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다시 묻다 - 원점에서 생각과 믿음을 정리하는 한알의 밀알 44
도이 겐지 지음, 가미야마 미나코.홍이표 옮김 / 신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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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독교에 대한 불신을 가까이에서 체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 보입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참 정신대로 살아가기보다 기독교의 탈만 쓴 채 우리의 욕구를 쫓아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참 정신이라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추상적이고 명제적인 단어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있고 대면할 수 있는 기독교의 정신 말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구체화된 언어가 없을 때 우리를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기독교 신학자인 '도이 겐지'는 근원으로 돌아가 기독교를 성찰합니다. 그리하여 이 책 『기독교를 다시 묻다』에서는 기독교인들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근원과 핵심에 다가가고자 노력합니다.



저자는 기독교에 대한 의문과 비판을 학생들에게 직접 들으면서 이 책을 구상합니다. 그러한 소통의 과정 속에서 네 가지의 주제로 기독교를 설명합니다. 이는 '전쟁', '사랑', '신', '신앙'입니다. 이와 같은 주제는 기독교의 교리에서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밀접합니다.



도이 겐지는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또한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의 어두운 면을 새롭게 조명함으로 기독교를 새롭게 파악합니다. 스리슬쩍 교리로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질문과 의문에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의문은 '왜 기독교는 전쟁을 일으키는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여러 가지 오해와 실제적 사실이 교차하여 생기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십자군 전쟁이나 제국주의의 선교는 기독교를 등에 없고 폭력을 자행한 행위였음이 분명합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기독교 자체와 전쟁을 일으킨 주체를 분리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는 한 시대의 한 사회와 결합하여 그 사회를 결집하는 원리로서의 기독교가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합니다. 그 시대의 농축된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폭력이나 전쟁이 기독교의 정신일까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전한 가르침은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회를 뛰어넘습니다. 예수님은 화목과 평화를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삶조차 철저히 비폭력적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예수님은 이웃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규정이나 지침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만남 가운데 '당신'이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서로 대화하고 만나고 감동하며 경계선을 뛰어넘는 행위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게 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강조점이 다른 주제에 스며듭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 실제적이며 구체화된 노력이 모든 관계로 확장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다른 신과의 절대적 차별성은 인격성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과 신의 관계지만, '나와 너'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계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이 지점은 매우 소중합니다. 우리가 모든 담을 헐고 화평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웃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다른 편을 나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더불어의 삶을 위해 변화됩니다.



결국 복음과 하나님 나라는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기독교의 기본이 이 만남과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편협함을 극복합니다. 지위, 입장, 민족 등의 경계를 뛰어넘습니다. 그리하여 너를 만나고, 대화하고, 사랑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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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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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잠기어 있다 보니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보다 근원적인 기쁨,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쁨,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기쁨을 맛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상황에 매몰되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굳건하게 버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제가 이 책을 고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둘러보는 중에 이 책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보통은 신간 한 권, 독서모임 책 세 권을 번갈아 읽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다른 책을 읽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시 책장을 봅니다. 지금 읽을 수 있는 책이 뭐가 있을까 하고요.



그때 피에르 신부의 『단순한 기쁨』만이 눈에 들어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저자이지만, 알고 보니 정말 훌륭하고 매력적인 분입니다. 프랑스인들이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뽑는데, 피에르 신부는 8년 동안 일곱 차례나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상류층 가정에 태어났지만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회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될 수 있는 도미티크회나 예수회가 아니라, 학문보다는 경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민중적 수도회인 카푸친 수련원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피에르 신부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에르 신부는 전쟁 동안에 항독 레지스탕스에 가담했고,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에 엠마우스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50년이 넘도록 빈민들과 노숙자들, 부랑자들과 함께 생활한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세상의 악함과 그릇된 구조악으로부터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었고 치열하게 활동했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는 철저한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가 모색한 해결책은 결국 '사랑'하는 것밖에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피에르 신부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며, 사랑할 때만 진정한 희망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복음을 믿으라'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하고 함께 하며, 섬깁니다. 그러한 진심 어린 사랑이 복음서에서 계속 볼 수 있는 사랑임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합니다.



