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자는 인류가 정보와 이념을 전달하고 교환하는 도구이자 소통과 협력의 중요한 도구이다. 표준 영어, 표준 중국어, 표준 일본어는 과연 존재하는가?

언어와 문자는 인류가 정보와 이념을 전달하고 교환하는 도구이자 소통과 협력의 중요한 도구이다.

언어와 문자는 살아 있는 것이고 다른 언어와 문자의 영향, 지방어의 영향을 받아 시간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순수한 영어, 순수한 일본어, 순수한 중국어는 정의하기 무척 어렵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다. 이 이념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 전 세계의 보편적인 가치관이 되었다.

"과거에서 현재를 보고, 역사에서 미래를 본다." 200년 전 프랑스가 절대 군주제에서 민주 공화제로 변화한 과정을 보면, 오늘날에도 발견되는 수많은 사례와 서로 닮았지 않은가?

나폴레옹은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굳은 결심은 가장 유용한 지식이다.",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워털루에서 패전한 뒤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한 가지 판본일 뿐이지만, 모두가 받아들이기로 동의한 판본이다."

남아프리카의 인권 운동 지도자 만델라는 일찍이 27년 동안이나 수감자의 삶을 살았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도덕과 용기의 모범이 되었다. 그는 용기와 의지가 억압적인 폭력에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국제 연합의 세계 인권 선언은 제1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자유와 권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자유는 권리를 가져오며 권리는 자유를 실현한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권리와 존엄을 지니며 이것이 평등의 진정한 의미다

우리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원칙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왜?’냐고 묻지 않는다, 다시 말해 ‘무엇이 이러한 원칙을 이끌어 내는가?’라고 묻는 것을 종종 잊는다.

인류의 역사는 평등과 자유를 쟁취해 온 과정이다. 이처럼 명확한 보편 가치가 왜 쉽게 이해되지 않고 실현되지 않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은 더더욱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아득히 멀고 낯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몇십 년 전 역사를 보며 그것을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역사서를 읽으면 틀림없이 이와 유사한 인물과 사건을 숱하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물과 사건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끊임없이 얼굴을 바꿔 우리 앞에 등장한다.

간디는 평화를 주장하며 비협조적인 태도를 저항의 수단으로 삼았다.

만델라는 초기에 평화적인 대중운동 노선을 걸었으나, 나중에는 평화적인 수단만으로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정부가 무력을 동원해 그들을 진압했기 때문에, 그는 정당 내에 무장한 군대를 설립해 게릴라 활동을 전담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 뒤로 오랫동안 만델라는 끝까지 평화적인 협상 수단을 유지하면서 남아프리카의 인종 격리 정책을 완전히 일소했다.

마흔다섯에서 일흔두 살까지의 시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풍요로웠다. 그는 행동의 자유를 박탈당했지만, 그 생명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라 용기와 의지가 억압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7년이라는 긴 시간은 만델라가 얼마나 강인한 내면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 주었다.

그는 평화로운 협상으로 무력 항쟁을 대신했고, 흑인의 자유 쟁취에서 시작해 모든 인종과 민족의 화해와 단결, 평등의 추구로 나아갔다. 남아프리카의 인권 운동 지도자에서 전 세계의 도덕과 용기를 상징하는 모범으로 우뚝 선 것이다.

리더십이란 훈련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 만델라의 이야기를 알고 난 뒤에는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리더는 매우 폭넓게 사용되는 명사이다. 리더의 사명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해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다

첫째,용기란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침착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이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도록 격려하는 능력이다

리더로서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알아차리게 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모두 만델라가 고개를 똑바로 들고 가슴을 쭉 편 채 감옥 안 운동장을 걸어 다니던 모습을 보면 마음속의 두려움이 적잖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넘어서도록 이끌기 위해서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가면이 아니라 굳건한 신념과 이념이다.

굳건한 신념과 이념이 있어야 두려움에 맞서 좌절하지 않고 어려움에 굴하지 않으며 위험을 무릅쓸 수 있다

시장 변동, 자금 부족, 협상 상대의 고집 등은 모두 기업의 리더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요인이지만, 그는 자신의 이념을 끝까지 관철하면서 전체 사원을 격려해야 한다.

