나에겐 불란서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불란서는 그 이름만으로 좋아하기에 충분했다. 찰스가 아니라 샤를이라서, 처음 들었을 때 한국 성씨로 착각할 수 있는 '장'이 있어서(미국에도 kim이나 lee는 많지만), 'r'발음이 특이해서... 가끔 이유 없이 좋은 것 앞에서는 무의식이나 정신분석과 관련된 생각들을 접고 사근사근 피어나는 상냥함을 음미하고 싶어진다. 주머니 속에 구겨진 종이를 펴 운명이란 단어를 찬찬히 쓰다듬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르 끌레지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어쩌다 운 좋게 파주북소리축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문학사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손 꼽히는 르 끌레지오의 강연이라 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크게 화제가 된 <황금물고기>도 좋았기 때문에 빗발을 뚫고 파주 출판단지로 거침없이 향했다. 르 끌레지오는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강연을 했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내용은 별로 없었지만 크게 두 가지 정도가 기억에 난다. 하나는 의미를 해석하려 들지 말고 텍스트가 내 안에 흐르게 둘 것, 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어떤 여유의 태도에 대해 말한 건 맞다. 다른 한 가지는 다섯 명 정도 되는 질문자들의 질문이었는데 한 분은 출판사에서 근무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주셔서 놀란 동시에 부러웠고, 한 분은 불문학 전공이었는데 문학의 현실참여에 대해 질문했고, 나 또한 '문학이란~'으로 운을 떼는 비장한 질문으로 르 끌레지오에게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은 완전히 쓸모 없는 것' 대답을 이끌어내 스스로 절망감의 나락에 떨어졌다. 문학무용론에 대한 김현 평론가의 말이나 다른 무엇이 할 수 없는 예술만의 고유한 영역에 대해 알았더라면 괜히 자기가 왜 혼나는지도 모르고 벌 받는 아이처럼 끙끙 앓을 필요 없었을 텐데 어렸기 때문에 가능한 해프닝이었던 것 같다. 앞에서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질문자 덕분에 '봉~쥬르' 한 마디만 하고 불어를 못한다는 고백을 하면 웃음이 유발될 것이란계산이 적중한 덕분에 기분이 좋았던 기억도 난다. 그때 웃어주신 분들, 감사해요 ^^ 

 

 운 좋게도 불문학 전공자 분이 강의가 끝나고 카페에 남아주신 덕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전공 시간에 누구의 텍스트를 읽냐는 질문이었는지, 작가 혹은 프랑스 작가 중에 누굴 좋아하냐는 질문이었는지 헷갈리는데 그때 '모파상'이란 이름이 나왔던 건 확실하다. 모파상. 거의 2여 년 만에 귀환한 이름. 이제 그 편지에 답장할 수 없지만 편지를 받았으니 읽을 수 밖에. 미황사 청년출가학교에 가 있는 동안 책 추천이 이뤄져서 신간추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확인할 수 없었는데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과 모파상 단편집을 받았을지 쾌재를 불렀다. 두 작가 모두 이름과 호평은 익히 들어 익숙했지만 실제로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파상의 경우 오 헨리와 더불어 단편소설의 귀재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했다. 


 모파상을 읽기 전에 기억이 났던 건 독일 문학과 프랑스 문학 간의 거친 비교. 프랑스 문학이 상대적으로 가볍다면, 독일 문학은 무겁고 삶과 죽음, 형이상학적 문제(독일 문학의 고전 중 하나가 '파우스트'인 것만 봐도...)에 대한 사유가 깊다는 것.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불문학사나 불문학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던 중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나오셔서 프랑스 문학이나 철학이 '현장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해주셨다. 독일 철학의 대표 기수로 꼽히는 칸트, 헤겔, 피히테, 셸링,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들이 세계 전체와 우주만물을 설명하려 했다면 프랑스 철학은 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동시대적 문제에 천착하는데 주력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래서 생각난 철학자 에밀 시오랑. 루마니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프랑스 정신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는 시오랑은 <독설의 팡세>에서 이렇게 적었다. 


