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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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이 그립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사랑과 친절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막막하고 차가운 현실이 지속되다 보면 그것이 일상인 듯 익숙해집니다. 누군가에게 말 못 할 비밀이 많아지고, 진실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욱 중요한 덕목이 되곤 합니다.



실제로 '자유'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답답하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나 그 사회의 문화나 분위기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다양한 감정을 발설하고, 그것이 수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의 유무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과 성품은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여기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가정이 있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는 두 가정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감정의 온도차는 그대로 느껴집니다. 존재 자체가 귀하게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는 어떤 실수도 용납됩니다.



아일랜드의 작가 클레어 키건(Claire Keegan)의 작품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작품이 펼쳐지는 배경 묘사는 다채로운 빛을 드러냅니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역동적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절제됩니다. 제한적인 설명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작가의 여백은 독자의 창작으로 이어집니다. 작품에서의 빈 공간을 독자들이 채워갑니다. 그리하여 키건의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함축적인 문장들은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새롭게 다가옵니다. 독자들이 숨죽여 그의 글을 읽게 만듭니다.



이 책 『맡겨진 소녀』는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두 가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 시원한 설명 없이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친척의 집은 어떤 사정이 있는지', '자신은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를 아이는 알지 못합니다.



흐릿하지만 불안과 두려움은 점차 따스함으로 채워집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배려와 친절이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존재가 뚜렷해집니다. 불분명한 경계 속에서도 소녀의 감정은 점차 분명해집니다.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가정이지만 그곳에서도 꼭꼭 숨겨놓은 비밀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같기도 합니다. 마음 한구석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인생의 큰 전환을 가져올 만큼 중차대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건을 어떻게 통과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묘하게도 극적 장면이 적은데 가슴은 조마조마합니다. 키건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 듭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함께 느끼며. 이야기의 소녀가 됩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다 앞에서 뛰어놉니다. 이것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느낌일까 고민해 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짧지만 여운이 오래갑니다. 섬세하고 간결한 문장들의 연속에서 복잡하지 않은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절제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분명하지 않았던 정서의 묘사는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명확해집니다. 독자들은 그 감정선을 함께 따라갑니다. 작가의 다른 이야기가 무척 듣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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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희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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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현실 속에서 무언가 붙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공허하거나 무의미하다고 하더라도 살기 위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믿음'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숨이 막힐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믿는다는 사실 자체의 의미는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맹목적인 이 행위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절실함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이 힘겹다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 『탱크』는 그러한 인간의 신념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화를 전공했던 음악 엔지니어 김희재는 작가의 이름으로 첫 소설을 당당하게 내어놓습니다. 이 책은 장강명과 박서련 등을 소개했던 한겨레문학상의 스물여덟 번째 수상작이며,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당선된 작품입니다.



기도 공간으로서의 '탱크'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실체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공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그곳은 새로운 곳으로 탈바꿈합니다. 외딴곳에 있는 컨테이너는 이제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신비한 곳으로 변화됩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탱크'에 가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현실을 뛰어넘고 싶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하는 끝 모를 좌절과 고통은 그동안의 방식으로는 이겨낼 수 없어 보입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버거운 인생의 끝에 실낱같은 희망을 잡아봅니다.



문제는 생각보다 우리의 상처가 깊고 크다는 것이며,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나의 최선만으로 관계의 실타래는 풀리지 않을 때가 많고, 세상의 장벽은 몇몇의 힘으로 무너뜨리기 힘듭니다. 희망과 절망은 그렇게 묘한 마찰음을 내며 우리와 공존합니다.



작가는 그 누구에게도 비난의 시선을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경계선 위에 위험하게 균형 잡고 있는 인물들에게 예리한 잣대를 내밀지 않습니다. 독자들은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며 각자의 이야기로 스며들어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며, 아픔에 동참합니다.



비록 어떤 결과물이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휘몰아치며 고조되지만, 시종일관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고민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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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마이너리티 히어로 안전가옥 앤솔로지 6
범유진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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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히어로가 되고 싶었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영웅을 꿈꾸었습니다. 세상은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기대했습니다.



