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왕의 복음
매튜 W. 베이츠 지음, 이학영 옮김 / 도서출판 학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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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은 통찰을 이끌어 냅니다. 가끔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우문(愚問)이 현답(賢答)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리한 질문은 새로운 시각을 허락합니다. 질문을 바꾸면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던집니다. 그 대상을 정의하고 개념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가치와 사상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뒤따릅니다. 그러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조차 천차만별(千差萬別)이 됩니다.


한 단어에 대한 정의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모호해진다면 질문을 한번 바꾸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무엇'에서 '왜'로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서 그것이 '왜 필요한가?'로 바꾸어보면 '무엇'에 대한 대답도 훨씬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오직 충성으로 받는 구원』의 저자 매튜 W. 베이츠(Matthew W. Bates)는 이 책 『예수 왕의 복음』에서 그동안의 복음 이해에 새로움을 더할 수 있는 색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복음이 무엇인가'에서 '왜 복음이 필요한가'라고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왜'라는 질문이 주는 유익은 '의도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복음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복음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복음이 너무도 필요해서일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복음이 필요할까요?


이렇듯 질문을 살짝 바꾸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많습니다. 여전히 복음이 우리에게 의미 있습니까? 복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인가요? 여전히 '복음'은 영향력이 있나요?


저자는 빙빙 둘러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저자는 복음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35)."


복음은 왕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서 기자들이 반복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자주 부르기에 마치 호칭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단어에 담긴 뜻은 복음의 내용과 의도를 포괄합니다.


'그리스도'는 그저 이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요구이자 주장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확언입니다. 기름 부은 받은 자로서의 예수는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선지자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입니다. 메시아의 통치는 우리에게 정의와 평화, 화목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 땅에 온 이유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곧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왕권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보냄 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복음서 기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사도들의 메시지는 달랐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의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이며, 사도들의 메시지는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사도들의 메시지를 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강조한 본문을 들여다봅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다는 그 본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선순위는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일들을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사도들이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이 복음의 틀이기에 이것을 전제로 하여야만 십자가와 부활 또한 온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궁극적인 목적을 향한 과정이며 사건입니다.


우리가 왕이신 예수님의 복음에 합당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에 믿음과 충성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은 관계적이며, 능동적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신실하게 충성을 표현하는 몸의 행동이자 의지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렇듯 전인격적이며, 지속적인 응답이자 반응입니다.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았던 복음, 한쪽 측면만 강조된 복음 등 기형적인 복음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이 나쁜 복음, 왜곡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의 진리를 지니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도 내포한 복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안에 왕과 이야기, 충성 등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한 복음은 복음의 목적을 재조정합니다. 그리하여 보다 포괄적이고 품 넓은 복음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을 선언하여, 인간과 피조 세계,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에 영원히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회복은 목적이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것에서 벗어나 모든 것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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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경이로움에 관하여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논문과 설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지음, 박규태 옮김 / 감은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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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온갖 염려와 불안,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마치 우리를 소유한 듯 대하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우리를 좌지우지하려고 합니다. 당연하다 여기니 미안함이나 고마움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평온함을 누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신중하지 못한 사용으로 인해 그 자체의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과 자비, 겸손과 통찰, 영혼 등의 언어는 본래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탐심이 가득한 우리들은 이러한 용어들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온갖 목소리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벼움을 부추기는 기회주의자들 또한 많습니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말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하지만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있는 존재는 한 마디를 하더라도 진중합니다. 그 문장에는 깊음과 따뜻함, 예리함이 있습니다.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했습니다. 스스로 가난해지기 원했고, 철저하게 낮아졌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현실의 고통 가운데서도 그들은 그것을 뛰어넘는 영혼의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추구했습니다.


중세의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그러한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신선한 통찰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깊이 있고, 차원 높은 해석이나 적용을 당대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1329년 교황은 칙서를 통해 에크하르트의 설교 가운데 28개의 문장에 이단성이 있다고 공표합니다. 제4부에 그 문장들이 따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었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깊이 통찰할 때 복을 누리게 됨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실상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통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에크하르트는 높은 통찰에 이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참된 순수함에 다다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통찰을 통해 우리는 더욱 높은 신앙으로 나아갑니다. 신앙은 의지 속에서 열매를 맺고, 의지는 신앙 속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선순환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점점 온전함을 향해 나아갑니다.