일부 민족들의 심각한 기질을 안부인 기질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의 미래는 그 문제에 달려 있다. 만일 독일인들이 다시 예전처럼 일하기 시작한다면, 만일 러시아인들이 게으름에 대한 그들의 오래된 애정을 되찾지 못한다면 서양은 곧 파멸하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무위안일, 무관심, 낮잠의 취미를 개발해야 하고, 모두를 무기력과 변덕의 즐거움으로 빛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프로이센이나 시베리아가 우리의 도락주의에 강요하는 해결책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헤겔이 독일의 재앙이었듯(강조는 윤스리), 루소는 프랑스의 재앙이었다. 체계에도 정신병에도 무관심했던 영국은 하찮은 것들을 가지고 엮어왔다. 그들의 철학은 감각의 가치를 주장했고, 그들의 정치는 흥정의 가치를 주장했다. 경험론은 대륙의 졸작에 대한 그들 나름의 대답이었고, 의회주의는 유토피아, 병적 영웅주의에 대한 그들 나름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한가한 사람들, 즉 사교를 즐기는 사람들, 무사태평한 족속들, 말로 먹고사는 모든 인간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세련된 태도의 모태는 대화이다. 거기에 무감각했던 독일인들은 형이상학에 파묻혀버렸지만, 프랑스인과 고대 그리스인처럼 수다스러운 백성들은 정신적 우아함에 단련되어 사소한 일들에 탁월한 기술을 발휘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말이 '정말' 많다고 하는 프랑스 남자들. 형이상학에 파묻혀버린 독일인과 수다스러운 프랑스인. 분명히 두 나라 간 사회문화적 배경에 상이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유가 깊기 때문에 독일문학이 프랑스문학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헤겔의 역사론을 연상하게 만든다. 어떤 목적(의미)을 상정하고, 그 목적에 따라 과정이 종속되는 모양. 이는 이데올로기의 부정적 면과 거의 딱 들어맞는다. 최근 밀란 쿤데라의 신간이 출간됐는데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무의미의 축제>. 위의 문학무용론과 대조시켜 보면 재밌는 방식으로 공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해설에서 김현 평론가가 발레리가 음악적 시세계를 추구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도르노가 예술의 최고의 단계? 형식?을 음악이라 했던 말과 부딪치면서 시와 음악, 문학과 소설, '예술'이란... 대책없는 질문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밀란 쿤데라, 파스칼 키냐르, 아도르노, 파울 클레... 등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화음' 속에서 자란 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김정환 선생님은... 괴물이시니까 ㅜㅜ) 


 플로베르였는지 다른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모파상에게 거리를 하루종일 쳐다보라고 시켰다고 한다. 모파상은 그게 그거인 것 같다고 특별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선배 작가가 그건 네가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줬다고 한다. 관찰력. 편린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해내는 능력. 모파상의 단편들을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몇몇 작품들만 읽어도 뛰어난 관찰력을 갖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소설들은 당대의 사회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고, 무엇보다 그때 당시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어 미시사회학의 자료로, 사회학자들의 필수자료로 사용되곤 한다고 하는데 이 작가도 그 목록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군중. 이야기가 없는 사람의 덩어리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것. 역사란 거대한 흐름 속에 기록되지 못한 하찮고 자잘하고 '수다스러운', 하지만 역사가 담아내지 못하는 어떤 진실을 담지하고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소설을 나는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현대문학의 세계문학 단편선 작가가 다 매력적이어서 다 읽어보고 싶다.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토마스 만, 데이먼 러니언, 대실 해밋, 허버트 조지 웰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오 헨리, 대프니 듀 모리에... 아이맥스 영화 한 편 볼 돈으로... 라고 하면 영화팬 입장에서는 조금 치사한 교환등식으로 비칠 지도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도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




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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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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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블로그에 쓴 글을 가져왔습니다 http://blog.naver.com/yadohy6407/220086859328)


