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발견 - 메이킹 오브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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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의 저자 지바 마사야는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친절하고 쉽게 공부 방법론 가르쳐준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 차별화된 공부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


그는 『공부의 철학』을 기획하고 구성하면서부터 탈고하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떠올리며, 이 과정 가운데에서 자신이 천착한 공부의 방법론, 글쓰기 기술 등을 제시한다.


더욱 확장된 공부, 흥미로운 학습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라면 한번 들추어볼만한 책이다.

한편으로, 정보가 지나치게 많은 탓에 오히려 공부할 의욕이 꺾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유한성‘의 설정입니다. 정보를 압축해서 ‘이 정도면 됐어‘라고 설정하는 거죠. 가령 하이데거를 공부할 때는 ‘우선 입문서를 세 권만 읽자‘는 식으로 범위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공부의 발판 굳히기부터 시작해보는 겁니다. 교사의 역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사란 풍부한 지식을 제공하기보다는 ‘우선은 그 정도면 됐어‘라고 공부의 유한성을 설정해 주는 존재입니다. 유한화의 장치인 셈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선생님이나 선배와 이야기할 때는 그들이 어떻게 유한화하고 있는지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경험자의 지혜니까요."- P23

공부는 곧 자기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기존의 자신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변신, 이른바 자기 파괴.-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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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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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독서에 대한 여러 책을 읽어왔다. 나름 꼭 읽어야 할 책들 위주로 읽었던 것 같다.하지만 이 책은 접근 방법부터가 다르다.


저자는 들뢰즈와 라캉, 비트겐슈타인 등의 주요철학개념을 토대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독창적인 공부법에 대하여 말한다.

공부가 무엇인지,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를 철학적 언어로 새롭게 풀어낸다.


기존의 환경에 동조하지 않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즉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이 공부다. 

하지만 여기서도 완벽하게 공부는 불가능하다. 결국 공부는 적절한 시간과 수준에서 제한을 두어야 한다. 


공부의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리와 실제적 방법까지 통찰이 가득한 책이다.

"키워드는 유한화‘다.
나는 제안한다. 한정된 것, 즉 유한한 범위에서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고, 무한히, 정보의 바다에서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파도에, 동조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나는 이것을 공부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공부를 유한화하는 것이다.
- P12

깊이‘ 공부하지 않아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깊이 공부하지 않는 삶은 주변에 맞춰서 움직이는 삶이다.
나를 주변 상황에 잘 맞추는‘ 삶, 즉 동조에 능한 삶이다. 다시 말해 주변에 공감하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대로 ‘깊이‘ 공부하는 것은 흐름 속에서 우뚝 멈춰 서는 것이다. 즉 ‘동조에 서툰 삶‘이다.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동조에 서툴러지는 것이다.- P13

언어는 나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 ‘용법‘을 흉내 내는 형태로 설치된다. 마찬가지로 모든 타자는 또 다른 타자의 용법을 흉내 내는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 P35

우리를 얽어매면서 동시에 벗어나게 하는 것, 우리에게 명령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명령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오직 인간적 세계(=가상현실)를 구축하는 언어뿐이다.
- P42

자유로워지려면, 즉 환경의 외부(=가능성의 공간)를 열어젖히려면 ‘도구적 언어 사용을 줄이고, 언어를 언어로서, 투명한 것으로서 의식하는 ‘완구적 언어 사용‘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 P60

래디컬 러닝이란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어, 언어유희의 힘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P61

우리가 깊게 공부하는 이유는 환경의 동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근본적으로 깊은 공부, 즉 래디컬 러닝이란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행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언어를 그 자체로서 조작하려는 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언어의 ‘도구적 사용‘에서 ‘완구적 사용‘으로 향하는 것이다.
‘굳이 말하려면 할 수 있지‘ 하는 감각으로,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언어를 조작하며 환경의 요구에서 벗어나 자신이 지니게 될 다양한 가능성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 P65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의 전개란 무한히 멀리 있는 궁극의 근거를 향해 이야기를 깊게 만든 후에 파괴하고, 깊게 만든 후에 또 파괴하는 것을 반복하는 일이다.- P94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공부다. 문제에서 시선을 돌린다면 공부란 불가능하다. 거듭 말하지만 공부란 동조에 서툰 사람이 되는 일이다. 때로 그것은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공부란 문제의식을 지니는 것‘이다. 뭔가 석연치 않고 불쾌한 이 상태를 일부러 즐겨야 한다. 바로 이것이 향락하려는 태도다.