둘째,리더는 최전선에 서더라도 뒤에 있는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리더는 반드시 보다 높은 곳에 올라서서 널리 보고 멀리 보면서 새로운 관점과 전략, 방식을 제안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나 대상에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관점과 전략, 방식이 광범위한 대중에게 즉시 수용되기는 어렵다. 높은 곳에 선 사람은 종종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리더는 굳건히 이념을 지킬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지지자들이 자신의 이념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기백과 매력을 지녀야 한다

때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상대를 설득하고 이끌어야 하며, 때로는 굳건한 태도로 대중의 믿음과 지지를 얻어 내야 한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리더는 성공할 수 없고, 지지를 얻지 못하는 리더는 실패의 시련을 견딜 수 없다.

셋째,리더는 반드시 지지자들의 뒤에서 버팀목이 되어 그들 자신이 최전선에 선 리더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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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유물론자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았지만 형이상학에 심취한 당대 독일인들에게 반대하며 ‘철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해 왔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헤겔의 변증법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사상에 적용하면서 마르크스는 정신이 아닌 사회와 정치적 관계에서 역사를 분석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역사의 한 단계로 보았고 변증법적인 관점에서 정이 그 속에 반을 가지고 있으니 변화를 불러올 합이 탄생할 것이라고 여겼다.

역사를 보는 변증법적 관점으로 자본주의가 만연한 체계를 경제적으로 분석하면서 마르크스는 혁명적인 정치철학의 토대를 발전시켰다.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인 마르크스는 신앙이 이성을 대신해 한 계급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표본이라고 보았다.

종교에 대해 그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남겼는데 종교는 억압과 소외의 현실 속에서 환상 속 행복을 찾기 위한 시도이며 이는 현실을 버리고 그 자리를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상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유일한 현실이며 신도 없고 목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을 부정하고 겁에 질리기보다는 낡은 철학과 종교 및 그 가치 체계를 거부하고 우리의 인생을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최선인 가치를 직접 선택할 수 있으며 우리를 종교의 노예로 만드는 겸손함보다는 강인함과 능력과 같은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쇠렌 키르케고르 는 무의미한 세상 속에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혼란과 불안함을 식별한 최초의 철학자이며, 후에 그와 니체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정하는 우리의 결정 방식에 대해 탐구했다.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은 우리의 철학은 우리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배제하고, 알고 있는 세상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가 현상학을 더 발전시켜 나갔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주관적인 철학적 접근 방식은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의 문학과 철학 속에서 실존주의로 대중화되었다.

그는 우리가 사회나 종교에 의해 세습된 가치관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스스로의 인생을 규정지을 윤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가 있다고 보았다.

키르케고르는 철학에 한층 주관적으로 접근하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살폈고 특히 의사 결정의 자유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했다.

현상학은 존재의 모든 목적을 현상으로 다루고 실존 여부를 무시하면서, 직접적인 경험 자체와 그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식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죽음에 대한 자각에 있어서 하이데거는 죽음이란 곧 ‘존재의 지평선에서 가장 먼 끝’이라고 설명하며 우리의 존재와 삶이 ‘고유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사르트르의 친구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역시 그만큼 영향력이 높았는데 카뮈는 실존주의에서 도출한 자유의 선택에 집중하기보다는 존재의 덧없음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주에는 신이 없고 의미도 없으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개개인의 존재도 대단치 않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해 인간의 자유와 선택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고 이후 세대는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완전히 거부했다.

구조주의는 종종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선택하는 실존주의적 자유 관념의 대안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특히 언어학에 토대를 둔 구조주의가 과도한 결정론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바르트와 푸코는 언어가 사상을 전달하고 권력을 활용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구조나 과학적 ‘법칙’이 있다기보다 해석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를 분석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후기구조주의 운동은 해체론으로 알려진 의사소통과 담화를 포함한다.

언어에 관한 비평은 그 속에 내재한 의미뿐 아니라 모호함까지 알려 준다

후기구조주의는 해체론을 통해 현실이나 진실에 대해 분명 타당해 보이는 진술들이 지닌 역설적인 특성을 알려 주며 그것들이 자기 참조와 순환 논법을 토대로 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1836년 『자연Nature』을 통해 랠프 왈도 에머슨은 유럽 낭만주의와 일부 비슷한 인간과 자연의 근본적인 미덕을 토대로 한 철학을 발전시켰다. 그 본질은 기존의 정치, 사회, 종교적인 직관에서 벗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단순하고 자신감에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의 출발점에서 지식, 현실, 사실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닌 언어적인 논쟁에 중점을 둔다.

