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대극장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해 처음 그 존재가 알려져 세상에 흔히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소개된 그 여자 벽돌공의 이름은 춘희春姬이다.
천명관, 『고래』, 문학동네, 2004.

내 이름은 소라.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2014.

우리 아버지의 성姓은 피립이고 내 세례명은 필립이었는데, 어린아이 적 내 짧은 혀는 이 이름과 성을 ‘핍’ 이상으로 길게도 분명하게도 발음하지 못했다.
찰스 디킨스, 이인규 옮김, 『위대한 유산』, 민음사, 2009.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 두자.
허먼 멜빌, 김석희 옮김, 『모비딕』, 작가정신, 2011.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만큼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 경우는 없다.
고종석, 『해피 패밀리』, 문학동네, 2013.

뤄 독찰督察은 병원 냄새를 싫어했다.
찬호께이, 강초아 옮김, 『13.67』, 한즈미디어, 2015.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이방인』, 민음사, 2011.

"오늘 엄마가 죽었어요……."
미셸 깽, 김예령 옮김, 『겨우 사랑하기』, 문학세계사, 2003.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아니 에르노, 정혜용 옮김, 『한 여자』, 열린책들, 2012.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정유정, 『7년의 밤』, 은행나무, 2011.

내가 아버지를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때로는 아버지의 죽음을 도운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언 매큐언, 손홍기 옮김, 『시멘트 가든』, 열음사, 2005.

공포증은 영어로 포비아라고 부르는 증상이다. 호모포비아나 제노포비아처럼 사회적인 현상을 가리킬 때도 쓰지만, 폐소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처럼 개인적인 증상을 가리킬 때도 쓴다.

그는 이혼까지 한, 쉰둘의, 남자치고는, 자신이, 섹스 문제를 잘 해결해 왔다고 생각한다.
존 쿳시, 왕은철 옮김, 『추락』, 동아일보사, 2000.

쉰 살이고, 여자와 잠을 같이 잔 지 4년도 넘었을 때였다.
찰스 부코스키, 박현주 옮김, 『여자들』, 열린책들, 2012.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제인 오스틴, 윤지관·전승희 옮김, 『오만과 편견』, 민음사, 2003.

‘아내 문제’의 해법을 발견한 것 같다.
그레임 심시언, 송경아 옮김, 『로지 프로젝트』, 까멜레옹, 2013.

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내와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잭 케루악, 이만식 옮김, 『길 위에서』, 민음사, 2009.

그해 겨울, 나는 추상적인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엘리오 비토리니, 김운찬 옮김, 『시칠리아에서의 대화』, 민음사, 2009.

나는 충분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수진,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웅진지식하우스, 2013.

제법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나중에 알았다. 그 분노가 터져 버리거나 해소되지 못하고 그토록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이유를. 그건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텅 빈 분노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텅 빈 분노처럼 보여야 했는지도 모른다. 분노라는 칼끝이 향해야 할 곳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숨기기 위해서.

결국 나는 텅 빈 분노 뒤에 숨어 그 분노가 나와 싸우지 않도록, 말하자면 나를 해치지 않도록 막았던 것이다.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수키 킴, 이은선 옮김, 『통역사』, 황금가지, 2005.

딱 하고 성냥 긋는 소리, 뒤이어 치직 타들어 가는 소리에 나는 바로 잠이 깼다.
주디 블런델, 김안나 옮김, 『그 여름의 거짓말』, 문학동네, 2013.

나는 어머니의 방에 있다.
사뮈엘 베케트, 김경의 옮김, 『몰로이』, 문학과지성사, 2008.

머릿속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든다.
이장욱, 『천국보다 낯선』, 민음사, 2013.

하루하루가 너무도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토니 모리슨, 이상영 옮김, 『가장 푸른 눈』, 백양출판사, 1993.

일상은 점점 하찮은 것이 되어 갔다.
베른트 슈뢰더, 박규호 옮김, 『요하네스와 마르타의 특별한 식탁』, 제이앤북, 2004.

오늘은 최악이다.
이인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세계사, 1992.

시간만큼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고 난 뒤에야 겨우 ‘오늘’이라고 설정할 수 있었다.
잉에보르크 바흐만, 남정애 옮김, 『말리나』, 민음사, 2010.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김난주 옮김, 『키친』, 민음사, 1999.

그는 홀로 술을 마셨다.
존 스티클리, 박슬라 옮김, 『아머: 개미전쟁』, 구픽, 2016.