최근 본 책들의 표지에서 유독 한 작가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문학과지성사 2008.10.01

 

 

 



김연수 소설가의 <밤은 노래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 배수아 옮김

필로소픽 2014.03.24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피라미드

윌리엄 골딩 | 안지현 옮김

민음사 2013.10.04

 

 

 



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 

 

의식

세스 노터봄 | 김영중 옮김

민음사 2014.05.09

 

 

 



세스 노터봄의 <의식>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 김춘미 옮김

민음사 2004.05.15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왜 에곤 쉴레일까? 쉴레의 그림이 책 판매에 도움이 줄 거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해골바가지에 피부를 덧씌운 것 같은... 그림의 첫 느낌은 <불쾌>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미술책이나 평소에 접했던 그림과 많이 다른데 그 차이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그림들이, 또 '명화'라고 불리는 과거에 그려졌던 그림들이 대상을 '아름답게' -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대상 이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힘썼다면(앵그르의 <오달리스크>의 여인의 허리가 길게 그려진 것처럼) 쉴레의 그림은 이런 표현이 적절할 지 모르겠지만 '위추'(일부러 추하게)적으로 보일 만큼 대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사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리얼리즘과는 다른 지향성이 쉴레의 그림에서 풍겨지는 독보적인 아우라를 형성한다. <밤은 노래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피라미드>의 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이거...'하고 쉴레의 그림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독보적 아우라 때문이었다. 치명적 불온함, 포르노그래피의 적나라함과는 다른, 그렇다고 에로티즘의 언어로 해석하기도 애매한... 뼈와 살거죽! 

그의 그림을 보면 <소외>와 <고독>이란 키워드가 떠오른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건에 의해 '벌거벗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쓰곤 한다. 벌거벗겨짐. 상대방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맹목적 공격성과 이에 대응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의 자신, 숨막힐 정도의 부끄러움/수치심 앞에서 우리는 쥐구멍을 찾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할 지도 모른다. '나는 나로부터 절대 도망갈 수 없구나' 아무리 자유로운 정신이라도 육체를 벗어날 수 없다. 글이나 음악, 미술 등에 정신을 옮겨놓거나 이식할 순 있지만 살아 있고 운동하는 정신은 인공지능을 제외하곤 육체를 토대로, 전제로 존재한다. 니체는 심신이원론,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 사유하게 만든 소크라테스와 기독교를 거침 없이 비판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 선언(서양정신사와 대결하고자 한 니체의 출사표라 볼 수 있다) 이후 유물론의 물결을 거쳐 다시 '신성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지구 반대편으로 하루나 이틀이면 갈 수 있고 이메일과 SNS 등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역설적으로 현대인이 호소하고 있는 감정은 '외로움'이다(SNS에 전시된 외로움을 보라!)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신의 '유동하는 근대'라는 사유 아래 현대사회는 '과잉'연결되어 있다고 분석, 지적하면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고독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인권을 말하면서 <자기만의 방>의 필요성을 역설했듯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고 살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의 카카오톡도 경박한 토크쇼의 웃음소리BGM도 침략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토를 확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불교가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선 수행, 명상 + 자연 ... (+차담) 청년출가학교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 중 하나가 '명상'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미황사의 <참사랑의 향기> 프로그램도 참여해보고 싶다 ^^

 민음사의 밀란 쿤데라 전집과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들을 보면 '커플'을 확인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 - 르네 마그리트, 도스토예프스키, 에드바르트 뭉크. 장르는 다르지만 영혼으로 통하고 공명하는 영혼의 단짝(들). 에곤 쉴레의 영혼의 단짝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 나는 프란츠 카프카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카프카와 쉴레. 살과 살이 아닌 뼈와 뼈를 맞대고 사랑할 것 같은 커플. 고독의 실존의 발명자들.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과 <소송>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한 번 쉴레의 자화상을 멍하니 쳐다보길... 뭔가가 벗겨지고 처음엔 불편함과 불쾌함에 시달릴 지도 모르지만 이내 자유로움을 느낄 지도 모른다. 나같지 않은 나와의 어색한 조우. 잘 지냈지? 어색한 관계 사이에 인사법이다.  


