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십시오.」
오래도록 시달린 끝에 마침내 자신의 결말에 도달한 얼굴.
부디, 저먼 별들을, 모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미는 알고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는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이즈미를 죽이지않으면 그의 영혼은 영원히 꼭두각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칼자루를 꾹 눌러쥐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생명을 죽인다.
이기적인 검이 움직였고, 뭔가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 P183

나는 죽을힘을 다해 이현성의 다리를 다시 움직여 앞으로조금씩 나아갔다.
이제 세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제길, 너무 뜨겁다.
고통에 또 한 번 무릎이 꺾이는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자 씨. 제가 하겠습니다.
이현성이었다.
‘제가 해야 합니다.‘
[강철의 의지가 당신에게 반응합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나는 ‘독자‘다. 그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298

그것을 아는 이현성은 자신을 희생해 정희원을 위한 벽이되고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세상을 대신해 그녀의 분노를 감당하겠다는 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언어로는 담지 못하는 정희원의 마음에 이현성의 차가운 금속이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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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내가 바라는 결말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은 불가능을 하나씩 가능으로 바꿔나가다 보면,
언젠가 불가능한 결말도 가능한 결말로 바뀔지 모른다. 그리고 신유승은 그 불가능한 이야기의 초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P19

유중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신유승의 얼굴이 점차 의구심으로 물들어갔다. 한참을 침묵하던 유중혁이 짓씹듯 말을 이었다.
"나의 동료다." - P108

「...... 정말, 그래도 된단 말인가?」「그런 이유로, 내가 계속.」「이 세계를, 포기하지 않아도…어떤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어떤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언젠가 구원받는 날은 온다.
나는 신유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신유승, 이제 이곳이 너의 새로운 ‘회사‘야."
독자였기에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고, 독자이기에 이제 바꿀 수 있었다.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 P148

나는 재앙 신유승을 바라보았다. 악인화가 진행되어 육체통제력을 잃었음에도 눈에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 괜찮아. 나를 죽여줘.」누가 그 눈을 보며 검을 휘두를 수 있을까.
천 년의 세월을 헤매고 또 고통받은 존재.
나는 이제 그녀를 베어야 했다.
이것이 이야기를 바꾸는 데 실패한 대가……….
나는 처음으로 멸살법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워졌다.
"두눈 똑똑히 뜨고 지켜봐라."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게 너희가 원한 시나리오니까."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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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독자씨랑 똑같아. 우리 같은 QA팀이었잖아. 다른 부서에서 우리 어떻게 봤는지 기억하지? 겨우 게임 테스트나 하는 스펙도 없는 싸구려 인력이라고."
"독자 씨. 지금 저기 갇혀 있는 놈들 정말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잘 봐 우리 무시하던 그 새끼들이야."
철창 안, 미노 소프트 직원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내가잘 모르던 사람들. 마찬가지로 나를 잘 모르던, 혹은 몰라도상관없던 사람들.
"이제 다 끝났다고 재무팀이든 기획팀이든 뭐든 간에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유리한 건 우리 QA팀이야. 하하. 독자 씨도 버그 테스팅 오래 했으니 잘 알잖아? 이 세계는 게임이야.
버그투성이인 게임. 너무 허점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거든."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무수한 성좌들의 메시지. 못하더욱 자극적인, 더욱 음탕한, 더욱 잔인한 이야기를 원하는메시지가 윤 대리의 얼굴 위에 조용히 겹쳐졌다.
P어떤 열등감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 P30

희미한 절망이 그들의 동공을 스쳤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냉정한 처사 같아도 결국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

사람들이 허겁지겁 떨어진 아이템을 줍기 시작했다.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들의 눈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순간 도깨비가 왜 나를 이곳에 데려다는지 이해했다.