이제는 히어로를 고대합니다. 사랑 많고 정의로운 누군가가 영웅처럼 세상을 변화시켜주기를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영역의 사람들도 그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사랑이 많으면 능력이 없었고, 권력이 강하면 온정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영웅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선란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다 안전가옥 출판사와 메가박스가 주최한 공모전 수상 작품집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공모전은 히어로물이어야 하며, 그 히어로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마이너리티 한 존재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선정된 다섯 작품은 각각이 독특하면서도, 큰 틀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섯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한, 아니 오히려 주변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인물입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가진 힘도 볼품없게 보일 수 있습니다. 물에서 숨을 쉰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등의 능력입니다.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존재는 특정한 사건을 통해 사회에 유익이 되는 능력으로 부각됩니다.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존재의 이유를 외부의 변화를 통해 알게 됩니다. 하지만 성장은 고통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열매를 얻는 과정은 눈물과 아픔이 함께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영웅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의 존재가 어떠한지 잘 알지 못합니다. 특별한 사건은 우리를 새롭게 발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연대와 소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 목적이 더욱 뚜렷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다섯 이야기는 작지만 큰 깨달음을 던져 줍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최선을 살아가며, 서로 돕고 함께 할 때 사회는 조금 더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비록 그 과정은 힘겹습니다. 그럼에도 매우 가치 있고 소중합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함께 꿈을 꾸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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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서점 (윈터 에디션) - 잠 못 이루는 밤 되시길 바랍니다
소서림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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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책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가 바로 도서관이나 서점입니다. 두 명의 건축가가 쓴 『도서관 산책자』도 흥미로웠고, 알베르토 망겔의 『밤의 도서관』은 가슴 벅찼습니다. 수전 올리언의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도 책과 도서관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이 진지하고 열린 느낌이라면, 서점은 뭔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미드라잇 라이브러리』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와 같은 소설을 즐겁게 몰입하여 읽었습니다. 『서점의 온도』와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와 같은 에세이도 재밌었습니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매력은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책을 펼치면 시작되는 이야기는 많은 이야기를 재창조할 수 있습니다. 소서림의 『환상서점』도 그러합니다. 작은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큰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와 연결되고 품어냅니다.



환생과 윤회라는 문학적 상상력만 허용한다면 이 소설을 통해 여러 감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표현하는 도구는 투박하고 두려운 존재라면, 그 안의 내용은 따뜻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등장인물들은 매우 냉정할 것만 같은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 속을 헤아려보면 저마다의 온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가는 계속된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초대합니다. 점 같던 이야기는 어느새 선이되고, 서로가 얽히고설키며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마주하다가도, 끝끝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의연함을 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인생에 던지는 질문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읽기 시작하다가 인생과 세상에 던지는 무거운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선택으로 인한 결과에 당당하게 책임질 수 있을까요? 참으로 연약합니다만, 사랑은 포기하기 싫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잔잔하게 힘과 용기를 더해주는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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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별 분식집
이준호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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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합니다. 외로움을 이기기엔 삶이 너무 무겁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놓아주자니 마지막 남은 소중한 기회조차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애써 숨기며 미소 지어보지만 삶은 만만찮습니다. 무엇을 잘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작은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해 보려 하지만 금세 지치고 넘어집니다.



이준호 작가의 『여우별 분식집』은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의 제호를 보여줍니다. 어디 이 소설의 주인공뿐이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실패와 절망으로 무력감을 호소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아스라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최선은 세상의 높은 벽에 초라해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망은 가까이 있습니다. 불현듯 찾아옵니다. 신기하게도 빛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비춥니다. 신비란 그렇게 갑작스레 다가옵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 삶의 전부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세아의 존재와 비슷합니다.



그럼에도 삶이 쉽게 진전되지는 않습니다. 아주 더딥니다. 약간의 희망을 보았지만, 또 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그러합니다. 결국 상황은 영원히 우리 편이지 않습니다. 다시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달라졌습니다. 그 환경에 맞닥뜨리는 나의 존재가 단단해졌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선물 같은 인생입니다. 내 안의 작디작은 방에 갇혀 있다면 나와 주변의 사람은 풍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조금만 더 당신의 품을 허락하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태도와 행동이지만 그것을 통해 다시금 소망을 얻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이 리뷰는 모모북스(@momo_books__)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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