자유는 매우 소중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사랑을 위해 쓰일 때만 위대합니다. 삶은 어두울 때도 있고, 사람들이 악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랑의 힘을 믿고, 단순한 기쁨을 추구하는 삶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만들어가면서 말이죠.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입니다. 우리 안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의 빛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꾸준하게, 신실하게 우리를 비추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누군가가 그 사랑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빛을 알 수 있습니다. 공허한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해 보는 것입니다.



애통 가운데 희망을 엿보는 요즘입니다. 거창한 무엇인가를 깨달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작은 손길들에 감사합니다. 단순한 기쁨을 찾아봅니다. 찬양과 감사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길 기대합니다.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평안을 누립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과 화목, 기쁨과 빛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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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신앙 - “내 상처를 보고 만져라.”
토마시 할리크 지음, 오민환 옮김 / 분도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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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이상적이고 낙관적이라 어려운 순간에도 희망을 보려 애써 왔습니다. 고통과 고난을 고스란히 견딜 수 있는 힘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슬픔과 불신 가운데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아픔에 전심으로 동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의 깊은 상처를 애써 부정하며 긍정적 기억을 삶의 연료로 삼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예수님의 깊은 상흔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죄의 무게를 홀로 오롯이 감당하셨던 그 고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보다 부활을 삶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아직도 철이 없지만, 인생을 굽이굽이 지나다 보니 우리네 삶이 참으로 복잡다단함을 느끼게 됩니다. 영광과 승리, 성취와 기쁨만이 있지도 않고, 한없는 절망과 고통만 계속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며, 절망 중에 희망이 엿보였고, 고난은 또 다른 연대와 환대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추고 싶었던 상처와 고통이 나누어졌을 때,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들은 우리를 하나 되게 했습니다. 미처 알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나의 상처가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아픔이 되어, '함께'라는 소중한 힘을 얻게 됩니다.



체코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시 할리크(Tomas Halik)는 『상처 입은 신앙』을 통해, 상처 없는 신앙은 환상이며, 신앙의 위기와 의심이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라고 강조합니다. 그저 즐겁고 행복한 승리의 신앙은 우리의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토마스(도마) 사도의 의심은 불신의 모습이 아니라, 참 신앙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고 주장합니다. 어두운 밤을 통과하며 우리는 부단히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한 고통의 순간들은 우리의 상처가 됩니다. 그러한 고통의 증거를 만지는 사람이 참된 부활의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그분을 따라가다 보면 위기가 도래하고,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시작하여, 참 신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찌 어두움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빛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확신으로 가득 찬 신앙은 다른 사람을 정죄할 뿐입니다.



우리 주님은 철저히 고통당하셨고, 상처 입으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자, 소외된 자, 고통받는 자에게 해주는 것이 나에게 해주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상처 입은 자들의 주님이 되어주십니다.



쓰라린 가슴을 부둥켜안고 이제 조금씩 주위를 둘러봅니다. 그동안 존재했지만,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아픔과 상처로 인해 절규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사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상처로 인해 우리는 주님과 이웃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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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아버지 - 예수의 비유 설교
헬무트 틸리케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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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말과 글은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옵니다. 그 언어가 우리의 일상을 잘 묘사한다면, 더욱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삶과 잇대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더더욱 분명한 메시지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흩날리는 글, 탐욕을 부추기는 글, 현란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언어가 난무합니다. 그 가운데 진주를 찾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작가나 설교자를 찾습니다. 마음을 다하며 연구하고 분석한 텍스트를 아름답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위대한 설교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신학계에 두각을 나타낸 틸리케는 실제로 반(反) 나치 고백교회 운동에 가담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글과 말은 살아있고, 예리합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비유를 "하나님의 그림책"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이 책의 독일어 원제가 "하나님의 그림책"입니다. 틸리케는 비유가 어려운 비밀로 우리를 이끄는 힘이 있다 말합니다. 청중은 듣지만, 바로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밝히지 않고 감추며, 열지 않고 막습니다.