자, 이야기를 계속해 봐.
최제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자음과모음, 2011.

이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해 보려고 한다.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김상훈 옮김, 『매혹』, 열린책들, 2006.

시작은 언제나 계속된다. 이야기가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삶과 달리 이야기는 내가 시작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시작될 때, 이야기는 이미 자신이 삶과 얼마나 다른지 알려 주는 셈이다.

어느 날에는 삶이 있다.
폴 오스터, 황보석 옮김, 『고독의 발명』, 열린책들, 2001.

어느 날, 공중 집회소의 홀에서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미 노인이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김인환 옮김, 『연인』, 민음사, 2007.

‘어느 날’은 조용히 지나가는 일상의 하루이면서 동시에 일상에서 벗어난 아주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지금이 바로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올 만한 순간이지’, 베르나르는
속으로 생각했다.
앙드레 지드, 권은미 옮김, 『위폐범들』, 문학과지성사, 2012.

누군가 문 앞을 바삐 달려가는
발소리가 났을 때, 다이스케代助의
머릿속에는 하늘에 걸려 있는
커다란 나막신이 떠올랐다.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그 후』, 현암사, 2014.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사데크 헤다야트, 배수아 옮김, 『눈먼 부엉이』, 문학과지성사, 2013.

내면의 풍경이란 게 있다.
조세핀 하트, 공경희 옮김, 『데미지』, 그책, 2011.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랑은 실제로 ‘고독 속에서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라고 불러 줄 만하다. 잠식蠶食이라는 말 그대로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욕망이 영혼을 야금야금, 쉬지 않고 갉아먹으니까.

그 소문을 들은 때는 확실히 1664년 9월 초순이었다.
다니엘 디포, 박영의 옮김, 『전염병 연대기』, 신원문화사, 2006.

이 기록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에
오랑에서 발생했다.
알베르 카뮈, 이휘영 옮김, 『페스트』, 문예출판사, 2012.

K는 밤늦은 시각에 도착했다.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옮김, 『성』,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8.

당당하고, 통통한 벅 멀리건이 거울과 면도칼이 엇갈려 놓여 있는 면도 물 종지를 들고, 층층대 꼭대기에서 나왔다.
제임스 조이스, 김종건 옮김, 『율리시스』, 생각의나무, 2007.

물에 헹군 면도날을 다시 넣고 면도기를 잠근 기노시다 히데요는 세면기에 물을 받아 턱과 볼에 묻은 거품을 씻었다.
복거일, 『비명碑銘을 찾아서』, 문학과지성사, 1987.

지하철이 아야세 역을 출발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미야베 미유키, 박영난 옮김, 『화차』, 시아출판사, 2000.

녹슨 감정이 또다시 비 오는 날과 맞닥뜨렸다.
류이창, 김혜준 옮김, 『술꾼』,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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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5분, 이시가미는 평소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연립주택을 나섰다.
히가시노 게이고, 양억관 옮김, 『용의자 X의 헌신』, 현대문학, 2006.

러시아에서의 죽음은 아프리카에서의 죽음과는
다른 냄새를 풍겼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장희창 옮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2010.

모든 건 잠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프레데리크 베그베데, 문영훈 옮김, 『9,900원』, 문학사상사, 2004.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카타리나 하커, 장희창 옮김, 『빈털터리들』, 창비, 2008.

"잠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일시적인 존재"들이 계속 달라진다. 단 한 순간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몸을 바꾸거나 처소를 바꾼다.

모든 건 그런 것이리라. 모든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 아니 너무 빈번하게 달라져서 미처 눈치채지 못할 뿐, 지금도 달라지느라 여념이 없는 것.

그러니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어쩌면 어제의 그 사람은 분명하지만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에서 밤사이 수도 없는 변화를 거쳤을 존재와 마주하고서 그 모든 변화에게 전하는 인사일는지도.

‘안녕하세요? 당신은 물론 당신 안에서 지금도 변하고 있는 그 모든 것까지도요. 당신이라는 이름의 그 모든 것!’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파트릭 모디아노, 김화영 옮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문학동네, 2010.

나는 곧 죽을 것이다.
요 네스뵈, 노진선 옮김, 『네메시스』, 비채, 2014.

누구나 특별한 존재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특별함이 차고 넘친다. 아무것도 아닌 특별함이랄까. 그렇다고 그 특별함이 의미를 잃는 건 아니다. 색이 바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다 특별한 데도 각각의 특별함이 의미를 잃지 않는 특별함이라니.

