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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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노는 가난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수습되어 버린다."

회사에서 매일보던 동료가 회식자리에서 졸피뎀을 섞은 음료를 그녀에게 권하고 잠이 들자 그녀를 등에 업고 모텔로 향한다. 다행히 이를 의심한 모텔의 여사장의 신고로 미수에 그쳤지만 유부남인 그놈은 피곤한 그녀가 잠을 푹 잘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대었고 재판에서 벌금형을 받는다.

이 소설은 그 사건이 중심이 아니다. 그 후로 일어난 수경의 삶과 그 가족의 삶이다. 15평의 방 두칸짜리 아파트에 모여사는 가족들- 청소일을 그만둔 어머니, 사기로 전 재산을 날린 아버지, 회사를 관두고 전업투자자라며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 남편의 형이 실종으로 함께 살게 된 조카 준후와 지후, 그리고 사건을 겪은 후 대인기피증으로 집에만 있는 수경. 이 가족이 삶의 문제를 극복해가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답답하게만 보이는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 다정하다. 각자 과거의 사건으로 움직임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며 현실속의 그들의 삶은 여유가 없고 치열해도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 존재였다.

책의 제목인 헬프 미 시스터는 여성을 위한 생활 밀착 편의성 서비스의 앱이다. 오로지 여성만을 위한 이 앱을 통해 주인공 수경과 그녀의 어머니가 지난동안의 지지부진했던 삶과 사건 이후의 후유증을 극복하며 다른 삶을 살기위해 노력한다. 그들이 앱을 기반으로 일을 하는 현실이 전보다 안정적인지, 얼마나 불안정한지 사실은 아리송하기만 하다.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더이상 이상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세상이다.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앱에 의지하여 새로운 직업을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음식배달, 택배, 대리운전 등의 앱을 통해 이루어진 직업은 근로자를 사업자라 칭하고 고용주를 중개자로 둔갑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점을 들어냈다. 책에서도 플랫폼을 통해 일하며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며 환호하기도, 앱의 노예가 된 듯한 느낌에 절망하기도 하는 순간들이 교차한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노동의 형태에 대해서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감동하는 경우는 있어도 울컥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별스런 위로의 말이 아니었는데도 이웃이 수경에게 해 주는 이야기에 울컥했고 눈물이 조금 차올랐다. 불안하기만 한 현실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을 찾고 있는 내용이 내 마음까지도 따스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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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연습 - 돌기민 장편소설
돌기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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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책을 읽을 때 다음 문장으로 곧바로 넘어가지 못하고 읽었던 문장을 반복적으로 읽고 또 읽을 때가 있다. 그건 거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나타나곤 하는데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느닷없이 별다른 준비없이 책을 읽겠다고? 이런 물음에 대한 내 태도인지, 이 책엔 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인지. 어쨌든 이 책 첫 페이지의 노골적인 단어 때문은 아니다.

아아, 이책 뭔지 잘 모르겠다. 같은 자리에서 읽자마자 또 다시 읽어야 했던 책은 처음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중요한 걸 읽으면서 알아차려야 했다. sf에 속하는 내용인지도 사실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책 중에서 정말 묘하게 빠져들고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소설 속 무무는 외계인이다. 무무라는 이름을 보고 영화의 친근한 ET를 떠올리면 안된다. 무무는 인간을 먹기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이족보행이라는 아슬아슬한 보행연습을 하면서 인간처럼 보이도록 스스로 개조한다. 이것은 마치 우주괴물인 무무가 비장애인처럼 보이기 위해 지구라는 사회의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이분화된 인식에 촛점을 맞추고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연민을 느끼기 어려운 몰골이었습니다. 다들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네가 조금만 덜 역겨웠다면 발벗고 도와줬을텐데."

그래서 무무는 자신의 몸의 형태에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면서까지 미남,미녀로 바꾸며 외모에 집착했고 그런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인간사냥에 나섰다. 자신의 본 모습을 알아봐주지 않는 인간들에게 경고했지만 오랜기간 무무는 외로웠고 그래서 끝내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기준을 들먹여 나를 재단했습니다.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내느라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했어요. 내 결론은 기준따위는 없다, 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기준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당신은 하나 이상의 인물을 절절히 연기하며 살아갑니다. 당신에게 동의없이 주어진 배역은 꼬리표처럼 몸에 부착돼 있습니다. 죽기 전까지 뗄 수 없습니다. 죽어서도 뗄 수 없습니다. 꼬리표는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거든요."