...


 한 권이 추가됐다. 성석제의 투명인간. 고등학교 다닐 때 문제 푸는 걸 싫어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작품들을 포함한 한국문학을 알게 모르게 멀리 했다. 작가 성석제를 처음 알게 된 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였던 것 같다. '신은 죽었다'는 문장을 직접 읽어보기 위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고(읽었다기보다) 있었기 때문에 성석제 작가가 니체를 패러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기회에 고등학생들에게 두 가지만 말해주고 싶다. 1 고등학교에서 추천하는 추천책/필독서를 필히 읽지 말 것. 단테의 신곡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칼 마르크스 자본론 1,2... 나는 내 지적능력이 또래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권장'/'필독'도서를 꾸역꾸역 읽어야 했다. 그 결과 그 시간 동안 읽을 수 있었을 수많은 책들을 읽지 못하고 내 머릿 속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의미'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이 그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평균 500페이지가 넘는 무의미와 씨름해야 했던 불임의 독서의 후유증...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고, 좀 더 어려운 책을 읽고 싶으면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요즘엔 아트엔스터디, 다중지성의 정원, 수유너머, 시민행성 등 이용할 수 있는 질 좋은 인문학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일정 수준의 경제력만 뒷받침된다면 혼자 헤매는 시간을 줄이면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안광복 선생님 같은 분을 보니까 좋은 고등학교엔 '철학'교사가 있는 것 같던데 뭐, 대한민국도 언젠가 프랑스처럼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 가면 프랑스도 지금과 많이 달라지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서론이 길었다. 에곤 쉴레에 대한 다른 글까지 끌어오면서 서론을 길게 '끈' 이유에 대해 고백하고자 한다. 그 동안 독후감은 대부분 책을 읽자마자 썼다. 세세한 줄거리까지 모두 기억나는 것은 책에서 마음으로 스며든 감정이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에 머리와 손이 달아올랐다. 한 번 쓰기 시작하면 A4 두 장 정도 분량은 거뜬히 채울 수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배출에 제동을 걸고, 양보다 질을 추구해보잔 생각에 공백을 만들었다. 망각에 휩쓸리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을 선명하고 세세하게 복원해보자는 마음으로 알라딘 리뷰들을 써보았다. 결과는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공백기간을 말 그대로 비워두었다면 또 달라겠지만 그 시간 동안 다른 책을 읽고, 배우고 하는 '채움'의 시간을 거치면서 침전된 마음에서 순수한 결정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뜸'을 들이게 된 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이 컸다. 아마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인용한 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루키는 여행기를 여행지에서 쓰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지에서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돌아온 다음에 쓴다고 한다. 시간성을 획득한 기억, 마음의 결에 따른 자연스럽게 걸러지고 남은 것들에 대해 말하기. 접근방향은 좋았으나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결정적으로 잠에서 깬 직후 '따끈따끈'한 상태로 글쓰기를 즐겼다는 마르케스의 말을 듣고, 독후감 쓰기를 즐기기 위해 차분함보다 따근함/뜨듯함을 즐기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 쉬운 사람


 에곤 쉴레의 그림이 있는 표지와 제목을 보았을 때 예상한 내용은 카프카적 소외였다. 이를 테면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인간이 사회의 코드에 읽히지 않아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한다는... 뻔한 생각. 투명인간을 읽고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소설은 성석제만이 쓸 수 있다. 성석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스타일이나 장점에 대해 '곰곰생각하는발'님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키워드는 이랬다. 시골, 입말, 이야기꾼. 가독성이 뛰어났고, 묘사하는 대상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는 문장들의 달리기에서 가끔 냇물 바닥의 조약돌의 매끈매끈한 질감이나 반짝이는 윤슬(오호 내가 좋아하는 단어 ><) 같은 것이 느껴져서 지루하지 않았다. 