조금 전까지 피해자이던 사람들이 서로 병장기를 겨눴다.
어느새 가해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이 왕이 없는 세계다. - P39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난 어디까지나 사람이란 한 면만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뜻밖의 이야기여서 잠시 한수영을 올려다보았다. 한수영이쿨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아무리 내 작품을 표절이라고 우겨도 사실 내 작품이멸살법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말이야."
"...... 그 말만 안 했어도 거의 설득될 뻔했는데, 아깝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뜻밖의 화두에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졌다.
TAM유중혁은 어떤 인간인가 나는 정말 유중혁‘이라는 존재를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는 자신 있게 대답할수 있었다. 나는 멸살법을 다 읽은 유일한 독자니까.
그런데 익어가는 재료를 보는 동안, 어쩐지 내가 갖고 있던대답의 일부가 수프 속에 섞여 희석돼버린 느낌이었다.
정말 내가 아는 ‘유중혁‘이 ‘유중혁의 전부일까? - P132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였다면 이 모든 여정을 시작하지도 않았겠지.
40정말 오랜만에, 멸살법을 처음으로 본 그때의 감정이 떠올랐다. 어쩌면 한수영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줄곧 잘 안다고 믿은 건 쉽게 포기하고 쉽게 사람을 죽이는 숱하게 비극을 반복하며 정신이 닳아버린 상태의 유중혁이었다.
하지만 3회차의 유중혁은 아직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3회차의 유중혁에 대해 잘 모르는지도 모른다. - P144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다. 이설화를 죽였더라면, 혹은 리카온과 합세해 앤티누스를 죽였더라면, 네놈은 재앙을 막을수 있었어.
변명을 하려면 못 할 것은 없었다. 이설화를 죽이지 않은 것은 유중혁 때문이었고, 리카온과 합세하지 않은 것은 끼어들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난 너 같은 회귀자가 아니야. 실패하면 끝이니까 신중할수밖에 없다고, 끝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않으면・・・・・・.
-신중? 건방 떨지 마라. 네놈이 성좌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미래를 좀 안다고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 명치를 세게 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 P221

나는 스킬을 선택했다. 다음 순간, 내 몸속에 은빛 폭풍이불어닥쳤다. 웅흔한 늑대의 용맹이 몸 안에 깃드는 것이 느껴졌다.
빌어먹을. 나는 바보였다.
왜 지금까지 이걸 배우려고 했지?
나는 회귀자도 귀환자도 아닌데.
[등장인물 ‘이뮨타르의 왕자 리카온이 4번 책갈피에 등록됐습니다.][4번 책갈피가 활성화됐습니다.]
나는 독자다.
[‘바람의 길 Lv.8‘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싸우는 방식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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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중전의 말대로 그 계집은 아직 어리지요. 채 피어나지도 않은 꽃봉오리니."
권보경이 그 말에 희망을 품고 있는데,
"그래서 꺾어야 하는 것입니다."
권인교가 손가락 사이에 낀 꽃의 꽃대를 툭 꺾어버렸다.
‘피어나기도 전인데 지금도 전하를 이리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만개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중전은 저한테 하나 더 배워야겠습니다.
절망으로 얼룩진 권보경의 얼굴을 보며, 권인교는 꽃대 부러진 꽃을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밟고 비볐다.
"꽃 꺾기는 가장 화려하게 피기 전에 하는 거랍니다." - P150

"기생이 왜 기생인지 너는 모른다."
아무리 타일러도, 기어이 깨지기 전까지 자신이 뭘 잘못한줄도 모르는 철부지. 그래도 그것이 제 손에 들어온 이상 어찌어찌 살아갈 구실은 마련해줘야 한다. 그것이 예운관에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궁기이자 위에 올라선 진향의 책임이고의무였다.
"네 말대로 기생은 거의 모든 것을 가졌다. 천한 출신이면서도 비단 옷을 입고, 양반의 아녀자들도 할 수 없는 보석을 끼고, 선비와 대담(對談)을 나눌 만큼 학식이 풍부하고, 풍류를지."
여인의 몸으로 그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기생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어린 것들 중 착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
가장 곱고 화려한 자신들이 가지지 못할 것은 없다고.
"그 많은 것이 왜 기생에게 허락되었겠느냐?"
참으로 바보 같은 착각이었다.
"기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꽃이기 때문이다."
비단 옷과 장신구를 아무리 걸쳐도 존경받지 못한다. 학식을 아무리 쌓은들 과거시험을 칠 수 없다. 풍류를 읊은들 실제로는 그처럼 살지 못한다. 같은 맥락으로 사내를 흘려도 그사내를 가질 수 없다. 재물을 모은다고 하여도 비단옷이나 장신구를 살 뿐이다.
모든 것이 주어진 것 같으나, 그것을 쥘 수 없는 것이 기생이다. 그렇기에 그 많은 것을 가질 있도록 허락된 것이다. - P185

