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날 혁명군에 끼워줬어?"
"뭐?"
"난 경호관도 혁명가도 아니잖아. 하다못해 아일렌처럼 공민회 의장도 아냐."
[등장인물 ‘장영‘이 ‘무기력 Lv.4‘ 을 발동합니다.][등장인물 ‘장하영‘이 ‘자기혐오 Lv.10‘를 발동합니다.]젠장, 시작이구만.
잠깐 잊고 있었다. 유중혁이 ‘회귀 우울증‘에 시달리는 녀석이라면 장하영은 철저한 ‘자기혐오‘로 점철된 녀석이라는 걸.
그렇게 생각하니 멸살법 주인공 중 제정신은 하나도 없다싶었다.
떨리는 작은 어깨. 그 어깨를 토닥여주면 내 기분이야 나아질지 모르지만, 실제로 녀석이 위로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 P218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는 무엇이 되는가?」
"네가 실패했다고 모두가 실패하는 건 아냐."
끔찍한 시나리오가 있다. 비극적인 시나리오가 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시나리오는 없어."
아무리 쓰레기 같은 시나리오라도, 그 시나리오를 살아가는것은 결국 사람들이다.
기뻐하거나, 슬퍼하면서.
맞서 싸우고, 불가능과 투쟁하면서.
누군가는 죽어가지만, 또 누군가는 서로 구원하면서.
그것이 내가 아는 멸살법의 시나리오다.
그랬기에 나는 그 긴 멸살법을 다 읽을 수 있었다. - P398

「김독자는 생각했다. 나는 ‘독자‘다. 모든 답은 이곳에 있어.」
「감독자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빌어먹을
「이대로 끝인가.」
마침내 아일렌의 얼굴마저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히든 시나리오 - ‘자칭 혁명가‘를 클리어했습니다.]
환청이 들려왔다.
[당신은 ‘혁명가‘가 됐습니다.]
틀림없이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정식으로 메인 시나리오에 진입했습니다!][‘추방자 페널티‘가 종료됐습니다.][당신의 화신체가 자동으로 수복되기 시작합니다.][붕괴 중이던 당신의 설화가 회복세에 접어듭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하하……."
허탈한 웃음과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안도감이 퍼져나갔다.
왜일까.
나는 그 순간 아일렌의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거꾸로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향하는 시계.
어디로도 되감기지 않고, 착실하게 나아가는 그 시간.
얼마든지 되돌아갈 수 있으나, 이번만큼은 돌아가지 않은바늘.
왔다."
그 마음이 너무 기꺼워서 나는 모처럼 녀석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응? 무슨 말이에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진짜 유중혁이 왔다고."
나는 그 순간의 감정에 격앙되어 일순 스마트폰을 놓치고말았다.
「그러나 김독자는 그 스마트폰을 먼저 확인했어야 했다.」[제4의 벽]의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떨어진 폰을 주웠다.
늘 그렇듯 화면에는 파일 제목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야 뭔가를 깨닫고 가슴 한구석이 섬뜩해졌다.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파일명 끝에 이상한 말이 더 붙어 있었다.
-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1차수정본).txt -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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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살법에는 그런 문장이 나온다.

‘이야기의 지평선‘에는 악마들이 살아간다. 마왕도 악마종도 아니지만 ‘악마‘라 불리는 존재들. 도깨비만큼이나 이야기를 갈구하고, 이야기를 갈구하는 만큼이나 도깨비를 증오하는 존재들.」
・・・ 그래, 그 문장.
만약 당신이 시나리오에서 추방당했다면, 기대할 것은 하나뿐이다. 바로 ‘지평선의 악마‘들의 자비를 바라는 것이다.」 - P34

나는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은 이야기의 지평선,
내가 별을 볼 수 없듯 별들도 나를 볼 수 없는 곳.
그러니 오만한 별들은 모를 것이다.
그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그들을 파멸시킬 이야기가 이제막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 P71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이곳에서 나는 이야기의 ‘두 번째 주인공‘을 찾아야 한다. - P86