 만수. 만수를 한 마디로 정의내리자면 이랬다. 착한 사람. 혹은 바보. 내 아버지 세대 정도가 쓴 글에서 '착한 바보'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걸 종종 볼 수 있었다. 응답하라. 그 많던 착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 가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다. 착한 사람들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조금 손해보더라도 착하게 사는 것을 선택한 바보들은 만수처럼 파산당했다. 생존경쟁이 흔해진 말이 보여주듯 약간의 손해가 아닌 생존 그 자체를 놓고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만수들은 온정주의에 빠져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퇴행적 존재로 자연도태되었다. 투명인간, 그것은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다른 이름이었다. 죽여도 처벌당하지 않고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벌거벗은 생명. 투명인간은 자본주의의 만신전에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잉여적 존재이며, 죽여도 처벌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2009년 투명인간들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수도가 되려는 꿈의 이미지로 가득 찬 서울의 한 복판에서 다섯 명이 경찰 공권력의 투입에 의해 죽었고, 그들의 장례식은 치뤄지지 않은 채 300일 넘게 순천의 냉동고에 보관되었다.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 정체성의 승인을 요구해야 했던 절규의 건너편에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을 나누는 정치/법 권력의 서슬 퍼런 기준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인간보다 '시민'이란 개념에 좀 더 가깝지만 무자비한 폭력 앞에 스스로 '인간'임을 말하고,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 하는 상황은 '뼈와 살'이 인간의 충분조건이 더 이사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뼈와 살 위에 어떤 사회적, 문화적 코드를 덧입어야 인간으로 해독되는 상황은 현대사회를 수용소라 설명한 아감벤의 규정이 대한민국의 입시체제를 설명하는 은유로서가 아니라 삶 전반에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네이버가 민음사가 후원하는 <열린연단> 첫 번째 강좌에서 인문학자 김우창은 이런 말을 남겼다.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가 돼야 한다. 착하게 살기 위해 예수나 부처, 루터 급의 결단이 필요한 사회는 지속되기 힘들다.


 조금 모자라도 이 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고 웃음을 주고 빛이 되는 만수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 그런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시란 생각에 김종삼의 시 한 편을 남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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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4-08-2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쉴레의 표지, 제가 가진 책은 알라딘에서 받은 두 개인데, 다른 것들도 갖고 싶군요. 말씀하신 그 아우라 말에요. 작품성을 보증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암튼

rendevous 2014-08-21 18:14   좋아요 0 | URL
쉴레 그림 표지 책들을 일렬로 쭉 줄세워 놓으면 뭔가... 재밌는 광경이 펼쳐질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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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름


덥다


글도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에어콘 24도 정도의 쾌적한 영화관에서 영화보고 싶다

(17도나 18도는 조금 야만적인 온도 같고) 

















1. 스티븐 킹 - 닥터 슬립 


스티븐 킹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다. 이번 기회에 읽어보고 싶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재밌게 봐서 그 다음 이야기 궁금하기도 하고, 책 한 권 다 읽고 다음 책 고를 때 짧은 책에 손이 더 간다. 2권 짜리는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이후로 안 읽다 신간평가단 덕분에 하진의 자유로운 삶과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2권이나 읽었다. 맞다. 신간평가단 덕 좀 보려는 거다. 


 


















2. 귀스타프 플로베르 - 감정 교육 


요즘 밀란 쿤데라 전집을 읽고 있었다(투명인간 도착 이후 중단) 밀란 쿤데라, 르네 지라르 등 프랑스 문학계의 거장들이 하도 플로베르 플로베르 하니까 이참에 읽어보고자 한다. 

p.s 밀란 쿤데라를 보니 나만의 소설사 만드는 것 + 자신이 젖줄을 대고 있는 문학사를 꿰는 것 - 문학사조의 흐름 속에서 사조에서 사조로 어떻게 넘어가고, 각각의 신 세대가 기성세대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생각해보는 독서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대 발군의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 세계시민 - 세계문학 읽기 - '지도' 그려나가며 읽기!