곧바로 인식할 수 있는 효과를 내지 못하는 우리의 감각은 실용주의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용주의는 진술의 사실 여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이를 받아들이는 실제 적용 방식이 사실인지를 살핀다.

그러므로 지식은 사실이나 확정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타당한 설명을 토대로 한다. 그리고 그 설명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거나 효용이 없을 때 대체되거나 개선할 수 있다.

입증했다. 제임스는 순수한 추론을 통한 철학 이론 형성과는 구분되는 관찰, 실험, 데이터 분석을 통한 과학적인 방식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준 진정한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이다.

방식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의식을 연속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제임스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했다.

심리학은 철학에 뿌리를 두고 발전했지만 인간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한 과학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행동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지식을 얻고 학습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실험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서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관찰했다.

퍼스가 제안한 실용주의의 주요 사상 중 하나는 지식이 사실이 아닌 타당한 설명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사고와 학습의 목적은 행동을 하기 위한 것이고 특히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지 세상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문제가 닥쳤을 때만 생각을 하므로 지식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론을 세우거나 배운 것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에 활발히 개입하는 것이다

실용주의자들에게 지식은 세상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는 일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실용주의의 전통에 따라 연구하면서 유럽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에도 영향을 받은 리처드 로티는 실용주의 사고가 사회와 역사적인 맥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언어와 얼마나 긴밀한 연관이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신실용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진술이나 용어의 의미는 세상의 무언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성과 활용의 산물이다.

논리학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철학의 한 분야로 성립되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논리학은 삼단논법의 형태로 19세기 말까지 실질적으로 아무런 변화 없이 이어져왔다.

러셀의 영향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언어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더불어 언어학을 과학으로 보는 관점이 대두되면서 자체적인 철학적 적용 방식이 생겨났다.

프레게가 지적한 수학과 논리 사이의 연관성은 또한 논리학이 삼단논법 그 이상이며 철학에 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논리학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라 우주의 객관적인 진실로 이루어져 있다는 프레게의 통찰은 철학에 완전히 적용되었다. 그는 수학도 논리학과 같은 원칙을 따르기에 똑같이 객관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에 내재된 추론의 과정 역시 논리적인 원칙에 따르는 일련의 논쟁과 입증이며 인간의 어떤 창조물과도 유사하지 않다. 따라서 철학적 진실은 우리의 마음속 작용 방식과는 별개로 수학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과 같이 객관적이어야 한다.

근대 철학 상당수가 우리가 아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음의 산물이며 철학적 진실과는 무관하다는 인식론을 토대로 한다. 철학이 우리의 지식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인식론이 아닌 논리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러셀은 전통적인 경험주의에서 출발해 동료 조지 에드워드 무어와 함께 19세기를 점유하던 관념론에서 벗어난 영국의 철학 운동을 주도했다. 『수학의 원리』를 통해 수학과 논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입증한 러셀은 논리가 철학적 질의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논리학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실로 이루어졌기에 인식론에서 보여 주는 추론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확고한 토대다.

러셀의 제자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분석철학의 원칙을 수용한 뒤 칸트와 쇼펜하우어가 인식론을 활용한 방식과 같이 논리를 사용해 지식의 한계를 탐구했다.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1년)에서 그는 세상을 이해하려면 세상을 논리 체계를 갖춘 명제로 이루어진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어는 명제들의 총체다.’ ‘사물이 아닌 사실들의 전체’인 세상 역시 구조화할 수 있고 언어는 논리가 세상을 묘사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드러내거나 ‘지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진정한 명제의 전체성’이라는 말로 정의되는데 경험이라는 현상 세계를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윤리와 종교와 같은 주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자체에 의미 있는 명제를 만들 수 없는 ‘신비로운’ 분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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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세계의 종말
다비드 아미도비치 지음, 박성훈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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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혼란에 빠져있다. 질병과 건강뿐만 아니라, 경제·환경 등의 이슈도 만만찮다. 문제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팬데믹 상황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원인에 대한 분석, 해결책에 대한 모색.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다.


이러한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누군가는 세계의 종말이 가까웠다는 주장을 외친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당장 전 세계가 종말과 붕괴가 일어날 것 같은 이미지를 쏟아낸다.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지구의 재난과 종말을 선후관계로 인식했다.