우리 안에만 머무는 이야기는 우리를 가두어 놓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도 없으며, 제대로 된 방향을 설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틸리케는 "피조물을 묘사한 그림책은 우리를 피조물의 내적인 자기 성찰 안에 감금"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를 아버지께로 안내합니다. 명확하게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세상에 빛을 비추어줍니다. 그제야 모든 것이 분명한 이름을 얻게 됩니다. 닫혀있던 것이 열리게 되고, 비밀스럽던 것이 구체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우리는 이름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언어와 세상의 이미지를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입니다. 철저하게 낮아지셔서 우리를 배려하십니다.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줍니다. 따뜻함을 줍니다. 어렵지 않고 쉽게 우리에게 확신을 선물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시끌벅적한 세상의 무대에 서게 됩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보게 하십니다. 인간의 연약함, 죄로 가득함을 만나게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였음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틸리케의 설교는 독특합니다. 기존에 알았다고 생각하는 본문을 새롭게 만나게 합니다. 너무도 자주 읽고, 설교를 통해 들었던 예수님의 비유가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면을 보여줍니다. 똑같은 본문이라 하여 그것이 동일한 메시지를 던져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내면의 상태에 따라, 혹은 관점의 차이에 따라 본문은 여러 말을 합니다. 틸리케를 따라 성경을 읽다 보면 매우 낯설게 본문을 보게 됩니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실존과 맞닿습니다.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동안 깊숙하게 감춰두었던 나만의 비밀을 꺼내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나의 겉모습이 아닌 참 자아, 진정한 존재와 대면할 수 있게 만듭니다.



틸리케의 설교는 묘한 매력과 힘이 있습니다. 말씀 앞에 우리를 서게 만듭니다. 허황되고 이상적인 무엇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실제적인 고민에 빠지게 만듭니다.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설교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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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신학
John Koening 지음, 김기영 옮김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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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같은 인생입니다. 붙들었다 생각할 때 이미 저만치 멀리 가 있습니다. 기쁨의 순간은 찰나입니다. 슬픔은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이 시간 이곳에 안주하고 싶을 때, 또 다른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떠밀려 움직이는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환대입니다. 그 어떤 것도 따지지 않는 활짝 열린 품입니다. 냉담한 세상에서 가장자리에 밀려난 우리지만,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낍니다. 예상치 못한 환대는 차가워진 마음에 불을 지펴줍니다.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줍니다.



실패의 공간, 눈물의 시간은 환대의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그곳에 함께 함이 있습니다. 잔잔한 웃음이 있습니다. 처절하게 홀로 울었던 시간은 이제 부둥켜안고 함께 울어주는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고통과 아픔은 그저 좌절과 포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연대를 허락합니다.



점처럼 흩어진 시대. 각자의 삶이 공동의 대의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다 보니 타인의 아픔이나 상황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웃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환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성경에서 줄곧 강조하는 환대가 우리에게 절실합니다.



존 퀴니그(John Koenig)는 신약성경에서 '환대'라는 주제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윤리에 있어 중요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의 사역, 바울의 선교, 누가-사도행전에 나오는 초기 공동체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환대'와 '나그네와의 교제'에 대해 강조합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그네인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안아주십니다. 사랑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나그네를 사랑해야 합니다. 맞아주어야 합니다. 따뜻하게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우리들에게 나그네를 환대하고 대접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매우 신비로운 일은 나그네를 영접하였을 때 빈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이라도 나그네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역동이 주워집니다.



교회의 가장 큰 세 축제는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절기는 나그네로 오신 그분을 맞이하는 시간입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엠마오로 가는 길에 나타난 그분, 성령의 바람. 이 모두 신비로운 방문자요,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물해 주시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맞이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십니다. 하나님의 풍부하심은 우리의 품을 넓게 만들어줍니다. 그리하여 깨어지고 분리된 사회를 하나 되게 하며, 화해하게 합니다. 우리는 환대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그곳에서 진정한 축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워진 우리는 나그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어떤 불평등과 소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온 나그네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로를 접대하고 환영할 때에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며,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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