 















3. 레이먼드 카버 - 대성당


저번에 추천한 적 있지만 아쉽게 단성되지 못한 작품. 그런데 양장으로 이렇게 나와 주면서 재도전의 기회가 생겼다. 

















4. 토니 모리슨 - 자비


노벨문학상 출신 작가 토니 모리슨의 <자비>. 빌러비드 밖에 못 읽어봤지만 그렇게 취향에 맞는 작품은 아니었다. 자비는 어떨지 호기심이 생겨서 추천해본다. 
















5. 2014 김유정문학상 - 이장욱 외 다수 


시, 소설, 평론, 러시아문학연구... 문단의 괴물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시집에 비해 소설은 못 읽어봐서 이번 기회에 단편이지만 읽어보고 싶어서 추천해본다. 2011년 젊은작가수상집 때 기묘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단편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장욱 월드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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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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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패밀리세일 덕으로 밀란 쿤데라 전집의 일부를 소장하게 되었다. 우스운 사랑, 생은 다른 곳에, 소설의 기술을 제외하곤 이미 소장하고 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농담-까지 합쳐 4/5 밀란 쿤데라 전집을 갖게 된 것이다. 당장 읽어야 할 책도 다 읽었고, 지금 당장 천착하고 있는 주제나 관심이 사라져서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을 살펴 보던 중 문득 전집을 독파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다. 세계문학전집은 계속 출간되고 있고, 민음사의 경우 300권을 돌파하고 있기에 잘못 건들면 다치는(?) 상황이지만 15권의 밀란 쿤데라 전집, 확실한 동기부여와 고지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성취감으로 가득 찬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쿤데라가 세르반테스-발자크-프루스트-카프카-곰브로비치의 자신만의 소설사를 갖고 있듯 한 작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보고 싶다는 욕구와 예의 가벼움/무거움의 문제, 에세이를 소설미학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도입한 작품세계의 독창성 등이 미학적으로 윤리적인 소설에 대한 고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가장 얇은 <느림>부터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만남>이란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필립 로스에 대한 글이 있어 집중해서 읽었다. 


가속되는 역사 속의 사랑. 필립 로스, <욕망의 교수> 


글의 일부를 옮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소설은 점차적으로 그리고 관련된 모든 차원에서 성을 발견한다. 미국에서 소설은 도덕의 전복을 예고하고 동반하는데, 이 전복은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1950년대만 해도 인정사정없는 청교도주의 안에서 답답해했는데, 그 후 단 십 년 만에 모든 것이 바뀐다. 가벼운 첫사랑과 성행위 사이의 방대한 공간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감상적인 무인 완충지대는 이제 섹스로부터 인간을 보호하지 못한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냉혹하게 섹스와 대면하고 있다. 

 (...)필립 로스에게 있어서 성적 자유는 확실하고 집합적이며 평범하고 불가피하며 코드화된 하나의 주어진 상황에 불과하다. 그것은 극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서정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한계에 다다른다. 이보다 '더 이상'은 없다. 욕망에 반대되는 것은 더 이상 법이나 부모나 인습이 아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으며, 유일한 적은 정체가 드러나고 환상이 깨져 버린 우리 자신의 벗은 몸이다. 필립 로스는 미국적 에로티시즘에 간한 위대한 역사가이다. 아울러 그는 버림받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마주할 때 느끼는 이 기이한 고독을 노래한 시인이기도 하다.(p45~46)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에브리맨>을 접했을 때 받은 필립 로스에 대한 인상은 '어른'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인생 - 그러니까 소설을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와 씨름하는 소설가, 인생의 스승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인생 앞에서 한없이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는 '진실한' 인간. 폴란드계 유대인 미국 작가. 문호는 모르겠지만 거장이란 칭호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붙일 수 있는 작가.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통해 읽은 6권의 소설 중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성찰적인 작품(정서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소년이 온다>?!)  