에크하르트는 성경을 묵상하고 읽으며 가장 최고의 덕이 무엇인지를 찾았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발견한 최고의 덕은 '초탈'입니다.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순수한 초탈은 영혼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킵니다. 심지어 사랑과 겸손, 자비보다도 초탈이 더욱 훌륭한 '덕'임을 저자는 논증합니다.


그러한 '통찰'과 '초탈'을 중심에 둔 성경해석은 말씀의 지경을 새롭게 넓혀줍니다. 우리의 약함과 무지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축소하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통찰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해주며,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열려있게 합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통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초탈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말씀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초탈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완전하심 속에 만물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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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 성서비평의 빛에서 바라본 신약성서
루돌프 불트만 지음, 이동영 옮김 / 지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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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기 위해 '너'와 선을 긋습니다. 더 이상 감정적 소모는 여러모로 유익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관계의 영역에서 적당한 선은 꼭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상대방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가 없는 사람에게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서로를 위해 유익합니다.


배움의 영역은 다릅니다. '나'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너'에게 '나'를 개방해야 합니다. 기존에 내가 이해하고 동의한 사실만을 답습한다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의 사상을 더욱 확고하게 할 뿐입니다. 어느 정도는 다르거나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것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자라납니다.


기존에 구축했던 나의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전체적인 그림에서 보면 분명히 배울 점이 존재합니다. 방향성이나 문제의식을 배울 수도 있고, 세부적 각론에서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통찰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혹은 그의 방법론이나 논지를 이끌어 나갈 때의 논리 등 배울 것은 무한합니다.


'나'를 열어두지 않으면, '나'는 지속적으로 축소됩니다.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보류할 것은 무엇이며,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대화가 필요합니다. 책을 통해 그 사람과 그의 사상을 만나, 대화를 해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은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신학자 중에 한 명입니다. 그는 다양한 신학을 종합하고, 자신의 일관된 신학을 새롭게 체계적으로 구축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논의에는 당대의 철학과 신학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이 책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는 불트만이 미국에서 강의한 내용을 출간한 것입니다. 그는 대중들을 위한 강의였기에 그의 신학을 최대한 쉽고 평이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그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입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불트만은 과학 실증주의의 세계관 가운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실한 형태의 신앙과 말씀이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교리적이고 추상적인 형태의 사상을 통해서는 실제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지금 현재 여기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나의 실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나'와의 직접적인 만남이 있어야만 그것은 '관념'이 아닌 '사건'이 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만남이라는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이해되며, 일깨워집니다.


결국 우리에게 이러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실존 속으로 들어오는 경험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붙드는 것입니다.


신앙을 통한 하나님을 향한 확신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줍니다. 현대 사회는 마치 자신들이 자유를 줄 수 있는 것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속에 늘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합니다. 불트만은 이를 공허한 자유라고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어집니다. 성령의 법(하나님의 법)을 통한 자유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팍팍한 현실 가운데 동떨어져 계신 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현재에 대한 해석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불트만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들 가운데서 신앙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적이고 우연적인 현상들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 속에서 발생합니다. 다름 아닌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을 통해 종말론적인 성취를 이루십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종말론적인 실존으로 살아갑니다. 선포되는 말씀은 지금 여기에서 현존하는 사건으로 말씀이신 그분을 만나게 해줍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불트만과의 만남을 갖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했습니다. 지금 현재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대면하게 합니다. 역자인 이동영 교수와의 만남(해제)을 통해 적절한 균형을 찾는다면, 지금도 여전히 불트만의 신학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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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기독교 교양 - 기독교를 읽다 기독교와 잇다
손성찬 지음 / 죠이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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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그릇된 정보는 다양한 오해를 낳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의 언행이 그 종교는 아닙니다. 기독교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기독교와 관련된 통합적인 정보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꿰어내어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매우 많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기독교를 가리킵니다. 성경이나 역사, 신학, 교회, 그리스도인, 윤리 등은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다채로운 변주 가운데서 우리는 전체를 아우르는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기독교의 본질과 마주하게 됩니다.