그래, 사실이다.
귄터 그라스, 장희창 옮김, 『양철북』, 민음사, 1999.

처음엔 실수로 시작되었다.
찰스 부코스키, 박현주 옮김, 『우체국』, 열린책들, 2012.

그 일은 잘못 걸려 온 전화로 시작되었다.
폴 오스터, 황보석 옮김, 『뉴욕 3부작』, 열린책들, 2003.

시작점을 짚어 내는 건 쉽다.
이언 매큐언, 황정아 옮김, 『이런 사랑』, 미디어2.0, 2008.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줄리언 반스, 최세희 옮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다산책방, 2012.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
제프리 무어, 윤미연 옮김, 『기억술사』, 푸른숲, 2011.

인생에서 최초로 기억나는 때가 언제야?
노자와 히사시, 신유희 옮김, 『연애시대』, 소담출판사, 2006.

최초의 기억 같은 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온전히 내 기억인지 아니면 하도 이야기를 들어서 내가 기억하는 것처럼 느끼는 건지 의심스러우니까. 외려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지워 내지 못한 기억이라는 방증일 테니까.

귀를 기울이면, 들린다.
존 맥그리거, 이수영 옮김,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민음사, 2010.

누군가의 읊조림이, 그 반복적인 구절들이 내 의식의 가두리에서 물결처럼 철썩인다.
마보드 세라지, 민승남 옮김, 『테헤란의 지붕』, 은행나무, 2010.

길게 뻗어 있는 하얀 구름들 아래, 번쩍거리며 빛나는 강렬한 태양 아래, 환하고 밝은 하늘 아래 처음으로 들려온 것은 한참이나 이어지는 경적 소리였다.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배수아 옮김, 『제국』, 문학과지성사, 2013.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토마스 핀천, 이상국 옮김, 『중력의 무지개』, 새물결, 2012.

개.
러셀 뱅크스, 박아람 옮김, 『달콤한 내세』, 민음사, 2009.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후안 룰포, 정창 옮김, 『불타는 평원』, 민음사, 2014.

한 마리의 개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이장욱,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문학수첩, 2005.

그것은 회색 개였다.
로맹 가리, 백선희 옮김, 『흰 개』, 마음산책, 2012.

신지는 거리에 지하철이 들어온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사다 지로, 정태원 옮김, 『지하철』, 태동출판사, 2000.

해는 서쪽 산 너머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백가흠, 『나프탈렌』, 현대문학, 2012.

해가 또 기울었다.
성커이, 허유영 옮김, 『중독』, 자음과모음, 2011.

왜 웃어요? 하고, 은색의 루즈를 입술에 바른 거리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을 때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문학동네, 2000.

우리는 왜 웃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세욱 옮김, 『웃음』, 열린책들, 2011.

아말은 군인의 눈을 자세히 쳐다보고 싶었지만, 그의 자동소총 총구가 이마에 닿아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수전 아불하와, 왕은철 옮김, 『예닌의 아침』, 푸른숲, 2013.

갈색 털이 무성한 손이 불쑥 내 코앞까지 뻗어와 멈추었다.
박완서, 『나목』, 세계사, 1995.

내 본당은 여느 본당과 같다.
조르주 베르나노스, 정영란 옮김,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민음사, 2009.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을 맞던 그날, 보셰프는 그동안 생계를 의지해 왔던 작은 기계 공장에서 해고되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김철균 옮김, 『코틀로반』, 문학동네, 2010.

이전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페터 한트케, 윤용호 옮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2009.

내장內臟 사실주의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친절한 제안을 받았다.
로베르토 볼라뇨, 우석균 옮김, 『야만스러운 탐정들』, 열린책들, 2012.

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손화수 옮김, 『나의 투쟁』, 한길사, 2016.

나는 잠을 깼고, 엄마가 거기에 있었다.
얀 마텔, 황보석 옮김, 『셀프』, 작가정신, 2006.

엄마가 살려 달라고 외쳤을 때,
난 놀라지 않았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 홍성영 옮김, 『살인자의 딸들』, 알에이치코리아, 2014.

엄마는 병실 침대에 모로 누워 있다.
서유미, 『끝의 시작』, 민음사, 2015.

스물아홉의 나에게는 한 가지 희망과 한 가지 절망이 있다.
박상우, 『비밀 문장』, 문학과지성사, 2016.

