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들은 동전 한 닢 달라고 애원하는 법이 없었고, 아이들은 몇 시냐고 묻지 않았으며, 스크루지의 인생을 통틀어 남자든 여자든 이런저런 장소로 가는 길을 알려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맹인의 개조차 스크루지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스크루지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면 제 주인을 문간이나 안뜰로 끌어당기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앞 못 보는 주인님, 사악한 눈을 갖느니 차라리 눈이 없는 편이 나아요!"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스크루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인생길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인간적인 동정심 따위는 저 멀리 물리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 P14
"진심이고말고. 메리 크리스마스라니! 대체 무슨 권리로 즐거워하는게냐? 즐거워할 이유라도 있어? 찢어지게 가난한 주제에" 그러자 조카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삼촌은 무슨 권리로 우울해하시는 거예요? 우울해할이유가 있으세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자시잖아요." 스크루지는 당장 그럴싸하게 대답할 말이 없어 다시금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허튼소리!"라고 덧붙였다. "언짢아하지 마세요, 삼촌!" "그럼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바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사는데 말이다! 즐거운 크리스마스라니! 빌어먹을 크리스마스라면 모를까! 크리스마스란 게 돈도 없는데 청구서 대금을 지불하는 때가 아니냐? 나이나 한살 더 먹지, 한 시간 전에 없던 돈이 생기기라도 한다더냐? 장부를 결산하려고 보면 일년 열두 달, 적자가 아닌 항목이 없지!" 스크루지는 발끈하며 말을 이었다. "내 맘 같아서는 그냥,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주절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바보천치들은 저 먹을 푸딩이랑 같이 푹푹 삶고 심장에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냅다 꽂아서 파묻어 버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싸지!" - P16
"인간의 아이들이다. 제 아비를 떠나 나에게 매달리며 애원하고 있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무지‘이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빈곤‘이다. 이 둘을조심하고 이들과 비슷한 것들을 모두 조심하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남자아이를 조심하라. 이마에 쓰인 ‘파멸‘이라는 글자가 내 눈에는 보인다. 이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다면, 주의하라! 이것을 거부하라!" 유령은 도시를 향해 팔을 뻗으며 외쳤다. "너희에게 이렇게 경고해 주는 이들을 욕하고 싶으면 마음껏 욕하라! 당파적인 목적을 위해 무지를 용인하라! 그리하면 곤경에 더더욱 빠져들리라! 그리고 종말이 다가오리라!" - P118
"미래의 유령님! 저는 지금껏 만난 어떤 유령보다도 당신이 가장 두렵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도움을 주러 오셨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유령님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제게 무슨 말씀이든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 P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