당신도, 나도 서로의 가슴에 씨앗을 심었구나. 
우리는 서로의 꽃을 피웠구나………. - P271

"그대 기명이 가란이라지?"
"예."
"아름다운 난이라. 분명 청렴하고 재색을 갖춘 그대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짐은 좀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을 하사할 것이니."
이훈은 입가의 장난기를 물리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재주 기(伎)‘에 ‘꽃 화(花)‘를 써 기화(伎), 그대는 이미 재주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으며, 생각이 깊고 그 심성꽃다우니 이보다 어울리는 이름이 어디에 있을까!"
기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란은 소름이 쭈뼛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짐이 내리는 그대 이름이니라." - P138

"나는, 아니………."
시선을 다시 하늘에서 사내들에게 내렸다.
"짐은."
묵직하고 무거운 기세가 그들의 어깨뿐 아니라, 산 전체를내리눌렀다.
"이 나라의 하늘이요 어버이니."
이훈은 느꼈다. 비로소 눈앞에 가리고 있던 답답함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를 가리고 있던 눈가리개를 벗은 것이다. 몇 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그는……….
"전하!"
윤재민의 외침을 들은 사내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들을 보며 이훈은 한조각 웃음을 걸쳤다.
"조선의 왕이니라!"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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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 어두운 년, 말 그대로다. 내가 서는 것을 보고 저년은서는 법을 배웠다. 내가 걷는 것을 보고 걷는 것을 배웠다. 내가 뛰라고 하자, 스스로 뛰는 법을 찾았다."
밥할매는 이래라저래라 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가란에게 흉내 내라면서 그 앞에 시범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가란은,
그것을 귀신같이 해내었다.

"네 눈이 옹이구멍이라고. 그 새파랗게 어린 채홍준사도알아본 재목을 네가 못 알아봤다는 것이야."
이보다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듯 밥할매는 목소리를 키웠다.
"이 바닥에서 구르고 구른 네년보다, 그 낯짝 반반하고 세상 물정 모를 것 같은 사내놈의 안목이 더 높다고!" - P68

"이제 우리 같이 재를 뒤집어썼습니다. 만약 이었다가도재를 뒤집어써서 재가 된다면, 반대로………"
모두가 가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뗄 수 없었다. 재를잔뜩 뒤집어썼는데도, 어찌 저리 백지 위의 먹물처럼 튀는지알 수가 없다.
저리 지저분한 행색을 하고도 어찌 못 알아볼 수 있었을까?
"재가 꽃이 될 수는 없는 겁니까?" - P111

약속이다.
옥패를 꼭 갖고 오겠다 했으니 가란은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않겠는가. 가란은 경합에 열심히 임하고, 밥할매는 부질없는 목숨을 억지로 붙들고 있다. 서로 애를 쓰고 있다. 그래야 공평하다. - P140

"너도 많이 기가 죽었구나. 애기기생이었을 때는 세상 남자다 호령할 듯 굴었던 네가 고작 어린 사내에게 어깨를 움츠리다니."
499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반응이지.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먼 것을 바라보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더 겁을 먹고 쉬이 움직일 수가 없지."
단양은 작은 상에 약사발을 올려놓고 그것을 매월에게 넘겼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겁쟁이가 되고, 그래서 현명해진단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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