"세상 모든 귀환자는 강하다‘라는 전제."
"뭔 소리야? 귀환자가 뭔지 몰라? 다른 차원이나 행성에서
"강력한 힘을 얻어 자기 행성으로 돌아온 존재라고. 약할리가없잖아?"
"모르지. 너도 세상의 귀환자를 전부 만나본 건 아니잖아?"
"그건......."
"가령 어떤 귀환자는 자기 고향을 싫어해서 귀환하지 않으려 할지도 몰라."
미소년의 안색이 일순 굳어졌다.
"몇 번이나 다른 차원으로 이동했는데 별다른 능력을 얻지못해 좌절하고 있을 수도 있고."
"새로운 육체를 얻었는데 그 육체에 아무런 재능이 없을 수도 있고."
"잠깐만"
"그 재능에 좌절해서 그냥 적당한 장소에 눌러앉아 평범한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을 수도 있지."
"너 누구야? 진짜로."
나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영아 마계 생활은 즐거워?"
"뭣?" - P108

[너는죽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바람의 길]을 전력으로 발동했다. 유중혁이 있었다면 좋았을것이다. 초월좌인 녀석의 도움이 있었다면, 이 긴 밤도 버티기 쉬웠겠지.
하지만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멸악의 심판자‘ 정희원도
‘강철검제‘ 이현성도
‘해상제‘ 이지혜도내 사랑스러운 꼬마들, 이길영과 신유승도 없다.
한수영은.….… 뭐 있어도 안 도와줬겠지만.
나 혼자다.
믿을 것은 내가 아는 정보, 내가 쌓아 올린 이야기.
그리고 나 자신뿐이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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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일언하고 결론은 하나야. 해방된 나라에서 빠른 애국의 길을찾아 군인이 된 우리가 한없이 순진무구하고 어리석었던 거지. 아니, 아니, 또 하나가 있군, 또 하나. 그때 그 육사 심사를 받을 때말야, 독립운동계 출신이구만 하며 심사관들이 묘하게 웃고 수군거리고 했을 때 재빨리 눈치챘어야 했어. 그게 비적떼 취급인 것을 까맣게 모르고 멍청하게도 날 장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으니, 이꼴된게 싸지." - P60

"그려라 개맨치로 벌어서 정승맨치로 쓰면 된께 어여 벌어서 고향 찾어갑시다."
천두만은 이렇게 말하며 다른 쓰레기통으로 발을 옮겼다.
천당하고 지옥이 죽어서나 있는지 알었둥마 그것이 아니여. 여그가 천당이면 나가 사는 디가 영축없이 지옥이여. 여그 사는 사람덜언 멀 혀묵고 살간디 요리 잘들 사는고? 사람이 사람이라고 다똑같은 사람이 아니여, 여그 사람들에 비하면 움막에 사는 것덜언생 아니라고 나가 평상 발싸심혀 대도 이리 살아보기는 글른 것이겼제? 사람이 한 분 태어났다가 한 분 죽는 것이야 다 똑같은디워디서보톰 잘못되야 요리 차등이 나는 것이제? 삼득이 성님도 맴이 참 기맥히겄제. - P191

고등학생들까지 터져나오고 있구나. 저것들이 세상이나 정치를1뭘 안다고 투표권도 없는 미성년자들이 헌데 아니야………… 고대생들이 데모를 일으키기 전에 전국에서 일어난 그 많은 데모는 전부 고등학생들이 일으키지 않았나 데모대 중에 제일 무서운 게 물불 가리지 않는 고등학생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고등학생들이 왜 그렇게 대학생들보다 먼저 데모를 시작하게 된 거지? 가만있거라…… 그게……… 아아 그렇구나,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선거기간 동안 야당 유세장에 못 가게 하느라고 일요일에도 등교를 시키고, 갑자기 시험을 치르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글짓기를 시키고・・・・・・・ 그런 처사에 대해 유일표가 얼마나 불평불만을 했던가. 그따위 치졸한 처사들이 고등학생들을 자극해 불평불만을 사고 결국 정치의식까지 길러준 것이로구나. 이거야말로 자업자득이 아니고 뭔가. - P307

이때 밀리면 안 돼. 밀어붙여, 소방차 물은 얼마 안 되니까 밀어붙이라고. 전진, 후퇴 하면서 소방차들이 물을 다 쏟아내게 유인하라구.
한인곤은 애가 달아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여기서 기세가 꺾이면 데모는 실패하기 십상이었다. 군대의 전투든 깡패의 패싸움이든, 모든 싸움의 승패는 기세가 좌우했다. 일단 기세가 꺾이고 사기가 떨어져 한 축이라도 허물어지거나 밀리기 시작하면 그 여파는삽시간에 전체에 퍼져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 집단 공포증은 모든 싸움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 P329