 <미국의 목가>를 읽으면서 떠올랐던 작품이 있다. 아니 떠오른 정도가 2중주 수준으로 <미국의 목가> 텍스트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하게 만든 텍스트.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예술가와 시민> 부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미국의 목가>가 특정 설정이 <토니오 크뢰거>에서 토니오가 예술가의 입장에서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예술가만의 비애와 고통에 대해 설명하면서 타자화된 시민의 자기변호 및 반론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올바른 미남과 아름답고 목가적인 미녀, 이들은 <토니오>의 머릿속에서 고뇌 없이, 그늘 없이 양지에서 즐거움을 탐닉하는 장밋빛 인생을 누릴 '승자'로 그려졌지만 <미국의 목가>는 이 건강한 시민의 철저한 전락과 가문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그 몰락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가. 


 스위드. 리뷰를 쓰기 위해 소설의 첫 장으로 돌아왔을 때 놀랐다. 이 소설이 '스위드'로 시작한다는 것을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이다. 이 삼음절은 <롤리타>의 롤리타만큼 마법 같은 단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름은 마법이었다(p.13)'. 이렇게 써놓고 있으니. 시모어 어빙 레보브. 본명은 알아두자. '우리 종족에 태어난 이 눈이 파랗고 머리카락은 황금빛인 소년의 얼굴, 턱이 가파르고 왠지 비정해 보이는 그 바이킹 가면 같은 얼굴과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정도면 <소나기>의 서울에서 전학 온 소녀보다 이질적이고 낯설었으리라. 가뜩이나 눈에 띄는 이질적인 외모의 스위드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지적 능력은 조금 떨어져보이지만 요즘 널리 쓰이는 '엄친아'라 해도 무방한 시민의 왕이었다. 


 '레보브 씨는 슬럼에서 자라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교양도 없었던 많은 유대인 아버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버리지 않고, 이미 열심히 노력해 대학 교육까지 받은 한  세대의 아들들 전체를 계속 몰아붙였다. 이 아버지들에게는 모든 일이 떨쳐낼 수 없는 의무이며, 옳은 길과 그른 길만 있지 그 중간은 없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민 1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는 거의 없다. 닥치고 돈 버는 것. 그것은 낯선 땅에 불시착한 씨앗이 생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함돈균 평론가가 매일경제에 연재하고 있는 <사물의 철학> - 칠판 편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 싶다(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4&no=759162


 '`학교`라는 영어단어 `스쿨(school)`은 영어를 정식으로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할 때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단어였다. 그 단어가 본래 그리스어(Σχολειο)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다. 


그리스 고전 유산을 이어받아 서양의 문화적 적통이 되려고 했던 로마는 이 단어를 자기들 말로 에콜(ecole)이라고 번역했다. 현재 프랑스어에서 `학교`라고 부르는 그 단어다. 

결과적으로 지금 `학교`라는 단어는 영미권에서는 그리스어식 표기로, 프랑스어권에서는 라틴식 표기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라틴어로 번역된 `에콜`은 본래 `여유`라는 뜻이다. 그들은 `학교`를 `여유`라는 일반명사를 이용하여 번역했다. 고대에는 노동하지 않는 계급인 `여유 있는 사람들`만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 까닭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학교의 진정한 정신이 일상적 생존 본능과 거리를 두는 정신적 여유, 즉 반성과 성찰 같은 비판적 거리감각에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 같은 나라는 대학 등록금이 거의 무료라고 한다. 언제 이런 복지체제가 갖춰졌는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68 문화혁명이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좋은 기회가 있어 올해 초 싱가폴에서 한달 정도 체류할 수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잉글랜드 출신 영어교사에게 68혁명에 대해 물었더니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해서 당황했었다. 알고 보니 영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 많은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혹은 직장에 취직하기 전에 여행을 떠난다는데 학비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가능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대한민국은? 잘은 모르지만 '학'부모의 영향 아래 있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정신적 여유를 잃고 살 거라 생각된다. 주워들은 얘기에 따르면 중학생들도 어느 대학 갈 것인지를 얘기한다고 한다. 사교육 줄인다고 어쩌구저쩌구 해봤자 입시제도 바꾸지 못하면 별 소용없다는 게 필자의 소견이다. '창조경제' 정부가 중시한다고 말하는 '실력'이 무얼 뜻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인터넷으로 손장난하는 실력이 뛰어난 건 알겠다만...