이 책 "끝나지 않는 세계의 종말"이라는 표현은 고대로부터 오늘날 이르기까지 모든 문명권에서 발견되는 세계의 종말에 대한 끈질긴 기다림에 대한 모순어법적 표현이다. 스위스 로잔대학교 종교과학신학 교수인 다비드 아미도비치(David Hamidovic, 1974~)는 역사학자다. 그는 고대 유대교 역사를 비롯한 고대 중동지방 역사, 유대교 묵시 문헌 및 사해 문서에 관한 전문가다(사실 이 책은 역자를 보고 구매했다. 역자는 주로 알랭바디우의 책을 번역하는 전문 번역가다).


이전에 저자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책을 읽고 나니 저자는 고대 문헌 이해가 탁월하다. 세심하게 그 자료를 해석한다. 더불어 그 해석이 지금 현재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한 마디로 신뢰할만한 저자라고 결론 내렸다.


 2014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팬데믹 상황 가운데 대혼란을 겪고 있는 현재,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책은 묵시론에 초점을 맞춘다.  유대교와 기독교에 기원을 둔다. 그리하여 세계의 종말과 인간의 정체성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제시한다.


저자는 묵시(아포칼립스)라는 표현이 원래는 '계시'의 의미를 지칭했음을 주장한다. 이 용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저자는 면밀하게 관찰한다. 즉 용어 자체의 변화('의미의 미끄러짐')가 있었다. 묵시는 재앙을 통한 세계의 종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묵시 문학을 통해 1세기 말엽 이후로, 하나님의 계시와 임박한 세계의 종말은 연결되었다. 심지어 고대에서도 아포칼립스라는 용어는 세계의 심판이라는 메시지가 어느 정도 담겨 있었다.


저자는 다양한 묵시를 다룬다. 단순히 묵시 문학만이 아니다.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를 폭넓게 활용하지만, 경우에 따라 호세아서와 이사야서, 에스겔서 등을 다룬다. 정경뿐만 아니라 성경 이외의 다양한 자료를 포함한다. 에녹서, 에제키엘서, 희년서, 집회서 등이 빈번하게 인용된다. 우리는 고대 문헌에 담겨져 있는 종말론적 메시지를 대한다(이 책을 통해 다양한 고대 문헌, 특히 유대 문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익이 있다).


저자는 묵시론적 메시지의 핵심은 파국이 아닌 희망이라 강조한다. 고대인들은 재난과 종말에 대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희망의 모티브를 꼭 포함시켰다. 고대의 텍스트에는 더 나은 시대에 대한 갈망이 있다. 희망 없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고대의 문서를 해석하여 종말이 가까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제 제대로 반응할 수 있다. 종말은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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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을 탔지만 스웨덴으로 가서 상을 받도록 허가받지 못했으며, 그 자신 또한 금지령을 어기고 멋대로 국경을 넘을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1973년,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라는 연작을 서구에서 출판했다. 이 책은 모두 1,800쪽에 이르는 3권의 장편으로 솔제니친의 대표작이다.

『수용소 군도』의 출판 이후, 솔제니친은 반역죄로 기소됐고 곧이어 국경 밖으로 추방되어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폭력을 남용해 국민을 지배하는 정부에는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 사람의 작가, 한 사람의 지식인에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 토양을 떠나는 일은 고통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정치 환경의 변화로 솔제니친은 1990년에 러시아 시민권을 다시 획득했다. 1994년, 솔제니친은 미국에서 러시아로 돌아갔고, 과거 금서였던 그의 작품들은 드디어 러시아에서 간행되었다

솔제니친의 극단적 시각은 그에게 영광과 모멸을 절반씩 떠안겼다.

우리가 삶에서 전심전력으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진리는 우리에게서 떠나갈 것이다.

솔제니친은 희망도 없고 기댈 데도 없는 수감자의 감정, 수감자가 강제 노동 집단 수용소에서 느끼는 가장 큰 괴로움을 세밀하게 써냈다.