기독교를 정의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매우 방대합니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믿음'의 요소가 곳곳에 내재되어 있기에, 신앙고백적 언어가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거리를 두어 저술하되, 기독교를 가장 적실하게 변증하려는 사랑의 마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놀라운 작업을 이 책 『모두를 위한 기독교 교양』의 저자인 손성찬 목사가 해냅니다. 기독교를 알지 못하는 사람, 오해가 있었던 사람, 기독교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기독교를 풀어냅니다.

기독교 자체를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종교와 비교하기도 하며 입체적으로 기독교를 보여줍니다.



저자의 폭넓은 독서와 진리를 향한 갈망을 이 책에서 발견합니다. 성서학, 조직신학, 교회사, 기독교 윤리 등 신학 전반을 아우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철학과 역사, 정치와 경제, 한국사 등의 지식들도 유려하게 통합됩니다. 기독교의 텍스트는 당대의 컨텍스트와 절묘하게 조화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는 저자가 평소에 갖고 있던 타인을 향한 공감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질문을 품에 안고 싸웠던 흔적입니다. 그러하기에 둔탁하고 거친 정보들의 나열로 그치지 않습니다. 저자의 방대한 글에는 따뜻함과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있습니다.



성경이나 역사, 현실에서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질문들로 남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굵직한 문제들에 세세하게 답해줍니다. 실수나 한계를 인정하면서, 더 깊은 믿음의 단계로 초대합니다.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장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나와 너의 이해와 더불어 우리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 포함됩니다. 이 책은 대화를 위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알려줍니다. 기독교에 입문하기 위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사실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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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플렉스 - 복음의 부요함을 과시하라
신동재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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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습니다. 현실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하다 말합니다. 자신을 더 많이 챙기라고 속삭입니다. 주변을 둘러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밝게 웃으며 행복한 듯 자신을 뽐냅니다.


이내 우리는 더 깊은 좌절에 빠집니다. 많은 사람이 겪는 어려움이라 생각하며 힘을 내고 있었는데, 홀로 겪는 고통 같기 때문입니다. '나'만을 외치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너'의 자리가 사라지니, '우리'의 행복은 묘연합니다. 저마다 '나'의 행복만을 말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말입니다.


어느새 우리의 기도는 '나'의 행복을 위한 주술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복을 빌어주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설교와 교제에서조차 세상의 소리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버젓이 자신의 세속적 가치를 드러내는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보다도 다른 사람의 이름이 더 많이 오르내립니다.


진정한 복음이 이러한 것이었나 질문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가 이토록 가벼웠었나 되물어봅니다. 주님의 걸음과 손짓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가치와 다른 복음, 참으로 좋고 기쁜 소식인 복음의 온전한 회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진정한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갈등했던 이 책 『진정한 플렉스』의 저자 신동재 목사. 그는 자신의 삶을 관통했던 참 복음이 이 땅에 울려 퍼지기를 고대합니다. 더딘 걸음이었지만 매 순간 자신을 찾아오셨던 주님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진정한 복음임을 외칩니다.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저자의 복음 이야기는 당시의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우리에게 허락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역사의 한 페이지와 같습니다. 한 사람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켜 놓기 때문입니다. 온전함에 이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삶의 획기적인 순간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온전한 모습, 변화된 삶만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한 사람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조차 말입니다. 먼저 거기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존재를 철저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나의 방법과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요.


'나'와의 정직한 대면은 주님을 만날 때 시작됩니다. 사색이나 명상으로도 가능할 수 있겠지요. 흐릿하게 자신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은 됩니다. 하지만 복음과의 만남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입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기준 자체가 달라집니다. 모든 것은 이제 거룩한 하나님과의 관계로 결정됩니다.


저자는 결정적인 주님과의 만남을 풍성하게 묘사합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가져다주는 전인적인 변화를 극적으로 전해줍니다. 우리의 나음은 육체적인 것을 뛰어넘습니다. 내면을 충족시켜주며, 사회적인 소외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합니다.


결국 복음을 통해 '나'를 뛰어넘어 '너'를 기억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우리'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복음은 죽었던 우리를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은 부요한 것입니다. 없었던 것을 있게 하고, 끊어진 것을 이어지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바꿉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삶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눈빛이 변했고, 열정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생동감 넘치게 살아갑니다. 부요한 복음을 통해 우리는 새로워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복음을 자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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