이 소설은 국내 출간 전 영미권에 먼저 판권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으로 작가님을 처음 알았는데 완전 독특한 소설이었고, 그의 모든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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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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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이 참 인상적인 그래픽노블.

책속의 세명의 주인공인 일러스트레이터, 시간강사, 무명작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젊을을 저당잡히고 시간을 써가며 자신이 가진 재능과 비용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견디어 나간다.
삶은 제자리에 있거나 매일 뒤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고 일상에 치이고 타인에 의해 무너져도 그녀들은 담담히 살아나간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
아마도 자신에게 주문을 외우는 걸까.
나는 아무렇지 않다.
나는 살아가야 한다.
나는 앞으로 나가갈꺼다.

그래픽 노블인만큼 그녀들이 마주하고 있는 무력한 삶에 대한 표현이 그림으로 적나라하게 콕 박힌다. 여전히 그러한 무례와 실패를 경험하는 그녀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아파도 결정을 내리고 씨익 웃고있는 그림에 안도하기도 했다. 그 미소짓는 얼굴은 수많은 이유와 합리화로 재능을 잠시 내려 놓았다 하더라도 마음에 품은 꿈은 언젠간 펼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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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강혜빈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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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점>

너무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다...

나 너 우리 이것은 문장을 엮는 마법
뽀족한 것을 보면 눈을 감는 습관이 있다
다음 생엔 인간을 물지 않는 짐승으로 태어나렴
싫어요
가득 베어 물 때 얼마나 잇새가 시원한지 몰라
:
:
ㅡ백은선.

책에서 좋았던 시의 구절이다♡
일단 나는 '시집'이라면 멈칫한다. 시를 싫어해서가 아니고 두렵고 불안해서다. '아아 이 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러면서. 시어에는 함축적인게 있어서 그 너머에 무슨 뜻이 숨겨져 있는지까지 알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읽고나면 엄습하는 기분, 과제를 잘못한것 같은 개운하지 않은 마음이 나를 사로잡는다. 시집을 하루만에 다 읽는다는 것에도 왠지모를 죄책감이 생긴다. 너 글씨만 읽었구나? 뭘 느끼기라도 했니? 누군가 물어볼 것만 같다.😅😂

그런데 잊지 않았지.
전에 안희연 시인님 라방에서 했던 나의 질문에 시인님이 이렇게 말했었다. 논리적으로 알아채려 하지말고 그때 그 시간, 그때 그 감정대로 느끼라던 이야기.

홀로 점심을 먹는 게 때로는 외롭다면 시집 한 권 곁에 두고 점심도, 시도 맛있게 먹어보자. 여전히 어렵지만 봄이 오는 반가운 소리에 시를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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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
강지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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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어떤 의미인가요?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질문을 나에게도 해보았다. 나에게 점심이란 약속을 하고 밖에서 먹을 때가 아니면 집에서 혼자 밥을 챙겨먹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럴때 아침과 점심의 경계는 모호하다. 세끼를 다 챙겨먹는게 왠지 하는 일 없이 밥만 먹고 있나 싶기도 하고 사실 그다지 배고프지 않아 12시를 전후로 아침과 점심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그렇다면 이름지어야 하는 일인가, 점심이란.

이 책은 10인의 작가 그리고 각각 5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글을 읽으며 우리의 점심은 그저 음식을 섭취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시간과 감정과 공간을 함께 또는 홀로 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명의 산문은 비슷한듯 다르다. 모든 날의 점심이 그러하듯. 어느 글은 잔잔하게 가라앉아 마음을 정화시키는가 하면 또 어느 글은 킥킥 거리며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작년 이맘때에 보았던 영화 <패터슨>에서 버스기사인 아담 드라이버의 평온하면서 담담한 일상이 생각났다. 그 일상속에서 때때로 시를 쓰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매일 비슷한 일상으로 단조롭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는데 점심도 그런 것 같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시간.

여러 산문중에서 황유미 작가의 <어른의 귀여움>은 정말 귀여웠다.

"어른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함부로 감동하거나 눈물을 쉽게 흘리는 어른은 어리숙해 보인다. 나는 가끔 어른력이 최대치에 다다른 어른중의 어른이 어른스럽지 못한 초급어른에게 감화되어 무너지는 광경을 보며 귀여움을 느낀다."

반백년을 산 어른중의 어른이 된 나는, 사실 매일 어른스럽지 않다고 느끼곤 하는데 이 글을 읽고는 앞으로도 그러고 싶었다. 뭐 어렵지는 않은 거 같다. 지금처럼 살면 되는것 아닌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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