솔제니친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버드의 교훈은 진리입니다. 삶에서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추구하지 않으면, 진리는 결국 떠나 버리고 말지요. 그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진리는 오해받기 쉬우며 아주 이따금씩만 즐거운 것입니다. 진리는 종종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요. 오늘 제 연설에서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있었다면, 그 모두가 적이 아닌 친구의 진심에서 우러난 것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솔제니친은 다른 모델을 완전히 초월한 하나의 모델은 없으며 하나의 모델을 바꾸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종종 폭력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수많은 각도에서 완벽한 하나의 모델을 받아들이는 것은 동시에 이런 모델의 수많은 결점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첫째, 국가의 팽창과 사회의 번영에 뒤따르는 것은 종종 도덕과 용기의 추락이다.

특히 정치적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 학문적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절대 권력을 장악했기에, 또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하기에 정의와 공리, 이해와 동정 따위를 쉽게 망각한다.

국가는 종종 패권주의나 침략자, 테러리스트 앞에서 약해지며, 위협할 필요가 있는 후진국이나 약소민족 앞에서 제멋대로 굴거나 무도해지곤 한다

사회 엘리트인 지식인은 자주 권위 앞에서 침묵하며 지식 권력이 없는 약자에게나 목청을 높인다

둘째, 서구의 정치 및 경제 이념은 ‘정부가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라는 것이다.

시민은 마땅히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와 공간을 보장받아야 한다.

행복과 재산이 등호로 표시될 때, 끝없는 탐욕이 가져오는 것은 부정한 수단과 생명까지 담보로 삼는 극한의 경쟁이다.

셋째, 서구의 법치 정신이 가져온 ‘합법적이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라는 원칙이 있다.

법률만 있고 그 밖의 다른 규정이나 원칙이 결여된 국가에서는 여기저기 함정이 있다.

넷째, 제한이 없는 자유는 무책임한 자유와 파괴적인 자유를 포함한다.

솔제니친은 절대 권력의 사회 제도 아래 성장하면서 박해를 받았고 결국 추방당해 유랑하는 삶을 살았지만, 서구 사회에 정착한 지 몇 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 사회에도 수많은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당시 서구의 사회 모델이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으며 서로 다른 국가와 지역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의 부정적인 일면을 지적하는 소극적인 결론일 뿐이다.

서로 다른 역사, 지리, 문화 배경에서 서로 다른 국가와 사회는 서로 다른 정치, 경제, 문화 모델을 따르지만 그 가운데는 공통의 최대 공약수가 있다. 바로 인성이다

공감하고 연민하는 마음, 꺾이지 않고 숙이지 않는 용기, 속박을 받지 않는 독립 정신, 물질을 초월하는 정신적 만족의 추구, 널리 보고 멀리 보는 시각.

이는 어떤 정치, 경제, 사회 모델에서든 반드시 붙들고 유지해야 하는 최대 공약수이다.

인성의 진리와 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시공간의 환경으로 제약을 받거나 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표준화는 말로 들으면 간단하지만 실행하자면 복잡한 문제다.

중국의 유가 경전 가운데 사서오경四書五經이 있는데, 사서는 공자의 제자들이 편찬한 『논어』와 맹자가 쓴 『맹자』, 증자가 쓴 『대학』과 자사가 쓴 『중용』이며, 오경은 『시경』, 『서경』, 『예기』, 『주역』, 『춘추』다.

좁은 의미로 ‘효’는 부모의 말에 따르는 것이고, 넒은 의미에서는 부모의 가르침을 귀담아듣고 이를 실행하려고 힘쓰는 것이다.

「제의」에서는 ‘효’의 도리가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동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고, 서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고, 남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고, 북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는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사해에 두어 널리 미치도록 표준으로 삼는다"放諸四海而皆準라는 말의 출처다.

‘사해의 표준으로 삼다’라는 말이 중요하다. 이 말은 시공간의 환경 변화에 따르지 않는 진리와 원칙, 예를 들어 평화, 박애, 성실, 선량 등을 형용한다. 그러나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 말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결론은 미터란 일종의 공인된 표준이라는 사실이다.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빛의 속도 또한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사람의 체온은 섭씨 36.8도이고 화씨 98.24도이다.

특히 과학이 발전할수록 필요한 정밀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표준화는 더 중요해진다.

사용자와 제조자의 관점에서 보면 표준화는 무척 중요하다.

왜 휴대전화 제조사는 휴대전화 충전기에 사용하는 커넥터를 표준화하지 않을까? 한 가지 해석은 휴대전화 시장이 여전히 전쟁터라 제각기 적과 싸우기 바빠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소통할 여유나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제조자의 입장에서 표준화는 더욱 중요한 과제다. 세계가 점점 더 작고 평평해질수록 작업은 세분된다.