- P135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절대 ‘최후의 공부‘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근거‘를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이것을 ‘궁극의 자아를 찾기 위한 공부는 그만두라는 말로 바꿔도 좋다. 자신을 진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줄 최고의 공부 따위는, 없다.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기 → 한눈팔기 → 지나치게 깊이 파고들기 → 한눈팔기....... 이 프로세스를 멈추고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이 공부의 유한화다.
- P150

공부에 깊이를 더하려면 다독이나 통독은 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책을 알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 책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가령 A라는 책은 B라는 책의 영향을 받았다. B의 결론은 C라는 책과 대립한다. 이러한 위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분야의 숲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기 때문이다.- P201

자신의 체감으로 끌어당기지 않고 읽는다는 말은 곧 어떤 텍스트를 텍스트 내재적‘으로 읽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텍스트의 구조(=설정) 안에서 각 개념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파악하는 작업이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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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고전 -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익히기 위하여 상냥한 지성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외 지음, 정지인 옮김 / 유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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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희소식. 스스로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과정으로 독학을 해야 하는지, 배움의 목적과 방향은 무엇인지 등. 공부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한정식 느낌. 배고픈 자 와서 먹으라! 목마른 자 와서 마시라!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공부에 관한 고전들을 추렸다. 저자들의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이 상당한데, 그 내용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과거의 글이 현재에 유의미할까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글은 시대를 꿰뚫고 현재 우리에게 답하고 질문한다. 무엇 때문에 배우는가? 그 배움의 목적과 방향은 무엇인가?라고.


한 명의 저자가 목적과 개요를 가지고 쓴 책. 어떠한 흐름을 가진 책을 선호한다. 저자가 여러 명이거나 더군다나 살아온 시대까지 다른 저자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라면. 그러한 책을 읽고 실패한 경험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매우 세심하게 편집했다. 물론 짧은 글 하나에 담긴 깊이도 남다르지만. 


즉 이 책은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공부에 대한 여러 저자의 글을 수집하고 편집한 책이니만큼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만 매우 탁월하다. 세심하고 꼼꼼하다. 예를 들어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칼럼 첫 문장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글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그 인용문이 포함된 베이컨의「공부와 독서」가 존슨의 글 바로 앞에 배치되어 있다. 즉 독자들은 베이컨의 글을 읽고 여운이 가시기 전에 바로 존슨의 글을 대할 수 있다. 


그 외에 신경을 쓴 흔적이 곳곳에 담겨 있다. 각각의 글 앞에 저자에 대한 소개와 그 글의 간략한 내용, 어떤 맥락 가운데 쓰였는지 등. 좋은 글을 이리저리 흩어 놓은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느낌. 그래서 저자들의 통찰력과 안목에 놀라고, 독자를 배려한 역자와 출판사, 편집자의 세심함에 가슴 따뜻해지는 책이다.

누구에게나 지식을 키워 가는 수단으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이는 곧 읽기와 명상이다. 물론 교육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읽기이며,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그 규칙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읽기에 관해서이다. 읽기를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둘째,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무엇을 처음에 읽고 무엇을 나중에 읽을지 알아야 하며, 셋째,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P19

모든 학문에서 그대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그 학문에 고유하게 속하는 것이라고 확실히 인정된 것이다. 나중에 그대가 그 학문들을 다 공부하고 또 논쟁과 비교를 통해 각 학문 고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게 된 연후에야, 각각의 원리를 다른 나머지 원리에 적용해 보거나 각 학문을 서로 비교 검토함으로써 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깊이 탐구해 보는 것이 적절하다. 중심이 되는 큰길을 알기도 전에 여러 샛길로 들어가지 말라.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을 때라야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다- P28

미처 지혜로워지기도 전에 일찌감치 지혜로워 보이고 싶은 욕망에 현혹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갑자기 자신의 중요성을 한껏 부풀리면서, 자신이 아닌 것을 흉내 내고 자신의 본모습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도만큼, 즉 지혜로운 정도가 아니라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정도에 비례해 그만큼 더 지혜에서 멀어진다- P38

탐구하고자 하는 열의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공부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꼼꼼한 탐구는 진지한 숙고를 뜻한다. 공들이는 노력과 사랑은 그대가 과제를 끝까지 해내게 만들고, 염려와 경계는 그대를 신중하게 만든다. 그대는 공들이는 노력으로써 공부를 지속하고, 사랑으로써 공부를 완벽한 경지로 이끌어 간다. 또한 염려로써 미리 조심하고, 기민한 경계로써 면밀히 주의를 기울인다- P49

나는 그가 그 지혜를 누구에게서 받았는지 기억하고, 일단 지혜를 받았으면 자신이 소유하게 된 그 지혜를 마치 빌린 물건인 것처럼 오직 신의 것으로 여기기를 바란다. 만약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받고 있음을 알았다면, 자기만족이라는 위험에 빠지지도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으려 눈을 내리깔지도 말아야 하며, 오직 자신의 훌륭함만으로 업적을 이룬 듯 자화자찬해서도 안 된다.- P115