희망이나 절망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 희망과 절망에 날짜를 기입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희망에 날짜를 입히는 건 바람이나 다짐일 뿐이고, 모든 종말론이 우스개처럼 여겨지는 것 또한 종말이라는 개념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날짜 때문이다.

먼저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에밀 아자르, 용경식 옮김,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03.

겨우 34층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잿빛 건물.
올더스 헉슬리, 안정효 옮김, 『멋진 신세계』, 소담출판사, 2015.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을 맞던 그날, 보셰프는 그동안 생계를 의지해 왔던 작은 기계 공장에서 해고되었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김철균 옮김, 『코틀로반』, 문학동네, 2010.

이전에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요제프 블로흐는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하러 가서는 자신이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페터 한트케, 윤용호 옮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2009.

옛 애인의 결혼식 날,
사람들은 뭘 할까?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문학과지성사, 2006.

모든 위반은 사후적이라는 말은 적확하다. 금기는 그 선을 넘고 난 이후의 상황이 상상 가능할 때 비로소 효력을 띠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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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나무, 2001.

오늘, 이 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송병선 옮김, 『모렐의 발명』, 민음사, 2008.

진짜 기적은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벌로 내게 글짓기를 시켰다.
지그프리트 렌츠, 정서웅 옮김, 『독일어 시간』, 민음사, 2000.

글을 지어 쓰라는 요구는 바로 그 몽상에 질서를 부여하라는 요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몽상을 죽여 없애라는 요구. 아니면 적어도 몽상이 비누 거품 같은 것임을 인정하라는 요구.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 윤성원 옮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문학사상사, 2003.

형용사 ‘완벽하다’와 ‘순수하다’가 수식하는 것들은 모두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완벽한 문장이나 완벽한 절망은 물론 완벽한 삶이며 완벽한 죽음, 완벽한 행복, 완벽한 불행, 완벽한 거짓말, 완벽한 사랑, 완벽한 논리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의미에서 순수한 사랑이며 순수한 마음, 순수한 몸, 순수한 의도 따위도 허상에 불과하다. 순수조차 순수하지 않은데 다른 걸 말해서 뭐하랴.

가끔은 ‘완벽하다’나 ‘순수하다’ 같은 형용사가 언어의 마개 역할을 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언어라는 수조 밖으로 의미들이 새 나가지 않도록 언어 스스로 만든 마개

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구병모, 『파과』, 자음과모음, 2013.

나는 오랫동안 병을 앓았다.
폴 오스터, 황보석 옮김, 『신탁의 밤』, 열린책들, 2004.

나는 병든 인간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계동준 옮김, 『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2010.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요 네스뵈, 노진선 옮김, 『스노우맨』, 비채, 2012.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예담, 2009.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설국』, 민음사, 2002.

폭설이 내리는 날이었다.
서하진, 『나나』, 현대문학, 2011.

그 여자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신경숙, 『깊은 슬픔』, 문학동네, 1994.

쯧,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있다.
토니 모리슨, 김선형 옮김, 『재즈』, 들녘, 2001.

죽은 다음 모든 게 고요해지면 내 삶과 말, 행동, 그리고 내가 취했던 태도와 그 시답잖던 사랑의 의미까지 처음부터 생각해 볼 것이다.
옌롄커, 문현선 옮김, 『물처럼 단단하게』, 자음과모음, 2013.

숲에서 그림자를 보았다.
황정은, 『백의 그림자』, 민음사, 2010.

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코맥 매카시, 정영목 옮김, 『로드』, 문학동네, 2008.

뻔뻔스러운 여자의 쌓이고 쌓인 한이 이 울창한 숲에 그득하다.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천년 동안에』, 문학동네, 1999.

전략.
미야모토 테루, 송태욱 옮김, 『금수』錦繡, 바다출판사, 2016.

복잡한 절차는 생략하고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겠다.
로맹 가리, 이주희 옮김, 『그로칼랭』, 문학동네, 2010.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최인훈, 『광장』, 문학과지성사, 1994(3판).

그때였다.
이석원, 『실내인간』, 달, 2013.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오르한 파묵, 이난아 옮김, 『순수박물관』, 민음사, 2010.

서른일곱 살이던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유유정 옮김,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1994(개정판).

굳이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없는 부분에 극단적인 구체성을 부여함으로써 풍경까지도 캐릭터를 갖는 인물처럼 만드는 문장 말이다.

나는 살아 있다.
최지월, 『상실의 시간들』, 한겨레출판, 2014.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04.