그러나 표준화는 말한다고 곧바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표준을 선택하고 적용하려 할 때, 누구에게 결정 권한이 주어지는가? 특히 세계화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수레의 폭을 같이"하는 명령을 내릴 절대 권력 기구가 존재하기 어렵다.

표준의 선택에는 유서 깊은 전통과의 투쟁이 뒤따른다. 이미 오래된 표준을 고치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표준의 선택에는 정치적인 고려가 포함된다. 정치는 국력을 보여 주는 지표다.

표준을 바꾸는 일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바다가 바다인 까닭은 크고 작은 하천을 받아들여 마침내 큰 바다로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표준화를 이야기하거나 사회의 공통 이념을 세우고자 할 때는 바다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

공학의 입장에서 보면, 표준화의 편리와 효율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이루기는 어렵다. 역사와 전통에 기초해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익숙해진 어떤 표준은 굳이 다른 표준으로 바꿀 필요도 없고 쉽게 바꿀 수도 없다.

단일한 표준과 규격은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개방되고 진보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여러 표준과 규격이 상호 경쟁하고 충돌하면서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양 극단의 중간에는 두 가지 중요한 기술 개념이 있다. 하나는 ‘공용’interoperable이고 다른 하나는 ‘호환’compatible이다.

공용은 인터페이스를 통해 서로 다른 규격 시스템을 같이 운용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호환은 서로 다른 규격을 포괄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바다는 모든 강을 아울러 크고 넓어진다."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바다가 바다인 이유는 수많은 크고 작은 시내와 강을 받아들이고 아우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표준화 그리고 공용과 호환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이 옛말이 생각난다. 사회 공동 이념의 수립과 공동 목표의 추구를 이야기하며, 다름을 통해 같음으로 나아가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고자 할 때면 언제나 이 옛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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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에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민주주의 체계를 세우고자 노력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뒤 사회정의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헌법이 개정되었다.

자유주의 전통(좌파가 아닌 자유방임주의)은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적 자유주의와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자유주의 속에서 출현했다

데이비드 흄은 경험주의적 지식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철학에도 흥미를 보였고 특히 재화와 용역의 거래에 관심이 많았다

『국부론』 이후로 도덕철학은 한층 과학적으로 경제학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거래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이익을 가져다준다. 따라서 스미스는 자유 시장에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 인간이 ‘타고난 자유’를 즐길 권한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옹호했다.

자유와 권위 사이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전통 자유주의’는 정부가 시민의 자유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벤담의 사상은 19세기 사회 개혁에 영향을 미쳤으며 후에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과학과 매우 흡사한 방식으로 벤담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의 미적분학’을 통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옳고 그름을 측정한다.’ 그는 같은 원칙을 정치에도 적용해 ‘모두가 한 사람에게 의지하면 아무도 한 사람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행동의 타당성은 쾌락이나 고통이 어느 정도 생겨났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사상은 유럽 도덕 사상에 영향을 미친, 행동의 동기와 도덕적 ‘정언명령’을 토대로 한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철학 체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벌린은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적극적인 자유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보았다

적극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개인은 폭군이 될 수 있는데 프랑스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가 대표적이다.

존 스튜어트 밀과 우정을 나누고 후에 결혼을 한 철학자 헤리엇 테일러는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수호하는 데 큰 발판을 마련했다.

프랑스와 영국 철학자들이 계몽주의 시대를 독식하는 동안 1780년대부터 철학은 독일어권에서 더욱 번성하기 시작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독일 철학 시대의 출발점을 연 위대한 독일 철학자다.

정반대인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관점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칸트는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형이상학을 제안했다

선험적 관념론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 때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작업이다.

그의 사상은 셸링, 피히테, 쇼펜하우어, 헤겔 등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들은 각각 자신만의 관념론을 발전시켰다

관념론은 또한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 같은 철학자들이 헤겔의 사상을 채택해 유물론적 관점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만들기도 했다

이는 또한 종교에 대한 비판과 의구심을 증폭시켰으며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유명한 선언에 영향을 주어 무신론 철학을 촉발하기도 했다.

