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챔프 아서왕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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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무력합니다. 주위에 일어나는 여러 상황에 대처하기 힘듭니다. 비합리적인 요구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어 답답합니다.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현실은 '나'라는 존재를 뒤흔들기에 충분합니다. 정의롭지 않은 사회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거창하고 추상적인 그 무엇을 걷어내더라도 현실은 참담합니다. 절망은 우리를 휘감습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 생각하면 또 다른 더 큰 문제가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책임 있는 리더를 보기 힘듭니다. 저마다 떠넘기고 탓하기 일쑤입니다.



지혜로운 대처는 기대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함께 한 의사결정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뒤집지만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그곳을 위한 결정은 한 사람의 사적 의도에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결론이라 할지라도 올바른 과정은 필수입니다.



염기원의 소설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서사를 뒤엎는 매력이 있습니다. 『여고생 챔프 아서왕』은 철저하게 낮은 한 인간의 삶을 상정하는 듯합니다. 아서왕은 여자이며 미성년입니다. 가난합니다. 어머니는 아픕니다.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달콤한 제안은 탐스러워 보입니다. 잘못된 약속 안에는 지금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한두 가지 목표를 담고 있기 마련입니다. 조금만 더 오래, 깊게 생각하면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도를 뜯어보면 제안을 건넨 사람이나 그 조직을 유익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힘이 없으면,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더라도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그 제안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꾸역꾸역 살아온 시간, 내 존재는 이미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인생을 희생하더라도 우리네 삶을 변화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서처럼 한순간의 잘못된 결정은 내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은 찰나입니다. 현재의 순간이 가장 처절할 것 같았는데, 더 많은 고난이 뒤따릅니다. 참으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바른길을 걸어온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고통이 더 많이 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악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타인의 존재는 가볍게 무시합니다.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안락한 삶, 명예와 권력이 그들에게 전부입니다.



참된 복수는 무엇일까요?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동일하게 한 사람을 처참하게 내모는 것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내 존재를 다시 살리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괴물을 상대하느라 내가 더 괴이한 괴물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작가의 통찰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여운을 안겨 줍니다. '악'이 번영하는 듯 보이는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정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우 의미 있어 보입니다. 결국 '사랑'이 가장 큰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리뷰는 문학세계사(@munse_books)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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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의 실종자들
한고운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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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만연하는 세상. 과거에 고통받았던 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힘겹습니다. 정의가 이 땅에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으로 살아왔지만, 오히려 악인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활보하고 다닙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보다 교묘하게 자신의 것을 챙기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듯 보입니다.



사회가 정의를 상실했을 때, 피해자의 고통은 외면됩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세상이 반응할 때, 고통받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아니, 힘겹게 울부짖는 목소리가 외면당합니다. 억지로 짜내어 겨우 부르짖었는데, 갈수록 상심은 커져가고 고통은 배가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만연할 때, 피해자들은 복수를 상상합니다. 생각합니다. 준비합니다. 실행에 옮깁니다. 아무도 공감하지 않고, 위로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을 때 말입니다. 세상이 약한 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힘 있는 자의 편이 되어줄 때 말입니다.



이 소설은 그렇기에 실제 같습니다. 너무도 사회와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복수가 비윤리적이라는 손가락질 이전에 홀로 고통을 감당했을 그 아픔을 소설은 느끼게 해줍니다. 이것이 이야기가 가진 힘입니다. 제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듣지 않고,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야기 앞에 숙연해집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힘이 있습니다. 각자의 서사가 맞부딪히는 가운데서도 가해자들에 대한 이해보다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이 먼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이 얼마나 허무하며, 한 사람의 인생의 무게감에 비해 가벼운 말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피해자이며 가해자입니다. 누군가에게 말과 행동으로 폭력을 휘둘렀고, 폭행을 당했습니다. 어릴 때의 장난으로 치부하며 넘기지만, 한 사람의 가슴에 남겨진 커다란 자욱이 얼마나 쓰리고 고통스러운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의 끝이 올바른 방향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마음을 깊이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말입니다. 타인을 좀 더 섬세하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면 더 그러합니다.



*이 리뷰는 모모북스(@momo_books__)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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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다, 떨어지다, 붙잡다 - 완전한 자유에 눈뜨는 뜻밖의 이야기
헨리 나우웬.캐럴린 휘트니-브라운 지음, 윤종석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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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던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의 평판, 소소하게 누려왔던 안정을 내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내어준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왠지 비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치고 고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안과 안정을 추구합니다. 누군가에게 완전하게 수용 받고 싶습니다.  타인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었을 때, 우리는 수용 받고 사랑을 누립니다.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직을 내려놓고, 지적 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쉬 에이브레이크로 향합니다. 자신의 명성은 이 공동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저 존재로 인정받고 수용 받는 곳이었습니다. 나우웬은 이곳에서 변화를 맞이합니다. 영적 통찰을 얻습니다. 참된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을 보다 분명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나우웬은 1996년 9월,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글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그가 남기고 싶었던 마지막 책은 로드레이 공중그네 곡예단과의 만남에 기초한 논픽션 창작물이었습니다. 기존의 신앙서적과는 결이 다른 책입니다. 그리스도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신선한 영적 통찰이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옵니다.