군주를 칭송하는 것이 정당한 상황에서도 찬사는 다소 인색하게 해야 하고, 마치 그들의 삶이 이미 끝난 것처럼 찬가를 불러 주기보다는 행동에 자극을 주는 훈계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라면 악덕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비판해야 하는데 단, 적개심이나 분노를 초래하지는 않을 정도로만 해야 한다. 만약 그대의 말이 증오만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그런 소용없는 일은 삼가는 편이 낫다-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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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수 있는 용기 - 출간 10주년 증보판
파커 J. 파머 지음, 이종인.이은정 옮김 / 한문화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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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과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를 통해 만났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도 저자는 가르침의 공간에 대해서 강조한다. 그 전에 대학교를 졸업하려던 시기에 만났던 책이『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였다. 이 책은 객관적 정보를 주는 책이라기 보다, 저자의 삶을 통해 울림을 주는 책이다. 파커 파머는 소명이라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선물을 인식하고, 잘 들음으로 얻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특별히 “가장 어려운 일은 남의 고통을 ‘고치겠다고’ 덤벼들지 않는 일, 그냥 그 사람의 신비와 고통의 가장자리에서 공손하게 가만히 서 있는 일이다”와 “정체성이란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간단한 사실에 달려 있다.”라는 글귀는 오랫동안 나의 뇌리와 가슴에 남아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을 더 확장하고 구체화한 듯하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이나 예화들이 더 풍성하게 담겨져있으며, 더 교육적이고 일반적인 느낌을 가졌다.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 교육과 영성을 모두 잡으려 했다면,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과감히 영성의 색을 버리고 교육적 요소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저자 자신의 삶의 맥락과 과정을 봤을 때, 충분히 사회와 소통 가능한 언어를 가졌으며, 그럼에도 곳곳에서 기독교 영성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교사들의 존재와 내면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는 다른 교육학 책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관점이며, 과감한 도전이다. 교육이 잘 일어나기 위한 방법론적 접근을 하는 책은 많지만, 교육을 함에 있어, 교사의 내면을 다루고 있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내면을 다룰 때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실제적이며 경험적인 언어로 내면의 역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언어는 교육의 일선에 있는 많은 사람들(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만이 아닌)에게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결국 가르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는 자아를 가르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교육의 ‘내용’(What)과 ‘방법’(How)에 집중하지만, 우리는 교육에 있어 ‘왜’(Why)라는 질문과 ‘누구’(Who)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야 할 것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고민이 뒷받침되며, 핵심적이고 중차대한 부분에 접근해야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또한 어디 하나에 편중되거나 치우친 관점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 영성의 3대 노선을 적절하게 취하면서, 그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영성의 강조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반 교사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도 기독교 영성가의 모습을 보인다는 근거이며, 그 동안의 파커 팔머의 삶을 볼 때 충분히 납득가능하고 일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청년사역을 하면서 청년 리더들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많은 소그룹에서 성경공부와 예배와 사역의 3대 요소를 적절히 배치하여 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질문의 답에 그들은 성경공부나 예배나 사역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은 바로 ‘사람’이었다. 자신을 섬겨준 리더일 수도 있고, 함께 소그룹에서 뒹굴었던 멤버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도 교육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의 핵심에 ‘사람’이 놓여있다고한다. 결국 교육은 자아의 내부에서 지혜의 핵심을 뽑아내려는 노력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교육자들은 자신의 존재와 내면에 대한 관심보다는 바로 눈 앞에 놓여있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하다. 자아정체성의 확립과 성실성이 겸비되지 않는다면 참된 교육이 일어나는 일은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능력 뿐만 아니라 존재나 인격까지도 비방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공포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를 알 때에 학생의 공포를 이해하며 함께 끌어안을 수 있다. 이러한 공포는 다양한 이유로 야기된다. 공포를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악이 있다. 분열되고 깨어진 사회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며, 함께 공존하는 것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공포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다. 지식은 명제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지식은 혼자서 독단적으로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식은 타자와의 일체감을 이루는 방식이며, 언제나 상호연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우리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때 큰 고통을 겪게 된다. 하나의 돌파구는 공포를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를 인정하고, 공포 그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두려움은 어떠한 관점으로 그것을 해석하는가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우리가 그 동안 배워왔고 쌓아왔던 다양한 정보와 지식은 새롭게 정리되어지고 갈아엎어지고, 통합되어져야한다. 그래야만 온전하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의 교육도 이러한 관점의 변화 가운데서 보아야 한다. 능력을 추구하며,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세상의 현실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역설적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역설적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양극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관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저자는 커뮤니티를 강조한다. 혼자만의 힘으로 기존의 사고와 체계를 바꿀 수 없다. 갈수록 서로의 동료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현실태는 더욱 교사를 고립되게 만들고, 성장할 수 없게 만든다. 교사는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동료들에게도 문을 닫는다. 교사뿐이겠는가? 대부분의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동료가 어떤 비전을 세워 어떻게 그 과정을 일구어나가는지 볼 수가 없다. 커뮤니티를 일구기 위해서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기존에 해 오던 것들을 기본적으로 충실히 하면서도 새로운 곳에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 기존의 것과 다른 다른 차원의 지식을 배우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사역을 반복하면서 가지게 되는 외로움과 공허함, 자존감의 하락 등은 커뮤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정직한 소통을 이루며 치열한 하지만 따뜻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갈 때, 새롭고 통전적인 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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