말년까지 합리주의자 위치를 고수한 임마누엘 칸트는 스스로 흄의 저서를 읽고 ‘독단’에서 깨어났다고 주장했다. 또한 과학의 진보에도 영향을 받아 경험에 기인해 얻은 증거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감각을 활용해 세상에 대해 알아 가는 동안 경험 이전에 타고난 이해의 척도인 ‘범주’가 그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우리가 이해하고 추론하는 부분의 한계를 찾으려고 했다. 우리는 육체적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가 경험할 수 없음에도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칸트는 물자체와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을 분류했다. 물자체인 세상은 우리의 경험과 이해를 넘어 존재하기에 선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고 이해하는 현상의 세계도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경험적으로 실재하고 현상적, 선험적 이상이다.

칸트는 자신의 이론을 ‘선험적 관념론’이라고 불렀다. 과학이 현상 세계를 발견하는 동안 경험과 별개인 실체가 항상 우리의 이해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선험적 관념론’을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를 포함한 종합적인 철학 체계로 발전시켰다

칸트 도덕철학의 초석이 된 것은 이성적인 존재로서 우리는 타고난 선과 악의 개념을 지니며, 자유의지가 도덕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믿음에 있다.

칸트는 전통을 깨고 도덕성이 결과가 아니라 의도나 동기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언가의 옳고 그름을 정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보편적으로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칸트의 관념론은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의 철학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칸트 추종자였던 피히테는 물자체에 대한 개념을 거부했고 외부의 현실은 지각이 창조한 것이라는 완전한 관념론 체계를 제시했다.

피히테는 도덕 자체가 생성한 현실은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독일 관념론의 시대는 예술에서 낭만주의 운동이 성장한 시기와 우연히 맞아떨어진다. 자연에 대한 매료와 감정을 강조하는 낭만주의는 과학적인 합리주의와 산업화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지만 루소의 자연 상태와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관점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독일 낭만주의 예술가, 작가, 지식인 무리 중에서 프리드리히 셸링은 자연을 기반으로 한 철학을 발전시켰다.

셸링에게 인간의 창의성은 자연의 발전이 정점에 올랐다는 것을 지각함을 대변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칸트를 엄청나게 존경했고 현상과 물자체에 대한 그의 사상을 열정적으로 흡수했다.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년)를 통해 그는 이 사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두 가지 별개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계에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세상은 외부의 표상과 내부의 의지로 경험하는 것이다.

칸트와 마찬가지로 게오르크 헤겔은 철학 ‘체계’를 발전시켰지만 칸트의 사상을 토대로 하면서도 그 사상 속에서 근본적인 오류라고 생각한 부분을 고쳤다.

헤겔은 추상적인 사물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을 부정하고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의식 속에 구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헤겔에게 존재는 인식 주체 속 하나의 완전체이며 그 대상인 외부 세계와 동일하다.

헤겔이 지칭하는 정신은 우리의 직관과 자각을 포함해 비물질적인 현실을 아우른다.

헤겔은 또한 경험의 토대는 독보적이며 변하지 않는다는 칸트의 ‘범주’에 대한 생각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우리를 구성하는 의식 자체를 믿었고 이는 진화 과정의 일부로 변한다고 보았다.

현실을 역사적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헤겔은 정신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현실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내재된 체계가 있다는 사상을 발전시켰다

모든 생각에는 모순이 담겨 있고 두 반대되는 생각 사이의 대립 관계가 새로운 생각이 출현하면서 해소된다는 것이다.

합은 정이나 반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사건의 역사적인 추이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자각을 포함하는 정신이 그 자체로서 더 낫고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헤겔은 하나의 현실이 존재하며 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의식이라 할지라도 정신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발달한다.

결과적으로 시대별로 각각의 다른 정신인 시대정신이 존재하며 우리의 사고와 의식 방식도 이 특정한 발달 단계에 있다.

헤겔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았지만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완전히 반대되는 철학을 발전시켰다. 관념론자 헤겔이 현실은 궁극적으로 무형이라고 믿는 반면 포이어바흐는 유물론자로 비물질적인 범주의 존재를 부정했다.

헤겔이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완전한 정신’인 신에게 투영한다고 말하는 반면 포이어바흐는 한층 더 나아가 실제로 우리는 이상을 투영할 가상의 존재를 만들고 이를 ‘신’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학은 단지 인류학이며 신의 지시를 따르고자 애쓸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미덕의 원천을 탐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이어바흐의 도덕철학은 신의 덕보다는 인간을 근본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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