자기가 지금 시체로 누워 있다고 쓸 수 있는 서술자는 누구일까. 살아 있는 사람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거꾸로 "나는 살아 있다"고 쓸 만한 서술자는 누구일까. 최소한 죽은 사람은 아니리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한스 카스토르프의 이야기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그가 눈길을 끄는 젊은이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젊은이란 사실을 독자들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들려줄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이며,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를 위해 마음에 새겨 두는 것이 필요하다).
토마스 만, 홍성광 옮김, 『마의 산』, 을유문화사, 2008.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다 보면 지적 과시처럼 보이는 긴 논쟁이나 설명과 마주할 때가 많은데, 저 첫 문장처럼 그 길고 긴 ‘부연 설명’을 걷어 내면, 대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이 들려줄 법한 특출한 이야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게다가 그 특출한 이야기는 아주 놀라운 방식으로 짜여 있어, 가령 문체를 느끼면서 읽어야 한다는 플로베르의 소설을 번역문으로 읽을 때의 지루함 같은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새뮤얼 스페이드의 턱은 길고 앙상한 V 모양의 주걱턱이다.
대실 해밋, 김우열 옮김, 『몰타의 매』, 황금가지, 2012.

지금보다 어리고 민감하던 시절 아버지가 충고를 한마디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기억난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김영하 옮김, 『위대한 개츠비』, 문학동네, 2009.

정말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공경희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별이 쓸리는 밤이었다.
황순원, 『카인의 후예』, 문학과지성사, 2006.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은희경, 『새의 선물』, 문학동네, 1996.

고래였다.
성석제, 『단 한 번의 연애』, 휴먼앤북스, 2012.

내가 잉태되던 순간에, 아버지든 어머니든, 아니 사실상 이 일에는 두 분이 똑같이 책임이 있으니, 두 분 모두 그때 하시던 일에 제대로 마음을 쓰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로렌스 스턴, 김정희 옮김,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을유문화사, 2012.

몇 년이 지나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전 어느 오후에 아버지를 따라 얼음을 찾아 나섰던 일이 생각났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 문학사상사, 2010.

지구가 정지하고 영원함이 호흡을 멈추는 한순간.
빌 S. 밸린저, 이다혜 옮김, 『기나긴 순간』, 북스피어, 2008.

그러니 따지고 보면 매번 무수히 반복되는 순간이 늘 "지구가 정지하고 영원함이 호흡을 멈추는 한순간"이 되는 셈이다. 이런 걸 흔하고 진부한 것이 갖는 힘이라고 해야 하려나.

우리는 대도시에서 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용경식 옮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까치, 2014.

악惡은 디테일에 있다지만, 공포는 오히려 구체성이 지워질 때 극에 달한다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릴 것도 없고 딱히 기억할 것도 없는 공포야말로 최악의 공포이리라. 세상 곳곳에 미만하고 편재하여 도무지 도망가 피할 곳이 없는 공포일 테니까.

나에게도 비밀이 생겼다.
조경란,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 문학과지성사, 2001.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루이제 린저, 박찬일 옮김, 『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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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체험하고 지각하고 생각하는 능력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불멸의 영혼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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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은 스스로 이름(셈, shem)을 떨치기를 원했지만, 야훼께서는 이름이 ‘이름‘인 사람을 사용하셔서 아브람을 낳게끔 계획하시고, 아브람의 이름을 위대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P129

바벨 도성 사건은 장차 이스라엘이 겪을 문제를 간략하게 그려 준다.- P132

집단 전체가 개인이나 다른 집단을 착취하고 압제하며 하나님과 동떨어진 안전을 추구하려는 열망으로 똘똘 뭉칠 때 하나님께서는 직접 관여하셔서 알맞게 조정하고 시정하신다.- P132

창세기 기사에서는 하나님을 공급하시는 존재로 묘사하며, 하나님의 공급 덕분에 인류는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음식이 넉넉하게 공급되고 인류가 자기들이 경작하는 동산(흙)으로, 그 동산을 위해 지어졌기에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종(種)의번식의 큰 이유가 되지 않는다.- P142

창세기가 묘사하는 동산에서는 식량이 창조주 하나님과 협력하여 일(예를 들어 동산을 가꾸는 일)을 하는 데서 나오며, 번식은 일부일처 관계를 통해서만 일어나서 여자와 남자는 그 관계에 적합하게 지음받았다.- P143

다시 말해 여자와 남자의 적합성(fittedness)은 동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서로에게도 해당되고, 그 적합성이 이들의 결혼 관계의 길을 닦는다.-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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