 히틀러가 선거에 의해 당선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정신적 여유의 부재. 아니 정신의 부재. 히틀러는 민중들에게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무너진 독일경제를 일으켜 세워줄 구세주로 보였을 것이다. '경제'대통령.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재밌게도 용산참사로 인해 만들어진 작가선언 6.9은 용산참사를 대한민국판 아우슈비츠라 설명한다. 세월호 시국선언에 '아우슈비츠'가 호명되었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이곳저곳에서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 조르조 아감벤과 호모 사케르가 호명되는 걸 보면 '일인당 국민 소득 3만불 지상주의(일인당 국민 소득 3만불이 되면 유럽식 복지가 가능하고 기타 등등 모든 게 해결되니 그때까지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자는 주의)'에 야만성에 치가 떨리고 토가 쏠린다. 지난 대선 얘기는 굳이 꺼낼 이유도 없지만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에 실린 김진호 선생님의 글이 흥미로워 잠깐 얘기를 꺼내면 지난 대선은 '박정희 메시아주의'와 '노무현 메시아주의'의 대결구도였다는 것이다. 메시아주의가 마음에 안 들면 이렇게 고쳐도 무방할 것이다. 응답하라, 박정희. 응답하라, 노무현. 의료민영화 얘기가 다시 슬금슬금 기어나오고 있는데 이 나라 지도층(이라 쓰고 대가리라 읽는다)들은 정녕 국민들의 시체로 자신들의 윤택한 삶을 유지하려는 좀비가 되려 하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 직후 한 보수논객이 진보정당이 시체로 장사하려고 한다는 망언을 한 걸 보면 단순히 좌우 대립을 넘어 이 나라에 생명관리정치와 호모 사케르, 목숨/생명과 돈의 교환관계가 무의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우리들의 '스위드'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아버지의 아바타로 자란다. 여기에 제동을 걸거나 방향전환을 할 만한 거리는 없어 보인다. 나는 이를 소극적 운명이라 부르고 싶다.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유년기-아동기,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이 돼도 독립적 주체로 바로 서긴 불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종속돼 있으니까. 스위드의 경우는 그의 인종적,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더 심했던 것 같다. '뭔가가 이 사람 위에 올라타 정지를 명령한 것이다. 뭔가가 이 사람을 진부함의 표본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뭔가가 이 사람에게 경고를 한 것이다-너는 어떤 것도 거스르면 안 돼.(p44)' 스위드에게 아버지는 한 사람이 아니다. 레보브를 '스위드'라는 이미지에 가둬놓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대중들, 이들은 아버지의 법의 공동편찬자들이다. 하지만 스위드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연기한다. 아니 살아낸다. '스위드 레보브의 삶은, 내가 아는 한, 매우 단순하고 매우 평범했으며, 따라서 딱 미국인의 기질에 맞게 훌륭했다.(p56)' 최근에 유튜브에서 본 허경 선생님의 국립극단 강의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을 소개할까 한다. 아기 때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인들의 유전자를 가진 이들의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나는 이들이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들보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들이 프랑스 사람들보다 더 완벽하고 아름답게 불어를 구사한다는 것. 전자는 한국에 알게 되면 자신의 생물학적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 간의 괴리가 심화되면서 분열에 이를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선택된 무지였고, 후자는 주류인 백인들과 다른 피부색으로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이들이 취해야 했던 자세-프랑스인보다 프랑스인답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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