혁명은 어째서 일어나는것인지, 혁명은 어떻게 성취되는 것인지, 혁명을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왜 혁명에 몸을 던지는 것인지, 구름이 걷히듯 확연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혁명이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응결된분노와 증오의 집단적 폭발이었다. 그 인식은, 불투명하고 원망도섞여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해이면서 발견이기도 했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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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벽이 당신에게 화를 냅니다.]
나는 벽을 마주 보았다. 오랫동안 나는 이 벽이 소설과 현실을 가르는 경계라 생각했다. 벽이 있기에 새로운 세계에 적용할 수 있었고 온갖 끔찍한 상황 앞에서도 비상한 판단력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벽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여전히 확답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벽이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었다는 것.
몇 번이고 위기를 맞았지만 벽이 있기에 살아남았다.
이 벽이 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나를 향해 환자를 부풀리는 벽에 손을 가져다댔다.
"미안해."
[제4의 벽‘이 파르르 몸을 엽니다.]
손가락에 감겨드는 활자의 감촉이 낯설었다.
[제4의 벽]은 이런 느낌이었던가. 벽에 적힌 문자들이 손끝으로 몰려들었다. 나를 핥는 것 같기도 했고 깨무는 것 같기도했다. 명료히 나눌 수 없는 느낌이었기에 와닿지 않는 비유만이 가능했다. [제4의 벽은 비에 젖은 강아지 같았고, 버림받은아이 같았으며, 말 안듣는 사춘기 소년 같았다. [제4의 벽 ]은[제4의 벽은 마치 나 같았다.
그리고 벽 위에 문장이 떠올랐다.
[김독자는 멍청 이이다.」한글을 막 배운 어린아이가 시험 삼아 적어본 것 같은 문장.
나에 관한 서술도, 세상에 대한 서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제4의 벽]의 말이었다. - P250

「내 아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대체 뭐야? 빌어먹을 [운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지?」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이수경은 그런 것을물었다. ‘벽 안의 존재는 그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대답했다.
「[운명을 벗어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이 모든 상황이 장난스럽다는 듯이 괴이쩍은 미소를 지은채로「김독자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어.」 - P307

쏟아지는 무수한 별들의 시선 속에나를 죽일 이야기가 한 문장씩 다가오고 있었다.
한때는 내 부모였고, 친구였으며, 연인이던 이야기.
더는 내가 아는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이야기였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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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일까. 그토록 바라온 일인데.」니르바나의 전신이 자잘한 균열로 뒤덮였다. 발, 다리, 허벅지, 가슴...... 부서진 조각은 고스란히 [제4의 벽]으로 빨려들었다.
「나는 왜 이것을 두려워할까.」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죽음의 공포. 죽는다는 것. 이후가없다는 것.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고,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조차 없다는 것.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순간 감겼던 니르바나의 눈이 번뜩 떠졌다.
190「싫어.. 싫다!」그러나 입이 흩어진 니르바나는 그 말을 외칠 수 없었다.」앞으로 내뻗은 팔이 허망하게 사라졌다.」「애초에 실존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닌 것이다.」
죽음에 달관한 필멸자는 없다.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 - P90

천장을 비롯한 벽 곳곳에서 시나리오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명 속에 죽어가는 화신들, 그걸 보며 낄낄대는 성좌들. 그모습을 보며 나는 여기가 어떤 곳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인간의 모든 비극이 만찬이 되는 곳.
연회 홀 2층을 올려다보았다. 시끌벅적한 1층의 위인급 성좌들과 달리 불길한 침묵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성좌들이 있었다. - P134

멸악의 심판자
나의 ‘불살‘을 지켜주기 위해서 모든 것을 ‘몰살‘해야 했던사람.
"시나리오에 쫓기듯 살지 않아도 돼요. 누군가를 죽였다는이유로 악몽을 꾸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이제………."
정희원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시선을 회피하듯 말을 맺었다.
"누군가를 잃지 않아도 돼요."
가장 단단한 검은 가장 부러지기도 쉽다. 단단하다는 이유로 제일 많이 휘두르게 되니까. 가장 많이 상처받고, 가장 이가 많이 빠진다. 그렇기에 어떤 검보다 빨리 망가진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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