캐럴린 휘트니-브라운(Carolyn Whitney-brown)은 라르쉬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거주했던 캐나다 작가입니다. 헨리 나우웬 유작 센터의 출판위원회에서는 나우웬의 미간행 원고를 그에게 창작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캐럴린은 나우웬의 미완성 원고들을 최대한 살려서 『날다, 떨어지다, 붙잡다』 (Flying, Falling, Catching)를 완성했습니다. 나우웬의 사후 25년 만에 우리는 다시금 그의 글을 마주하게 됩니다.


헨리 나우웬은 우연한 기회에 서커스 공연을 보게 됩니다. 그때 로드레이 공중그네 곡예단의 공연 또한 보게 됩니다. 위험해 보였던 공연이었기에 처음에는 불안인 줄 알았는데, 나우웬은 이후에 그것이 엄청난 전율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정말 자신을 감동시키고 매료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로부터 나우웬은 공중그네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자유, 신뢰, 열정, 팀워크.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강하게 이끌립니다.


여러 저술과 많은 강의로 유명했던 그였지만, 어린아이 같은 팬의 마음으로 나우웬은 공중극예단을 대합니다. 나우웬의 진심과 따뜻함은 어느새 로드레이 공중그네 곡예단에게도 전달됩니다. 어느새 그들은 친한 친구 혹은 가족과 같이 지내게 됩니다. 서로를 통해 위안을 얻고 친밀함을 누립니다. 나우웬은 공중그네 곡예단의 공연뿐만 아니라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공동체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공중그네를 보여주던 로드레이는 나우웬에게 이와 같이 확신에 차서 말합니다. ˝나는사람은 날아야 하고 잡는사람은 잡아야 합니다. 나는사람은 잡는사람이 알아서 해 줄 것을 믿고 양팔을 내밀어야 합니다. ˝ 이 말은 나우웬에게 깊게 각인됩니다. 참된 신뢰는 자신의 것을 모두 내어 놓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을 모두 내어 맡긴 것처럼 말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마지막 발걸음을 이 책을 통해 봅니다. 인생의 마무리가 갑작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참된 공동체가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자유와 신뢰, 공동체, 몸에 대해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살아내고자 부단히 노력했음을 봅니다. 참된 공동체는 자신을 내어줍니다. 그 행위는 상대를 향한 신뢰가 바탕이 됩니다. 비로소 공동체는 비상합니다. 참 자유를 누립니다. 날고, 떨어지고, 붙잡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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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 속의 섬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동훈 옮김 / 고유명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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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무미건조한 말 한마디에

깊은 감정이 배어 나올 때가 있다.



툭툭 내뱉는 말, 거친 행동에

진한 슬픔이 느껴진다.



『노인과 바다』의 출간 이후, 비행기 사고와 오랜 투병생활을 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



쿠바와 여러 섬들을 떠돌며 보냈던 그의 마지막 삶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이 소설에 드러난다.



낚시와 사냥을 즐겼던 만큼이나

작가는 소설 속에서 눈앞에서 보는 듯 낚시와 총 쏘기 장면을 그려낸다.



1부에서는 마치 『노인과 바다』를 다시 보고 있는 듯한 묘사로

거대한 물고기와 소년의 치열한 전투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인생의 고뇌와 상실을

특유의 절제된 문체로 표현한다.



그의 삶과 소설은

매우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냉소적이고 무정하며, 거칠고 마음의 동요가 없는 문체는

어쩌면 그의 가슴에 끓어오르는 수많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실존, 패배와 극복 가운데서의 희망.

소설 속 삶의 통찰은 헤밍웨이를 읽는 또 다른 이유다.



*이 리뷰는 고유명사(@proper.book)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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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보험
한제이 지음 / 느린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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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가 가득한 세상 속에

숨이 턱턱 막혀온다.



우리가 서로를 신뢰할 수 없다면..

그곳은 살만한 곳일까?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가?

서로를 향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신은 누가 심어주었는가?



가속화된 비대면 사회를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혹여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근원적 질문을 해야 할 때인 듯하다.



소설 '좀비보험'은 세 가지 단편을 하나로 묶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서로 연결된다.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도 서로가 공유하는 주제는,

달라진 일상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애다.



사랑이 없어진 그곳에는

서로를 정체 모를 두려움이 움트게 된다.



그리할 때, 수용하고 인정하기보다는

선을 긋고 차별성을 더욱 부각시키게 된다.



몸이 불편해지고, 감정이 손상될지라도

한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 마땅하다.



그 누구도 그 존재를 심판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신뢰와 사랑만이 우리를 붙들 수 있다.



*이 리뷰는 고유명사(@proper.book)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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